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환(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정호일 역사소설 『단군 왕검』① ② .
[사진제공-리베르 출판사]
우리가 길을 가다가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 그것은 다시 본래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거기서 다시 출발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렇지 않고 계속 거기서 머뭇거리며 방황하다가는 더욱 미로에 빠져버리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길을 잃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길을 잃은 듯이 보인다. 정치경제적으로는 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아직까지 전쟁과 빈곤으로부터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금 세계는 경제 위기에 빠져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가야할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져, 인간은 부패와 타락의 길로 들어선 지 이미 오래다. 모두 개인적인 욕심과 탐욕에 사로잡혀 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길과 짐승의 길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모든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주어야 할 종교마저도 대부분 권력과 금력 앞에 타락하여, 오히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도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없다. 모두 길을 잃었고, 모두 눈이 멀어 버렸다.

가야 할 길을 잃은 우리 민족은 다시 단군을 찾아야 한다. 단군 왕검의 고조선은 우리 민족에게 기독교의 에덴동산이나, 중국의 요순에 해당하는 태초의 낙원이다. 우리는 이 혼미한 세상을 벗어나 다시 낙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소설 『단군 왕검』은 길 잃은 우리에게 새로운 출발점을 제시해 주는 좋은 소설이다. 아니 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저자 정호일은 단군 왕검의 역사를 마치 오늘 바로 눈 앞에서 보는 듯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이미 대하소설 『광개토호태황』으로, 우리 민족의 웅혼한 역사와 정신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이제 다시 우리의 진정한 출발점이라 할 단군의 역사를 『단군 왕검』이란 역사소설로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는 오늘 길을 잃고 정처없이 헤매는 우리들에게 시의적절한 작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이 무대는 단군조선이지만 마치 현재 우리 시대를 보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지게 된다. 사실 인간의 문제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무엇이 크게 다르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오늘날의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꼭 한번씩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라 하겠다. 왜냐하면 이 소설 역시 당시의 길 잃은 무리들이 어떻게 참된 길을 찾아가는가를 자세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당시 길 잃은 무리들의 아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때는 환웅의 배달국 말기로부터 시작한다. 환웅천왕이 홍익인간의 기치를 높이 들고 신시를 열었지만, 세상이란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 말기가 되자 처음 가던 길을 벗어나 엉뚱한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사회가 어지러워지자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이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더욱 부패하고 더욱 타락하게 되고, 죄 없는 국민들만 도탄에 빠지게 된다. 항상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이 최대 피해자인 것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는 백성들은 할 수 없이 도적이 된다. 그들은 도적이 되고 싶어서 도적이 된 것이 아니라, 먹고 살 것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도적이 된 자들이다. 이렇게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자, 환웅천왕의 천신족 역시 그 세력이 약화된다.

이때 단군이 등장한다. 그는 천신족 환웅천왕의 아들이었으나, 어머니 나라인 웅씨족의 비왕으로 일하고 있었다. 단군은 웅씨족 도적의 무리를 물리치면서, 이들이 도적이 된 이유를 알게 된다. 그는 이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었다. 단군 역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처음 길로 되돌아갔으니, 아버지 환웅과 할아버지 환인, 그리고 유인씨 등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마고가 세운 태초의 지상천국 마고성까지 되돌아가는 복본(複本)의 수행을 계속했던 것이다.

이후 단군은 더욱 수행에 매진하여 스스로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는 성통광명의 경지로 들어서게 된다. 이의 증표로 그는 천부인을 얻게 된다. 이제 단군은 하늘과 하나가 된 것이다. 단군은 먼저 도적들이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백성들로 하여금 항산(恒産)을 가지게 하는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이에 그는 도적의 무리들을 이끌고 새 땅인 아사달을 찾아가 이들과 더불어 땅을 개간한다.

한국 고유경전인 『삼일신고』에 따르면, 성통광명한 사람은 땅으로 내려와 재세이화하여 홍익인간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작품의 후반부는 바로 이 경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단군은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하늘의 이치에 맞게 다스린다. 수로공사를 통하여 해마다 풍년이 들게 하고, 누에를 쳐서 비단옷을 입게 하며, 또한 온돌을 개발하여 추운 겨울날도 따뜻하게 지내게 한다. 세상을 재세이화로 다스린 결과라 하겠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나라의 헐벗은 사람들도 속속 아사달로 모여들어 큰 나라를 이루게 된다. 이 나라가 바로 단군조선이다.

천부인을 획득한 단군은 주변의 모든 나라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천신족의 나라로 만든다. 단군의 아사달을 본받은 다른 모든 나라들도 고조선처럼 의식주가 풍부하고,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나라가 된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 잘 살게 되자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법칙이 나타나 서로 싸우게 된다. 물질이 많아도 탈인 것이다. 이에 단군은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물질적 풍요로움만으로는 불가능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또한 지도자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함을 알게 된다. 곧 모든 백성들의 의식개혁이 필수적임을 알게 된다. 이에 그는 백성들 한사람한사람이 풍류도를 익혀 사람마다 홍익인간이 되어야 함을 알고, 천하에 풍류도를 전하게 된다. 단군이 직접 전파하자,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풍류도를 익히게 된다.

이후 세상 사람들은 모두 풍류도를 익혀 홍익인간이 되었다. 홍익인간이란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에 단군이 다스리는 천하는 하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새하늘과 새땅이 된다. 이것이 단군조선이다.

오늘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딸임을 알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세상을 하나님의 이치대로 다스려 얻은 이익을 널리 모든 이들을 이롭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지금 우리나라나 세계가 당면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이 홍익인간의 정신이야말로 세상을 구할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 하나님의 아들딸임을 알고 서로 존중하며, 세상에서 이치에 맞게 살며, 서로 다투지 않고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는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이 얼른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소설로 머물 것이 아니라, 드라마로 영화로 만화로 널리 알려 우리나라뿐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홍익인간의 길로 가야할 것을 알려야 할 것이다. 홍익인간의 길, 그것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 글쓴이 설중환은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문대학장과 한국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늘 우리 역사와 신화에 관심이 많아 『상상 + 단군신화』를 출판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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