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또 다시 시험대 위에 올랐다.

북한 핵 검증 문제와 함께 6자회담의 걸림돌이 되었던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가 당초 효력 발효 예정일인 8월 11일 이후 2달만에 풀려 북.미관계와 6자회담이 다시 정상 운항을 시작했지만, 남북관계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냉각기'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가 테러지원국 해제를 결정, '비핵화의 진전'이 예상됨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정당을 포함 각계각층에서 다시 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부는 이렇다 할 '복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북정책을 담당하는 주무부서인 통일부의 김호년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비핵화의 진전에 따른 정부의 복안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복안에 대해서) 이거다, 이거다,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기자분들이 알게 될 것"이라며 구체적 답변을 내놓지 않아 "그 복안이 뭔가 있다는 말씀하신 게 몇 달 전인데 아직도... 하여간 황당합니다"라는 '핀잔'을 들었다.

통일부는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복안'에 대해서도 "우리가 10.4 선언이라든가 6.15 공동선언을 전면 부정한다고 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라는 하나마나 한 '항변'만 되풀이 해 계속 지적돼 왔던 '통미봉남'에 대한 우려도 높아져만 가고 있다.

이날 외교통상부 문태영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술 더떠 북.미관계 진전에 따른 대북지원 등 대북정책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북지원 정책의 변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어떤 결정이나 검토가 안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북.미가 빠른 속도로 '공'을 주고받는 사이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현재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조정문제를 검토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수준이다. 그나마 정부 내에서도 통일부 만. 

때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도 '변화의 필요성'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인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금강산 관광 10주년이 되는 내달 18일에 맞춰 금강산 관광 재개를 희망하거나, 연내 대북식량지원 의사를 내비친 대목이 단적인 예다.

특히 내달 18일까지 금강산 관광 재개 희망을 통일부 수장이 공개적으로 밝힌 대목은 그간 '금강산 사건'에 대해 당국의 현지조사를 통한 진상조사를 먼저 요구해 왔던 원칙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정부가 남북관계 상황관리 모드로 들어간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금강산 현지조사의 경우, 애당초 남북 간 대화가 재개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 하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대북식량지원 역시 늦어도 한참 늦은 상태다. 이명박 정부 7개월 동안 '얼음덩어리'가 돼 버린 남북관계를 움직일 '지렛대'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북-미가 주고받는 '공'의 무게감과도 차이가 너무 크다.

6.15, 10.4선언을 '외면'한 대가로 이 대통령이 치러야 할 '비용'은 지금 이 시간에도 늘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오히려 '이자'까지 얹는 모양새다.

정부의 정책방향을 바로 잡아야할 정부여당 대변인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두고 "북한이 국제사회에 복귀하여야 개혁 개방의 단초를 열고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갈 수가 있을 것"이라 논평한 것이 단적인 예다.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6자 외교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일 생각조차 없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막연하게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들을 솎아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며 '친북좌파청산'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현 정부가 '시험대' 위에 올라선 모습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지난 7월부터 정부가 가진 '복안'이 무엇인지는 통일부의 얘기대로 "자연적으로 기자분들이 알게 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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