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뉴스 자료사진]

‘통일의 관문’ 파주. 경기도 파주시는 군사분계선 접경지역으로 전체면적의 90%이상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으면서도 남북관계의 호전에 따른 최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분단 상황에 의한 최대의 피해자였지만,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남북관계가 질적인 도약을 하면서 파주의 땅값도 솟구쳤다.

우리나라 최고의 군사시설밀집지역인 경기북부의 일원인 파주는 서울과 1시간 거리로 인접해 있어, 신도시 개발도 한창이다. ‘냉전대결구도’가 ‘햇볕과 포용’에 녹아내리자 개발.투자자들은 파주로 눈을 돌렸다. 판교, 광교 등과 함께 제2기 신도시 조성 사업의 하나인 파주에는 2013년까지 16,477천㎡(498만평) 규모의 교하신도시가 조성된다. 반환된 미군기지에는 대학 캠퍼스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교육.문화 인프라도 구축된다. 파주는 냉전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입고 있던 ‘군사도시’란 두꺼운 외투를 벗고 산뜻한 봄옷 갈아입기에 분주하다.

‘햇볕과 포용’의 덕을 톡톡히 본 파주이지만, 한나라당이 강세다. 이재창(71)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나갈 때도 ‘탄핵역풍’을 뚫고 내리 3선(15-17대) 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10년간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려온 한나라당이 파주에서 강세를 보이는 일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북한과의 긴장관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불이익을 받을 것이 뻔한 파주주민들이 북한에 ‘적대적 스탠스’를 유지해 온 한나라당을 밀어주는 이유가 뭘까? 총선이 인물과 정책, 당, 지역 지지기반 등 여러 가지 정치적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얽힌다고는 하지만 소위 ‘남북화해협력세력’을 자임하는 정치세력이 파주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에는 ‘지역적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손학규' 내세운 윤후덕 후보의 아이러니

파주지역의 정치적 아이러니는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 윤후덕(51) 후보 선거사무소에 걸린 대형 현수막에 잘 담겨 있다. 참여정부서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지낸 윤 후보가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 함께 무언가 신중한 회의를 하는 모습. 파주 지역구 선거에 손 대표가 ‘얼굴마담’으로 나서는 이유는 경기도지사 시절 파주에 남긴 최고의 치적 ‘LG필립스 LCD단지’가 있기 때문이다.

LG필립스 LCD단지의 파주 유치는 지역경제가 어려운 파주의 ‘신성장엔진’으로 여겨진다. 경기도시공사에 따르면, LCD 산업단지에 대한 투자양해각서가 체결되기 전인 2002년 237,341명이었던 파주시의 인구는 각서 체결 이후 껑충 뛰어 2006년 30만 명을 돌파했다. 특히 LCD생산이 본격화된 2006년에는 인구가 전년대비 12.1%나 신장했다. 1인당 지역총생산액도 2002년 1,027만원에서 2005년 1,279만원으로 증가했다. 경기도시공사는 2010년에는 2005년보다 2.7배 증가한 2,101만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화약고’로 치부됐던 파주에 국내 대기업과 외국 대기업의 합작 회사가 들어왔다는 것은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안보리스크’가 줄어 향후 국내외 투자가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 교하지구 아파트 신축현장.[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파주시는 내년 개통예정인 경의선 복선전철 개통에 맞춰, 간판 교체 등 거리 정비 작업을 진행했다. 파주의 번화가인 금촌에선 노점상들도 일제히 철거당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남북경협사업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던 지난해 남북정상회담과 총리회담에서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활약했던 윤 후보의 이력보다 손 대표의 LCD단지 유치를 앞에 내세우는 것이 선거에서 유리한 상황이다. 남북관계의 발전이 파주의 성장 가능성을 열어 땅값을 올려놨지만, 서민들의 피부에 체감되는 생활경제의 동력은 아닌 것이다.

윤 후보측도 이같은 민심을 잘 알고 있다. 윤 후보측 관계자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다른 후보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그러나 남북경협이 원주민들의 피부에 확연히 와 닿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주지역 시민사회단체의 한 관계자 역시 “파주에서 아파트를 소유하거나 토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남북관계의 문제는 크게 작용한다. 겉으로는 기대감 같은 것을 표현하지 않고, 당장에는 뭐가 없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라는 기대심리가 있다”면서도 “남북관계, 경협 등은 총선의 핵심 사안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핵심이다. 의무적으로 그런 공약들을 넣는 것이다”고 민심의 향배를 전했다.

‘평화의 도시’ 말하는 '안보통' 황진하 후보의 딜레마

이같은 배경에서 밀집된 ‘군부대 장벽’을 거둬줄 수 있는 인물인가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군사시설보호법과 같은 규제가 풀리는 것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총선에서 군사시설보호법 같은 것에 누가 힘을 발휘할 수 있나가 중요한 이슈다”고 말했다. 실제 이재창 전 의원은 군사분계선 인접 제한보호구역을 25km에서 15km로 축소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군사시설보호법개정안을 2005년 발의했었다. 이 의원을 물리치고 파주 지역구 공천을 받은 황진하(61) 후보도 이 법안발의에 동참했다.

이런 점에서 3성 장군출신으로 한국군 최초 유엔 평화유지군 사령관을 지낸 황 후보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는 평가다. 황 후보는 17대 비례대표로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를 지낸 ‘안보통' 정치인. 황 후보측 관계자는 “의원님도 군인으로 오래 있었으니까 군을 잘 알고 있다. 어떤 부분은 (규제가) 완화 될 부분도 있기에 군 당국과 지역간 접점부분을 누구보다 잘 찾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파주지역 'ㅁ'공인중개사의 한 관계자는 “황 후보가 군인출신이고 국회 국방위에도 있었으니 개발자, 투자자들이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군사도시'인 파주의 대표적 '그림자'는 오현리. 이곳 주민들은 '무건리훈련장확장'으로 내쫓길 위기에 처해 있다. 한 주민이 국방부가 매수한 논을 가리키고 있다.[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파주시민이 가장 바라는 것은 ‘군사도시’라는 오명을 벗는 것이다. 접경지역으로 밀집된 군사시설들이 지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 4.9총선에 출마한 각 당의 후보들은 모두 이같은 주민들의 바람을 이루기 위한 공약들을 준비 중이다. 황 의원도 파주를 접경도시가 아닌 평화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회 국방위원회의 한나라당 측 간사로 당의 외교안보 정책을 리드해 온 황 의원이 북한과 안보분야에 취한 스탠스를 꼼꼼히 살펴보면 ‘평화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포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황 의원은 핵문제는 물론 북한인권,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등 남북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부위로 지적되는 사안들에 강경한 입장이다. 또, 참여정부서 추진되어 온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에 반대하는 등 ‘전통적 안보관’에 철저하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3000’ 정책을 따르고 있어 ‘지역경제를 위해 남북경협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북한이 비핵화하면 10년 내 1인당 국내총생산을 3천 달러로 달성하겠다는 ‘비핵.개방.3000’ 구상은 대북전문가들로부터 ‘5년 동안 남북관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는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대북 강경책을 펴온 군사안보 전문가가 ‘평화=돈’이라는 함수관계가 그대로 적용되는 파주지역에 출마하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딜레마는 ‘평화의 도시’보단 ‘안보의 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걸맞다는 것이다.

'무건리훈련장 확장반대' 들고나온 안소희 후보

‘군사도시’로 60여 년을 살아온 파주에서 ‘안보’의 강화는 곧 ‘낙후’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통합민주당의 윤후덕 후보와 민주노동당의 안소희(29) 후보는 자유롭다. 윤 후보는 성장동력의 상징인 LCD단지를 만든 손 대표를 후광으로 삼고 있고, 굵직한 남북경협 사업을 꾸렸던 총리회담에서 총리비서실장으로 활약해 실무경험이 있다.

안 후보는 국방부의 ‘무건리훈련장확장’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아가 ‘무건리훈련장확장반대’를 4.9총선의 주요 전략으로 삼고 있다. 안 후보측 관계자는 “다른 당들이 국방부 문제와 관련한 작은 민원들은 다루는 데 무건리 같은 큰 건에 대해서는 다들 침묵하고 있다”며 “우리는 무건리훈련장 확장에 반대하는 것을 선거에서의 주요현안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무건리훈련장확장에 대한 확고한 반대 입장으로 ‘평화’ ‘서민, 소외계층 지킴이’를 자임해 타 정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60년간 '군사도시'로 살아왔던 파주는 지난 10년 남북화해.협력의 진전과 함께 이제 '평화도시'를 말한다. 그러나, 파주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의 생각만큼이나 파주시민들이 그리는 '평화도시'의 상도 제 각각이다.

아니 현재까지 감지되는 '표심'을 보면, 파주시민들은 지난 10년의 다른 얼굴인 IMF 시대가 불러온 각박한 생활에 짓눌려서 '군사도시 이후'에 대한 꿈꾸기를 일단 접어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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