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통일부는 금강산 피격사건 진상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북측에 대해 개성관광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민주당을 찾아 “재발방지 대책이 없고 조사도 안 이뤄지는 상황에서 개성관광도 심각하게 생각해달라고 현대아산 측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이미 ‘금강산 사건과 남북관계는 별개라는 방침’을 밝혔지만 개성관광 중단 검토설을 흘려 북측에 압박 메시지를 보내려 한 것이다.

홍 차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통일부 기자실이 부산해졌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개성관광을 중단해라, 중단하지 말라,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다”고 무마하면서도 “(현대아산 측에) 안전문제에 대해서 강하게 협조요청을 했다”고 변죽을 울렸다.

정부의 정확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전화가 이어지자 김 대변인은 오후 2시와 4시 15분 두 차례 기자들을 찾아 다시 설명했지만 별 신통한 내용이 없었다. 오히려 명쾌한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말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는 자세로만 일관했다.

남북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뜻밖의 금강사 피격사건이 발생해 정부로서도 곤혹스럽고 뾰족한 수습책을 찾지 못한 것은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러나 해결과 수습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반발을 살 수 있는 카드를 공공연하게 꺼내들고, 이를 의식해 또다시 말을 빙빙 돌려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당국자가 아닌 기자의 입장에 선 것이 다행스러울 지경이다.

통일부가 이번 사건 해결과정에서 ‘국제적 협력’을 받겠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무슨 뚜렷한 준비된 내용도 없이 그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여러 가지 방안 중의 하나로 말부터 내뱉고 나서는 뚜렷한 결과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17일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국제 공조라 해봐야 주로 중국을 통한 의사전달 수준일게 뻔한데 주중대사를 오래 지낸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인맥을 의식한 듯한 제스쳐를 공개적으로 내보였다 체면만 깎인 것이다.

이번 사건의 성격상 국제공조 자체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약 시도하더라도 조용히 물밑에서 추진할 성격임은 외교를 모르는 일반인의 눈에서 보더라도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남북 당국간 관계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 현대아산을 내세우되 남과 북측이 부담을 덜 느낄 수 있는 대한적십자사를 내세운다든지 보다 현명하고 신중한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북측도 인명사고인 만큼 ‘유감’을 표명한 점에 주목해 인도적 차원의 차선의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이지 당국 차원의 정치적 제스쳐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같은 날 권철현 주일대사는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일본의 독도 문제와 관련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앞으로도 어떻게 일들을 해나가야 될 지에 대해서도 황당한 느낌이 들면서 착잡한 마음을 뭐라고 표현할 수 없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외교관으로서는 이례적인 표현이다.

‘독도는 우리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보물’이라며 일본의 도발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던 권 대사가 일본으로부터 뒷통수를 맞았다는 식의 때늦은 한탄이다.

그는 “신뢰라는 것이 이번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이전 단계의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인지, 퇴보하는 것인지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말했지만 이러한 주일대사를 지켜보는 기자들과 국민들의 심경도 안타깝기 짝이 없을 뿐이다.

일본의 과거사와 영토에 대한 입장은 한번도 바뀐 적이 없이 꾸준히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가 혼자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나가자고 요란하게 선언해 놓고 이제 와서 이럴 줄 몰랐다는 식이다.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준비도 안 된 채 덜컥 한미정상회담과 한일정상회담을 저질러 놓고 쇠고기와 독도로 시달리고,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기존 남북관계를 전면 부정하다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이 정부를 보고 있노라면 걱정을 넘어 심각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17일 하룻동안 통일부와 외교통상부 기자들이 상주하고 있는 세종로 정부신청사 기자실은 한바탕 회오리가 휩쓸고 간 느낌이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씁쓸함 이상의 허탈함과 공허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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