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일째 북측 조사를 받고 있는 개성공단 현대아산 직원 유 모씨에 대해 북측이 ‘현대아산 직원의 모자를 쓰고 들어와’라고 명기해 주목된다.

15일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남측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 보내온 통지문에서 “남측은 개성공업지구에 현대아산 직원의 모자를 쓰고 들어와 우리를 반대하는 불순한 적대행위를 일삼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여 조사를 받고있는 자의 문제를 가지고 소란을 피우면서 그것을 실무접촉의 전제조건으로 내드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통상 ‘모자를 쓴다’는 표현은 드러내기 곤란한 신분을 감추고 합법적 직위를 내세우는 것으로, 남북 간에는 정보기관 관계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남북회담 대표단에 남측 국정원이나 북측 보위부 성원 등이 통일부나 조평통 직책으로 참석하는 경우가 이같은 사례에 속한다.

따라서 북측이 유씨를 ‘현대아산 모자’를 쓰고 들어왔다고 적시한 것은 사실상 유씨를 국정원과 같은 남측 정보기관 직원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15일 오후 통일부 관계자는 “대단히 자의적이고 일방적이고, 이런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아무나 모자를 씌워버리면 다 되는데, 그걸 우리 근로자들이 불안해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이종주 통일부 부대변인 역시 “북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우리 정부가 유씨를 접견하고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말했다.

15일 유씨가 북측의 조사를 받기 시작한 과정도 좀더 자세히 알려졌다. 북측 통지문에 유씨를 '현행범'으로 표현한데 대해 유씨는 숙소에서 북측에 끌려간 것이 아니라 출두 요구를 받고 북측에 자진 출두했다는 설명이 나온 것.

통일부 관계자는 “3월 30일 출입국사업부로 유씨를 오라, 현대아산 오라, 관리위 직원 오라 해서 유씨에 대해 통지문을 읽은 것이다”며 “오라 하니까 현대아산 차를 타고 간 것이다. 유씨가 먼저 도착하고 현대아산과 관리위 직원이 늦게 도착했고, 다 모였을 때 통지문을 읽었다”고 전했다.

북측은 3월 30일 당시 통지문에서 “존엄 높은 우리 공화국의 정치체제를 비난하고 여성 종업원을 변질, 타락시켜 탈북 시키려고 책동했다”고 혐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으며, 5월 1일에는 조선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이 “개성공업지구에 들어와 우리의 존엄높은 체제를 악의에 차서 헐뜯으면서 공화국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해당 법에 저촉되는 엄중한 행위를 감행하였다”며 “해당 기관에서는 현재 조사를 계속 심화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유씨가 북한 군기관에 이첩됐다든가 개성지역에서 떠났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16일 이종주 부대변인은 “유씨가 개성 인근에 있고 안전하게 잘 있다는 말을 북측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그 정도 상황까지이다”고 확인했다.

북측이 유씨를 ‘현대아산 모자’를 쓰고 들어왔다고 적시한데 대해 한 소식통은 “국정원에 대한 압박 아니겠느냐”며 “반북 삐라(전단) 살포나 범민련 간부 구속 같은 일련의 흐름에 대한 불만 표시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남북 당국 간 공식 대화라인과 병행해 남북 정보기관 간 비공식 접촉라인이 유지되던 지난 시기와 달리 현 정부 들어 정보기관 간 접촉라인 마저 가동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측이 유씨 신분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서 유씨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유씨 문제를 개성공단과 관련된 ‘본질적 문제’로 규정하고 북측과의 실무회담에서 최우선 의제로 다뤄나간 다는 입장을 견지해 북측이 제기한 개성공단 관련 후속접촉이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북측이 미국 여기자 2명과는 달리 유씨에 대해서는 접견권을 보장하지 않은 채 조사일정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참여연대와 6.15남측위 등 진보진영에서도 접견권 보장을 촉구하는 논평이 나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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