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해외 실습 여정 (1차)

1. 기간:
1984.8.15~10.2

2. 참가자:
김현희, 김승일, 장지도원.

3. 전체노정 중 3인 공동:
평양 출발(1984.8.15)→모스크바(3/4일)→부다페스트(4/5일)→비엔나(6/7일), 코펜하겐(6/7일), 마카오(김현희는 7/8일)→광저우(2/3일)→베이징(2/3일)→평양 귀환.
- 코펜하겐에서 장지도원과 헤어지며 마카오에서 합류하기로 함.

4. 전체노정에서 2인 공동:
비엔나→코펜하겐→프랑크푸르트(5/6일)→취리히(4/5일)→제네바(4/5일)→파리(4/5일).
- 9.20 파리 드골공항에서 김현희는 방콕과 홍콩을 경유하여 마카오로, 김승일은 단신 서울로 잠입. 김승일 5/6일간 한국체류 함(9.21~9.26).

▲ 김현희 소지 ‘하치야 마유미’ 명의 여권과 김승일 소지 ‘하치야 신이치’ 명의 여권 사진 [자료사진 - 서현우]

5. 전체노정에서 김현희 단독:
파리→방콕 경유→홍콩→마카오 (9.21 마카오에 도착하여 장지도원과 합류).
- 파리→방콕 간은 직항 비행기였고, 비행과정에서 1박 보냄. 그리고 방콕 공항에선 환승만 함.

6. 9.26 마카오에서 김현희, 김승일, 장지도원 3인 재합류함.

7. 9.28 마카오를 출발한 3인은 마카오→광저우(2/3일)→베이징(2/3일)의 노정을 거쳐 10.2에 평양으로 복귀함.

8. (세부 노정 중) 평양→모스크바 여정은 8.15 09:00경 평양을 출발하여 이르크츠크를 경유, 모스크바에 17:00경에 도착함. 모스크바에서 3일을 보내는 동안 ‘크렘린 광장’, ‘왕궁’ 등을 관광함.

9. 8.18 부다페스트에 도착하여 북한초대소로 이용하는 부다페스트 주재 지도원인 정지도원의 집(2층 구조의 2층)에 여장을 품.
- 정지도원이 사는 집은 1층에 외국인이 세를 들어 살고 있어, 약 15평 규모의 2층에서 정지도원의 가족 및 2인(장지도원의 거처는 북한대사관)의 해외실습 공작조가 함께 기거함.

10. 8.22 3인(김현희, 김승일, 장지도원)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차를 이용하여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향하는데, 국경 통과 시 열차 내에서의 여권 검열은 헝가리 당국에 의한 단 한 번의 출국검열 뿐이었음.
- 오스트리아 당국의 입국검열은 없었음.

11. 국경 통과 후 열차 내에서 김현희, 김승일은 북한 여권을 장지도원에게 반납하고 ‘하치야 마유미’, ‘하치야 신이치’ 명의의 일본 여권을 건네받음.
- 이때 두 사람의 일본 여권엔 3~4일 후인 1984.8.25자 나리타공항 출국, 같은 날짜의 태국 방콕 입국, 다음날인 1984.8.26자 방콕 출국을 나타내는 각자 3개씩의 미래 날짜의 출입국도장이 찍혀 있었음.

12. 비엔나 역에 도착하여 장지도원은 비엔나 주재 북한대사관으로 향하고 두 사람은 아스토리아 호텔에 투숙함(5/6일). 다음날인 8.23 10:00경에 오스트리아 여행사에서 장지도원과 다시 만나 8.28 15:00경에 출발하는 코펜하겐 행 비행기표 2장을 구입한 후, 장지도원과 헤어지면서 8.29 10:00에 코펜하겐 ××여행사에서 다시 만나기로 함.
- 아스토리아 호텔 투숙과 코펜하겐 행 항공권 구입 시, 8.25자, 8.26자의 미래날짜 출입국도장이 찍힌 여권을 제시했음.

▲ 수사발표문 -1차 해외실습 여행 [자료사진 - 서현우]

13. 8.28 오후 비엔나를 출발하여 코펜하겐에 도착한 두 사람은 코펜하겐 중앙역 부근 미상(未詳) 호텔에 투숙하여 1박 함. 다음날인 8.29 10:00경 두 사람은 ××여행사에서 접선한 장지도원과 함께 항공노정을 알아보고, 다른 호텔을 예약한 후 장지도원과 9.2 20:00경 티보리 공원 정문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짐. 두 사람은 곧장 새로 예약한 로열 호텔로 숙소를 옮김.

14. 9.2 20:00경 두 사람은 티보리 공원에서 만난 장지도원으로부터 비행기표를 받은 뒤, 장지도원과는 마카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짐. 장지도원이 건네준 비행기표는 김현희의 경우, 코펜하겐→프랑크푸르트→취리히→제네바→파리→방콕(경유)→홍콩 노정이었으며 김승일의 경우, 파리까지는 김현희와 동일하나 파리→서울→홍콩 노정이 달랐음. 김승일의 서울잠입은 독자적인 임무에 따라 주어진 것이며, 홍콩에서 마카오까지는 각자 배를 이용하기로 함.

15. 9.3 11:00경 두 사람은 코펜하겐 공항을 떠나 13:00경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함. 프랑크푸르트에 체류하는 동안 베토벤의 옛집, 호수가, 미술박물관 등을 관광함.

16. 9.8 두 사람은 다시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15:00경 취리히에 도착하여 여장을 품. 프랑크푸르트와 취리히의 투숙 호텔은 미상임. 취리히에선 관광버스를 타고 ‘알프스 산’(또는 ‘알라스카 산’ -진술 엇갈림)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산정에 오름.

17. 9.12 취리히에서 제네바 행은 택시를 이용하여 10:00경 출발, 18:00경 도착함. 제네바 투숙 호텔은 미상임.
- 두 사람은 취리히→제네바 간의 비행기표를 소지했으면서도 택시를 이용했는데, 김현희는 택시요금이 얼마 들지 않아 항공료를 환불 받지 않았다고 진술함.

18. 9.16 16:00경에 두 사람은 파리에 도착하여 그랜드 호텔에 투숙함. 파리에선 개선문에 올라가 파리 시내를 구경하는 등 관광을 즐김.

19. 9.20 오전, 파리 드골 공항에서 김승일은 서울로 향하고, 김현희는 방콕 경유 홍콩으로 향함. 김현희의 파리 출발 시간은 10:00경, 방콕 도착 시간은 다음날 11:00경(방콕 현지 시간)임.
- 이동 과정에서 1박함.

20. 9.21 김현희는 방콕공항 환승장을 이용, 갈아타는 비행기로 홍콩에 도착한 뒤 배편으로 마카오에 들어감. 마카오에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장 지도원을 만나 애도(愛都-ESTORIL) 호텔 122호실에 투숙함.

21. 9.26 김승일이 서울로부터 마카오에 도착하여 3인이 재합류함.

22. 9.28 북한 여권으로 중국 광저우로 건너가 동방빈숙에 투숙함. 광저우 체류 시
박창해 광저우 주재 지도원의 안내를 받음.

▲ 애도 호텔 전경 -수사결과자료 [자료사진 - 서현우]

23. 9.30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북한대사관 초대소에 투숙하며, 천안문 광장, ‘궁전’ 등을 관광함.

24. 10.2 평양에 도착하여 동북리2층2호 초대소로 귀환함.

(김승일 서울 체류에 대해)
25. 김승일은 한국에 잠입하여 5/6일 간 체류함(9.21~9.26). 첫째 날엔 서울의 프레지던트 호텔에 투숙했음이 확인되나, 나머지 4박은 알 수 없음.

26. 프레지던트 호텔의 김승일 예약카드엔 예약자가 ‘타이 항공의 Miss. H Park'으로 기재되어 있음.

Ⅴ. 해외 실습 여행 (2~3차)

1. 2차 전체 기간:
1985.7.30~1987.1.20.

2. 중국 광저우에서의 실습기간:
1985.7.31~1986.8 중순.

3. 마카오에서의 실습기간:
1986.8~1987.1.18

4. 참가자:
김현희. 김숙희(조사부 소속 공작원).

5. 광저우 실습:
1985.7.30 평양 출발, 베이징을 거쳐 광저우에 도착. 광저우 주재 지도원 박창해의 집에서 1년간 생활하며 광동어 학습 및 현지적응 훈련함.

6. 주요 대인관계인:
허애영(許愛英) 27세 여자 미혼 광저우건축전문학교 교원.
‘차국광(蔡國光)’ 28세 남자 미혼 광저우동식물연구소 지도원.
류주홍(瀏周紅) 27세 남자 미혼 광저우아동병원 간호원.
‘당결명(唐吉明)’ 36세 중년 여성.

7. 1986.1 초순, 평양으로부터 김현희, 김숙희 두 사람이 “지난해 8.15자로 ‘조국해방40돌 기념 공로메달’ 수상자에 선정”된 사실을 전하는 무선전문 수신함.
- 이 메달은 1년 후 평양으로 귀환한 날인 1987.1.20에 수령함.

조국해방40돌 기념 공로메달 수상 -안기부 신문조서 

8. 마카오 실습:
1986.8 중순, 광저우 주재 지도원 박창해의 승용차에 올라 마카오로 향함. 마카오 입국 시 북한 여권으로 입국 수속을 마쳤는데, 박창해 지도원이 김현희, 김숙희의 여권을 받아 수속을 대행하는 사이에 김현희, 김숙희는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림.

9. 마카오 입국 후 김현희, 김숙희는 주재 지도원인 손지도원이 미리 마련해 놓은 명주대 아파트에 입주하고, 박창해 지도원은 광저우로 돌아감.

▲ 명주대 아파트 3층1호 -수사결과자료 [자료사진 - 서현우]

10. 두 사람은 마카오에서 일본인으로 위장하여 약 5개월 동안 현지적응 훈련함.

11. 1987.1.18 두 사람은 귀국 지령에 따라 광저우와 베이징을 거쳐 1.20에 평양에 도착함.
- 이때 김현희가 귀국을 위해 마카오에서 준비한 선물 중엔 ‘한복 옷감’이 있음.

12. 3차 (해외실습) 기간:
1987.9 마카오에서의 영주권 취득의 기회가 열리자, 갑작스런 명령으로 9.22 김숙희와 함께 광저우로 건너가 대기했으나, 김현희는 곧장 자신에게만 주어진 소환 명령을 받고 보름여 만에 단독 귀환함. 중도 귀환의 이유는 KAL858기 폭파공작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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