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북핵 해결방식으로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제시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21일 뉴욕에서 미국외교협회와 코리아소사이어티, 아시아소사이어티가 공동 주관한 연설을 통해 “이제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게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 타결, 즉 그랜드 바겐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랜드 바겐은 ‘북의 비가역적 핵폐기=대북 안전보장+국제지원’이라는 등식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일종의 ‘빅딜’ 개념입니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포괄적 패키지(Comprehensive Package)’ 개념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일괄 타결’, ‘빅딜’에는 북측의 능란한 수법인 살라미(salami) 전술에 대한 경계가 숨어있습니다. 아무튼, 흡사 ‘바겐세일(bargain sale)’을 연상시키는 그랜드 바겐이란 용어는 과연 이 대통령의 사업가 출신다운 면모를 물씬 풍겨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랜드 바겐이 갖는 진정성과 현실성입니다. 먼저, 현실적인 면을 볼까요? 북에게 안전보장을 보장해 주는 것은 남측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물론 이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5자간의 ‘통합된 접근법(integrated approach)’을 강조했지만 분명 주체가 다릅니다. 게다가 그랜드 바겐에 대해 커트 캠벨 국무부 차관보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말했으며,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은 “코멘트할 것은 아니다”고 답했습니다. 북이 받기 전에 미국을 거쳐야 합니다. 미국조차 생뚱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진정성 면을 봅시다. 무엇보다도 그랜드 바겐의 ‘비가역적 핵폐기’에는 ‘선핵포기’ 입장이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이는 이미 폐기된 ‘비핵 개방 3000’의 연장입니다. ‘비핵 개방 3000’은 그 내용도 문제지만 북측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습니다. 이 대통령은 항상 자신의 입장만을 말하고 따라오라 하고는 안 따라오면 그만이라는 투입니다. 이번 그랜드 바겐 제안도 곧 진행될 북미대화에서 남측이 소외될 것을 우려해 의제 설정에 일단 ‘끼워 넣기’를 하자는 ‘아니면 말고’로 의심받을 수 있는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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