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수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위원)


KAL858기 폭파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배후』(창해, 2003) 의 작가 서현우 씨와 이 소설을 출간한 창해 출판사 대표 전형배 씨에 대한 ‘출판에 의한 명예 훼손’고발 3차 공판(08.7.3)에서 피고인의 최후 진술, 검사의 구형으로, 1심 재판은 선고공판 (08.8.12 예정)만 남았다.

본 KAL858기 폭파사건은 1987년 11월 29에 일어났는데, 이날은 전두환 군사 정권 말기, 새로 제정된 민주 헌법(현행 헌법)에 의해서 처음 치르는 대통령 선거일을 보름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양 김(김영삼, 김대중) 단일화는 끝내 실패하고 김영삼 후보가 약간 우세하다는 가운데 ‘1노 2김’이 한창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었다. 때가 때인지라, 이 엄청난 사건은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었다. 김대중 후보는 “시국이 각박하면 꼭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는 예사롭지 않은 코멘트를 했다.

사실, 당국은 아무 단서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사건을 재빨리 북한 소행으로 굳혀 갔다.

한편, 아부다비에서 내린 피의자들은 왠지 멀리 달아나지 않고 코앞의 좁은 바레인에서 한가롭게 3일간이나 머물고 있다가, 바레인 당국에 억류되자 자살 소동을 벌려, 남자는 죽고 여자만 용케 살아남았다.

선거 하루 전날에 전세기로 호송되어 트랩을 내려오는 TV화면은 자못 극적이었다. 좌우로 남녀 요원의 부추김을 받으며, 어수선한 머리에 마스크로 반쯤 얼굴을 가리고 알록달록한 옷차림의 여인은 영락없는 북한 테러범이었다. 다음 날 노태우 후보는 예상한대로 무난히 당선되었다.

훗날 국정원(안기부 후신)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것을 ‘무지개 공작’이라고 시인했다.

안기부 수사발표(88년 1월15일)는 필경 장황한 것이었으나, 요컨대, 북한 공작원 김승일, 김현희가 88 서울올림픽 방해를 목적으로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고, 휴대용 라디오 안에 장치한 시한폭탄 350g과 액체폭약 PLX 700cc를 기내에 반입하여 선반에 얹어 놓고 중간기착지에 내림으로써, 본 KAL858기를 폭파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순전히 김현희의 자술에 의거한 것이지 검증도 물증도 없었던 것이다. 김현희의 신원으로 유일하게 제시한 중학 1학년 때 평양에 간 남한 인사에게 바친 꽃다발 증정사진도 엉터리임이 밝혀졌고(후일 안기부도 시인), 그 적은 폭약으로 블랙박스나 유체조각 하나 발견하지 못할 만큼 기체가 산산조각 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소견이었다.

안기부는 애가 탔다. 김현희 신원의 유일한 물증으로 꾸민 ‘화동사진’이 탄로가 나고, 그 정도 폭약으로 기체조각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불신을 넘어, 공소와 재판이 문제였다.

그래서 일본의 사이비 프리랜서 하기와라 료라는 자의 엉터리 화동사진으로 떼를 쓰기로 하고, 2년도 더된 뒤에, 이번에는 태국 어부가 인양했다는 비행기 뒤쪽 부분을 국내로 들여오기도 했다.

하기와라가 김현희로 지목한 사진의 소녀의 귀는 둥그스름한데 실재 김현희의 귀는 드물게 보는 칼귀였던 것이다. 또 수거 잔해는 상식적으로도 온통 의문 투성이인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안기부 발표와 달리 폭발의 흔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것을 근거로 검찰은 공소를, 법원은 재판을 진행했다. 3심 모두 '북괴 소행, 김현희 사형'이었으나, 1개월도 못돼 ‘산 증거’로 삼기 위해서라며 사면하여 안기부 보호아래 명사가 되어 그 ‘유명’한 회고록도 내고, 강연를 한답시고 전국을 누볐다. 그런데 요상한 것은 이 ‘산 증인’은 국민의 정부 이후에 진짜로 ‘증인’이 필요할 때는 어디로 숨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도무지 꼴을 볼 수가 없다.

6.15정상회담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본 KAL858기 사건과의 연관도 예사롭지 않은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김대중 대통령이 설마하니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본 KAL858기 폭파의 지령자로 인정하면서 그와 정상회담을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 대통령은 이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많은 공을 들였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김 대통령은 회담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김 위원장을 총명하고 사려가 깊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을 때는 김 위원장과 함께 받지 못해 아쉽고 미안하다고 했다.

이 일련의 김 대통령의 코멘트는 김정일을 그 동족 살해의 흉악범으로 보았다면 감히 언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사건건 반대하고 물고 늘어지던 야당이나 보수 매체들도, 회담을 독단으로 음성적으로 추진했다고 따지면서도 본 폭파사건과 관련지어 문제삼지는 않았다. 이것 또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즈음, 미국도 본 폭파사건을 독자적인 검증도 없이 한번 김현희를 면담만 한 것으로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했던 것을, 슬그머니 요도호 사건으로 바꿔치기해 버렸다. 왜일까? 진상이 밝혀질 것에 대비하여 선수를 친 것이다. 요도호 사건으로 말하자면, 북한은 일본인 백 수십명의 생명의 은인일 텐데, 계속해서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덮어 씌워 두자니 그리라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지 김 사건!
세인을 놀라게 한 이 사건의 진상은 기득 세력이 때에 따라서는 얼마나 잔인무도한가를 똑똑히 보여 준 사건이었지마는 이것은 빙산의 일각으로, 민족일보 사건, 인혁당 사건 등 수많은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의 단초에 지나지 않았다. 본 KAL858사건은 공교롭게도 수지 김 사건과 같은 해에 일어났다. 어찌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전자에 비해 땅과 하늘의 차이다.

『배후』 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다.
서현우 씨는 그 예리한 눈초리로 KAL858기 사건이 의혹투성이임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김현희가 북한인이 아니라는 것, 그 장난감 같은 폭약으로 거대한 여객기를 흔적도 없이 날려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안기부의 그 오만 테크닉이 까마귀에 분칠한 거나 다름없다는 것을 낱낱이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그는 소설화한 것이다.

엄청난 양의 폭약을 화물로 위장하여 비행기 짐칸에 싣는 광경, 주인공이 생사를 걸고 세계를 무대로 쫓고 쫓기는 정황, 미국 요원의 청와대 협박 등은 본 사건의 상징이며 해학이었다.

실은 서현우 씨 뿐만 아니라 웬만한 상식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본 KAL858기 사건이 의혹투성이임을 몰랐겠는가? 허나 정열이나 재주가 그를 따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런 우리를 대변해 주었던 것이다. 전형배 사장 또한 우리를 대신해서 출간했을 따름인 것이다.

이번의 이 ‘명예훼손’ 공판에서의 승패는 이미 끝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내용으로 민사에서 승소한 피고들이 형사에서도 승리할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는 무게가 크게 다르다. 여기에서의 피고들의 승리는 단순히 두 분의 승리가 아니라 희생자 가족이나 진상규명위원들의 승리이며, 앞으로 본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의 핵이 될 것이며, 이 공판에 관여한 이들의 영욕이 역사에 새겨져 길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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