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일 (전 한신대 교수)

 

정말 그럴까 했는데

나는 이 번 선거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만 하여도 김일성 주석이 회고록에서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는 “우리 민족은 현명하고 인민들 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다” 는 말이 과연 그럴까 내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론 조사 결과가 정확하다고 그대로 믿을 때 나 뿐만 아니라 누구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조중동과 공중파 언론 3사, 그리고 세계 언론까지 한나라당 압승으로 끝나는 여론 조사를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천안함 북풍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 번 선거 결과를 압권하고 있었다. 3월 20일 선거 공고와 함께 때맞추어 국제 공조 합조단은 최종 물증을 제시 하면서 까지 북의 소행임을 온 세계에 공표했고, 3월 25일에는 전쟁기념관에서 이명박 대통령 이 직접 나서서 한 판 전쟁 불사론을 선언하였다. 그 결과는 여론 조사에 그대로 반영되어 한나라당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던 우리 민중들이 아직 깨지 못하고 있구나 생각할 때에 참담하지 않을 수 없었고 회고록의 말들이 공염불 같이만 들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6월 2일 선거 끝나자 말자 발표된 출구 조사 결과와 이어 발표된 개표 결과는 나의 생각이 부질없었구나 하면서 김일성부대가 북만 원정을 하고 돌아오던 길목인 천교령에서 만났던 민초들의 그 현명하고 슬기로움에 다시 한 번 생각이 머물지 않을 수 없었다. 1935년과 2010년 그 세월을 넘어 우리는 미국이든 그 어느 외세이든 더 이상 그들에게 속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이 번 선거 결과에 기뻐하며 이 글을 쓴다.

중국은 북에 결초보은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회고록 3권을 두 번째 읽는다.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회고록 안에서 김주석이 눈물을 흘렸다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부분이 3권 말미가 아닌가 한다. 고난의 행군 때에도 이곳에서 만큼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보중의 요청으로 170 여 부대원을 인솔 북만 원정을 끝내고 돌아 오는 길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겨우 살아남은 대원은 16 명 뿐. 거기다기 유격활동 기간 중 김사령 자신이 촉한에 걸려 사람들이 이젠 살 수 없다고 포기한 상태였다.

지금 남한 사람들은 중국이 압력만 넣고 동조만 하면 북이 하루아침에 쓸어 질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래,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다. 북을 지탱해 주는 것이 중국이다. 그런데 중국을 지탱해 주는 것이 북조선이라고. 적어도 회고록에 나타난 북중 관계는 남한 보수패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중공당이 조선에 저 질런 만행과 그들이 어려울 때 마다 조선 공산당이 어떻게 도와 지금 까지 왔는가의 비밀을 알자면 회고록을 읽어야 한다. 중공당의 민생단 만행은 여기서 말하지 않기로 하자. 주보중은 김일성사령에게 북만원정을 요청한다. 유격대가 물고기라면 인민 대중은 물인데 중공당 부대가 제일하기 어려운 것인 인민 대중과의 호흡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보중 휘하의 북만 일대에서는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럴 때 마다 중공당은 김일성 사령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김일성 부대가 마을에 들어서기만 하면 마을 사람들이 열화 같이 호응을 하고, 자기 들이 숨겨 두었던 모든 것을 내어 놓으면서 열광을 하기 때문이었다.

1949년 내전 때에 동북 삼성 지방의 혁명 성공은 조선 공산당원들, 특히 여성 당원들의 절대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역사적 정설이다.

이런 마당에 중국이 북을 지금 와서 돕는 것은 결초보은일 뿐이다. 그런데 사대주의 망상에 찌들인 자들은 강대국을 움직이면 북한 같은 약체는 하루아침에 날아 갈 것처럼 선전을 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자기들의 생각이 안 먹혀들면 지금쯤은 고칠 만도 한데 말이다.

천교령의 눈보라

1935념 1월 하순 김일성부대는 북만 원정을 마치고 주보중 부대를 떠나 왕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천교령의 1월 하순. 북위 40도를 웃도는 1월 하순. 시간과 공간이 한 덩어리가 된 그것은 ‘눈보라’ 그 자체였다. 회고록 3권 마지막 장은 ‘천교령의 눈보라’ 그리고 ‘인민의 품에’ 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 분리 되는 그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귀신은 경에 약하고 인간은 정에 약하다” 고 한다. 이 속담도 회고록 3권에 나오는 말이다. 귀신의 세계에는 시간과 공간이 하나이다. 그것을 분리 시켜 놓는 것이 경이다. 귀신이 새벽에 약한 이유는 새벽이 되면 닭소리가 나고, 닭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잠을 깨고, 잠을 깨면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기 때문이다.

경 經과 정 情. 인간 세상은 정이 오가는 공간이다. 귀신에게는 인간 사정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인간 사정이 안 통하는 정부이다. 물신이라는 귀신에 뒤집혀 인간사정 없이 정치를 하고 있다. 귀신의 귀에는 경 밖에 통하는 것이 없다. 바로 이 번 6.2 지방 선거가 이명박 정부에 경종을 울렸다. 경을 읽은 주인공들은 바로 이 땅의 숨어 사는 민중들이었다. 강원도 산골짜기, 그리고 영호남 호서 산간 산지사방에 흩어 살던 민초들이었다. 이 민초들이 청와대를 경치고 백악관의 뒤퉁수를 쳤다. 6.2 선거이후와 이전에 이들이 천안함에 대하는 태도에서 여실이 나타나 있다.

전 세게 과학자들을 불러 드리고 심지어는 MIT 출신 과학자 에클슨을 합조단 단장으로 삼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힐러리 까지 제 발로 걸어 와 재삼 사 강조에 강조했지만 천안함 조사 결과를 우리 민중들은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 민중들이 던지 투표지 하나하나는 말 그대로 경의 주문과 같았다.

중공당의 요청을 받아 북만 원정을 하고 돌아오는 길 몫에는 천교령이라는 험산 준령이 가로 놓여 있었다. “왕청 뒤틀라즈를 떠날 때 170명이나 되였던 대오에는 50-60명의 인원밖에 남지 않았다. 석달 동안 꼬리를 물고 진행된 전투들에서 우리는 적지 않은 사상자를 내였다. 부상자들까지 죄다 안전지대로 후송 시키고 나니 대오는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이 때의 절박한 사정은 다음 주보중의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입수된 자료에 의하면 적들이 지금 김일성부대의 종적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여 돌아친다고 하오. 아마 톡톡히 값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 같소. 이 겨울에 그들이 당신한테서 얼마나 혹독한 타격을 받았나 말이오. 솔직히 말해서 당신의 신변이 우려되는구만.”

김사령의 얼굴을 바라보는 주보중의 눈길에서는 어딘가 불안스러운 기색이 엿보였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로야령 눈보라가 우리를 감싸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아무튼 무사히 돌아가게 되겠지.” “나는 우리의 신변을 염려해주는 그의 우정을 고맙게 여기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당장 사지판에 들어서야 할 사람이 저렇게 태평이라니까. 김사령은 여전한 락천가로구만.”

김일성 사령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그의 낙천적인 성격에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믿는 구석이란 다름 아닌 ‘인민대중들’ 이다. 3권 마지막 장인 ‘인민의 품에’ 는 실로 한갓 머리 속에 관념에서가 아니라 생사의 기로에서 몸소 살과 뼈 속 까지 녹아 스며드는 체험을 통해서 “인민은 하늘이다” 를 몸소 체험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절박한 경험을 북만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겪었다. 하늘은 인민들 자체이기 때문에 인민들의 품이 곧 하늘의 가슴이라는 확신을 과연 수운 최제우가 경험한 이후 누가 또 했는지 모르겠다. 유교가 ‘이민위천’ 이라고 하지만 과연 유생들 가운데 얼마나 이를 산 체험으로 느꼈는지 모르겠다. 인민들에 대한 믿음, 이것 없이는 유격대원이 될 자격이 없다고 김주석은 늘 강조해 말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믿음을 넘어 그의 현실이 되었다. 천교령 눈보라 속에서.

오히려 짐이 된 중국 보호병들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간고하다는 것을 안 주보중은 김일성 부대를 보호하고 호송하라고 100 여명의 반일부대 병사들을 따라 보냈다. 그러나 “우리를 따라오던 반일부대병사들은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우리의 곁에서 다 떠나가버리였다. 희생정신이 박약한 반일부대 장병들에게 있어서 꼬리를 바싹 물고 끈덕지게 따라오는 정안군의 추격과 인정사정모르는 사나운 추위는 감히 맞설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도전으로 되였다. 그들이 우리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오히려 마지막까지 그들을 보호해준 셈이였다.”

이것이 중국이 북을 보호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북이 중국을 보호하고 있는 실상이다. ‘보호’ 라는 것은 결코 무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신력이다. 중국의 정신력으로는 우리 조선을 보호 못한다. 이순신의 정신력이 이여송의 그것을 능가했지 결코 뒤지지 않은 것은 역사 만이 알고 있다. 임란 당시 이여송이 결국 우리의 짐이 된 사실은 천교령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두고 보라. 사회주의를 포기한 중국이 크게 후회하고 북조선에 도움을 청할 날이 올 것을 두고 보라. 이곳 미국 클레어몬트대학에서 중국 관련 학술 발표를 할 당시 광동성에서 왔다는 어는 여학자가 중국은 북조선을 배워야 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의 빈부 격차를 도표로 보여주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중국이 조선을 지켜주는 대부라고. 천만에 말씀. 적어도 천교령을 넘을 때에는 주보중이 보낸 보호병을 오히려 김일성 부대가 보호해 주는 형국이 이를 반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오늘 조중 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한 눈에 보는 것 같다. 김일성 부대는 중공당에 빚진 것이 없다. 주보중이 김일성 부대에 도움을 청한 적이 더 많다. 심지어 주보중은 자기 자신의 신병을 김일성부대에 맡기고 여생을 마칠 정도였다. 천교령의 눈보라는 조선 항일 유격대만이 견디어 낼 수 있었다.

왕청으로 아무도 못돌아 갈 것만 같은 절망속에

왕청으로 결코 못 돌아가리. 아 조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왕청 연길로 못 돌아가고말고 여기서 끝인가? 김일성 항일 유격 활동은 끝나고 그의 신화는 역사 속에 잊혀지고 말 순간이다. 김사령도 자기의 죽음을 예견이나 한듯이 “중대장인 한흥권에게 만사를 일임하고 있었다.” 한흥권은 끝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을 걸고 한흥권은 중국인이 경영하는 목재소로 내려가 거기서 심부름꾼으로 일하는 김노인에게 강낭죽을 끓여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때 일행은 옹근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간도에서 온 조선 유격대라는 것을 알자 김노인은 자기를 조선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는 자기 아들이 팔도하자에서 유격대대장으로 활동하는 김해산이라는것까지 다 이야기하였다. 일행이 목재소에 들어가서 로인과 인사를 나눈지 얼마 안 되어 한흥권은 적 토벌대가 목재소근처에까지 접근해왔다는 정찰보고를 받았다. 이 무슨 엎친 데 덮친 격인가? 절박해도 이렇게 절박할 수 있을까.

길림에서부터 김사령을 따라 온 왈룡이는 “내가 죽으면 자기도 죽는다고” 그칠 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바로 이 때였다. 하늘은 김일성과 그의 부대를 버리지 않았다. 왈룡이가 한창 울고 있을 때 장작개비를 안고 부엌에 들어오던 김로인이 그에게 왜 우는 가고 물었다. “대장은 앓고… 토벌대는 겹겹이 우리를 둘러싸고… 한시간후이면 그놈들이 이 목재소에 들이닥치겠는데 빠질 구멍이 하나도 없으니 답답해서 웁니다. 빠지려면 강을 건너야겠는데… 큰 강이고 얼지도 않았으니 물로 건너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딱 다리로 건너가야 살길이 열리겠는데 거기엔 토벌대들이 1개 중대나 있으니 이거야말로 사면초가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런데 김노인은 왈룡이의 하소연을 듣고 나서 그에게 포위를 뚫고 나갈수 있는 묘술을 하나 대주었다. “젊은이, 너무 상심말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네. 우리 주인 놈이 만주국 앞잡이인데 얼마후 여기로 올수 있네. 그러니까 그 주인 놈을 붙잡게. 그 놈을 잘 구슬려 토벌대가 목재소로 오지 않게 련락만 하게 하면 당신네들은 저녁때까지 여기서 견딜수 있네. 그 다음수는 저녁이 된 다음 궁리해보자구.”

왈룡이는 김로인이 한 말을 그대로 한흥권에게 보고하였다. 한흥권은 김로인의 처방대로 주인을 비끄러매고 생트집을 걸었다. “너 이놈, 누1가 너더러 목재소를 경영하라고 허락했는가. 만주국이란건 우리가 승인도 안한거야. 죄를 씻고싶거든 우리 군대에다가 의연금을 단단히 내야겠다. 얼마나 내겠는가?” 물론 의연금이 목적이 아니라 주인이 탈출을 성공적으로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심문이었다. 김노인의 예측은 적중하여 주인은 제 입으로 줄줄 협조 방안을 내 놓았다.

“나를 살려만 주면 당신네가 여기 있을 동안 토벌대가 안 오게 하겠습니다.” “어떻게 안오게 하겠는지 그 방법을 말해보라.” “당신네 빨찌산이 다른데로 빠져나갔다고 하면 되지요. 내가 토벌대장교들과 가까운 사이니까 그들이 내 말은 신임합니다.” “네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면 너를 용서할수 있다. 우리의 목적은 반일이다. 너도 죄를 씻고 반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거든 우리를 협력하라.” “요구대로 하겠으니 어서 나를 풀어만 놔주십시오.” 김노인이 예측한 말들이 토씨하나 안 틀리면서 주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어쩌면 이 아무것도 모른 줄 알았던 노인의 머리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눈으로 보듯이 꿰뚫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문학박사 김동길 노인의 머리속에 이런 민족사랑 노-하우가 있는지 대조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식사가 끝난 다음 김노인은 탈출계획의 제2부를 내놓았는데 그것도 역시 대단한 명안이였다. 이제는 다리를 무사히 통과하는 문제가 남았는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니 어떻게 하든지 당신네들이 전술을 잘 짜야 한다. 우선 얼렁뚱땅해서 경비초소를 통과하는 방법이 하나 있고 목재소주인을 앞세워가지고 다리까지 가서 그 놈의 힘을 빌어 경비병들을 속여 넘기는 방법이 하나 있다.

놈들이 접근해서 검색을 하면 날쌔게 답새기고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건너만 가면 김사령을 업고 산으로 안내할 수 있다. 다리목에서 20리쯤 내려가면 깊은 골 안이 있고 그 골 안에 자그마한 골짜기가 있는데 그 골짜기 막바지에 조선 사람의 집 세호가 있다. 일본놈들 꼴이 보기 싫다고 비밀리에 들어와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인데 만주국에 호적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람들의 도움만 받으면 김사령의 병치료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한흥권이 이 계획에 동의해나서자 김노인은 흐뭇해하면서 이런 안을 덧붙였다. 다리를 건널 때 무슨 일이 생기면 소대장이 응전하는 것이 좋겠고 나머지는 내 안내를 따라서 움직여달라.

중대장은 키가 크고 힘도 세니 김사령을 업고 내 뒤만 따라오라. 다리만 건너가면 그쪽 산발은 내가 다 꿰들고있으니 놈들이 암만 따라와도 문제가 없다. 다리를 무사히 건너게 되면 나하고 주인을 녕안현 시가지 근방까지 데리고 가달라. 거기 가서는 나를 좀 때려 달라. 주인도 움쩍못하게 위협하고…. 그러는 사이에 나머지 사람들은 중대장과 같이 김사령을 모시고 골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이상이 대략 김노인의 머리 속에서 나온 작전 계획이었다.

한흥권은 그 말까지 듣고 나서 김사령에게 김노인이 내놓은 안을 소개하였다. “듣고보니 아주 리상적인 안이였다. 노인이 군사전문가는 아니지만 의병장도 할수 있는 대담한 작전가였다. 빨찌산대장의 아버지가 다르기는 달랐다. 노인이 짜준 탈출 안은 사실 어지간한 지휘관들도 궁리해내기 어려운 묘안이였다. 그때도 절실하게 체험한 바이지만 우리 인민의 두뇌는 세상의 그 어떤 난사도 다 해결해 낼수 있는 지혜의 샘이었다.” “어려운 때일수록 인민을 찾아가야 한다는 나의 신조는 이런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천교령 눈보라 속의 전설, 그것은 인민의 힘과 슬기

“전설이나 정탐소설 같은 이 모험극은 이처럼 통쾌하게 막을 내리였다. 일행은 그 다음공정들도 계획대로 무난히 치뤘다. 김노인이 아니였더라면 나는 사경에서 구원되지 못하였을것이다. 원정대는 나와 함께 천교령 오지에서 괴멸 되였을 것이다. 그 노인이 사실 큰 은인이였다. 빨찌산대장의 아버지답게 우리를 희생적으로 도와준 훌륭한 분이였다.”

김사령은 김노인 이외에 위기에서 자기를 구해준 민초들의 예들을 다음과 같이 더 열거 하고 있다. “생사를 가르는 아슬아슬한 곤경에 처할 때마다 내 앞에는 이상하게도 매번 김노인과 같은 귀인이 나타나 나를 사지에서 구출해주군하였다. 교하에서 이름 모를 아주머니가 나를 체포의 위기로부터 보호해주고 마노인이 라자구등판에서 기한에 떨던 나와 나의 동무들에게 안식의 선물을 마련해준 것처럼 천교령에서는 생면부지의 김노인이 절명직전의 원정대와 그 지휘관인 나를 천길 나락에서 건져주지 않았던가.”

“우리 유격대가 인간해방을 위해 싸우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무력이라는것을 인민이 몰랐더라면 그리고 그 유격대의 영상이 아름답고 신성하고 거룩한것으로 인민들의 망막속에 깊이 심어지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그때 천교령에서 김로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우리의 항일혁명투쟁사에 천교령의 전설과 같은 신비로운 전설도 태여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왕청 귀국길, 그 길은 김일성부대가 인민 대중은 하늘이고, 인민 대중은 가장 현명하고, 인민대중을 능가하는 선생은 없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을 몸으로 체험한 귀중한 기회였다. 그것이 나라를 세운 다음에는 ‘군중노선’ 으로 발전하여 인민 대중이 있는 그 곳이 지도자의 집무실이 된 역사적 배경이다.

허울 좋은 민생행보와 친서민 정책들. 언론에 자기 얼굴이나 내 보이려고나 하는 민생 탐방하기, 그 이전에 인민 대중을 개조의 대상으로 보는 사고 구조부터 바꾸어야 할 것이다.

슬기롭고 지혜로운 우리 민족 영원하리라. 다가오는 모든 선거에서도 우리는 천교령 눈보라를 헤치고 역사의 부름 앞에 나간다는 한마음으로 진군하리라. 김노인과 다음 호에서 말 할 조택주 노인을 보면서 나이 값 좀 하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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