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좌파’, 많이 들어본 말이다.
분단과 전쟁의 아픈 역사를 겪은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나 ‘친북좌파’는 친미수구세력이 민주화운동이나 통일운동을 매도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단골메뉴다.

그런데 30일자 <동아일보>에는 눈을 의심할만한 사설이 실렸다. ‘미국서 북한 대변한 친북좌파, 한국 지지한 美 의원’, 제목부터 선정적이다. 내용인즉슨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 방미단의 민간외교 활동에서 나온 발언이 “마치 북한 대변인 같은 발언”이라는 것이다.

6.15남측위는 진보연대와 시민단체 등 우리사회의 진보진영을 망라하는 단체들도 포함돼 있지만 민화협과 7대종단 등 우리사회의 합리적 보수진영 역시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아일보>의 이같은 지적은 놀랄만한 일이다. 더구나 이번 방미단의 경우 진보연대 인사는 한 명도 없고 시민단체와 민화협, 종단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6.15남측위 상임대표로서 이번 방미단을 이끌고 김상근 단장의 경우 민주평통 수석부위원장을 역임했고, KNCC 회장을 맡았던 기독교 목사다. 더구나 그는 한국전쟁 당시 부친이 인민군에 의해 총살당한 비극적인 가족사를 가졌다. 6.15남측위 공동대표인 정현백 성대 교수는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한 대표적인 시민단체의 얼굴이다. 이 외에도 6.15남측위 대변인을 맡고 있는 정인성 원불교 교무, 6.15남측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승환 민화협 정책위원장,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김연철 인제대 교수 등 방미단의 면면을 보면 ‘친북좌파’라는 딱지가 무색해진다.

<동아일보>가 문제삼은 방미단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천안함 문제를 바라보는 데 간극이 있으며 국민의 30-50%가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정현백)는 말이나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에 실망했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조속히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나서달라”(김상근)는 말이 어떻게 ‘친북좌파’적이며 ‘북한 대변인 같은’ 발언이라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에 대해 연일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합조단 스스로 자신의 발표를 뒤집은 사례 만도 여러 건이 되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가 제공한 정보에 근거해 러시아 조사단은 북한 어뢰에 의한 격침설을 부정했으며,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은 북한 책임을 적시하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정 교수의 발언은 오히려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배려해 많이 ‘톤 다운’시킨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는 정 교수가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면서 “천안함 발표에 대한 한국 사회 일부의 불신은 참여연대 같은 친북좌파 세력이 근거도 없이 온갖 의혹을 제기해 불신을 조장한 결과”라고 본말이 전도된 주장을 ‘사설’에 버젓이 싣고 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정부 스스로가 초래했는지 참여연대가 키웠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 아닌가?

더구나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친북좌파 세력’의 범주로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동아일보>의 이번 사설이 단순한 6.15남측위 방미단 활동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참여연대나 6.15남측위와 같은 진보적 단체에 대해 어떤 시각에 토대해 쓰여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진보단체들은 모두 ‘친북좌파 세력’의 범주에 넣어 짓밟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남측위는 온갖 친북좌파 단체와 인사들이 민족화해와 교류협력을 명분으로 내걸고 2005년 결성됐다”며 “남측위 소속 단체들은 광우병 촛불시위 같은 친북반미 시위의 단골 멤버들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6.15남측위의 네 기둥 중 하나인 종단에는 기독교.천주교.불교.원불교 등 7대 종단이 망라돼 있으며, 민화협에는 전경련과 중소기업중앙협의회는 물론 농협, 수협, 심지어 한국자유총연맹, 대한민국6.25전몰군경유자녀회,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 등 반공단체들까지 포괄돼 있다.

더구나 <동아일보>가 ‘광우병 촛불시위’를 ‘친북반미 시위’의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는 점도 놀라울 따름이다. 촛불시위는 잘 알려진 것처럼 여중생들의 자발적 촛불시위로 시작돼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역사적으로도 보기드문 자율적인 시민저항운동으로, 이명박 대통령도 나중엔 말을 바꿨지만 당시에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을 보며 반성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같은 촛불시위가 어느결에 ‘친북반미 시위’로 둔갑했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반미’는 몰라도 아무 관련도 없는 ‘친북’ 타이틀은 거기다 왜 갖다 붙이는지 미스테리일 뿐이다.

<동아일보>는 결국 자신들의 논지가 맞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려는 듯 “지단달 12일 불법 입북(入北)한 뒤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반(反)국가 행각을 계속하고 있는 한상렬 진보연대 상임고문도 남측위 공동대표 126명 속에 들어있다”며 “남측위의 수준과 정체를 알 만하지 않은가”라고 마무리했다. ‘한상렬=6.15남측위=친북좌파’라는 공식으로 6.15남측위의 ‘정체’를 입증한 셈이다.

그러나 6.15남측위는 좌부터 우까지, 반북부터 친북까지, 반미부터 친미까지 다양한 단체들이 속해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 중 몇 단체나 몇 인물이 어떤 정치적 성향을 띠었다고 해서 전체의 성향이 좌우될 정도의 작은 조직이 아니다. 거꾸로 6.15남측위에 소속된 친미보수적 단체나 인물이 어떤 언행을 했다고 해서 6.15남측위의 ‘정체’가 변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또한 한상렬 상임고문의 방북활동에 대해서도 정부가 민간 방북을 불허하고 6.15공동선언 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상황에서 6.15공동선언 10주년을 맞은 통일인사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는 배경은 쏙 빼놓고 단지 그의 언행중 일부만을 재단해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반국가 행각’을 하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 역시 전형적인 매카시즘 수법에 불과하다.

<동아일보> 사설 ‘미국서 북한 대변한 친북좌파, 한국 지지한 美 의원’은 그냥 보아넘길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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