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윤이상 흉상’이 햇볕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 9개월간 인천세관 보세창고에서 방치돼 있던 ‘윤이상 흉상’이 정부 당국의 반입 허용으로 고향땅 통영을 밟게 된 것입니다.

‘윤이상 흉상’이 인천항 창고에 방치된 과정은 이렇습니다. 경남 통영시는 윤이상 선생 생가터에 ‘윤이상 기념관’을 건립하면서 여기에다 ‘윤이상 흉상’을 설치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흉상을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작했으나 고인의 모습과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고 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윤이상 본인도 생전에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인정한 흉상이 ‘평양 윤이상 음악연구소’에 전시돼 있었습니다. 이에 통영시는 북한 만수대창작소에 의뢰해, ‘평양 윤이상 음악연구소’에 전시돼 있는 이 흉상을 복제해 반입을 추진해 온 것입니다. 물론 통일부의 허가를 받고 추진한 일인데 그만 막판에 국정원이 반입을 불허하는 바람에 그만 창고에 유치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남측에서 만든 ‘윤이상 흉상’이 번번이 고인의 모습과 달랐을까요? 그 이유는 이럴 것입니다. 윤이상 선생은 1956년 현대 음악을 배우기 위해 고향을 떠나 유럽으로 간 이후 한 번도 귀향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공안당국에 의해 강제로 납치되었다가 1969년 국내에서 추방된 이후 한 차례도 입국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남측에는 윤이상의 실물을 봤거나 그럴듯한 당대 사진마저 제대로 있을 리 만무한 때문입니다.

윤이상 ‘흉상’은 그의 ‘삶’만큼 수난을 겪었습니다. ‘흉상’임에도 ‘윤이상’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남측정부가 윤이상 선생 살아생전에 사죄를 했다면, 그래서 그가 고향땅이라도 밟을 수 있었다면 이 같은 무의미한 우여곡절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윤이상 흉상’은 오는 19일 문을 여는 ‘윤이상 기념관’에 제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윤이상 선생은 생전에 고향땅을 밟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사후에 흉상으로나마 고향땅에 오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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