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 (본사 상임고문, 재미 통일연구가)

내 인생을 바꿔놓은 6.25

6.25전쟁 60년이라고 모두들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있다. 나라고 왜 오늘 아무 감회가 없겠는가? 6.25 전쟁, 그것은 내가 설계했던 인생을 전면 거부하고 내 삶을 전혀 엉뚱한 길로 몰아간 사건이었다.

1946년, 공산당이 싫다고 남하한 나는 6.25 발발 후 3개월간 서울에 잠복해 있다가 9.28 수복 후, 멸공전선에 참여해야 되겠다는 결심으로 육군정훈장교 3기생 모집에 응모해 소위로 임관되어 그해 12월 제2사단 32연대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12월 31일 날 밤, 연대장 권동찬 중령을 연대 OP로 찾아가 부임신고를 했는데, 그 이튿날 1월1일 새벽 중공군의 포위공격을 받고 전 사단이 붕괴되어 저마다 무질서하게 도망가는 틈에 같이 끼어 눈에 덮인 산길을 왼 종일 죽으라고 달리고 달려서 겨우 목숨을 건진 일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 때 2사단의 생존자는 겨우 5, 6백 명이라 했다. 싸우지 않고 도망친 사람들이었다. 한 동안 나는 그 때 전사한 연대장 권동찬 중령에게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얼마 후 2사단은 재편되어 전선에 재배치됐다. 나는 새로 부임한 연대장 조재미 대령으로부터 영문을 알 수 없는 미움을 사, 때로는 00중대 OP, 혹은 수색대에, “별명 있을 때까지 가 있으라”는 명령을 받고 최전방 중대장들과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중대 OP는 적의 착탄거리 내에 있었으며 수색대는 적의 매복지역에 잠입해 적정을 탐색하는 부대였다. 연대장이 그렇게 해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많은 소대장들이 다치거나 죽어서 후방으로 실려 나가는 것을 목격했지만 나 지신은 신통하게 끄떡 없이 잘 있다가 근 1년 후 연대장이 갈려 감에 따라 직접 전투가 없는 연대본부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나는 만 5년 군대생활을 했는데 그중 3년은 전방 근무였다.

“참전용사들”?

며칠 전 발신처가 “대통령실”로 돼 있는 큼직한 흰 봉투가 배달되어 깜짝 놀라 열어보니 이명박 대통령이 6.25전쟁 “참전용사들”에게 일률적으로 보내는 편지였다. 그는 그 편지에서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어 G20 정상회의나 핵안보정상회의 같은 “세계 최고급 국제회의를 주최하는 등 높은 국격을 지닌 나라로 발돋음”한 것이 당신들의 “피와 땀”의 결과였다고 “참전용사들”을 추켜세우는 일방, 천안함 침몰로 희생된 장병들의 죽음을 상기시키면서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고 정의하는가 하면, 젊은 세대에게 “대한민국이 어떻게 지켜졌는지 분명히 가르치겠”으며 “국토방위를 확실히 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데 혼신의 힘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스스로 정의를 내린 나라에서 젊은 시절을 요령껏 군대에도 안 가고 배겨났을 뿐 아니라 대통령자리에 까지 오르는 비상한 재간을 가진 인물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1955년 가을, 내가 자진 입대한 군대에서 실망이 가득차서 제대했다. 지금은 안 그렇겠지만 그 때의 고급장교들 중에는 형편없는 인간들이 많았다. 그런 자들을 윗전으로 모시고 사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군대자체가 모순에 가득 찬 집단이었다. 무엇보다도 명령에 충실하고 용감히 싸운 군인들은 전사하거나 부상하거나 포로가 되는데 반해, 비겁하게 도망친 자들은 결국 살아남아서 훈장도 타고 진급도 하고 별도 단다는 현실에 나는 경악하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대통령의 편지를 받은 80세 이상의 “참전용사들”중, 6.25 전쟁 때 빽을 써서 전방근무를 기피했거나, 전방에 배치됐어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전투부대 배치를 회피했거나, 작전 중 동료들은 죽어가는 데 비겁하게 도망쳤거나, 혹은 없는 공로를 꾸며서 훈장을 탔거나 한 일이 전혀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들의 대부분은 또 훗날 헌법을 뒤엎고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일에 이모저모로 가담했다. 더욱이 기가 찬 것은 이들이 스스로의 과오와 무능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마치 나라의 큰 공로자인 양 착각하고 지금도 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태만과 무능은 “아직 능력부족”이라면서 국군의 전시작전권 환수의 연기를 열렬히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웅변으로 증명한다. 2차 대전 때 히틀러 정예군의 대규모 침공을 물리치고 전면적인 반격전을 벌려 마침내 베를린에 입성해 독일을 항복시킨 소련군은 창군 겨우 27년의 군대였다. 호지명의 월맹군은 창군 불과 10년에 불란서군을 격퇴했으며 그 후 21년에는 천하무적이라는 미군도 물리쳤다. 그런데 지금 건군 60년이 넘는 한국군대가 아직 독자적 전시작전지휘능력이 없다면,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미군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그동안 군의 요직을 두루 거쳐 간 그들 자신이 형편없이 무능하고 태만했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걸핏하면 가슴에 줄줄이 훈장을 달고 나와 주먹을 흔들어대는 소위 “원로”들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치졸한 행위”?

이런 자들을 문책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라를 지킨 “참전용사들”이라고 추켜올리는 이 대통령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특히 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시효과가 큰 업적을 남기고 칭찬을 받음으로써 보람을 느끼는 인물인 것 같다. 그의 경력이 그것을 입증하며 그 점을 국민들이 높이 사서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대통령이 된 그는 토건업자 출신답게 대운하 건설을 추진하려했다. 국민이 반대하자 그는 “4대강 살리기”로 이름을 바꾸고 삽질은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이미 국회를 통과해 확정 법률이 된 세종시 건설사업도 제멋대로 핵심내용을 바꿔 추진하려다가 국민의 저항을 받았지만 그래도 자기 계획대로 밀고 나가려 하고 있다. 그는 그가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그런다고 강변한다. 이렇듯 그는 “나라의 백년대계”는 오직 자기만이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대통령제의 모범국가인 미국에서 “대통령학”의 최고 권위인 전 하버드대 “리쳐드 뉴스태드(Richard Neustadt)” 교수는 대통령의 힘은 “설득하는 힘(the power to persuade)”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대통령의 힘은 “밀어붙이는 힘”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 한국은 그 때문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사업의 혼란보다 더 근본적인 혼란은 이명박 정부의 도전적인 대북정책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당선 되자마자 “비핵-개방-3000”이란 해괴한 구호로 남북화해 노력에 먹칠을 하더니 6.15와 10.4의 남북정상간 두 공동선언을 전면 부정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완전히 좌초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북한체제와 그 최고지도층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모욕할 뿐 아니라 소위 “북한 급변사태”의 가능성 내지 임박함을 역설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남이 이룩한 성과는 모조리 부정하고 자기만 공을 독점하자는 치졸한 행위이다.

“암묵적 합의”?

이 대통령은 특히 최근에는 천안함 침몰사건을 계기로 이를 북한의 소행으로 단죄하고 남북 간 협력사업을 거의 전면적으로 중단할 뿐 아니라 전력을 다해 유엔의 대북제재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모는 것은 전적으로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따른 것인데, 그 조사 결과의 과학성과 객관성에 대해서는 각계의 많은 인사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나는 과학에는 문외한임으로 과학적 시비의 옳고 그름은 판단할 입장에 있지 않지만, 합동조사단의 조사내용에는 평범한 상식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조사결과의 모순점을 지적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많다는 것은 민군합동조사의 권위를 매우 손상시키고 있다. 또한 조사 결과에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북한의 조사단 파견 제의나 중국이 제의했다는 남북미중 공동조사에 불응할 까닭이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안 하는 것, 혹은 못하는 것은 뭔가 켕기는 데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게 한다.

이 대통령은 5월 24일 천안함 침몰의 책임을 북한에게 돌리고 북한제재방침을 천명할 때 굳이 그 장소를 전쟁기념관으로 택했다. 그는 또한 서슴없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 연이어 미국을 위시한 한국전 참전국들의 주요 인사들과 언론에 한국전 참전에 대한 사의를 표하는 한편 북한제재에 동참해 달라는 내용의 서한과 기고문을 보내고 있다. 그의 이러한 행보에 보조를 맞추려는 듯 근래에는 국내 여러 언론 매체들이 남북 간의 경제적.군사적 실력 격차를 비교하면서 북한 헐뜯기와 깔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반북정서 고양을 노리는 각종 6.25 60주년 기념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미국도 이 대통령의 반북공세에 적극 호응하는 자세이다. 백악관과 국무성, 국방성 관리들의 대북 비난은 항상 있는 일이지만 최근의 발언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북한은 범죄국가요, 실패한 나라요, 제거돼야 할 체제라고 비난하고 있다. 상하 양원은 6.25 전쟁의 뜻을 상기시키며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주요 언론들의 논조도 물론 정부의 가락에 따르고 있다. 천안함 관련 조사내용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동의를 거부 또는 보류하고 있으며 한국내의 여러 기관들이 그 모순과 불합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의 언론은 이에 대해 거의 무관심상태이다. 그리고 전적으로 북한의 어뢰공격설을 근거로 한 대북제재론이 판을 치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면 미국과 한국 간에 북한체제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있어서 그에 따라 은연중에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그 “암묵적 합의”가 혹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 대통령 발언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이 대통령이 뜬금없이 “참전용사”들의 대북 적대의식에 불을 지르려고 시도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한 일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할 때 온 몸에 소름이 끼쳐진다.

전쟁은 무서운 것이다

전쟁터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른다. 이 대통령도 그 무시무시한 전쟁터를 단 한번만이라도 경험했더라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쟁터는커녕 아예 군대에 들어간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만 무슨 사태가 일어나도 즉각 청와대 지하벙커에 들어가 집무한단다. 그래서 전쟁이 나서 국민들은 막 죽어나가도 자기와 자기 식구들은 끄떡없다는 생각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전쟁은 진정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무더기로 살상하고 재산을 몽땅 소진하고 문화를 송두리 채 파괴하고 인간성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만행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미 당대에 처참한 동족상잔 전쟁의 참극을 겪은 민족이다. 그렇게 처절하게 싸웠어도 모두 잃은 것뿐이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민족이다. 물론 이 세상에는 남의 나라의 전쟁으로 재미 보는 나라들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큰 나라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큰 나라들은 작은 나라들 간에 싸움을 붙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큰 나라들끼리 서로 싸우기도 한다.

우리가 겪은 6.25 전쟁은 우리 동족끼리의 어리석은 싸움으로 시작됐지만, 미국이란 강한 나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끼어들었고 이에 따라 중국이란 큰 나라도 달려들어 큰 싸움이 되어버렸다. 3년 후 모든 것이 박살난 후 겨우 휴전이 성립돼 살생은 멎었지만 전쟁은 아직 안 끝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민족끼리는 남북의 적대관계만 심화되고 그 대신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희생도 치르긴 했지만 그 대신 적지 않은 것을 얻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무제한 주둔권을 얻고 동북아 패권확립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은 미군의 중국접경 진출을 막고 아시아에서 미국세력에 제동을 거는 강국의 지위를 굳힐 수 있었다. 결국 우리 민족은 남북 간에 아무 소득 없이 희생만 당하고 미국과 중국의 좋은 일만 해준 셈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오직 자기 공을 세우려는 욕심으로 전쟁도 불사한다는 자세인 것 같은데 우리는 결코 그의 독선과 아집을 그냥 방치해 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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