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년 간의 연구 끝에 역사소설 『단군왕검』을 내놓은 정호일 작가.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주되게 생각했던 것은 단군을 ‘신화’라고들 하는데 비록 소설이지만 단군은 ‘역사’라고 하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4,5천년 전 까마득한 먼 옛날, 단군 왕검이 아사달에서 신천지를 개척하던 시절을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만, 그 시절이 단지 신화가 아닌 실제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역사라고 한다면?

정호일(45, 본명 정세연) 작가의 신간 역사소설 『단군왕검』(리베르 출판사)은 단군 왕검의 단군조선, 즉 고조선 건국과정을 손에 잡힐 듯이 그려냄으로써 고조선을 신화의 영역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우리에게 안내하고 있다. [『단군왕검』 서평 보기]

분단된 채 열강들에 치이는 조국의 현실로부터 ‘위대한 번영과 영화’를 누렸던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는 그는 역사학도답게 고구려와 광개토왕를 거쳐 9년 전부터 고조선과 단군에게 깊은 관심을 돌렸다고 한다.

결국 그는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나라를 건국했다’는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의 사상이 현 시대의 중첩되고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는 근본적인 해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광개토대왕을 그린 역사소설 『천손의 나라』(우리겨레, 2001)와 『광개토호태왕』(우리겨레, 2005)으로 이미 탄탄한 역사소설의 세계를 구축한 정호일 작가를 지난 6일 오전 11시 <통일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약한 민족이었는가?’

▲ 6일 <통일뉴스> 사무실에서 정호일 작가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통일뉴스 : 단군 왕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정호일 : 먼저 단군 왕검을 잘 알았던 것이 아니다. 위대한 번영과 영화를 누린 고구려가 그 뿌리를 단군조선에서 찾은 것을 공부하면서 알게 됐고, 고구려에서 말한 ‘천손(天孫)’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단군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정말 단군에 대해서 무지했구나. 역사를 공부했다고 하는 사람이 그냥 단군이라면 우리 국조 할아버지라고만 생각했다. 우리 민족의 원시조 차원이 아니라 정말 우리 민족이 나아갈 수 있는 원초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담보해주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 그래서 단군조선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나라를 건국했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단순하지만 거기에 얼마나 깊고 깊은 함축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가를 깨닫게 됐다.

공부를 하면서 단군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해 9년 정도 걸려 공부했다. 그렇지만 그 공부가 사실 밑도 끝도 없는 공부더라. 사실 지금도 잘 모른다.

□ 고구려에 대한 관심부터 시작됐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고구려 관련 소설을 쓴 내용도 소개해달라.

■ 고구려에 대한 관심은 우리 민족의 현실에서부터 출발한 거다. 분단돼 있고 분단 속에서 너무나 많은 열강들에 치이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이렇게 약한 민족이었는가?’ ‘정말 우리 민족이 위대한 번영과 영화를 누렸던 시대는 없었나?’ 생각하면서 언뜻 떠오른 것이 고구려였다.

‘고구려 중에서도 정말 힘이 센 사람이 누구인가?’ 할 때 광개토호태왕을 떠올렸다. 광개토호태왕을 정복군주, 힘센 왕이라고 만 생각했는데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정복군주 이상의, 백성을 생각하는 것을 깨닫게 됐고 소설도 쓰게 됐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접근했다가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 고구려나 단군조선에 대해 공부하면 자료가 부족할 텐데, 어떻게 공부했나?

■ 지금까지 나온 게 <삼국유사>에서 몇 줄 나온 것 밖에 없다. 지금까지 ‘위서다, 위서가 아니다’ 논쟁이 일고 있는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같은 여러 자료가 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서 언급된 부분과 책들을 공부했다.

또 한편 중요한 것은 단군조선도 유물.유적에 의해서 많은 부분이 밝혀지고 있다.

고인돌 유물은 청동기 유물이고 고인돌을 세우려면 최소한 국가가 있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고인돌 유적 연대측정을 해보니까 BC 25세기인데, 기원전 2,500년 전에 국가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국가는 고조선 밖에 없는 것이다.

벼 종자도 중국과 다른 고유종자가 있었다든가 누에도 석잠누에라는 조선 고유의 종자가 있었다든가 이런 유물.유적을 통해 밝혀진 것을 찾아보고 역사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유적.유물”

▲ 단군을 신화가 아닌 역사로 느끼길 바란다는 정호일 작가.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일반적으로 ‘고조선’이라고 말하는데 이를 ‘단군조선’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 저는 고조선이라 표현하지 않고 단군조선이라고 표현한다. <삼국유사>에서 고조선이라고 표기하는데 이것은 이씨 왕조인 조선시기보다 먼저 쓰여진 것이어서 조선에 비교해서 고조선이 아니라,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이 그 전에 이미 조선이 있었기 때문에 고조선이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는 단군이 나라를 세웠으니까 고조선이 아니라 단군조선이라 표기한다.

□ 위서논란도 있다고 했는데, 단군조선과 관련해 중요한 자료는 무엇인가?

■ 위서 논쟁이 벌어지게 된 것은 완전히 ‘사실이다, 아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다 인용해야 하고 아니라면 다 부정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아직까지 많은 부분들이 밝혀지지 못한 조건에서는 여러 가지 참조하고 고려해야 한다. 그것을 보조자료로 사용할 수도 있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유적.유물로 나온 것은 과학적 연대측정이 된 것이므로, 그런 부분들을 놓고 나머지 위서라고 하더라도 참고할만한 것은 참고하는 식으로 접근한다.

중요 자료는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등이다. 그 외에는 나온 책이 없다. 과학적인 접근은 유적.유물에서 나온 것이다.

□ 북한은 1994년 평양 외곽에 단군릉을 건설하고 단군 부부의 유골을 안치해놓고 있다. 북한 단군릉에 대해 남쪽에서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서 과학적인 판단을 할 능력이 못 된다. 북쪽에서도 이미 <삼국유사>에 BC2333년 언급이 나왔는데 이것을 모르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들의 과학적인 연대측정을 신뢰했다고 할 것인데 잘 모르겠다.

어떤 분들은 환웅의 몇 대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저는 잘 모른다. 단지 북쪽도 과학적 판단에 근거했을 것이고 학자적 양심이 있을 것이다.

□ 단군조선에 대해 9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고 말했는데, 이 소설은 언제부터 준비했나?

■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소설 <천손의 나라>를 2001년에 쓰고 난 후부터이다. <천손의 나라>는 <광개토호태왕>으로 2005년에 다시 출간됐는데, 이 소설을 쓰고부터 계속 책을 쓰려고 마음을 갖고 연구했다.

글을 쓰는 것은 사실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연구하면서 계속 준비하다 이번에 출판사와 이야기가 돼서 끝을 보게 된 것이다.

□ 소설 <천손의 나라>와 <광개토호태왕>은 많이 팔렸나?

■ 작가가 글 실력이 없어서 많이 안 팔렸나 보다.(웃음) 대신 <광개토호태왕>은 일본에서 번역됐는데, 일본 출판시장이 우리의 3배 이상이 되는 것 같더라. 대교출판사에서 만화로 만들기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한다.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광개토호태왕>은 굵직하고 단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굵직하고 단순하면서 거기에 복선을 깔았는데 사람들은 작가의 생각을 잘 모르는 것 같더라.

광개토호태왕도 그렇지만 단군도 왕이 되기 전까지는 일부러 주인공의 생각을 그려낸다. 그러나 단군이 그 위치에 오르게 되면 제가 감히 범접할 수 없어서 그 분의 생각을 그려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보니까 어쩌면 책이 재미없을 수도 있다.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기 위한 사상적 요체”

▲ 정호일 역사소설 『단군 왕검』① ② .
[사진제공-리베르 출판사]
□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기법을 이용했다고 했는데, 과학적 근거에 토대했겠지만 이야기를 엮어가는 과정이 많았을 것 같다.

■ 굵직한 사안은 최대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둔 것이고, 나머지는 살로 엮으려면 많은 부분은 픽션(fiction, 허구)이 가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주되게 생각했던 것은 단군을 ‘신화’라고들 하는데 비록 소설이지만 단군은 ‘역사’라고 하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단군이 역사라고 느껴지고 보여진다면 내가 쓴 글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가장 큰 목표로 잡았고, 이것을 위해 제가 단군조선을 지금까지 연구하고 공부했던 것이다.

□ 소설 속에서 단군이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드는데.

■ 그 당시 상황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람의 의식, 인식의 발전과정을 놓고 봤을 때 지금이야 과학적 지식에 의해 판단하지만, 그 당시에는 굉장히 약했을 것이다. 혼돈과 혼란된 사고방식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 방식도 그런 역사적인 의식의 발전 과정을 놓고 개연성있게 그려낸 것이다.

예를 들어 그 당시 사람을 느끼기 전까지는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모든 만물에 영혼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다 가졌을 것 같고,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저렇게 변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힘있는 것을 선호하고 힘있는 존재가 되려고 해 토템(totem, 신성시하는 동식물이나 자연물)이나 이런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롭게 인간의 역사를 시작하려면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 극복 과정을 그려내기 위해 그 당시 의식 수준을 반영해 썼다. 고구려 시대를 그렇게 그려내면 안 된다. 그런데 단군조선 시대에는 충분히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태양사신기>처럼 고구려시기를 그렇게 그려내면 사람들의 의식발전 수준이 있는데, 그건 완전히 판타지다. 고구려와 거의 20세기 이상 차이가 나는 최초의 인간 역사시대라는 시기에는 판타지가 충분히 있었을텐데, 고구려시대라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단군이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그런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BC 2333년(북쪽에서는 단군릉을 건설하면서 BC 2993년이라고 하지만 <삼국유사>에서 2333년이라고 표기돼 있어 이를 기준으로 한다) 그 정도 시기에 있어서는 그런 사고방식이 있었을 것이다.

□ 단군 개국의 정신, 요체를 무엇이라고 보나?

■ 지금까지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이야기하니까 그게 요체라고 보는 거다. 어찌 보면 그전까지 인간이 짐승과 구분되지 못했을 때는 짐승과 같은 생활을 했을텐데,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면서 구별되기 위한 사상적 요체를 밝혔을 것이다.

먼저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기 위한 한 마디가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나라를 건국했다’ 이것이 홍익인간의 사상이다. 그런데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제반 문제를 다 풀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제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인간 자체를 수련하는 심신수련도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야에서 단군 수련법도 많이 나오고 수련하기도 하는데 인간 자신을 깨닫고 수양하는 것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 단군조선의 개국 과정에서 그리려고 했던,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 나라를 세운 것 자체는 나라를 세웠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소설의 많은 부분은 굉장히 지난한 국가 형성과정을 그렸다. 나라를 세우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힘드는가, 파괴보다도 창조하고 건설하는 것이 더 지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군이 천부인을 쥐었으니까 나라를 개국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천부인을 쥐고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가. 그것을 단군이 직접 하기 위해 순행하면서 풍류도를 전파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여곡절을 겪는 건가. 그런 과정을 겪고 난 이후에야 나라를 세울 수 있다. 2권은 건설과정의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그려보려 한 것이다.

“홍익인간, 이화세계가 이 시대 흐름에 맞다”

▲ 단군의 홍익인간 사상에서 현 시대를 헤쳐나갈 근본적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정호일 작가.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단군은 처음부터 오류없이 모든 과정을 헤쳐가는데 상식적으로 봤을 때 주인공의 ‘무오류성’이 약간 거슬렸다. 이렇게 그린 이유는?

■ 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실질적으로 세워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했는가를 그려내려고 한 것이고, 실제로 그분이 역사적 사실로서 오류를 범했는지 범하지 않았는지는 저도 잘 모른다.

절대로 무오류성을 설정해놓고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독자 입장에서 오류를 범했다가 다시 하게 되면 재미도 있을 수 있겠고 그렇게 그려내는 방식도 있겠는데, 마니산 천제단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소설로서 그려내는 과정은 이분이 어떤 입장을 견지했을 것인가를 놓고 그려내는 것이다. 마니산 천제단이 세워진 것은 분명한데 ‘이분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라고 그려낸 것이다. 이렇게 글의 흐름에 맞춰가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단군이 되기 전까지 과정에서 단군이 웅씨족에 가서 능력이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못한 과정을 겪는 것은 단군이 부족한 인간임을 드러낸 것이다. 단군이 천신족의 왕자였지만 왕위를 계승하지도 못하고 웅씨족 비왕으로 갔다가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못하고 자기 길을 찾는 과정에서 온갖 공부도 하고 고행도 하고, 수행도 하고 그러면서 자기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실수를 그려내고 하는 여력이 없다. 소설 5권 정도로 쓴다면 이런 실수도 하고 그런 과정도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책을 2권에 그려내야 하는데 그걸 다 쓰면 양에 맞지 않다. 길게 쓴다면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뒷부분은 단군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 신하 이야기다. 풍류도까지는 단군이 직접하지만 이후에는 아들 부루 왕자나 성조 같은 신하들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뒷부분에서는 단군 이야기가 안 나온다.

□ 소설도 시대정신을 반영한다고 볼 때, 현재적 시점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 단군조선에서 핵심인 홍익인간, 이화세계가 이제 이 시대 흐름에 맞다. 단군조선이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나라를 개국했다. 인간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면 그 뜻이 굉장히 큰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역사과정에서 죽고 오히려 유교, 불교, 도교가 성행했다. 유교, 불교, 도교가 왜 성행했겠는가. 유교는 신분제 사회를 인정하는데 통치자들 입장에서는 이것이 통치하는데 편한 것이다. 인간을 이롭게하자면 통치하는데 얼마나 힘들었겠나.

이제야말로 진짜 홍익인간이 펼쳐져야할 시대가 왔다. 단군이 인간문제에서 원초적 해답을 제시했었고 이것이 이제 현 시대에 맞게 그 의미를 풀어갈 때가 왔다.

조선시대를 보면 홍익인간의 뜻이 더 넓은데 유학, 유교에 의해서 밀려난 것이다. 왜 밀려났을까. 그 당시 진짜 인간을 이롭게 할 시대가 도래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야말로 노예제나 봉건제, 자본주의를 겪고 난 다음에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다시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이 부활하는 시대의 흐름이 왔다.

물론 홍익인간이나 단군조선이 모든 문제의 해법을 다 주는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단지 원초적인 문제제기를 했고 거기에 대한 해답을 내렸다. 이 시대에 맞게 홍익인간이라고 하는 정신을 다시 풀어나가야 한다.

인간의 제반 문제를 고민하고 원초적인 질문을 하고 거기에 해답을 내렸던 분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의 국조이신 단군 할아버지였다. 그래서 그분을 배우고 그분이 어떻게 나라를 세웠는가를 느끼고 알았을 때, 지금 현실에서 인간을 이롭게 하는 부분을 풀어나가는데 일정하게 도움을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제가 단군 왕검을 쓰게 됐다.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으면”

▲ 그는 앞으로 동양 역사서 분석을 통해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관점에서 현시대를 진단한다면?

■ 우리나라 같은 경우 모든 문제가 다 중첩돼 있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고민하고 풀 수 있는 원초적인 해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고, 뭐라고 하긴 어렵고, 문제가 중첩돼 있으니까 고민하고 어떻게 풀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다 보면 최초로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홍익인간이라는 해법을 내렸던 단군을 참고로 해서 풀어나갈 수 있는 밑천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 새 책을 내보내면서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는?

■ 제가 정말 역사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것은 다른 나라 같은 경우는 자기의 위대한 선조의 업적을 기리려하고 빛내려하고 심지어 과장, 왜곡까지 하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위대한 선조의 빛나는 업적을 깎아내리려고만 한다. 우리의 것을 과장해서 선전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업적, 있는 사실을 좀 배우고 알려고 했으면 좋겠다.

『단군왕검』 이 책도 이분의 모든 부분이 맞고 옳다고 생각지 않지만 하나의 위대한 조상의 업적,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서, 다시 고민해보고 생각해보고 떠올려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 역사에서 너무나 묻혀져버린 우리 고대역사에 대해 다시 깨닫고 공부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 소설이 많은 부족한 부분들이 있겠지만 이런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향후 연구 방향이나 집필 계획은?

■ 중국과 일본, 한국의 역사서를 통해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되는 것인가를 써보고 싶다. 역사서들을 직접 놓고 어떻게 역사를 서술하고 기술했는가를 설명하고,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글로 써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일단 그걸 쓴 다음에 다른 계획을 세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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