이츠학 라오르(Yitzhak Laor, 이스라엘의 진보매체 하레츠 닷컴의 비판적 평론가)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의 연속적인 민주화운동의 열풍이 거세다. 튀니지와 이집트를 민주화시킨 시민혁명 열풍이 리비아에도 불었다. 지금 리비아 민주화운동은 진행 중에 있다.

대개의 언론들이 카다피 정권의 잔인함과 몰락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에 비해 북경<제4언론>(http://en.m4.cn)에서는 새로운 시각에서 미국과 서방 언론들이 정보조작을 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들 언론들이 미국, 이스라엘, 서방의 리비아에 대한 불법적인 군사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규모 정보조작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뉴스>에서는 리비아 민주화운동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과 균형적인 시각을 위해 <제4언론>에서 제공하는 번역글과 분석기사 등을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오늘 세상의 정치지형은 극우화된 식민지사고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극우화된 식민지 논리의 핵심은 “서구는 곧 선(善)이고 비서구는 악(惡)”이라는 [극단적인 단순]논리다.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일어난 아랍세계의 저항은 리비아내전과 함께 사람들의 의식에서 사라졌다. 한편 워싱턴 [백악관]의 그 누구도 [그들이 리비아에 요구한 것처럼] 바레인 왕정의 하야를 요구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둑의 손목을 자르는” 반인륜적 법을 여전히 실행하는 사우디 아라비아에겐 바레인에서 벌어지는 살육을 돕도록 군대투입까지 허락했다. 예멘에선 매일 [평화로운] 시위대들이 학살되고 있으나 서방은 이를 방조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높은 옥탄(Octane)의 아랍사람 피는 오늘 [싸구려] 세일 중이다.

[서방/미국의 이런] 이중성을 지적하는 일은 마치 “어, 미사일 탄두와 미두(꼬리)가 왜 다르나”라고 묻는 일과 같다. 지난 이십 년, 다음의 아랍국가들(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그리고 오늘 리비아)은 “인권”이란 미명하에 주권이 강탈당하고 파괴됐다. 인간을 향해 발사되는 “인권미사일”(human rights missiles)을 이용해서다. 언제나처럼 서방언론은 이미 온 세상을 상대로 요란하게 떠들고 있다. “명분” 없는 전쟁은 해선 안 된다며 “명분 있는 전쟁”을 요란하게 떠들며 “명분/가치와 전략 사이의 모순” 등에 대해 이런저런 말장난(논쟁)을 부치고 있다.

서방/미국은 호머[오딧세이]를 인용하며 가치(명분), 석유, 특히 [무기장사군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전쟁[대량살상]무기 사용을 위해 다시 한 번 카다피와 그동안 벌려왔던 공동사업들과 협력관계 등을 헌신짝 버리듯 내동댕이치고 있다. 그 일이 자신들의 피와 돈을 대가로 지불해야 되는 상황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일반대중은 이런 류의 게임을 즐긴다. 전쟁이 끝나고(무덤이 덮이고) 분위기가 바뀌면 일반사람들은 쇼핑몰로 몰리고 리얼리티 TV쇼를 즐기며 아름다운 해변가로 휴가를 떠난다. 그리곤 세상현실과 동떨어진 채 무관심 속에 살아간다.

무엇인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나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뿐만이 아니다. 복지국가체계는 내버리고 [사회주의] 좌파가 사라진 공간들엔 식민지 지배논리(신학)가 복귀한다. 그것은 아랍과 무슬림을 상대로 오늘 바로 우리 앞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카다피에 대한 악마화는 결국 세상에 그에 대한 역겨운 이미지를 조작해내 [유엔으로 하여금] “비행금지구역”을 통과시키고 그것은 급기야 [서방]세계의 침략을 불러들이는 눈짓으로 변해 오늘 [서방/미국의] 거대한 첨단무기들에 의한 공중폭격 갤러리[쇼]로 바뀌었다.

대량학살을 기본으로 한 [전쟁]범죄 그 자체인 이라크파괴는 공중폭격과 함께 시작됐고 이라크점령은 오늘 십여 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당시 그 누구도 오늘까지 지속되는 상황을 예측치 못했다. 따라서 오늘 리비아에 가해지는 공격이 무엇을 뜻하는지 묻는 일은 어쩌면 불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 “이라크에서처럼?”, “민주주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처럼?”

대량살상무기 연구, 개발비를 비롯 거대한 전쟁무기체계를 갖고 있는 무기상인들과 전쟁광들은 그들의 [신형]무기들을 실험할 기회를 갖기 원한다. 특별한 목표는 따로 없다. 혹 알 카에다가 그 역할[대상]이 되어주면 더할 나위가 없이 좋다. 그것은 그들이 한번은 “인권”의 이름으로, 또 다른 경우는 “대테러 전쟁”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일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재고로 잔뜩 쌓인 전쟁상인들의 무기고를 비우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이런저런 일들이 벌이진 다음엔 십중팔구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요란한 명분(가치), 석유, 소위 평화회의, 다음과 같은 대단한 명사들의 사진들, 메르켈 옆에선 사르코지, 오바마, 데이비드 카메론 옆에 선 베를루스코니, 자, 이제 모두 활짝 웃고 찰칵. 뒤이은 연설들 …

이스라엘이 갖는 관심은 리비아 반군의 목숨도, 세상이 요란하게 떠드는 그 무슨 “가치”, “명분”도 아니다. 시나이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갖는 흥미로운 일이란 아랍인들이 서방의 군사개입에 의해 죽어나가 자빠지는 것뿐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대가 지나야 사람들이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우리에게 이롭고”, “우리에게 피해가 없으면 된다”는 주장/논리가 갖는 [오늘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신/의식문화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달을까? 인종차별의식으로 무장한 사페드 출신의 유대교 랍비, 극우정치인 현직 외교장관 애빅도어 리버만, 이라크나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침략전쟁에 열광하는 증오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로 도대체 인본주의사회라는 것을 건설할 수 있을까?

식민지논리에 다름 아닌 극우화한 오늘의 정치지형은 우리의 의식과 삶을 지배하고 있다. 즉 서방은 선이고 비서방[아랍]권은 무조건 악이 되는 사고/논리 말이다. 우리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정반대다. 작가 고어 비달(Gore Vidal)이 말했듯 미국대통령 선거란 결국 대형은행의 매니저를 뽑는 것과 같다고. 고객들은 누가 은행장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중동의 현실에서 보면 바이달 말이 얼마나 맞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글은 이스라엘 하레츠신문에 실린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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