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KAL858기 사건의 주범인 김현희 씨가 일본 NHK 방송과 전화인터뷰를 갖고 이른바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거론해 주목된다. 김현희 씨가 언론의 공식인터뷰에 응한 것은 97년 결혼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NHK 라디오방송은 15일 밤 뉴스에서 “김현희 전 사형수는 전화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지난 5년 동안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의 진상이 왜곡돼 자신과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야에코(田口八重子) 씨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보도가 있었다며,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야에코 씨가 북조선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납치문제의 해결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말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5년 전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나와 구출활동을 시작한 야에코 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 씨에 대해 뉴스에서 봤는데 눈매가 똑 닮아 부모 자식은 숨길 수 없다고 말하고 훌륭히 자란 것을 보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격했고 만나서 어머니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며 “야에코 씨 등이 지금도 살아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고, 납치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야에코 씨의 가족과 만나 희망을 가지라고 힘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방송은 “김현희 전 사형수는 또 한국 당국의 조사 때 자신에게 일본어 교육을 시킨 사람은 리은혜라는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 여성이었다고 증언했다”며 “그 후 경찰 당국의 조사를 통해 이 여성이 타구치 야에코 씨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 정부가 북조선에 납치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일본 측에 행방불명자 조사결과를 확인해 준 다쿠치 야에코가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가 언급한 이은혜와 동일 인물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일본측 설명’이라며 ‘리은혜=다쿠치 야에코 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리은혜=다쿠치 야에코 설’은 1991년 5월 국가안전기획부가 “일본수사팀이 15일 내한, 김(현희) 씨를 만나 야에코 씨의 사진을 보이자 김 씨가 ‘이 여자가 내게 일본어를 가르친 은혜라는 여자가 틀림없다’고 확인했다”고 발표함으로써 제기돼 전적으로 김현희 씨의 증언에 의거하고 있다.

그러나 1988년 1월 15일 안기부의 KAL858기 사건 수사결과 발표 당시부터 김현희 씨의 증언 중 많은 부분이 거짓으로 드러났으며, 특히 김현희 자신이 ‘화동사진’ 속의 북한 어린이가 자신이라고 확언했지만 후일 실제 주인공인 북한 여성이 등장함으로써 김 씨의 주장은 거짓인 것으로 밝혀진 바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김현희 씨는 노무현 정부 시절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정부 당국과 사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공개편지를 띄우는 등 활동을 재개하고 있으며, KAL858기 가족회와 시민대책위는 이에 대해 비판하고 진상규명에 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현희 관련 NHK 뉴스 (전문)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의 실행범인 김현희 전 사형수가 NHK 전화인터뷰에 응해 자신의 교육을 담당했던 납치피해자 다구치 야에코 씨는 살아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고 힘이 된다면 가족과 만나고 싶다며 납치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김현희 전 사형수는 12년 전에 결혼한 뒤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보도기관의 인터뷰에 응한 것은 결혼 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조선의 공작원이었던 김현희 전 사형수는 1987년에 일어난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의 실행범으로 한국 당국에 체포돼 사형이 확정됐습니다. 그 후 특별사면으로 형 집행을 모면하게 됐고, 집필활동과 강연활동을 해오다가 12년 전에 결혼한 뒤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김현희 전 사형수는 전화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지난 5년 동안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의 진상이 왜곡돼 자신과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야에코 씨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보도가 있었다며,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야에코 씨가 북조선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납치문제의 해결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북조선에서 자신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 씨에 대해 2년 정도 함께 생활하며 일본에 대해 배웠고 다구치 씨와는 국적을 떠나 친자매와 같이 생활했지만 다구치 씨는 자식을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5년 전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나와 구출활동을 시작한 야에코 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 씨에 대해 뉴스에서 봤는데 눈매가 똑 닮아 부모 자식은 숨길 수 없다고 말하고 훌륭히 자란 것을 보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격했고 만나서 어머니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7년 전에 일.조 정상회담에서 북조선이 야에코 씨를 비롯해 일부 납치 피해자가 사망했다고 설명한데 대해 북조선의 기밀을 알고 있는 일본인 납치피해자를 귀국시키면 북조선의 공작기관과 공작원에 관한 정보가 외부로 누설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죽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지적하고 야에코 씨 등이 지금도 살아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고, 납치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야에코 씨의 가족과 만나 희망을 가지라고 힘을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김현희 전 사형수가 쓴 저서 등에 따르면 김현희 전 사형수는 1980년 18살 때 공작원으로 뽑혀 북조선의 공작원 양성기관에서 특수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1981년부터 83년까지 2년간 북조선에 납치된 타구치 야에코 씨와 함께 생활하면서 일본어와 일본의 관습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987년 바그다드발 서울행 대한항공 여객기가 폭파해 승객과 승무원 115명이 희생된 바 있는 대한항공 폭파사건 당시 실행범 중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당국에 체포됐습니다.

당시 북조선은 이 사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김현희 전 사형수는 한국 당국의 조사에서 남성 공작원과 함께 일본인으로 위장해 여객기 내에 폭발물을 장치했다고 자백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1년 전인 1988년 1월 15일 서울에서 처음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재차 범행을 인정하고 유족들에게 사죄했습니다.

김현희 전 사형수는 또 한국 당국의 조사 때 자신에게 일본어 교육을 시킨 사람은 리은혜라는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 여성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후 경찰 당국의 조사를 통해 이 여성이 타구치 야에코 씨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 정부가 북조선에 납치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됐던 것입니다.

김현희 전 사형수는 1997년 한국 정부의 정보기관 직원과 결혼한 이후 공식석상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김현희 전 사형수는 자녀 두 명을 낳고 지방도시에서 일반시민으로서 생활하기 시작한 뒤에도 신변보호를 위해 주거지를 자주 옮기는 등 많이 고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대북조선 유화정책을 실시한 노무현 전 정권에서 대한항공 폭파사건을 재조사하는 조사위원회가 설치되기도 했으나, 김현희 전 사형수는 자신이 실행범이며 북조선이 폭파사건을 일으킨 것은 이미 밝혀진 일이라며 재조사에 협력하지 않았습니다.

<NHK 라디오 방송 2009.1.15 밤, 정리-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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