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이 넘는 촛불문화제와 10흘이 넘는 밤샘농성에도 변하지 않는 정부에 시민들의 인내심이 다 해 가고 있다.청와대로 진출하기 위해 밧줄로 전경버스를 끌어내고 있는 시민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어차피 불가능했다.

쇠고기 촛불문화제 사상 최대인파가 몰린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 이틀차, 전날밤 '민주주의 카니발'을 만끽했던 시민들은 기어이 청와대로 가겠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세종로 사거리 저지선을 기준으로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골목을 전경버스로 겹겹히 막아놓은 것을 맨손의 시민들이 통과하기란 불가능했다.

육중한 전경버스에 밧줄을 묶어 3-4시간 동안 진땀을 뺐지만 전리품이라곤 전경버스 3대. 아찔한 상황도 많았다. 팽팽했던 밧줄이 끊어지면서, 그 줄에 맞아 반실신 상태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전경버스가 시민들을 향해 기우뚱 하기도 했다. 심지어 전봇대가 흔들리는 상황도.

시민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거리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며 '민주주의 카니발' '저항의 향연'을 펼치는 것도 좋았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전경버스를 흔드는 이들에게 '비폭력'을 외치며 만류했던 시민들은 '으쌰으쌰'를 연호하며 '밧줄'을 응원했다. '새문안교회쪽이 뚫렸다'는 소문에 광화문 사거리에서 축제를 펼치던 시민들은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시민들은 새문안교회 뒤편의 골목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청와대로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그야말로 '몸부림'을 쳤다.

참을 만큼 참았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밧줄을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 전경버스가 끌려나오는 모습에 환호하는 사람, 광화문 사거리에서의 축제를 멈추고 새문안교회 비좁은 골목으로 비집고 들어와 경찰들과 힘겨운 몸싸움을 하는 사람. 모두 참을 만큼 참았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는 표정이다.

"물대포 이후에도 시민들은 평화적으로 하려고 노력했잖아요. 그래도 청와대는 대답도 없고 외면하고 있죠. 오히려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얘기만 하고 있어요. 기다릴 만큼 기다렸습니다. 시민들은 자기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전경버스 한 대를 기어이 도로 한복판으로 끌어내고 숨고르기를 하던 이창희(39)씨의 말이다. 그는 아침에 회사로 나가야 한다. 시민들은 시간이 없다. 밤을 새고 나면 회사로 나가 생계를 이어야 한다. 가급적 빨리 매듭짓고 싶은 것은 그 누구보다 '거리의 시민'이다.

촛불문화제의 '백미'였던 시민자유발언대는 짧아지고 거리시위는 길어졌다. 무대 위에서의 '성토'만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리란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되도록 많은 시민들이 동참할 수 있게 하자며 '사람이 많은 곳'으로 행진했던 시민들의 발걸음은 이제 청와대로 향하기가 바쁘다.

'협상무효 고시철회'로는 부족하단 눈치다. 한 달 넘게 거리로 나오며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물대포와 군홧발 뿐. 그래선지 "이명박은 물러가라" "쥐새끼를 때려잡자"는 외침이 묵직하게 들려온다.

▲ '21c 시민권력'의 가장 큰 무서움은 '비폭력'이다. 경찰들이 대치중인 시민들로부터 건네 받은 물을 마시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정부의 의도는 길게 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할 수록 적극적 행동방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시민을 운동권으로 만든다."


'시민권력'의 인내심이 다해 간다. '시민권력'의 인내심이 소진될 수록 그 도덕적 힘의 상징인 '비폭력'의 원칙도 훨씬 더 단단해진다.

시민들은 '물대포'가 쏟아지면 "온수"를, 해산방송이 나오면 "노래해"를, 경찰과의 대치가 끝나면 "수고했다. 내일보자"를 외치고, 장시간 몸싸움에 지친 경찰들에게는 물을 건넨다. 경찰과의 충돌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예비역이 출동하고 의료지원 자원봉사단이 상시 대기한다. '21세기 시민권력'의 무서움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무서움을 느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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