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무지개 공작과 당국의 대응, 그리고 언론


1. 사건을 군사정권 집권연장에 활용한 ‘무지개 공작’

1-1. ‘무지개 공작’은 2006.8.1. 국정원과거사위의 ‘KAL858기 사건 재조사’ 중간발표 과정에서 그 존재가 드러남. (국정원종합보고서 578~579쪽)

▲ 당시 안기부가 작성한 무지개공작 문건의 일부내용 -국정원종합보고서 [자료사진 - 서현우]

1-2. ‘무지개 공작’의 내용은 ‘KAL858기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을 단정하고, 대북 규탄 및 반북의식 고양 등의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음.

▷ ‘무지개 공작’을 다룬 문서엔 공작의 목적을 ‘가능한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이라 하여 정치적 이용을 노골화 함. (국정원종합보고서 578쪽 첨부자료)

▲ ‘무지개 공작’은 KAL858기 사건을 ‘대선사업 환경’에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서였음 -국정원종합보고서 [자료사진 - 서현우]

▷ 국정원과거사위는 중간발표 당시에 이미 “KAL858기 사건의 진상이 당시 안기부의 수사발표 내용과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무지개 공작’에 대해 ‘기 발생한’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데 대해 비판을 가한 바 있음.

▷ 그러나 KAL858기 사건의 발생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 ‘무지개 공작’이 국정원과거사위의 시각대로 과연 ‘기 발생한’ 사건을 대통령 선거에 활용한 것인지, 아니면 ‘KAL858기 사건 발생’ 자체가 ‘무지개 공작’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됨.

▲ 대통령 선거 하루 전 서울로 이송되어 선거일 아침 신문 1면을 차지한 KAL858기 사건 용의자 ‘하치야 마유미’ [자료사진 - 서현우]

2. ‘무지개 공작’ 시점의 문제

2-1. ‘무지개 공작’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공작시작 시점인데, 공작이 시작된 1987.11.2은 KAL858기 사건이 발생한 지 ‘고작 3일 후’라는 점임.

▲ ‘무지개 공작’의 실행 기간과 소요예산 -국정원과거사위 중간보고서 [자료사진 - 서현우]

▷ 즉 사건의 실체에 대해 아직 추정 또는 추측 이상의 진척이 없었던 이 시점에 사건이 ‘북한의 공작임’을 전제한 무지개공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중대한 의문으로 남아 있음. (국정원종합보고서580쪽)

▷ 이는 마치 북한에 의한 KAL858기 폭파공작을 미리 인지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전광석화 같이 취해진 기민한 대응이었음.

▲ 대통령 선거일 이전, 중간 수사발표까지 계획한 ‘무지개 공작’ -국정원과거사위 중간보고서 [자료사진 - 서현우]

▷ 그로부터 2주일 후인 12.16은 제13대 대통령 선거일로서, 이 선거는 16년 만에 맞은 국민의 직접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출의 기회였음.

2-2. 또 무지개 공작이 시작된 1987.12.2 이 날은 김현희, 김승일이 바레인 공항에서 음독한 바로 다음날이라는 점임.

▲ 보수언론은 KAL858 사건으로 노태우 후보가 150만표 가량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평가함 [자료사진 - 서현우]

▷ 이 날은 단지 하루 전 바레인 공항에서 ‘언론보도에 의해’ 용의선상에 오르내리고 있던 문제의 일본여권 소지 두 남녀가 음독자살을 기도하여 남자는 죽고 여자는 병원 응급실에서 혼수상태라는 정보만 전해졌을 뿐임.

▲ 바레인에서 두 남녀의 음독 소식과 동시에 시작된 ‘무지개 공작’ [자료사진 - 서현우]

▷ 음독 남녀의 신원에 대해선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음.

3. 너무나 신속한 정부당국의 반응

3-1. 무지개 공작이 시작된 첫날인 1987.12.2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긴급 임시국무회의를 개최하여 사건이 북의 소행이라 발언함. (조선일보1987.12.3자 1면)

▷ 같은 날 최광수 외무장관은 북의 ‘검은 손 개입’이란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다음날 바레인 외무장관 앞으로 ‘계획된 범죄’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냄. (MBC뉴스데스크1987.12.2자, 12.3자)

▲ 음독 다음날의 국무회의 소식 -조선일보 [자료사진 - 서현우]

▷ 다음날인 1987.12.3 이웅희 문공부장관은 ‘전 세계에서 북한만이 할 수 있는 범죄’라 발언함. (MBC뉴스데스크1987.12.3자)

▷ 조선일보는 ‘공중 폭발’로 추정하고, 경향신문은 ‘북괴지령폭탄테러’로 추정함. (조선일보1987.12.2자 10면, 경향신문1987.12.2자 1면)

▲ 음독 다음날의 ‘북괴 지령 폭탄테러 추정’ 언론보도 -경향신문 [자료사진 - 서현우]

▷ 이에 앞서 사건 발생 단 하루 만인 11.30,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은 사고수습을 위해 방콕을 방문한 자리에서 ‘폭탄테러’라는 견해를 표명하였고, 또 조중건 사장은 ‘폭발 추정’이라 발언함. (MBC뉴스1987.11.30자)

4. 확인되지 않은 무지개 공작의 전모

4-1. 무지개 공작은 현재까지 그 전모가 알려진바 없으나, 공작개시의 시기, 또 앞서 확인한 정부당국과 대한항공 측의 이러한 반응에다, 공작의 시작과 동시에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언론보도가 잇달음으로서 공작의 규모와 범위에 대해 의혹을 불러일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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