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기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올해 북한의 기술혁신 소식의 맨 앞장에는 “CNC”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컴퓨터로 자동제어되는 시스템을 일컫는 CNC는 외국어를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북한에서 이례적으로 알파벳 문자 그대로 인용될만큼 중시되고 있다. 심지어는 북한 전역에 걸쳐 “CNC”라는 노래까지 보급될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0월 22일, 재일 “조선신보”는 “조선의 기계공업이 CNC화의 다음을 과시”한다며 “무인화공장”을 지향한다고 보도하였다. 무인화 공장은 말 그대로 공장에 사람이 한 명도 없어도 저절로 가동된다는 뜻으로 생산설비의 완전자동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CNC는 개별 단위공정의 자동화

“CNC”는 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의 머릿글자로 엄밀히 말해 “컴퓨터 수치제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한다면 한 공장의 생산설비가 있으면 조종자가 컴퓨터에 입력하는 수치에 따라 생산가공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체계를 일컫는다.

이 경우 컴퓨터 수치제어는 해당 공정 라인을 자동화, 전산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그랜저 TG를 조립한다고 할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동화 공정은, 엔진 부착 공정, 타이어 부착 공정, 도장 공정 등 각 공정을 전산화된 체제로 운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화된 자동차 공장 생산라인에서는 노동자들이 무거운 엔진을 직접 들어올려 차량 내부에 탑재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들은 로봇을 이용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로봇 팔을 포함한 각 장비가 원만히 구동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해당 공정의 작업이 끝났을 때, 다음 공정으로 부품을 옮기거나 필요한 재료를 더 구해오는 등의 일을 하게 된다.

즉, 개별 생산공정은 자동화되었지만 공정과 공정 사이는 사람의 조절과 통제가 필요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일례로 농장에서 수확한 사과를 컴퓨터 자동관리프로그램에 의해 자동포장되는 시스템을 생각해보자. 농장에서 수확한 다양한 사과는 벨트 콘베이어를 타고 흘러가면서 크기별로 자동 검색되어 등급별로 분류, 박스에 담길 것이다. 이 경우, 사과선별 공정이 자동화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노동자들은 벨트 콘베이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관리할 뿐이다. 이러한 사과선별 체계도 북한당국이 표현하는 바에 의한다면 넓은 의미의 “CNC"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CNC"가 무인화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사과 선별 공정은 자동화되었다고 하더라도, 농장에서 사과를 따는 공정이나, 분류된 사과를 상자에 담는 과정과 포장된 사과를 트럭에 싣는 과정에서 분명히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무인화”는 모든 생산공정의 자동화

“무인화”는 198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그 사전적 의미로는 좁게 보면 생산공정 또는 계측·제어의 자동화 혹은 설계 자동화 등의 국부적인 자동화를 뜻하고, 넓은 의미로는 제품의 수주에서 출하까지 일체의 생산활동을 효율적,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시스템 기술을 말한다.

앞서 언급하였던 사과농장에서 “무인화”가 현실화되기 위한 조건은, 너무나 명백하게도 농장 내에 일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즉, 사과를 따는 것도, 분류한 사과를 박스에 담는 것도, 사과박스를 트럭에 싣는 것도 자동화되어야지 비로소 “무인화공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공정이 갈수록 전산화, 자동화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무인화란 각 개별 생산공정의 CNC화를 모두 구현한데 이어 공정과 공정의 이음새까지 전산화, 자동화를 도입 완비한 체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관리하는 사람이 1명도 없어도 그랜저 TG가 자동으로 생산되는 체계, 그것이 “무인화”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무인화의 발전단계로 단위 기계의 부분 자동화, 단위 기계의 완전 자동화, 생산 라인의 자동화, 모든 공정의 자동화의 4단계를 들고 있다. 여기에서 북한이 강조하는 “CNC"는 공작기계 측면에서는 2단계의 단위기계의 완전자동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2.8 비날론연합기업소와 같은 화학공업단위의 ”CNC"는 3단계의 생산 라인의 자동화까지를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신보가 주장하는 “무인화”는 이 가운데 3단계, 생산라인의 자동화와 4단계, 모든 공정의 자동화를 뜻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무인화”의 첫발을 뗀 북한산업

조선신보는 10월 22일자 기사에서 “평양326전선공장에서는 이미 일부 가공 공정들에서 무인화가 실현되여 있다.”고 보도하였으며 “공장에서는 통합생산체계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무인화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보도하여 북한에 무인화 체계가 막 도입되고 있음을 피력하였다.

주목할 것은 “무인화”를 실현하였다는 공장이 전선공장이라는 점이다. 평양시 인근에 위치한 전선공장은 민수공업부문 가운데 경공업 분야의 전선 생산공장이라 할 수 있다. 북한군수공업 부문을 열외로 한 채, 민수분야의 무인화 공정이 막 시도되고 있다는 보도는, 북한의 군수공업 전반에는 이미 생산설비의 자동화가 빠른 속도로 구현되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게 한다. 다만 언론보도에 있어서 북한당국은 전선피복공장의 무인화를 먼저 언급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전선공장의 전체 작업공정은 비철금속 부문의 제련소로부터 구리선을 받아 오는데에서부터 출발한다. 받은 구리는 매우 가는 구리철사로 사출하고, 이를 적절히 매듭으로 엮은 다음에, 고무피복을 사출해서 감으면 노동자가 1명도 없어도 전선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

헐리우드의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옴직한, 최첨단 로봇이 모든 일을 전담하는 형태의 “무인화”는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은 생산체계의 자동화가 실현하고 있으며 각 공정간 통합생산체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보도를 통해 본다면 북한에서 말하는 “무인화”는 아직까지 도입의 초기단계에 있으며 “CNC화”를 구현한 성과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북한당국도 “CNC”를 너머 “무인화”를 언급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무인화의 의미

무인화공장으로의 진입은 노동집약적 산업이 기술집약산업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제3세계와 개발도상국들은 광범위한 국민의 노동력에 의거하여 산업을 발전시킬 경우 손쉽게 수익을 거둘 수 있다. 1960년대, 차관경제의 초입에 한국이 봉제, 가발, 인형 등 산업에 우선적으로 진출한 것은 이들 산업이 지극히 “단순노동”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당시 봉제, 인형 산업은 누가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 싼 값으로 부려먹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들 산업이 전형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CNC 자동화에 이어 무인화가 실현된 공장이라면, 이 공정이 노동집약적 형태로 분류될 수 없다. 고용 노동자가 한 명도 없는 산업이 노동집약형일 수 없는 것이다. 이들 공장이 대규모 생산설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이는 기술집약산업으로 분류될 수 있다.

똑같은 신발공장이라도, 노동자들이 직접 유해한 본드를 발라가며 작업하는 신발공장은 명백한 노동집약산업인 반면, 생산공정 전반이 자동화되어있는 무인화공장이라면, 이는 자본집약 산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양한 자동화 설비를 돈 주고 사온 것이 아니라 자체 기술진이 연구개발에서 만들어 낸 것이라면, 기술집약산업으로 구분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강조하기 시작하는 “무인화”는 북한산업에 “기술”요소의 비중이 증가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사실 노동집약산업의 경쟁력은 노동자 임금을 얼마나 낮게 형성하는가에 따라 결정되지만, 기술집약산업의 경쟁력은 원천기술, 최신기술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북한이 정밀공업을 비롯한 산업전반이 “CNC"화를 너머 ”무인화“로 나아가게 되면 될수록, 북한 산업에 대한 평가는 더욱 커다란 간극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산업이 제재에 가로막혀 국제사회에 진출할 기회를 상실한 이상, 북한이 보유한 기술력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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