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5월 25일 북이 제2차 핵실험을 전개하고, 26일 이를 빌미로 이명박 정부가 전격적으로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에 전면 참여를 선언하였다.

바로 다음 날인 27일 북은 이에 대하여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를 통해 남측의 PSI 전면 참여는 "국제법은 물론 교전상대방에 대하여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하게 된 조선정전협정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며 명백한 부정"행위로 규정하며, "더 이상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또 더 이상 "서해 (북측) 해상군사분계선 서북쪽 영해에 있는 남쪽 5개섬(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의 법적 지위와 그 주변수역에서 행동하는 미제 침략군과 괴뢰 해군 함선 및 일반 선박들의 안전항해를 담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북이 이렇게 반박하고 나선 것은 아래와 같은 정전협정 제15항에 근거한 것이다. 이 조항은 북에 대하여 어떠한 해상봉쇄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5항 본 정전협정은 적대 중의 일체 해상 군사역량에 적용되며 이러한 해상 군사역량은 비무장지대와 상대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한국 육지에 인접한 해면을 존중하며 항구에 대하여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한다.”

이로써 한반도는 군사적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만큼 격동적으로 움직이는 현실에서 지난 분단시대에 남과 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할 때 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정전협정'에 대하여 이번 기회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벌써 56년이 지났다. 아마도 인류역사를 통해 이처럼 긴 정전협정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분단시대를 법률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정전협정'의 규정 내용과 방법 그리고 그것의 변화는 박사학위 논문으로도 모자랄 만큼 거대한 것이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정전협정이 어떻게 파괴되어 왔으며, 앞으로 그 모습은 어떠해야 될 것인가를 보도록 하자.

▲ 군사분계선을 긋는 순간. 유엔군 연락장교 제임스 레이 대령(왼쪽)과 인민군 연락장교 장춘산(오른쪽)이 판문점에서 휴전선을 정하는 협정을 시작하고 지도에 38선을 긋고 있다.(1951.11.26) [자료사진-유영호]
▲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는 유엔사 대표 클라크 대장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자료사진-유영호]
▲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팽덕회와 정정협정 서명란. 이승만은 여기에서 제외되어 있다. [자료사진-유영호]

정전협정, 어떻게 파괴되어 왔는가?

전쟁이 발발한 지 1년 보름이 지난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된 정전협상은 2년 뒤인 1953년 7월 27일까지 159회의 본 회담을 비롯한 765회의 각종회의를 통해 정전협정을 탄생시켰다. 이렇게 탄생된 정전협정의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조선)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전체 5조 63항으로 이루어진 정전협정은 제1조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제2조 정화 및 정전의 구체적 조치, 제3조 전쟁포로에 관한 조치, 제4조 쌍방 관계정부들에의 건의, 제5조 부칙으로 그 내용과 성격에 따라 나뉘어져 있다.

이러한 정전협정의 63개 조항은 그 효력의 유효성이란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미 수행된 조치들로서 그 생명력이 없어진 조항, 아직도 유효하게 지켜지고 있는 조항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전체제를 위해 유효한 조항이지만 실질적으로 무력화된 조항으로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럼 이제 이러한 정전협정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포로교환에 관한 조항 등 1953년 정전 당시 이미 수행된 구체적인 조치들로서 그 생명력이 없어진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에는 제2조 '정화 및 정전의 구체적 조치' 중 12항과 14~17항 그리고 제3조 '전쟁포로에 관한 조치' 51~59항 등이 해당한다.

둘째, 아직도 유효하게 지켜지는 조항으로는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를 규정한 제1조 1항이다.

"1항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이(2)키로메터씩 후퇴함으로써 적대군대 간에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한다.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하여 이를 완충지대로 함으로써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한다.

8항 비무장지대 내의 어떠한 군인이나 사민이나 그가 들어 갈려고 요구하는 지역의 사령관의 특정한 허가없이는 어느 일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지역에도 들어감을 허가하지 않는다.

10항 (생략) … 단 어느 일방이 허가한 인원의 총수는 언제나 천(1,000)명을 초과하지 못한다. … (생략)"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 역시 상당부분 파괴된 채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군사분계선의 경우 육지에서의 군사분계선만 유일하게 지켜지고 있으며, 해상에서는 군사분계선을 명확히 규정하지 아니하고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지금까지 서해바다에서는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로써 현재 남북 군사적 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1순위 지역으로 서해바다가 꼽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비무장지대 역시 그것은 '중무장지대'란 표현이 더 정확하리만큼 중무장화되어 있는 곳이며, 뿐만 아니라 그 면적에 있어서도 현재 상당히 축소되어 정전협정이 체결될 당시의 91% 면적에 불과하다. 즉 비무장지대를 표시하는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 각각 군사분계선을 향해 9%만큼 좁혀진 상태이다.

군사적 필요에 의하여 비무장지대를 침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도 이러한 비무장지대 침범 사례를 우리 일반인들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예컨대 비무장지대를 규정짓는 조항이 위의 8항, 10항과 같이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남측에서는 그 동안 '안보관광'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일반시민들을 비무장지대로 견학시키고 있다. 하루에도 수 천명씩 돌아보는 파주지역의 '도라전망대'와 파주, 철원 등에 있는 여러 '땅굴'은 모두 유엔사가 관할하는 남측 비무장지대 안에 존재한다. 그리하여 이를 비무장지대로 방치하였을 경우 당장 정전협정 8항과 10항을 위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시적 정전협정 위반을 피하기 위하여 남측 비무장지대의 경계선인 '남방한계선'을 북쪽 방향으로 상당부분 올려버린 것이다.

▲ 남측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 유엔사의 표지판. 도라전망대는 물론 모든 땅굴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즉 이 모든 장소는 비무장지대 안쪽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자료사진-유영호]
셋째, 정전 이후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방안들이지만 실질적으로 무력화되어 현재에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 조항들이다. 제2조 '정화 및 정전의 구체적 조치' 중 병력과 군비통제를 위한 13항 ⓒ목과 ⓓ목, 군사정전위원회에 관한 19~35항, 중립국감시위원회에 관한 36항~50항,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정치협상에 관한 제4조 '쌍방 관계정부들에의 건의' 60항 그리고 제5조 '부칙' 중 61항 등이 이에 해당한다.

"60항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삼(3)개월 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 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

먼저 정전협정 60항(평화협정체결조항)은 전쟁을 일시 중단하는 정전협정의 단점을 보완해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이행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항이다. 그러나 정전협정 63개 조항 가운데 이 조항이 제일 먼저 무력화되어 우리의 분단을 이토록 길게 만든 것이다.

1953년 10월 이 조항에 의하여 '한 급 높은 정치회의 소집'을 위한 예비회담이 소집되었지만, 회담 도중 유엔사(미군) 측이 일방적으로 퇴장해버림으로써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진보는 무산되고 오늘날까지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에게 평화협정은 아직도 미완의 핵심적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13항 ⓒ 한국 경외로부터 증원하는 군사인원을 들어오는 것을 정지한다.
ⓓ 한국 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을 드려오는 것을 정지한다."


정전협정의 파괴는 이렇게 시작되어 이후 정전협정이 실질적으로 도전받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유엔사(미국) 측이 1957년 5월 22일 정전협정 13항 ⓓ목(무기반입 금지조항)을 일방적으로 폐기한다고 선언하면서부터이다. 또 그로부터 약 보름 뒤 유엔사(미군) 측은 6월 9일 정전협정 43항에 규정한 항구에 대한 감시 감독권을 가진 중립국시찰소조마저 축출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유엔사(미국) 측은 곧 이어 핵무장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8년 280mm 핵 장착 포탄과 핵탄두 장착 로켓 반입, 1959년 사정거리 1,100km 순항미사일, 1961년 사정거리 18,000km 에이스 미사일까지 배치했다. 1960년대 후반 핵 지뢰와 배낭을 갖춤으로써 미국은 한반도에 전면적인 핵 체제를 완성했다.

유엔사(미국)는 이렇게 하여 한반도의 정전과 평화를 유지하는 정전협정의 핵심적 골간을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이에 북은 남측의 핵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지하시설 마련에 들어갔으며, 자연 쌍방 사이의 대결적 군비증강이 날로 더해졌다.

이처럼 정전협정이 파괴되는 과정을 세밀히 분석해보면 오늘날의 핵이나 미사일 등의 대량살상무기 제조 또한 정전협정을 어기고 1950년대부터 시작된 군비증강 때문인 것이다.

이상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정전협정이 무력화되는 과정은 '쌍방의 합의'를 요구하는 정전협정 제5조 '부칙'의 61항은 완전히 무시된 상태에서 '일방적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61항 본 정전협정에 대한 수정과 증보는 반드시 적대쌍방 사령관들의 호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이처럼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게 파괴된 정전협정은 과연 우리의 평화를 안전하게 관리해주는 것이 아니다. 즉 우리의 분단은 정전협정과 같은 '총체적인 관리체제나 제도'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의 대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불안정한 상태인 것이다.

이에 대해 도진순 교수는 "정전체제가 지켜지고 있는 것은 힘의 균형인데 이 균형이란 동등성의 개념이기 보다 어느 한편이 일방을 압도할 수 없다는 측면이 크다. 현재 정전협정에서 지켜지고 있는 것은 단 하나 군사분계선뿐인데 이것도 언제 훼손될지 모를 운명에 놓여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1956년부터 미 국무부에서 일하면서 유엔군 사령관 정전담당 특별 고문을 지냈던 이문항(미국명 James Lee)씨 역시 "정전협정 덕분에 전쟁이 방지되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정전협정의 변칙적 운용 방식

이처럼 끊임없이 파괴된 정전협정은 1990년대에 이르러 북이 핵무장을 시작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일방적 선택에 의하여 파괴된 정전협정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며, 1994년 4월 28일 '새로운 평화보장체계'를 요구하며 북미 직접협상을 제의하면서부터이다.

북은 이러한 조치로 같은 해 5월 24일 북측 군사정전위원회를 해체하고,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를 설치했다. 바로 이것이 이번 남측의 PSI 전면참여 결정 후 제일 먼저 이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곳이다. 그 후 같은 해 12월에는 중국의 군사정전위원회 대표단이 철수함으로써 북측 군사정전위원회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이듬 해 2월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의 폴란드 대표단을 철수시킨다. 북측 중립국감독위원회의 한 축이던 체코슬로바키아는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자 체코의 중립국감독위원회 승계를 거부해 그 해 4월 3일 이미 철수시킨 바 있어, 군사정전위원회에 이어 이번에는 북측의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처럼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정전협정을 유지하던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는 더 이상 운영될 수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를 통해 정전협정을 유지 관리할 수 없게 되자 북은 1995년 6월 군사정전위원회의 다른 일방인 유엔사의 해체를 요구했다. 이어 1996년 2월 2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의 대조선 정책과 현 조미관계 수준을 고려하여 우리는 조선반도에서 무장 충돌과 전쟁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북의 이러한 '북미 잠정협정' 제안에 대해 당일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의 어떠한 제안도 수용하지 않을 것"과 "1953년 맺은 정전협정이 그 동안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제외된 어떠한 협정도 북과 맺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정전협정에 대한 북과 유엔사(미국)와의 논쟁과 대결은 1996년 4월 북이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유지 관리.임무를 포기한다는 선언을 발표하면서 언쟁을 넘어 실제적인 국면에 돌입한 것이다.

이렇게 거의 완벽하게 파괴되고 만 정전협정은 그 뒤 군사정전위원회는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과 유엔사(미국)와의 만남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어서 현재 변칙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1994년 5월 북이 군사정전위원회를 해체한 뒤, 군사정전위원회는 안 열리고 있다가 같은 해 12월 미군헬기가 훈련 중 북측 지역으로 불시착하여 조종사 송환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북이 군사정전위원회를 대신하여 주장한 북미장성급회담을 미국이 받아들임으로써 직접 대화 채널이 가동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북미 군사적 접촉에 대하여 미국은 군사정전위원회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북은 이를 북미장성급회담으로 간주하듯이 양측의 시각은 동일하지 않다. 또 이것은 군사정전위원회가 상시적으로 존재해왔던 것과 달리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비상설적으로 개최되고 있어 한반도 평화를 관리하는 조직으로는 전혀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

이처럼 현재의 우리나라는 정전협정에 의하여 정전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의 균형'으로 불완전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방향

이제라도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올바르게 직시하고, 하루 빨리 불완전한 정전협정을 뛰어 넘어 평화협정이 체결되기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이 쌍방에 대하여 규정력을 갖고 있는 총체적 관리체계 없이 '힘의 균형'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는 상태는 그 균형이 깨지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1953년 10월 미국에 의하여 파탄된 정전협정 제4조 60항(평화협정체결조항)은 벌써 56년이 지났지만 가장 시급히 우리가 해결해야 될 조항인 것이다. 총 63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정전협정은 어느 한 조항도 빠지지 않고 파괴된 상태에서 더 이상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보장할 수 없으며, 어서 빨리 평화협정으로 탈바꿈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이제 유엔사의 모자를 벗어 던지고, 실질적인 힘의 주체로서 북미양자회담에 응해야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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