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선생이 오늘(16일) 오후 3시 50분경 전북 부안 연합의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유족으로는 부인 조경자(88) 씨와 아들 허진(50), 딸이 한 명 있다.

고인의 빈소는 부안장례식장 1층 특실(063-583-2211)에 마련됐으며, '故 허영철선생 애국통일장'은 3일장으로 치러진다.

13일 '故 허영철선생 애국통일장 장례위원회'는 18일 오전 8시 발인식에 이어 8시 30분 장례식을 갖고, 9시 10분 장례식장에서 출발하여 전주 승화원에서 화장한 뒤 오전 11시경 전주효자추모관에 안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례위원회는 이석영 전북대 명예교수와 임방규 통일광장 전대표를가 장례위원장을, 방용승 전북진보연대 공동대표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 고인이 구술한 자서전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출판기념회에서 편집자들과 나란히 선 허영철 선생. [자료사진 - 통일뉴스]
고인은 사상 전향을 거부한 채 36년간 감옥생활 끝에 1991년 출소했으며,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보리출판사, 2006)는 자서전을 구술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고인과 감옥 안에서 인연을 맺은 비전향장기수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허영철 선생님하고 오래 같이 살았다”며 “참 말이 없으신 분이다. 같이 오랫동안 겪어봤지만 좋은 일에도 가벼이 웃는 법이 없고, 고문을 당해도 분노하지도 않는 잔잔한 큰 바다 같은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권 대표는 “감옥 안에서 동지들의 죽음을 보고 나한테 하는 말이 ‘가족들의 눈물을 바라보면서 병상에서 눈을 감는 것은 수치다. 옥사도 마다않고 여기서 비전향으로 살고 있다’고 말씀했다”며 “또 ‘전쟁 때 많은 동지들이 내 앞에서 돌아가셨는데 감옥 안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만 해도 빚이다. 어찌 정치적인 내 양심을 버리겠는가. 먼저 간 동지 때문에도 비굴하게 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고 전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비전향장기수로서는 처음으로 노약자.병약자들이 나올 때인 1991년에 감옥에서 나오셨고, 건강이 좋으셔서 청년처럼 잘 다니셨다”며 “말씀이 없으시면서도 남한테 존경받는 분이었는데 통일된 세상을 보지 못하고 가셔서 안타깝지만 선생님의 염원은 남은 사람들이 이뤄낼 것이라 믿고 평안히 가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보리출판사, 2006) 표지. [자료사진 - 통일뉴스]
고인은 1920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일제시대에 노동판을 전전했으며, 해방공간에서 공산당 활동으로 두 차례 검거되는 등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했으며, 부안군 인민위원장을 거쳐 한국전쟁 당시 장풍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952년 대남 공작원 양성 기관인 금강학원에 들어갔고 54년에 남파돼 1년 정도 광주에서 머물다 1955년 7월 20일 체포되어 1991년 2월 26일 형 집행정지로 출옥했다.

출옥 후에는 아파트 경비원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2006년 선생의 삶을 구술한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가 출간돼 화제를 불러 모았다.

고인은 이 책에서 36년 간의 감옥 생활 보다는 남조선노동당에 입당한 1946년부터 남파돼 검거된 1955년까지를 중점적으로 다뤘으며, 특히 현대사의 공백으로 남아있는 50년대 초반의 북한 사회 경험을 긍정적 시각으로 전해줬다.

(4보, 17일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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