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당국의 대북 강경책이 한여름 더위마냥 맹위를 떨치고 있다. 사실 남측의 대북 정책은 정책이라고 할 것도 없다. 북측이 머리를 숙이고 두 손 들고 나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무슨 정책이란 말인가? 언제까지 대결만 하고 또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강온전술을 구사해야 하고 한번쯤 에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 대결과 갈등의 정도가 더 심해져 서해안에서든, 군사분계선에서든 무력충돌이 일어난다면 어쩔 것인가? 전면전으로 비화하기 전에 대화를 예상한 수순으로 들어가야 한다. 김태영 국방장관이 북한군의 해상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의 포사격시 2~3배의 화력으로 대응사격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북한 최고인민회의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핵억제력에 기초한 우리 식의 보복성전” 운운한 것은 모두가 불길한 징조다.

전쟁 중에도 평화를 준비해야 하듯, 대결 국면에서도 대화 국면을 예상해야 한다. ‘대화와 충돌’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이문항 전 유엔사 특별고문의 지적이 매우 시사적이다. 그는 저서 『JSA-판문점(1953-1994)』에서 “남과 북이 대화를 하는 동안은, 또 그후에도 얼마 동안은, 남과 북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사건이 많이 줄어들고, 긴장이 완화된다”고 하면서 “결국은 대화를 통해서 얻으려는 목적이 달성 안 되더라도 대화를 하면 긴장이 완화되니까 남북대화는 자주 하는 것이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대화를 하면 긴장이 완화되고 따라서 충돌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냉전시대 때 28년간 판문점 현장을 지켜본 산 증인이기에 그의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마침 남북 사이에 대화 재개를 가늠케 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겼다. 대북 쌀 지원과 수해 지원이다. 특히 최근 북한의 압록강 하류 범람으로 인해 신의주 지역이 물에 잠겨 큰 피해가 확인되면서 대북 쌀 지원이 힘을 얻고 있다. 진작부터 쌀 지원을 주장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최근에는 한나라당과 선진당까지 긍정적인 분위기로 돌아섰다. 모처럼 정치권이 대북 쌀 지원이라는 단일 사안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북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고 또 쌀 재고량도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통일부만이 대북 수해 상황에 대해 “2006년, 2007년에 비해서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딴청을 피우거나, 쌀 지원에 대해서는 “검토하고 있는 사실이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할 따름이다.

산이 있으면 골이 있듯이, 대결과 갈등 다음에는 완전 파탄이 아니고서야 반드시 대화가 이뤄지게 마련이다. 현명한 정부라면 이제 북측과의 대화 국면을 예상해야 한다. 대북 수해 지원은 그 척도다. 마침 북측이 평양 주재 유엔 대표팀에게 긴급 구호를 요청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 내 민간구호단체들도 수해를 입은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곧 구호물품을 공수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모두가 향후 대화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남측도 여기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 남이라도 피해를 입으면 돕는 게 인지상정인데 동족임에도 돕지 않고 회피한다면 옛말대로 ‘인두껍을 썼다’고 밖에는 달리 해석되지 않는다. 정부당국은 대북 수해 지원에 적극 나서라. 더 이상 실기하지 말라. 대화 비용이 대결 비용보다는 훨씬 값싸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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