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기 <미국, 시사평론>

해외동포사회, 특히 미국동포사회가 해외동포 문제를 전담할 교민청의 신설, 이중국적 허용, 참정권 부여 문제 등을 한국정부에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이 가운데 해외동포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재외국민 투표관련법 개정안이 지난 2월5일 여야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해외동포의 참정권을 배제한 공직선거법이 헌법과 불일치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2007. 6. 28.)에 따른 개정입법조치이다. 이에 따라 해외에 살고 있는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일시해외체류자는 물론 영주권자도 한국의 대통령 선거 및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유학생, 정부상사 주재원 등 일시적으로 해외에 머물고 있는 국민의 참정권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들은 한국에 살고 있는 국민과 동등하게 납세, 병역 등의 국민의무에 충실하기 때문에 권리 또한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영주권자에게 한국의 참정권을 주는 것이 마땅한 지는 더 따져보아야 한다. 해외동포 참정권 문제를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진 분들이 바로 (미국)시민권 받기를 미루면서 한국정치권을 넘보는 영주권자 자신들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외동포의 참정권 부여, 부정적인 면이 긍정적인 면보다 더 커

영주권자도 아직은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시적이다. 미국의 경우, 5년 동안 영주권자로서 선량하게 산 사람에게는 미국시민권이 부여된다. 무엇보다도 이민을 와 영주권을 얻는다는 것은 일단은 한국을 떠나 그 나라에서 ‘영원히 살겠다’(영주)는 결심이며, 그 나라의 법에 따라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서약이다.

현지에서 영주권을 얻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치가 이런데도 세금은 미국정부에 내고 투표권은 한국에서 행사한다? 오히려 시민권자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은 의무가 지워지는 영주권자는 떠나온 한국이 아니라 의무를 다 하고 있는 그 나라의 참정권을 요구해야 마땅하다. 지방선거 참정권을 요구하고 있는 재일동포사회의 경우가 좋은 예이다. 가수 유승준 사례에서 진즉에 들어났듯이, 자기 편할 대로의 선택적 권리행사의 부도덕성도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이다.

한국정부는, 일시해외체류자를 포함한 해외동포 300여만 가운데 19세 이상 투표자격이 인정되는 해외동포 규모를 240여만으로 어림잡고 있다. (<한국일보> 2009. 2. 6.) 상당한 숫자다. 대통령 선거를 비롯하여 각종 선거가 근소한 표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점을 고려할 때 해외동포의 표가 결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가능성을 담보로 해외동포사회는 더 많은 것을 지속적으로 한국정치권에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권에 한정된 참정권의 확대를 요구할 것이다. 참정권의 제한은 곧 국민기본권의 제한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헌법소원 거리가 됨직 하다. 나아가서, 기왕에 요구해왔던 이중국적 허용을 강하게 밀고 나갈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해외동포 모두가 참정권을 얻게 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이중국적 허용은 민족주의 가치제약에서 벗어나려는 기득권층의 그럴듯한 방편이 될 터이며, 한국사회 특히 정치권에서 늘 일고 있는 본인의 영주권 문제나 자녀의 해외국적 취득 문제도 한꺼번에 해결될 터여서 그 가능성을 제쳐놓을 수 없다.

한편, 정제되지 못한 한국의 정치권은 기를 쓰고 해외동포사회에 간섭하려 들 것이다. 선거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할 해외 표를 그냥 놔둘 리 없다. 벌써부터 보수층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렇잖아도 해방 후 계속된 분단독재정치가 해외동포사회를 적잖이 할퀴어놓은 터에 한국의 정치권력이 합법적으로 관여할 길을 열어놓았으니 해외한인사회의 앞날이 걱정이다. 힘을 모아, 영주하려는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그 나라로부터 온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동포사회가 한국정치에 종속되어 표류한다면 영주권자의 삶은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

해외동포 참정권 부여로 통일역량 약화될 것

해외동포의 역량이 국력의 연장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외동포도 조국에 봉사하여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해외동포사회가 조국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그리고 하여야 할 역사적 책무는 조국의 분단극복에 기여하는 일일 것이다.

분단된 조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해외동포사회는 조국에 살고 있는 동포와는 달리 해외동포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기능이 있다. 이 길을 찾아 힘을 모아야 한다. 힘든 일이긴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 각오는 저 식민지시대에 벌렸던 조국광복투쟁과 맥을 같이 하는 일이며 이민전통의 계승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인 해외동포사회의 역량결집과 강화에 과연 해외동포의 참정권 부여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부정적이다. 반공, 반북논리를 주장하는 보수층이 한국 정치권의 후원 아래 분열과 혼란을 부추기면서 통일역량을 약화시키려들게 뻔하다.

한 마디로, 해외동포에게 참정권을 주는 일은 해외동포사회의 건강은 물론 한국의 정치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한국의 정치현실을 느끼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해외동포가 한국의 선거판을 좌지우지한다는 것, 법리를 떠나서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장기집권의 포석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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