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저녁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는 '한충목 석방을 위한 후원의 밤'이 열렸다. 참가자들이 제일 마지막 순서로 다같이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12일 저녁,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는 뒤늦은 '공개 자수' 경쟁에 불이 붙었다.

이 자리는 북측 민화협 소속 공작원들과 회합을 하고 이들로부터 지령을 받아 진보연대와 6.15공동위 결성 등에 관여하는 등 대남활동을 펼쳤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 중인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의 석방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가 6.15남북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 주최로 진행되고 있었다.

백낙청 6.15남측위 명예대표가 먼저 '폭탄선언'을 했다.

"한충목 대표가 북의 공작원, 김지선.리창덕.양철식과 접촉했다고 구속됐는데, 전부 제가 아는 이름이고, 저도 접촉을 많이 했다. 공개적으로 자수한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200여 명의 박수 소리가 환호와 섞여 일제히 터져 나왔다. 순간 '멈칫' 했던 장내 분위기는 금세 누그러졌다.

"자진해서 혐의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위에 있는 무서운 공작원이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 같다. 저는 그분도 여러 번 만났다. 그분한테 '이래라저래라' 주문도 많이 들었다. 물론 제가 다 따른 것은 아니지만, 검찰 표현대로라면 지령이 될 수도 있겠다."

공안 당국이 대남 공작원으로 지목한 북측 민화협 리창덕 부회장(6.15북측위 부위원장), 김지선 중앙위원(6.15북측위 위원), 양철식 사무소장(6.15북측위 사무국장)은 남북 공동행사 논의를 위해서는 남측 인사들이 접촉해야만 하는 대표적인 '대남일꾼'들이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6.15남측위 상임대표를 지낸 백 명예대표가 이들과 만났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공안 당국이 주장하는 '회합.지령수수'라는 혐의의 억지스러움을 '뼈 있게' 꼬집은 것이다.

▲ 백낙청 6.15남측위 명예대표는 공안 당국이 지목한 북측의 '공작원'을 만난 사실을 언급하며 '공개 자수'를 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당국은 이들 북측 인사들과 더불어 남측 단체들이 북측과 팩스를 주고받는 통로인 6.15해외측위의 박용 사무국장 역시 북측 공작원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압수수색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의 간부들에게 적용된 '회합.지령수수' 혐의도 박 사무국장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에 질세라, 이석태 6.15남측위 공동대표(6.15남측위 사법사건 대책위원장)는 '법률가' 신분을 강조하며 백 대표의 '자수 요건'을 문제 삼았다.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는 백 대표의 자수 요건은 좀 부족하다. 영장 피의사실을 보면, 백 대표의 상대인 안경호 위원장은 없고, 그 안의 실무책임자들이 있는데,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자수를 해야 할 사람은 저다."

"제가 백 대표께서 (6.15남측위) 상임대표를 할 때 실무단장으로 북쪽 분들 만난 분들이 있는데, 이번에 거론되는 분들이고, 최근 북측과 만났던 사람도 리창덕 씨, 시효의 관점에서 보나 직접 영장 피의사실을 보나 문제가 되는 것은 저인 것 같다."

행사 사회를 맡은 김정환 씨도 "저도 북측 세 사람과 회의를 같이 하기도 했다. 다들 보니까 지령수수를 한 것이다. (이것을 문제 삼는 것을 보면) 세상이 이상해졌다"며 '자수 경쟁'에 동참했다.

"북이 술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지령을? 몰상식적"

▲ 6.15합창단이 노래공연을 선보였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한 공동대표의 변론을 맡은 심재환 변호사는 "국정원과 검찰은 북측의 공작방법이 매우 진화해서 술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지령을 내리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봐도 가소롭다"며 "그 자리는 지령 수수의 장이 될 수 없다. 두 주체가 대등한 위치에서 상호 논의를 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장이지, 이것을 스파이들이 만나는 장이라는 그분들(공안 당국)의 상상력에 탄복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심 변호사는 "진보연대 결성이 북의 지령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진보연대 강령이 북의 주장과 동일 내지 유사하기 때문에 진보연대가 이적단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이라며 "진보연대의 강령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 대중단체들의 강령을 참작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강령이 우리 사회의 질서에 포함되는 것인지를 판단해야 되는데, 북측의 주장과 유사하다고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에서 한 공동대표와 한솥밥을 먹는 최병모 이사장도 "한충목 운영위원장을 구속한 것은 한국진보연대를 이적단체로 만들고 싶고, 6.15선언을 무효화하고, 겨레하나의 대북사업을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라며 "그러나 이들이 실수하는 것이다. 구속됐다고 해서 정부에 굴복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막내딸 지수 양 "아빠가 해주는 닭볶음탕 먹고 싶어"

▲ 한 공동대표의 딸 지수(왼쪽)와 희수.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이날 행사에서는 한 공동대표의 두 딸 희수(15)와 지수(13) 양이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해, 지켜보는 이들을 숙연케 했다.

지난 6월 29일, 한 공동대표의 연행 당시 수십여 명의 경찰과 국정원 직원들을 보고 느꼈던 무서움과 두려움 등의 느낌도 솔직하게 표현했다. 

"아빠가 나오면 지리산 종주도 하고, 제주 올레길도 가고, 여름에 못 놀았던 물놀이, 아빠가 해주는 닭볶음탕도 먹고 싶다"는 지수 양의 바람에, 객석에는 손수건이 등장했다. 고사리손으로 편지를 들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아이들에게 많은 박수가 쏟아졌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행사 진행.. "6.15가 진 빚 돌려드리고 싶다"

2시간여 내내 진행된 행사의 분위기는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발언자들의 재치있는 입담과 노래패 우리나라와 6.15합창단의 노래 공연 등으로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유지됐다.

한 공동대표를 접견하고 온 최병모 이사장은 "교도소 체질이라서 잘 지내고 있다"는 말로, 한 공동대표의 안부를 대신했다. 한 공동대표도 지난 7월 말에 김상근 상임대표 앞으로 보낸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전했다.

'한충목 석방을 위한 후원의 밤' 개최 이유에 대해, 이석태 공동대표는 "한충목 대표는 6.15(남측위) 산파에서 중심적인 분이다. 실무진의 중요한 책임자로서 가장 진보적인 입장을 대변해 6.15남측위를 끌고 왔다. 그가 구속된 것은 사실은 6.15(남측위)가 구속된 것이다. 6.15(남측위)가 바로 이 정부의 재판을 받고 있다"며 "후원의 밤을 연 것은 한 대표에게 진, 6.15(남측위)가 진 빚을 작게나마 돌려 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행사에는 한 공동대표의 가족들을 비롯해 백낙청 6.15남측위 명예대표, 김상근 6.15남측위 상임대표,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최병모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배우 권해효 씨 등이 참석했다.

▲ 한충목 공동대표와 쌍두마차 역할을 해온 이승환 민화협 집행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한충목 진보연대 공동대표의 석방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를 위해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탰지만 이승환 민화협 집행위원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한 공동대표와 함께 쌍두마차로 6.15공동선언 이후의 수많은 남북해외 공동행사의 실무를 책임지고 이끌어 왔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서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곤 했다.

□ 통일뉴스 : 오늘 행사의 주인공인 한충목 공동대표와 오래 전부터 인연이 깊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이승환 집행위원장 : 한충목 위원장과 청년운동부터 같이 오랫동안 일을 했다. 제가 민청련 활동을 시작한 게 84년이고, 한충목 동지와 같이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88,89년 무렵인 것 같다. 그 시절 한충목 동지는 민애청이라는 단체에 소속돼 있었고 저는 민청련에 있었고, 돌아가신 이범영 동지와 함께 전국청년단체협의회를 조직해서 활동하면서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해외 공동행사가 가능해지면서 두 분이 실무 책임자로서 쌍두마차로 모든 행사를 이끌어왔다.

■ 한충목 동지가 굉장히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복잡하고 어렵고 사람들 사이에 이견이 많을 때, 그것을 조정하고 어려운 것을 단순화시켜 지혜를 내서 일을 처리하고 어려움을 푸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이런 점들과 저와 한충목 동지와의 오랜 인연, 통일운동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점 때문에 서로 생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뭔가 잘 되겠다고 판단했고, 통일운동을 큰 틀에서 하나로 모으는 의기투합을 시작할 수 있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2001년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가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충목 동지하고 저하고 실무적으로 여러 어른들을 모시고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두 분은 민화협과 통일연대.진보연대라는 서로 다른 입각점에 서 있었다. 입장차나 마찰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해결해 왔나?

■ 한충목 위원장이나 저나 서로 생각이 어떻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상대 생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상대가 받을 수 없는 것은 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좀 있는 편이다.

그래서 어쨌든 차이를 가능하면 좁히고 우회하고, 같은 점을 더 많이 드러내고,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일하는, 소위 이야기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랄까, 서구적으로 이야기하면 ‘신기능주의’랄까 이런 측면에서 한 위원장하고 저하고 둘이 공감대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 일을 할 수 있었고, 생각의 차이보다는 목표의식의 공통성이 훨씬 더 중요했다. 생각의 차이 때문에 서로 언쟁도 하고 적지 않게 경쟁도 했지만 지금까지 어쨌든 서로의 영역에서 일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그리고 서로를 지원하는 측면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 두 분 사이에 남모르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하나 들려 달라.

■ 참 어려웠을 때가 2007년 평양에서의 6.15민족공동행사였다.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충목 동지가 자신의 생각이 조금 다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앞장서서 북에 여러 가지 적극적인 요구를 민화협이나 종단, 시민단체 동지들을 대신해서 적극적으로 제기했었다.

그 때문에 사실은 한충목 동지가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이후의 평가과정에서 겪었다. 그 때 한충목 동지가 사람들을 배려하고 문제를 풀기 위해서 여러 측면에서 노력했던 점에 대해서 늘 고마워하고 있다. 또 앞으로도 한충목 위원장과 여러 고비고비를 만나게 되겠지만 그 시기를 같이 겪어왔던 게 우리 두 사람이 앞으로 일하는데 큰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한충목 공동대표가 지금 사법처리 대상이 돼 있다. 진보연대 활동이라든지 심지어 6.15남측위 활동까지도 북측 지령을 받고 수행했다는 죄목인 것 같다. 같이 활동해온 입장에서 어떻게 보나?

■ 사실 검찰측 기소가 제가 볼 때는 무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처음 수사를 시작할 때 기세등등한 것에 비해서 지금은 사실상 용두사미가 돼 가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검찰측 주장 중 제일 핵심적인 사안이 북한의 대남공작원으로부터 지령을 수수했다는 건데 북한의 대남공작원을 만난 사람이 한충목 외에도 수천명이 넘을 것이다. 북측 인사들이 한충목 위원장한테 했던 이야기들은 안 들은 사람들이 없을 거다.

또 만약에 그 사람들을 피해서 대북접촉을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정부가 우리한테 알려줘야 할 문제다. 정부가 접촉을 다 승인해 허용하고,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을 북한 공작원이라고 해서 기소하고, 이건 정말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

또 만약에 검찰 논리대로 한다면 사실 정부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훨씬 더 북한의 대남사업 핵심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법적 잣대의 모순과 불합리성은 심각한 문제이므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법률적으로도 확실하게 풀어내야 될 문제인 것 같다.

□ 한충목 공동대표가 만났다는 북측 인사들은 이 위원장도 자주 만났던 사람들인 것으로 안다.

■ 그렇다. 나도 항상 만났던 사람들이다. 그렇게 따지면 한 위원장이 지령수수를 한 자리에 나도 같이 있었던 게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한 위원장은 감옥에 있고)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합리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고 보여진다. 얼마 전 한 위원장을 면회했더니 한 위원장 얘기가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아마 공안기관들이 굉장히 고통을 받았을 거라고, 자신을 구속시킨 걸로 지난 10년간 억눌렸던 한을 해원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더라고 하더라. 결국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쌓아두었던 분풀이 측면이 명백히 있다는 거다.

사실 이건 법률 이전의 문제다. 사법기관과 공안기관이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가고 대하는 시각 자체가 이 사건의 본질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본다.

□ 한충목 위원장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 이번에 한충목 동지가 그동안의 활동을 스스로 돌아보고, 적절한 휴식도 좀 취했으면 좋겠다. 어떤 의미에서 기회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한충목 위원장이 더 많이 커지고 여러 측면에서 앞으로 우리 통일운동의 발전을 위해 더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산과 영양분을 충분하게 섭취해서, 그리고 몸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 다른 것보다는 건강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일단 돌아와서는 저를 비롯해서 여러 동지들과 함께 전반적으로 이북사람들이 좋아하는 말로 총화도 한번하고, 그러면서 좀 새로운 방향들을 모색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치관 기자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