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중(지구촌동포연대 운영위원장)


"제가 12회 연재물로 쓴 동북아시아속의 '역사를 자극하는 박물관'의 첫 번째 순서가 바로 단바망간기념관이었습니다."

'자극하다'는 번역이 흡족하지 않다. 일본어의 원래 의미를 찾아보니 털을 역방향으로 쓰다듬는다, 즉 불쾌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리고 '역사를 자극한다'는 말은 원래 발터 벤야민의 표현이란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기록이나 기억을 되살려내는 작업, 이는 국가나 권력자 중심의 역사를 불쾌하게 자극하는 일로 이런 작업들이 적극적으로 벌어져야 한다는 것이 벤야민의 뜻일 테고, 바로 단바망간기념관이야말로 가장 이에 걸맞는 박물관이란 것이 박물관학 전공인 기미즈카 도쿄예술대학 교수가 이날 말한 인사말의 뜻일 것이다.

인간적으로 이용식 관장을 좋아한다는,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고백의 말과 함께.

▲ 27일 일본 교토 류코쿠대학에서 단바망간기념관 재건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사진 - 황의중]
지난 27일 일요일, 일본에서 작지만 의미 깊은 행사가 있었다. ‘단바망간기념관 재건위원회 발족식’.

단바는 지명이다. 교토 북동쪽 50키로미터에 위치한 산골로 100여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도 질 좋은 망간의 산지. 망간은 대포 등 강철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광물. 그러니 일본의 전쟁수행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군수물자이다.

1970-80년부터는 채산성이 낮아 수입으로 대체되면서 300여개에 이르던 이곳 광산들은 지금은 모두 폐광되었다. 즉 단바는 폐광지역이다.

이곳에 조촐한 기념관이 하나 있다. 광산의 갱도와 그 안에서 작업하던 모습, 광부들의 주거공간(함바)이 재현되어 있고, 또 작업도구 및 사진 등의 관련자료들을 모은 소박한 전시실이 전부이다.

이 산골짜기 단바망간기념관은 작년 5월, 계속되는 적자를 견디다 못해 결국 문을 닫고 만다. 그리고 1년이 지난 6월 27일 일요일 오후 3시, 쿄토 시내의 한 대학(류코쿠 대학) 강의실에 이 기념관을 다시 살리자는 사람들이 100명 정도 모여 재건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기념관이 나의 무덤이다. 절대로 역사 속에 풍화되어서는 안 된다. 돈이 없다면 먹는 밥을 줄여서라도 만들면 된다.”

이 기념관을 만든 초대관장 이정호씨(고인)의 신념. 조선인들이 일본에 끌려오거나 흘러들어와 광산 등에서 겪었던 그 모진 고역의 삶, 그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남겨놓겠다는 일념 하나.

40년간 광부생활에서 얻은 진폐증(분진이 폐에 쌓여 호흡곤란과 고통, 그리고 사망에 이르는 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정호씨가 사재를 털고, 그의 아들(이용식, 2대 관장, 50세)이 직접 갱도를 파내며 3년간 준비 끝에 1989년 단바망간기념관은 탄생한다.

일본 내 약 5천개의 역사기념관이나 박물관 중 유일하게 피해자의 손으로 만든, 강제연행의 껄끄러운 역사를 증언하는 박물관. 지원 요청에 그런 것을 만들면 오히려 마을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며 합리적 이유나 근거 제시도 없이 외면하는 일본행정기관의 냉담한 자세는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차별은 현재진행형.

2001-2년, 일본 인권단체와 뜻있는 일본인들이 경영위기 때 모금을 통해 불씨를 살리고, 또 특정비영리법인단체(NPO)를 만들어 지속적인 지원을 모색했으나 역부족. 기념관의 운영과 유지는 오로지 한 가족에 맡겨진 채, 연 평균 500만엔의 적자와 빚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이용식 관장은 개관 20년째인 지난 해 5월, 폐관을 결정한다. 그 고뇌와 쓰라림이란.

“1세들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조선학교를 만들고 지켜나가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자랐습니다. 우리에게는 전통이 있습니다. 힘들지만 어떻게든 해 낼 수 있다는 어떤 느낌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 지하 식당에서의 뒷풀이. 풍물패 '남산놀이마당'의 축하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사진 - 황의중]
재건위원회 공동대표인 정희순(교토코리안생활센터 ‘에루화’ 이사장)씨의 힘이 실린 인사말. 공동대표로 지난 5월, 제12회 한겨레통일문화상을 수상한 도상태(삼천리철도 이사장)씨도 가담했다. 그리고 재일조선인운동의 일본학계 원로인 타나카 히로시(이치바시 대학 명예교수)와 타카무라 쇼지(류코쿠 대학)씨도 4명의 공동대표에 참여했다. 이전의 지원체제보다 한층 전국적으로 범위도 넓어지고 든든해진 형국이다.

재건위원들과 실질적인 활동을 벌일 사무국의 구성, 그리고 발기인 및 찬동인의 면면에서도 이것은 확인된다. "그 동안 우리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는 또는 알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지원을 방기하고, 이 관장과 그의 가족에 맡겨 두었던 일을 진지하게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주체로 활동할 것"을 선언했다.(발기문) 각지에서 활동하는 재일조선인과 일본인들이 이전과는 달리 적극 가담한 형태이다.

"한국 속담에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모두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입니다. 내려올 수 없습니다." 부산에 기반을 둔 해외동포민족문화 교육네트워크를 대표한 조현장씨의 연대 발언. 이번 재건 움직임에는 한국의 시민단체와 활동가들도 가담했다.

재건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용식 관장의 생각을 '다시 한 번'으로 바꾸는데 한국 쪽의 영향도 컸다. 지구촌동포연대(KIN)는 폐관 소식을 듣고 곧바로 현지를 방문답사했고, 이용식 관장의 저서를 번역출판('재일조선인 아리랑' 논형, 2010.6)했다. 부산의 '동포넷'(약칭)은 이용식 관장을 초청, 세미나를 통해 한국사회에 소식을 알리기 시작했다.

재개관 예정은 내년 3월. 당면 과제는 두 가지. 하나는 응급보수 공사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일(긴급 모금)과 앞으로의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한 회원 모집. 재개관을 위한 준비 비용 1,000만엔 모금(행사 당일까지 170만엔 모금)과 년 3천엔의 회원 2천명의 모집이 목표이다.

물론 운동의 목표는 일본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운영보조금을 받으며 '일본의 식민지 및 전쟁에서의 가해 역사를 남기고 전하는 일, 재일동포 및 피차별 부락인들의 피해 역사를 남기고 전하는 일, 그리고 역사를 직시함으로써 일본과 조선반도 사람들 간의 진정한 화해와 우호를 구축하는 일'(발기문)을 떳떳하고 안정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날 이용식 관장은 재개관된다면 이 기념관을 어떻게 운영하고 싶다는 즐거움에 가득 찬 구상도 발표했다. 듣는 사람들이 그저 우스갯소리로 들어도 좋다면서.

폐관 결정과 마찬가지로 재개관 결정도 힘들었을 이용식 관장에게 행사를 마무리하고 나오며 물었다. "오늘 기분이 어떻습니까?" 기쁘단다. 많은 일본인들이 재일조선인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노력들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어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단바망간기념관 문제, 재일조선인 문제가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만이 책임감을 느끼고 또 해결해야 될 문제일까? 그들만이 외면하고 방치해 왔던 것일까? 우리들과 우리 정부는?

“전쟁과 식민지로 나쁜 짓을 한 나라라는 역사에 더해, 이에 대한 반성과 배상도 거부한 나라라는 또 하나의 나쁜 역사, 지우기 힘든 부정적 역사를 자신들의 후손에게 남기려 하는” 일본을 향해 단바망간기념관은 그리고 설립자 이정호씨와 그의 아들 이용식씨는 '일전을 벌이고 있는 레지스탕스'일 것이다.('재일조선인 아리랑' 중에서)

일본에 반성하라 목소리 높이는 일, 세미나를 개최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 땅 한 구석 산골짜기의 이 조촐한 기념관을 소리 없이 조용히 지켜주는 일, 유쾌하고 매력적인 이 레지스탕스가 꿈꾸는 즐거운 구상들이 하나 둘씩 이뤄지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일.아마 그것이 더 크고 무서운 힘이란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미즈카 도쿄예술대학 교수가 쓴 글 '역사를 자극하는 박물관'의 일부를 싣는다. 2004년 10월 일본 계간지 '전위' 창간호에 게재된 글이다.

"그러나 이곳은, 망간광산의 역사를 단순히 단바 지역사의 일환으로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이 아니다. 단바망간기념관의 전시를 통해 부각되는 것은 일본사회에 의해 말살될지도 모를 조선인 망간노동자들의 기억, 피차별부락 노동자들의 기억, 강제연행되어 중노동을 견디다 난병인 진폐증에 괴로워하는 노동자들의 기억, 일본의 '정사(正史)'에서 제외 당한 채 시간의 흐름에 묻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사회로부터 말살 당하게 될지 모를 상황에 처한 그 기억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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