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밤, 광화문 네거리는 '광우병 촛불'로 넘쳐 흘렀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 광화문 네거리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크고 작은 자발적인 촛불문화제를 이어갔다. 텐트도 등장했고,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은 시민들은 밤을 지샐 태세다. 광화문 차도 한 복판에서 '고시철회 협상무효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이 시작된 것이다.

5일 오후 8시30분 덕수궁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은 명동, 종로 일대를 거치면서 한 때 7만여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선두가 남대문을 지나 명동 입구까지 이르는 동안에도 덕수궁의 시민들이 모두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의 긴 행렬이었다.

행렬을 이끈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방송차량은 "6월 10일 시청에서 우리의 힘을 다시 한번 보여주시기 바랍니다"라며 '6.10 100만 촛불대행진'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했고 행진 참가자들도 '6월 10일 시청으로!' 구호를 연신 외쳤다.

촛불행렬은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도착하자, 세종로를 가로막은 경찰버스 차벽을 바라보고 그 앞쪽에 한 둘씩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광우병 촛불'은 광화문 네거리를 넘어 서대문 방향, 종로 방향 도로까지 넘쳐 흘렀다. 오후 10시 현재 5만 여명이 집결해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종로 1가 쪽에는 참가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광화문 네거리에 텐트를 친 시민.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방송 마이크를 잡은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우리 이 자리에서 이명박이 국민을 이기나, 국민이 이명박을 이기나 끝장을 볼 것"이라며 "여러분 철야 준비 다 해 오셨죠?"라고 묻자 참가자들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이날 동맹휴업으로 대거 참가한 대학생들이 먼저 '협상철회, 고시무효',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자발적인 율동공연을 이어나가자 시민들도 합세했다. 일부 시민들은 버스 위에 올라가 있는 경찰들에게 농을 걸며 웃음을 연발하기도 했다.

광화문 현장은 축제와 집회 분위기가 뒤섞이고 있다. 한곳에서 폭죽이 터지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영상통화로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전하는 시민도 있다.

길거리 공연이 이어지고 대오 주변에 있는 참가자들은 10여 명씩 둥글게 자리 잡고 자유발언과 노래를 부르며 현장을 즐기고 있다. 2008년 촛불문화제에서 등장한 새로운 광경들이다.

▲ 이날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축제의 난장을 즐겼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40대 직장인끼리 '바위처럼'을 부르며 즐기고 있던 김형진(42)씨는 "이 자리에 아는 사람이 한명뿐인데도 이렇게 어울리고 있다"면서도 "87년 당시 이런 모습을 후대에는 전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어린 학생들이 다시 거리로 나온 모습을 보고 386세대로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안타까움과는 달리 시민들의 자신감은 충만해있는 분위기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다시 늘었고, 처음 참석했다는 시민들도 많아 촛불의 힘이 계속 보충되고 있다.

이병훈(40)씨는 "배터리로 치면 이제 거의 충전이 다됐다. 우리가 우리의 주권을 찾기 위해 이제 발사만 하면 된다"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인천에서 온 한명부(67)씨도"국민이 주인이다. 전두환도 나가 떨어졌는데 이명박이 견딜 수 있을 것 같냐"고 경고했다.

자정에 가까워지진 시간이지만 거리에 자리를 잡은 시민들이 '난장'을 벌이고 있으며, 광화문 주위의 경찰병력의 움직임도 조금씩 포착되고 있다.

▲도로위의 음악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추가, 6일 오전 5시 40분>시민들 '시청광장'으로 옮겨 '72시간 릴레이 행동' 이어가

광화문 네거리를 집회는 8시간 30여분 만에 마무리됐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2,000여 시민들은 6일 오전 5시 30분 서울시청으로 이동해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을 이어갔다.

이날 자정 즈음 대학생 등 3,000여명이 청와대로 진출하기 위해 서대문 방향으로 이동했으며, 대학생들은 경찰청 앞에서 '우리학우 왜 때렸냐!', '어청수는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하기도 했다.

이들은 독립문까지 진출했다가 경찰버스에 막히자 다시 광화문 네거리로 결합했으며, 광화문 대오는 새벽 3시까지 5천명-8천명 수준을 유지했다.

이날 낮 12시부터 네티즌이 주최하는 집회가 시작되며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오후 4시 대학로에서 집회 및 행진을 가지고 7시 촛불문화제를 이어갈 계획이다.

다음 주가 기말고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5일부터 시작된 72시간 릴레이 집회에 대학생들이 대거 참여했다. 특히 이들은 촛불집회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학교 깃발을 대거 들고 나오는 등 조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맹휴업을 결의한 서울대생 1,500여명과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홍익대 등 ‘신촌 4개 대학’을 비롯 20개가 넘는 대학의 학생 6,000여 명이 각자의 학교와 지역에서 자체 행사를 갖고 촛불집회에 합류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참가한 학생과 졸업생, 휴학생들이 학교 깃발을 찾아가는 사례가 늘면서 1만여 명이 넘는 수의 학생들이 깃발 아래 모였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서울 경기 등 수도권 뿐 아니라 청주에 위치한 한국교원대 학생들도 깃발을 들고 대거 참가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앞으로 지방대학 학생들의 조직적 참여도 늘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대는 이발 동맹휴업 총투표의 가결로 수업을 듣지 않고 학교 내 집회와 서울대입구역까지 행진을 진행한 후 행사에 결합했다. 정치학과 3학년 이모씨(그는 서울대 학생처에서 총투표를 위한 학생명부를 주지 않아 직접 학생들이 이름을 적어가며 투표를 진행할 정도로 방해를 했다며 이런 학교 분위기에서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불이익 때문에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는 “직접 피부에 다가오는 먹을거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번 행사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다”며 “학생 자치활동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보기엔 성급하지만 사회적인 분위는 많이 바뀔 것이다”고 전망했다.

연세대도 이화여대, 홍익대, 서강대 등과 함께 이대 앞에서 행사를 진행, 초기에는 200여명 정도 참여했으나 광화문 사거리에서 깃발을 보고 속속 모여들어 30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운동권 총학생회가 아니다보니 개인의 가치관에 다라 총학생회 집행부 내에서도 참여를 하지 않는 학생과 참여하는 학생으로 나뉘었으나 대학생으로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깃발을 처음 들고 행사에 참가했다는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와 이명박 대통령과 싸워 이기겠다며 응원가를 개사해 목청껏 부르고 있다.

이화여대 학생들 200여명은 이날 ‘이화의 정신은 죽었다’는 근조 리본을 가슴에 단채 행사에 참가했다. 이는 지난 5월 31일 122회 창립기념식에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자랑스런 이화인상을 받으러 오면서 전투경찰들이 학교 내에 들어와 폭력진압을 했고, 학교에서 이를 방조 묵인한 것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달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화여대는 또한 자발적인 모금으로 <한겨레신문> 5일자 1면에 김윤옥 동문의 자랑스러운 이화인상 철회 요구와 함께 민주주의가 되살아나는 그날까지 대한민국에 이화의 촛불을 더하겠다는 내용의 광고를 실기도 했다.
그동안 이화여대는 등록금 동결, 학교내 시설의 상업화 반대, 학생 자치권 보장, 교육환경 개선, 학교 학생 운영위원회 건설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천막농성, 단식 농성 등을 진행했으나 이날 총장과의 면담 후 신촌에서의 행사를 진행하고 광화문으로 모인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답변을 듣지 못해 앞으로 총장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퇴진운동에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대학교는 동아리 연합회의 깃발아래 모였다.
국민대학교 동아리 연합회 최유민 회장은 “‘그동안 운동권, 비운동권 등으로 나누며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 부끄럽다, 그러나 지성인으로 민주적으로 이뤄지는 집회에 단체나 소속에 관계없이 참여하자’는 대자보를 학교에 붙였고 이에 호응하는 학생들이 모였다”고 밝혔다. 처음 학교에서 모여 출발할 때는 35명 정도였으나 현장에서 졸업생, 휴학생 들이 가세하면서 총 60여명으로 늘었다.

‘경기대 모여라!’라는 깃발을 들고 있는 경기 대학교 4학년 김식씨는 “학교 내에 학생회가 아닌 자발적으로 모인 3~4명의 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대책위를 꾸려 활동을 하고 있다가 이들이 학교 게시판에 깃발을 들고 참가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올려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에 그동안 정치문제에 많이 관심이 없었으나 이번엔 쇠고기 뿐 아니라 등록금, 청년실업 등의 문제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꾸준히 참여하다보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자발적으로 모인 학생들이 주축이다 보니 경기대 깃발에는 소속 단위가 적혀 있지 않지만 이 역시 현장에서 깃발을 보고 반갑다며 찾아오는 학생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한국교원대는 100여명이 참가를 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촛불집회에 처음 참여를 할 정도로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아닌 소위 일반 학생들이다. 교원대 2학년 김어진 씨는 “그동안 뉴스도 잘 안보고 선거도 안할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공중파 뉴스는 물론 YTN, 신문까지 꼭 챙겨보고, 인터넷에 댓글도 꼼꼼히 남긴다”며 “이번 기회에 정치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어진씨의 친구인 숙명여대 2학년 김민경씨도 “인터넷 생중계를 보니 24일부터 경찰들이 100여명도 안 되는 시민들을 강제 해산하면서 과잉진압으로 살수차와 폭력에 다치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 주가 기말고사기간인데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김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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