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로 유명한 박종화(46) 시인의 서예산문 '나의 삶은 커라'를 연재한다. 전남 함평의 한 산골마을에서 올라오는 박 시인의 산문과 서예작품은 매주 토요일 게재된다. / 편집자주

시작

대학 선배인 승완이 형이 카메라 하나를 둘러메고 산골에 놀러왔습니다. 전자제품 장사를 하다가 아예 그만두고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사진작가의 길을 40대 후반의 나이에 시작하고 있답니다. 남들이 보면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승완이 형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말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는 카메라 사랑을 지속합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대학 동기 중 한 사람이 나를 찾아 왔지요. 그리고는 내게 일주일에 한 번씩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아니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에 뭐하려고 기타를 배우려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합니다. 학원을 차려서 새벽 두 시까지 이십 년을 분필가루 마시고 그렇게 번 돈으로 마누라 사고 싶은 것 풍족하게 사게 하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 돈 쓰는 일 외엔 해 논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너무나 허망하더랍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에 정의를 부르짖으며 꿈꾸던 자신의 미래와는 멀어진 생을 살아 온 게 너무나 아쉽더랍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다고 말합니다.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할 거란 생각이 동병상련으로 드네요.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할 일들이 많이 밀린 나로서는 버거운 일이어서 음악 하는 후배를 소개시켜 준다고 했더니 그러면 나중에 배우겠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배우려면 창피하다면서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언제 배우겠냐고 했더니 말없이 발걸음을 돌리네요.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참 쓸쓸해 보입니다.

오늘 승완이 형은 보다 전투적입니다. 비록 늦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만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정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늘 즐겁게 작업을 하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산장에 놀러 와서도 이리저리 뛰어 다니면서 야생화를 찍어대고 틈만 나면 작품꺼리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참 당당하고 아름답습니다.

▲ 박종화 作 '시작'(540*400) "늦어도 작아도 초라하지 않다"

시작은 늘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와서 뭘 하겠냐는 체념으로부터
삶은 무미건조 해졌습니다
시작의 적은 항상 현실의 안주였습니다


작품설명 : 두 글자가 서로 크기가 달라도 어우러져 초라하지 않듯이 시작은 늦거나 작아도 초라하지 않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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