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기자교환은 이해 도울터
실천없는 지성인들
여대생은 사치만 선도
=3.1운동도운「스코필드」박사=

『청조운동요?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제복이나 만들어 입는 정도로서는 신생활운동은 무의미합니다. 한국인의 년 평균소득이 ○75불(편집자 주- 해석불가) 밖에 되지 않는데 국회의원들은 5백불이란 막대한 금액의 세비를 받고 있지않어요. 자기네들이 하고픈 것은 다할 수 있는 급료를 받고 있는 반면에 빈한한사람은 그날의 생활에 허덕이는 판국에 누구를 상대로 신생활운동을 한다는 것입니까? 한국의 빈민들은 신생활운동의 훨씬 이전에 있어요. 한국의 지도자 중에는 일반인보다 우월하다는 관념에 사로 잡혀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떠한 단계 위에다 자기를 올려놓고 대중에게 「어떠 어떠한 일을 해라」하는 태도로 나오면 대중이 그 지도자를 믿고서 따라오겠어요? 지도자는 일반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버려야합니다. 현 한국의 실정으로 신생활운동은 절대로 긴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운동에는 먼저 확고한 정신무장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라를 구해보자는 신생활운동은 부자와 권력있는 사람이 솔선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빈자에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메마른 것같아요. 공동사회에서 자기의 이익에만 눈이 어둡고 이웃의 곤란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자신을 불행케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여생을 보내려는 한 사회인으로서 하는 말입니다.』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력(편집자 주- 해석불가) 하였고 한국의 번영을 진심에서 바라고 있는 한국의 은인 「스코필드」박사는 신생활운동에 대한 그의 소○을(편집자 주- 해석불가) 이와 같이 피력했다.
이어 그는 한국의 학생들과 지식인들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한국학생들은 사월혁명이란 세계에 빛나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 학생들은 손으로 하는 일은 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그 튼튼한 몸을 가지고 유리창의 먼지를 털어내는 노력마저 아끼고 있으며 학교주위에 떨어져있는 휴지를 주워 치우겠다는 데는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선진국의 청년들은 그들이 보다 나은 생활을 즐길 만큼 충분한 노력을 치렀던 것 입니다. 한국의 여대생들은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신의 치장보다 외모의 치장에 더 힘을 쓰는 것 같아요. 대학은 지도자를 길러내기 위한 기관인데 이들이 농촌에서 무엇을 가르치겠어요. 여대에서 「펜싱」을 가르친다고하는데 그보다는 물동이 이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한국가정생활에 더 유효할 것입니다. 이러한 여대생들이 농촌에 가서 일에 지친 농촌 부녀자들에게 보건운동이 필요하다고 「펜싱」을 가르칠 것입니까? 그리고 한국의 「인테리」들을 보십시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도 많은데 이들은 그 명예가 부여한 사명은 다하지 못하고 일반으로부터 존경만을 받으려고 하고 있어요. 현재 한국에는 공론적인 이론가보다 「한가지의 실천」이 필요합니다.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 이것이 한국에 필요한 존재입니다.』노박사는 한국 지성인들의 약점을 파헤치고 「실천」이란 말에 힘을 주어 강조했다. 『국토건설계획은 참으로 훌륭한 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계획은 어느 일당이나 일파에 이익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게 참된 복리를 가져오는 사업이라야하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사업을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 정부는 확고한 신념과 능력과 열정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위해서 지도자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자발적으로 협력케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하여서는 정열과 신념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훌륭한 안이 대중의 협조를 얻지 못하여 실패한 예도 역사상 허다히 많습니다. 청사진 자체로는 무의미한 것입니다.』『통일문제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현재로서는 통일을 운운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보아요. 왜냐하면 전술은 변할지라도 원칙만은 변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일정한 제약 하의 기자들의 교환은 쌍방의 사정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정부가 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민주주의 방식에 대한 자신이 없는데서 나오는 나약한 태도라고 봅니다.』

스코필드박사 약력 (영국태생-현 73세)
▲「카나다」의 「토론토」수의과대학졸업
▲「토론토」대학에서 세균학강의
▲ 을미년이전 50년간「세브란스」의대 교수
▲ 1920년 한국에서 추방당했음
▲ 건국 10주년 기념에 정부 초청으로 내한

[민족일보 1961년 2월 20일자]

曠野의 소리(8)

南北記者交換은 理解도울터

實踐없는 知性人들

女大生은 奢侈만 先導

=3.1運動도운「스코필드」博士=

『淸潮運動요?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制服이나 만들어 입는 程度로서는 新生活運動은 無意味합니다. 韓國人의 年平均所得이 ○七十五弗밖에되지 않는데 國會議員들은 五百弗이란莫大한 金額의 歲費를받고있지않어요. 自己네들이 하고픈 것은 다할 수 있는 給料를 받고있는 反面에 貧寒한사람은 그날의 生活에 허덕이는 版國에 누구를 相對로 新生活運動을 한다는것입니까?韓國의 貧民들은 新生活運動의 훨씬 以前에 있어요 韓國의 指導者中에는 一般人보다 優越하다는觀念에 사로잡혀있는사람들이 많은것같아요. 어떠한 段階위에다 自己를 올려놓고 大衆에게 「어떠 어떠한일을해라」하는態度로 나오면 大衆이 그指導者를 믿고서 따라오겠어요?指導者는 一般보다 優越하다는 생각은 버려야합니다. 現韓國의 實情으로 新生活運動은 絶對로緊要한것입니다. 그러나이運動에는 먼저 確固한精神武裝이先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라를 救해보자는 新生活運動은 富者와權力있는 사람이 率先해야합니다. 그리고 富者들은 貧者에대한 사랑하는마음이 너무나 메마른것같아요. 共同社會에서 自己의利益에만 눈이어둡고 이웃의 困難을 돌보지않는 사람들은 結局 自己自身을 不幸케할것입니다. 韓國에서 餘生을 보내려는 한 社會人으로서하는 말입니다.』韓國의 獨立을 위해서 ○力하였고 韓國의 繁榮을 眞心에서 바라고있는 韓國의 恩人 「스코필드」博士는 新生活運動에 대한 그의 所○을 이와같이披瀝했다.

이어 그는韓國의學生들과 知識人들에 대해서 입을열었다. 『韓國學生들은 四月革命이란世界에빛나는 業績을세웠습니다. 그러나 이學生들은 손으로하는 일은 할줄모르는것같아요. 그 튼튼한 몸을가지고 유리창의 먼지를털어내는 努力마저 아끼고있으며 學校周圍에 떨어져있는 休紙를주워 치우겠다는 데는 생각도못하고 있는것같아요. 先進國의 靑年들은 그들이보다 나은 生活을 즐길 만큼 充分한努力을 치렀던것입니다. 韓國의 女大生들은 流行을先導하고 있는것같아요. 精神의 치장보다 外貌의치장에 더힘을 쓰는것같아요. 大學은指導者를길러내기 위한 機關인데 이들이 農村에서무엇을 가르치겠어요. 女大에서 「펜싱」을 가르친다고하는데 그보다는 물동이 이는 것을 가르치는것이 韓國家庭生活에 더有效할것입니다. 이러한 女大生들이 農村에가서 일에지친 農村婦女子들에게 保健運動이필요하다고 「펜싱」을 가르칠것입니까? 그리고 韓國의 「인테리」들을 보십시오. 博士學位를가진사랍도 많은데 이들은 그名譽가 賦與한 使命은다하지못하고 一般으로부터 尊敬만을 받으려고 하고 있어요. 現在韓國에는 空論的인 理論家보다 「한가지의實踐」이 必要합니다. 黙黙히 實踐하는 사람! 이것이 韓國에必要한 存在입니다.』老博士는 韓國知性人들의 弱點을파헤치고 「實踐」이란 말에힘을 주어强調했다. 『國土建設計劃은 참으로 훌륭한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計劃은 어느 一黨이나 一派에利益주는것이아니라國家와民族에게참된福利를가져오는事業이라야하는것입니다. 이巨大한 事業을成功으로 이끌기爲해서 政府는 確固한信念과 能力과熱情이 있어야하는것입니다. 어떠한 目的을 達成하기위해서 指導者는 國民의마음을움직여 自發的으로 協力케하는能力이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國民의 마음을 움직이기爲하여서는 情熱과信念이 없이는 不可能한 것입니다. 훌륭한 案이 大衆의 協調를 얻지못하여 失敗한例도 歷史上 許多히많습니다. 靑寫眞自體로는 無意味한것입니다.』『統一問題는 참 어려운 問題입니다. 現在로서는 統一을 云云한다는 것은 時機尙早라고 보아요. 왜냐하면 戰術은 變할지라도 原則만은 變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一定한 制約下의 記者들의 交換은 雙方의 事情을 理解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政府가 이에對해 反對하는 것은 民主主義方式에對한 自信이 없는데서 나오는 나약한 態度라고 봅니다.』

 

스코필드博士略歷 (英國胎生-現七三世)

▲「카나다」의 「토론토」獸醫科大學卒業

▲「토론토」大學에서 細菌學講義

▲ 乙未年以前五十年間「세브란스」醫大 敎授

▲ 一九二○年 韓國에서 追放당했음

▲ 建國十周年紀念에 政府 招請으로 來韓

[民族日報 1961年 2月 20日字]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