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은 1973년 경희극 예술영화 <우리 집 문제>를 제작한 이후 그 제목을 <○○집 문제>라는 방식으로 “현시기 가정혁명화에서 제기되는 절실한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취급한 폭넓고 깊이 있는 다부작형식의 독특한 작품”(『문학예술사전』, 평양)을 총 10편 이상의 다부작으로 창작하였다.

이 영화들은 전후 복구와 천리마 강행군 시기였던 1960년대까지는 쉽게 보기 어려웠던 가볍고 경쾌한 웃음을 전해주는 영상물이다. 특히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집단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화 소재로 끌고 온 것이다.

영화 속에서 당시 가정혁명화를 제기함으로써 그 동안 거대서사가 주를 이루었던 예술영화의 주제가 좀 더 인민의 현실에 가깝게 다가가 해학과 현실감을 동시에 증가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관심 속에서 제작되었던 다부작 형식의 영화이기 때문에 남쪽 북한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우리 집 문제> 시리즈는 북한에서 대중성을 획득한 영화이자 여성의 자아표현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영화”(서곡숙)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이 영화시리즈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졌고, 북측 최대의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다음으로 연구가 많이 되고 있는 예술영화라고 할 수 있다.

▲ <우리 집 문제>(1973) <우리 옆집 문제>(1979) [자료사진-유영호]
▲ <우리 아래집 문제>(1980) <우리 웃집 문제>(1980) [자료사진-유영호]
▲ <우리 처가집 문제>(1980) <우리 누이집 문제>(1981) [자료사진-유영호]
▲ <우리 큰집 문제>(1981) <우리 사돈집 문제>(1982) [자료사진-유영호]
▲ <우리 작은집 문제>(1983) <우리는 모두 한가정>(1983) [자료사진-유영호]
▲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1986) <우리 삼촌집 문제>(1988) [자료사진-유영호]

1973년 <우리 집 문제>가 창작된 이후 <우리 옆집 문제>, <우리 아랫집 문제> 등으로 제목을 바꿔가며 10년에 걸쳐 다부작 형식으로 총 10부작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 등 2부작에 걸쳐 추가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남쪽 연구자들이 북한영화를 연구하는 방식에 있어서 공통된 특징이 있다. 북의 경우 영화 창작이 당 정책에 의하여 인민 교양 수단으로 만들어진다는 전제 하에 그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연구범위 밖에 있으며, 그 주제를 형성하기 위하여 동원되는 화면 속에 나타나는 몇몇 현상적인 장면들을 통해서 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것은 “김일성, 김정일의 지배체제가 북한 관객을 수동적인 수용자로 한정하여 그 지배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고 하더라도, 관객들은 결코 그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는다”는 생각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방법은 커다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그러한 접근방법에 있어서 전제조건이 되는 내용이 그릇된 정보나 주관적 판단에 근거 했을 때에는 만약 그 전제조건이 부정될 경우 그 분석은 처음부터 잘못된 분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조금만 깊이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아슬아슬한 분석이 꽤 많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아래에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우리 집 문제> 시리즈의 영화에 대하여 가장 많은 연구 성과물을 만들어낸 사람은 서곡숙 이다. 그가 이 영화를 주목하는 첫 번째 이유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북한영화 속에서 <우리집 문제> 시리즈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영화는 김정일이 작품에 대해서 비판했음(밑줄 필자)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호응함으로써, 이후 김정일이 작품에 관여하여 계속 시리즈물로 만들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북한영화들 중에서 제작자-작품-관객이라는 장르의 세 축이 상호작용을 잘 드러내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여기서 필자는 의문이 드는 것은 정말 ‘김정일이 이 작품에 대해서 비판’했는가와, 또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자료가 없다면 위에서 설명하는 것은 그야말로 소설에 불가하기 때문이다. 마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어떠한 근거도 없이 북쪽이 아닌 남쪽에서 숙청시켜버리는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용글이 포함된 논문 어디에서도 역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필자의 추측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김정일 위원장이 이 영화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는 것은 영화연출가 출신 탈북자 정성산의 증언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가 다부작 형식의 <우리 집 문제> 시리즈에 관하여 증언하면서 이에 대하여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시대에는 리히찬이라는 작가로서 끝입니다”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주면서 그것이 점차 이렇게 해석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리희찬이 다부작 형식의 <우리 집 문제> 시리즈 전체의 영화문학을 그가 창작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북자 정성산의 증언과는 반대로 북의 『문학예술사전』에서는 이 다부작 형식의 예술영화 <우리 집 문제> 시리즈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법에 의하여 제작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예술영화 ≪우리 집문제≫ 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지도법에 웃음속에 신랄한 비판이 있고 사람마다 교훈을 찾게 하는 특색있는 영화로 되였으며 가정혁명화주제의 영화창작에서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되었다.”

둘째, 서곡숙은 <우리 집 문제> 시리즈의 제작시기와 목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우리집 문제>시리즈의 제작 시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밑줄 필자)로 ‘김정일 후계체제시기와 김정일 체제모색시기’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김일성과 김정일 체제의 과도기적 성격을 보임과 동시에 김정일이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과 맞물려 있다.” …(중략)… “<우리집 문제>시리즈는 대부분 젊은 층과 여성의 이탈을 막기 위하여(밑줄 필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이 다부작 영화는 1990년 전후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정치, 경제적 위기에 몰린 북이 체제를 단속하고 정비하기 위하여 문학예술적 방면에서 인민교양을 위하여 제작되었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를 전제로 영화를 분석하면서 그는 <우리 웃집 문제>에 대하여 이 영화가 “시어머니 부양으로 제기되는 경제권 문제와 순종 문제는 북의 식량난과 주택난 등 경제적인 어려움과 가부장적인 현실을 반영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애당초 위의 논리가 성립하기 위한 대전제, 즉 영화 제작 시기가 그릇된 정보에 근거해 있고, 뿐만 아니라 그가 말하는 영화의 목적 부분에서도 그의 기대에 맞게 인위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할 뿐이지 영화의 내용은 그의 주장과는 다르다.

다부작 예술영화 <우리 집 문제>의 제작시기를 북의 1차 자료에 따라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그리고 그 영화 속의 부정인물로 뽑아 놓은 인물들은 필자가 영화를 관람한 후 정리한 것이다.

이에 따를 경우 서곡숙은 영화분석의 가장 기초적인 정보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다부작 형식의 예술영화〈우리 집 문제〉시리즈]
제목
제작년도
부정인물
조선중앙년감
서곡숙
우리 집 문제
1973
-
아내
우리 옆집 문제
1979
-
아내
우리 아래집 문제
1980
1990
남편
우리 웃집 문제
1980
1990
우리 처가집 문제
1980
1989
며느리
우리 누이집 문제
1981
1988
누이
우리 큰집 문제
1981
-
형님과 그 아들
우리 사돈집 문제
1982
1988
아들
우리 작은집 문제
1983
-
남동생
우리는 모두 한가정
1983
1991
부인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
1986
-
남성 부위원장
우리 삼촌집 문제
1988
1989
삼촌
* 제작 년도는 『조선중앙년감』에 근거한 것이며 그곳에 기록되지 않은 것은 『조선영화년감』, 『문학예술사전』 등 기타자료를 참조한 것이다.

먼저, 서곡숙은 영화 제작 시기가 ‘김정일 후계체제시기와 김정일 체제모색시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이라고 하지만 이 다부작 예술영화의 시작인 <우리 집 문제>는 1973년에 제작되었으며, 총 10편의 영화가 마무리되는 <우리는 모두 한가정>조차 1980년대 초반인 1983년에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서곡숙의 글에서 이 영화가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1980년 후반에는 이미 이 영화시리즈는 끝난 상태였다.

즉 서곡숙의 논문에 기록된 다부작 예술영화 <우리 집 문제>의 제작 시기는 그릇된 정보에 기초한 것이므로 그 논리전개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의사가 임신도 하지 않은 처녀를 임신했다고 오진하고 시술한 경우와 똑 같은 것이다.

물론 <우리 집 문제> 시리즈는 1986년에 이르러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와 1988년 <우리 삼촌 집 문제>라고 비슷한 제목의 영화가 창작되었지만 이 두 편 이상은 창작되지 않았고, 또 『문학예술사전』(1993)에서도 〈우리 집 문제〉시리즈를 <우리는 모두 한가정>(1983)까지만 묶어서 소개할 뿐 그 뒤 두 편에 대하여서는 소개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서곡숙의 논문에서는 이를 포함하여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도 함께 묶어서 논의하기로 하겠다.

이러한 제작시기의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고 보면 이 영화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있기 훨씬 전이며, 특히 이 영화 시리즈가 처음 시작되는 1973년은 그 동안 전후 복구와 체제정비에 온 나라가 힘쓰던 것을 정리하고 새롭게 체제를 정비하는 사회주의헌법(1972년 12월)이 통과된 직후로 정치, 경제적으로 북의 체제가 상당히 안정되었을 시기이다.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체제 위기와 정권 승계를 위하여 대중교양적 측면에서 제작되었다는 전제 하에 분석한 서곡숙의 논문은 그 논리전개의 전제조건이 잘못된 것이다.

한편 이러한 류의 주장은 “<우리 집 문제> 시리즈는 구세대의 가부장적 질서 수락을 주제로 하여 기존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김정일이 김일성의 정치적 지위와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는 것을 수락함으로써 김정일 후계체제의 정당화를 강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다른 연구자(민병욱)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총 12편에 이르는 <우리 집 문제> 시리즈라는 다부작 예술영화를 필자는 모두 보았지만 도대체 그 영화 어느 부분에서 가부장적 질서 수락을 요구하는 주제가 있었으며, 또 12편의 영화 어느 부분에서 후계체제의 정당화를 합리화하는 이야기 전개가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영화에서는 그저 착하게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사람들에게 권고하는 계몽적 내용일 뿐이다. 아마도 영화 속에서 ‘어른들의 말을 잘 들어야 된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면 이것이 곧 수령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만일 이러한 이유로 그것이 가부장적이고, 후계체제를 정당화하는 이유라면 필자는 여기서 그에 대한 비판을 접겠다. 그것은 필자에게 시간낭비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는 다부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대부분 젊은 층과 여성’의 이탈을 막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즉 영화 속에서 부정인물들이 주로 젊은 층과 여성들로 구성되어 그들을 계도하여 이탈하지 못하도록 할 목적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기 때문에 통상 한 가정에 문제인물이 있다고 할 때는 대부분 그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그러한 잘못을 묵인했거나 방조한 잘못이 있듯이 두부 자르듯 부정인물들을 성별이나 연령별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굳이 주요한 부정인물들을 골라낸다면 앞의 표에 나타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위의 분석표에 나타난 것들로 볼 때 서곡숙의 주장처럼 꼭 ‘젊은 층과 여성’들이 주요 부정인물이라고 확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청년과 여성으로 제한하여 주장하는 것은 그 상대편인 ‘기성세대와 남성’이라는 집단이 북쪽 사회를 장악하고 있으며, 그 집단은 변화와 개혁에 보수적일 것이라는 전제가 이미 결론처럼 내려져 있기 때문인 것이다.

즉 해당 영화 내용과 무관하게 이미 머리 속에는 결론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글쓴이의 희망일 뿐 실제 영화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왜곡이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상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영상물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검증 이전에 선험적인 판단에 근거한 결론 도출의 위험성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 도출은 대게 선행자료(이것 역시 명확한 근거 없이 작성된 것들로 보이지만)나 탈북자 증언이라는 형식을 빌어 논리의 정당성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반세기 넘게 적대시하며 대치해온 상태에서 이러한 자료들의 위험성에 대하여서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분석의 과학성과 객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고로 북의 『문학예술사전』에는 이 영화의 창작목적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예술영화≪우리 집문제≫와 그 속편들은 지난날 가정혁명화를 잘하지 못하여 이러저러한 결함을 가지고 있던 우편국장과 그의 안해가 로동자들 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의 혁명성과 조직성을 따라 배워 정치사상적으로 현저히 달라진 인물로서 속편영화의 매개 부들에 등장하여 친척들과 이웃들의 가정혁명화를 적극 도와주는 역할을 하도록 구성(밑줄 필자)되여 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시종 웃음을 자아내며 그 웃음 속에 신랄한 비판이 있고 사람마다 교훈을 찾게 하는 특색을 가지고 있으며 가정혁명화의 교과서, 생활의 거울로 되고 있다. 이 다부작영화에는 우리 일군들이 과오를 범하지 않고 끝까지 혁명의 꽃을 피워나가도록 하시려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 깃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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