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동생들 절 받으세요."

2010년 추석계기 이산사족상봉행사 이틀째인 31일 금강산 호텔에서 이뤄진 개별상봉에서 북측 오빠 정기형(79)씨를 마난 남측 기영(72), 기옥(62), 기연(58) 세 여동생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오빠에게 절을 올렸다. 아버지를 대신해 북으로 끌려갔던 오빠에게 "모진 고생을 하게 해 미안하고 고맙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오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1950년 기형씨 가족이 살던 경기도 안성에 인민군이 내려왔다. 이들은 동네 사람들을 시켜 말투(말에게 먹일 풀)을 뜯은 뒤 그것을 운반할 사람으로 마을 사람 몇몇을 끌고가려 했다. 동네 사람들은 누구를 보낼지 제비뽑기를 했고, 기형씨의 아버지가 뽑혔다. 그러자 그 때 19살이던 기형씨는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가 가시면 안된다"며 "차라리 내가 가겠다"고 나섰다. 부모님은 만류했지만 기형씨는 고집을 부렸다. 온 가족이 울며 옥신각신하는 사이 기형씨는 입고 있던 낡은 베잠뱅이에 헌 신발 차림으로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어느덧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중간에 신발을 잃어버린 기형씨는 북으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동네사람들에게 "신발을 사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고향으로 돌아온 동네사람들이 이 말을 기형씨의 부모에게 전했다. 아들을 맨발로 떠나보낸 어머니는 그 일이 평생의 한으로 맺혀 세 자매에게 늘 '맨발로 나간 오빠'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번 상봉에서 남측 세 자매는 북측 오빠에게 줄 신발을 4켤레나 준비해왔다. 구두에 맞춤하게 어울리는 양복, 북쪽의 추운 날씨를 생각해 털신과 솜신도 사왔고 편하게 신을 수 있는 가죽신발도 샀다. 기옥씨는 "(오빠의) 사이즈를 알 수 없어서 보통 사이즈로 샀는데 옷과 신발이 오빠한테 조금 커 속상하다"면서도 "그래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오는 1월 16일(음력 12월 9일)은 기형씨의 생일이다. 다시 만났지만 그때까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남측 자매는 고향의 쌀과 미역, 떡을 준비했다. 서울에 있는 큰 오빠까지 남매가 준비한 선물은 커다란 여행가방 3개를 가득 채웠다.

이날 개별상봉에서 기형씨는 북측의 술 3병을 가져와 동생들에게 "인민군이 시키는 일을 다 하고 가족들에게 돌아오려고 했지만 다리가 끊겼다"며 "그간 내 걱정 많이 하고 살았을 텐데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기형씨가 북으로 간 이후 태어나 전날 단체상봉에서 오빠를 처음 만난 기연씨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오빠지만 어머니가 오빠 생각하면 날 보라고 했을 정도로 내가 오빠와 가장 많이 닮았다"며 "한 번에 오빠를 알아봤고 할 얘기도 계속 나오더라"고 말했다.

당시 12살이어서 비교적 기억이 또렷한 기영씨는 "오빠가 똑똑하고 생활력이 강해 다들 '기형이는 어디가서든 잘 살 것'이라고 했고 나도 마음 한켠에는 어디선가 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오빠와 살던 집을 아직도 헐지 않고 그대로 뒀다. 어서 통일이 되어서 오빠가 그 집에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억을 더듬던 기영씨는 "어머니가 '나는 너희 오빠를 못 보고 죽어도 너네는 꼭 만나라'고 했는데 결국 만났다"며 "그동안 혼자 낯선 곳에서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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