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로 유명한 박종화(46) 시인의 서예산문 '나의 삶은 커라'를 연재한다. 전남 함평의 한 산골마을에서 올라오는 박 시인의 산문과 서예작품은 매주 토요일 게재된다. / 편집자주

사상의 뿔

동네에는 은행나무 하나 있습니다.
오백 년의 세월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여유롭고 당당하게 서 있네요. 볼 때마다 그 장중함에 쳐다보는 눈이 참 행복합니다. 수많은 가지 마다마다에 샛노란 은행 알이 열려있는 오늘은 더더욱 그 풍성함에 놀라고 있답니다. 마음대로 제 멋대로 커 왔음이 분명 할진대 예정된 순서대로 줄기와 가지를 뻗은 듯이 잘 뻗어있는 우아한 자태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미적지근하면 미적지근한대로
차디차면 차디찬 그대로
흔들리면 바람같이
어떤 순간도 포기하지 않는 고목의 힘은
오늘도 작고 작은 내 가슴을 엄혹하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내 곁에는 동지 하나 있습니다.
오랜 만남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늘 처음처럼 나를 대해 주죠. 만날 때마다 변함없는 미소를 띄워주는 얼굴에 난 늘 행복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으로 그의 마음을 깊이 상하게 했는데도 외려 날 위로하고 있는 오늘은 더더욱 사람의 소중함에 마음이 허둥대고 있습니다. 변화무쌍한 세월 따라 마음이 변할 만도 할진대 운명처럼 한길을 가며 변함없는 사람사랑을 실천하는 그 자태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군요.

눈물일 때는 물같이
웃음일 때는 해같이
어떤 순간도 물러서지 않고
첫 맺음을 무너뜨리지 않는 관계의 치열함이 외려 여유롭기까지 한 그대의 불멸의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오백 년 은행나무의 힘도 그대의 뿔에게 묻고 있습니다.

▲ 박종화 作 '사상의 뿔'(600*500) "어떤 순간도 포기하지 않는"

물 흐르듯 여유롭되
변하지 않는 사상의 뿔은
사람사랑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습니다


작품설명 : 불퇴전의 힘을 뿔이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뿔이라는 글자는 뿔의 이미지가 나타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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