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교직을 던지고 민주노동당 혁신재창당준비위원장을 맡은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평생을 평교사로 지내며 아이들 박수와 노래 속에서
정년 퇴임식을 맞으려 했던, 소박하지만 가장 컸던 그 꿈을
이제 접으려 합니다.
3년을 못 참고 스스로 떠나려 합니다.”


33년 간 몸담아 온 교단에 ‘마침표’를 찍으며 아내에게 쓴 시 ‘사표를 내며’의 일부이다.

이수호(59). 각박한 사회운동의 최일선을 걸으면서도 항상 교직을 천직으로,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아온 그가 ‘기쁜 마음으로’ 사표를 던졌다. 교사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는 현행법에 따라 민주노동당 혁신재창당준비위원장을 맡게 된 그가 ‘가벼운 마음으로 민주노동당호로 달려’가기 위해 내린 결단이다.

전교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하며 우리사회의 민주화 과정을 일구어온 그는 의외로 문학을 전공한 시인이다. 그의 사표의 변 역시 아내에게 보내는 시로 쓰여졌다.

남들은 침몰하는 배라며 ‘민주노동당호’를 뛰쳐나가는 판국에, 더구나 총선의 태풍이 휩쓸고 있는 한복판에 ‘혁신재창당’이라는 기치를 들고 민주노동당호에 ‘투신’한 그를 만나러 20일 국회로 향했다.

▲ 20일 오전 11시 국회에서 10대 혁신 과제를 발표하고 있는 이수호 위원장. [사진제공-민주노동당]
이날 오전 그는 민주노동당의 10대 혁신과제를 내놓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명 개정 신중 검토 △국회의원 중간평가제 및 소환제 도입 △개방형경선제 제도화 △정책당대회 정례화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국회본관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실에서 기자를 만난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우선 좀 뜨거운 마음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시기”이므로 “받았던 걸 다 되돌려주는 심정”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진단하는 민주노동당의 문제점은 “과도한 정파주의와 거기서 비롯된 패권주의”로 요약된다. 따라서 이것을 “어떻게든지 좀 완화시키고 올바르게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최대의 혁신과제”라는 것이다.

10대 혁신 과제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인 셈이다. 총선이 끝나면 본격 논의될 이들 과제를 두고 벌써 당내에서는 당명 개정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수호 혁신재창당준비위원장은 “이미 대선, 총선이 끝나고 나서 강령을 포함해서 당명까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재창당 과정을 밟겠다라는 것을 결정한 바가 있다”고 상기시키고 “서구의 발전된 사회주의나 사민주의 국가들 정당의 강령들을 보면 최소한 3년 늦어도 5년 사이에 사회 변화에 따라서 업그레이드시켜 나간다”는 사례도 들었다. “꼭 그렇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고는 했지만 개정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중간평가제나 소환제가 실시될 경우 현직 의원이 당원들에 의해 소환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패권주의 극복과 정파주의 극복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도 만만치 않은 숙제이다.

그는 혁신의 맥락을 "당의 정체성을 노동자, 농민, 서민, 민중 중심으로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고, 운영과 관련해서는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그럼으로 해서 종파주의나 패권주의 같은 것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제도 등등을 확실하게 해보자라는 것이 큰 방향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당분간은 ‘준비’자를 달고 재창당혁신을 준비하고 있지만 당면해서는 총선을 성과적으로 치러내야 할 상황이다.

지역구 10석, 비례대표 10석을 목표로 한 이른바 ‘텐-텐 전략’에 대해서는 “솔직히 목표다”라고 자인하면서도 당선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들을 하나하나 꼽는가 하면 “정당지지를 최소한 10%이상,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욕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총선 과정에서 “한정된 세력을 민주노동당과 탈당한 진보신당이 서로 나누어 먹어야 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양쪽이 다 좀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중있는 후보자들이 출마한 지역구의 경우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돼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모든 것들을 당원들이 정하기 때문에, 그래서 부득이하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일부 지역에서의 맞대결이 불가피함을 기정사실화 했다.

총선 후에는 진보신당과 다시 함께 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게 우리 희망이다”고 반기면서 “꼭 하나가 아니라 하더라도 따로 있으면서 당분간 건강하게 연대할 수 있고 여러 가지 형태를 같이 할 수 있다”며 “잠깐 집은 다른 집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같이 하고 같이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생살리기 공약에 대해서는 대학생 등록금 반값이라든지 비정규직 문제 해결방안 등 풍부하고 '차별'있는 정책을 내놓았지만 외교.안보.통일 관련 정책은 "총선은 대선과 달라서 여러 가지 지역문제라든지 살림살이 문제가 주로 될 수밖에 없다"며 뚜렷한 정책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른 생각이나 욕심 없이 몸을 던져서 하면, 그런 것들이 그동안 삶 속에서 크게 배반받아 본 적은 없다”는 그는 “그냥 빈마음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보자 이런 생각 밖에는 별 생각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배가 다시 바로 설 때까지
배 위에 마지막 한 사람이 있을 때까지
배를 지킬게요.
아!
보세요.
벌써 새벽이 밝아오고 있어요.“

그는 분명 시대의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임에 틀림없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우선 뜨거운 마음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시기"

▲ 인터뷰는 20일 오후 1시 20분부터 국회본관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통일뉴스 : 원래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나?

■ 이수호 : 제가 교사이니까 법상 당원은 될 수 없다. 그래서 당우(黨友)로 가입해서 활동했는데, 실질적으로 민주노총 위원장, 전교조 위원장 자격으로 배타적 지지방침에 따라서 중앙위원도 했다. 그런데 당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 당에서 빠져 나가는 사람들도 많고 당이 상당히 어려운 시기에 비대위 위원장직을 맡게 됐는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어떤 과정에서 결정이 이루어졌나?

■ 어렵지 않은 시기가 아니라 어려워서 온 것이다. 어렵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라도 좀 힘을 보태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있었던 거다. 안 어려웠으면 안 왔을 것이다.

□ 그래도 어려울 때 구원투수로 부르는 것이 제일 실력 있는 사람 아닌가?

■ 당이 갑자기 너무 어려움을 당하다 보니까 실제 당도 급했던 점은 있다. 실력 보다는 우선 좀 뜨거운 마음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시기니까 그런 분들이 와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저도 그렇지만 윤금순 전 전여농 의장 같은 경우도 지금 농사일이 제일 바쁠 때고, 또 사는 데가 경상북도 성주인데 여기 와 계신다. 다들 그렇게 이번 당의 어려운 사태와 관련해서 희생적으로 일을 하시더라.

□ 위원장께서도 학교를 쉬는 것인가?

■ 할 수 없이 사표를 냈다. 교사는 법적으로 정당활동을 못 하도록 돼 있어서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교사나 공무원이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그 자체가 올바른 건 아니어서 그걸 고치기 위해서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저런 걸 생각도 겨를도 없었다.

□ 교직을 떠나야 했다니 개인적으로 큰 결단을 내렸을 것 같다.

■ 그렇다. 저는 사실 교사라는 직업을 좋아하기도 하고 평생의 직업으로 생각하고 학교에서 정년퇴직하는 것을 희망으로 생각하면서 그동안 전교조 일, 민주노총 일을 하더라도 파견 나와서 하고 또 임기 끝나면 바로 가서 아이들 가르치고 했는데 이번은 사표를 냈다. 참 저로서는 힘들었고, 특히 저희 가족들이 어려워했는데 그래도 동의를 해줬다.

결국 제 교사로서의 삶과 교육운동, 사회운동 운동가로서의 삶이라는 두 영역에서 그동안 제가 운동전선에 있었던 게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늘 함께 해준 분들 특히, 우리 조합원들이나 운동의 후배들이나 동료들의 도움과 함께 함, 이런 것들이 저에게 힘이었고 저를 일깨웠고 저에게 많은 것을 줬다.

그래서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조그만 뭐가 있다면 그게 다 그런 함께 해온 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언제든지 되돌려줄 수 있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고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민주노총 위원장 그만두고 학교 현장으로 돌아가면서는 이젠 진짜 최전선에는 안 서겠다. 후배들 뒤에서 도와주고 이런 일 하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이런 위기상황이 닥치고 저 같은 사람이 필요로 하니까 받았던 걸 다 되돌려주는 심정으로 뛰어든 것이다.

□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를 내기도 했는데 시인이 정당인, 정치인이 되었다. 앞으로도 시는 계속 쓸 계획인지?

■ 시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마음을 이렇게 좀 담아서 글로 표현하는 건, 문학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제가 참 읽는 것 쓰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쓰는데 취미활동으로도 그렇고 참 좋다.

그래서 이번에 사표를 쓰면서 며칠 마음도 아프고 그래서 집사람한테 주는 편지를 시의 형식으로 썼는데 홈페이지에 올려져서 상당히 많은 분들이 읽었다.

사람에게 중요한 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여러 가지 활동,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나 태도, 그런 걸 전달하는 방법으로 글쓰기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 같아서 그런 형태로 표현했다.

"과도한 정파주의와 거기서 비롯된 패권주의"

▲ 19일 오후, 인천 남동공단을 찾아 관계자들과 민생살리기를 논의 중인 이수호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현안들에 대해 물어보겠다. 이 위원장께서 혁신재창당비대위를 맡고 나서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석고대죄를 했고, 첫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과도한 정파주의를 지양하고 당내 패권주의를 완화하겠다”고 했는데, 비대위 위원장으로서 새롭게 당을 추스르고자 하는 기본 입장은 무엇인지?

■ 저 같은 경우 이번에 이런 사태는 결국 함께 당을 해오던 우리 자신들이, 탈당을 했든 남아있든,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참 안타까운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전제돼야 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책임이 많은 우리 의원들이 지난 4년간의 의정활동을 마무리하며 석고대죄하면서 깊은 반성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전달했던 게 있다. 우리 자신들을 성찰하고 반성하고 평가하면서 되돌아본다는 것이다.

그게 전제되면서 그동안 우리를 이런 사태로까지 어렵게 했던 가장 표면화된 이유가 소위 과도한 정파주의와 거기서 비롯된 패권주의라고 판단한다.

저는 진보정치운동을 하면서 진보의 가치 가운데 가장 존중되어야 될 가치 중의 하나가 단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보운동 하는 분들이 자꾸 분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전부 다 이유는 있겠지만 특히 현실 정치를 하겠다는 진보정치에 있어서 분열은 어떤 의미로도 성숙하지 못한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정말 보수정치 하는 사람들도 자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모일 줄도 알고 참을 줄도 아는데, 진보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그걸 못 넘기고 결국 분열사태로 가는 것은 어떤 것으로도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저희들의 잘못이라고 본다.

정파라는 것은 건강하게 운영이 돼야하고 또 우리 민주노동당은 정파연합당이면서 대중진보정당인데, 그동안 그게 과도하게 대립양상으로 갔다. 특히 4년 만에 의원을 10명이나 배출하고 상당한 성과가 생기면서 그 성과를 서로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욕심이 꼭 나쁜 게 아닌데 그런 욕심이 과도하게 발휘되면서 패권주의적인 성향, 태도 이런 것들까지 보이면서 당이 이렇게 어려워졌다.

따라서 저는 그 두 부분만은 어떻게든지 좀 완화시키고 올바르게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최대의 혁신과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 지나간 이야기라 간략하게 질문하지만 결국 이른바 ‘일심회’사건 징계 건을 가지고 당이 갈라졌는데, ‘종북주의’와 ‘일심회’와 관련된 표결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 일심회 사건은 대표적인 공안사건이다. 우리 민주노동당이 당론으로 폐지를 주장하는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이기 때문에 그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건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당론과도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법원의 판단이나 검찰의 조사 이런 것에 의존할 수 없다고 본다.

그건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문제를 종북주의라는 것으로 문제시하고 특히 취재에 응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는 <조선일보>를 활용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하는 부분은 종북주의 논쟁 자체가 건강하지 못하다고 본다.

어떻든 문제가 돼서 정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지만 이미 그 여론화 과정에서 또다른 여론재판을 과도하게 받았다고 생각한다. 당사자도 그렇고 우리 민주노동당도 그렇고.

그래서 그 문제는 논리적으로나 합리적으로나 건강한 문제제기가 아닌 상황에서 벌어졌고 또 백번 양보한다 하더라도 이미 여론재판 등등에서 충분히 논란이 됐기 때문에 이제 더 논란의 가치가 없다고 본다. 제기했던 분들도 과도했다고 다 거둬들였으니까.

다만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두 동지의 해당행위 부분은 당기위에 회부돼 있기 때문에 우리 당헌 당규가 규정하는 대로 절차에 따라서 철저하게 조사하고 또 본인들의 방어권도 보장하는 그런 범위에서 철저히 규정에 따라서 처리하면 된다고 본다.

분단에서 오는 아픔, 어쩔 수 없는 모순, 고통을 어떤 정파적 이해관계를 위해서 활용한다거나 이런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처리해나갈 수 있고 하고 있다.

▲ '구원투수' 이수호 위원장의 혁신재창당 노력은 성공할 수 있을까?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기존 당체제와 비대위 체제, 그리고 선거도 준비해야 하는데 이것들이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 지금 천영세 의원을 대표로 하는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중앙위원회의 권한까지를 위임받는 비상대책위원회이기 때문에 상당한 권한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웬만한 규정까지도 개정하면서 해나가고 있다. 그만큼 권한이 많다는 게 우리가 지금 처한 시기가 정말 비상한 시기라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지도단위가 이런 저런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고 또 정파적 이해관계에 함몰되는 그런 것도 많았는데 그런 것에서 좀 자유롭고 독립된 것으로 해나가고 있고, 시기가 시기인 만큼 총선에 최선을 다해서 총선에서 승리를 한다는 것이 한 축이고 기본적인 활동방향이다.

또 한축은 혁신재창당준비위원회이다. 총선 기간동안 총선에 맞추면서 혁신재창당의 틀을 잡고 여론수렴하고 그런 정도로 하고 총선이 끝나면 바로 정말 대대적인 평가와 함께 재창당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두 가지 일이 지금 우리 비상대책위원회에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한다.

□ 천영세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혁신비대위가 있고 재창당준위비가 따로 있나?

■ 아니다. 혁신비대위 안에 총선대책 선대본이 있고, 또 한쪽에 혁신재창당준비위원회가 있고 제가 혁신재창당준비위원회 책임을 맡고 있다. 총선이 끝나면 바로 ‘준비’자를 떼고 혁신재창당위원회로 가면서 그 일에 제가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선거가 중요한 하나의 계기점이 될 것 같은데, 지금 진보신당이 새로운 당을 만들어 후보를 내세우고 있다. 진보신당과 선거과정에서 서로 조율한다든지 어떤 관계를 설정하고 있나?

■ 그게 참, 지금 탈당한 동지들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정도의 문제를 가지고 탈당까지 하고 새로운 당을 만들어야 되느냐 참 안타까움이 많다. 정말 갈라지지 않았어야 되는데 현실적으로는 갈라졌다. 그래서 “이건 정말 아니다” 이런 생각이 많다.

내놓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남북관계나 미국에 대한 조금 감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는데, 그것도 제가 보기에는 결국 분단조국의 현실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데 할 수 있는 최대를 할 수 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현실이 그러니까 양쪽이 다 좀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니까 모순이 생긴다. 국민들의 진보정치에 대한 지지나 지지세력은 한정돼 있지 않나. 한정된 세력을 민주노동당과 탈당한 진보신당이 서로 나누어 먹어야 되는 상황에서 지역위원회나 시도의 여러 가지 형편에 따라서 조건이 다 다르더라. 그래서 중앙에서 일일이 간섭하고 중앙의 결정으로 되지를 않는다. 특히 우리당이 갖는 자주성이나 이런데 기반해 본다면, 모든 것들을 당원들이 정하기 때문에. 그래서 부득이하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다만 상징적인 부분들, 예를 들면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라든지 또 저쪽(진보신당)에서 볼 때도 국회의원을 하던 분들, 상징적 인물들이 있는데 후보로 부딪치는 건 좀 국민들이 보기에도 너무 그런 게 아니냐는 것이 있다. 결정을 하거나 합의를 하거나 그런 건 없이 다만 너무 분열된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안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래서 그 부분은 자연스럽게 다 해소가 됐다.

일부 지역에서 후보를 안 내면 당 자체의 활동이 어려워지는 지역에서 길게 보면서 후보를 낼 수밖에 없어서 후보를 내는 이런 것들은 저희들이 인정을 한다. 부딪쳐도 어쩔 수 없다 그런 생각이다. 다만 그렇게 하더라도 막 서로 싸우는 모습보다는 같이, 결국은 우리는 반한나라당이고 자주통일 이루어 나가려하고 반신자유주의고 다 똑같다. 우선은 그 전선에서 같이 싸우는 수밖에 없겠다. 이렇게 생각한다.

"‘텐-텐전략’이지만 솔직히 목표다"

▲ 혁신재창당 작업은 당면한 '4.9총선'과 맞물려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비례대표 선출이 다 끝난 것으로 안다. 결과는 만족스럽나?

■ 한계라고 보고,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우리 당이 앞으로 나아갈 정체성과 관련해서 혁신비대위 위원들이 고심하면서 그렇게 결정한 건데, 저는 뭐 100% 만족이야 없겠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보고 우리의 수준과 우리의 지향점을 잘 상징적으로 드러낸 전략공천이 아니었나 평가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1번 장애여성, 2번 비정규직도 우리가 지향하는 정말 억눌린 가장 어려운 민중, 그런 서민들과 함께 한다는 뜻이다. 이제는 국민들을 위해서 대리로 엘리트가 나와서 정치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정치전선에 서서 자기를 포함한 억눌린 분들, 어려운 분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다. 저는 그분들이 지금도 충분히 역량이 대단하지만 조금만 정치훈련을 하면 의회활동도 잘 하리라고 본다.

3번, 4번과 관련해서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서 다양한 전문가, 시민단체 이런 데서 영입을 하는 게 전략공천의 중요한 몫이다. 또 현재 당원이 아닌 분들을 모신 측면도 있다.

그 외에 전농이라든지 부분을 대표한다든지 또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88만원 세대’, 청년들이 자꾸 보수화돼 가는데 진보라는 게 그런 새로운 세대를 주인으로 삼고 끌어안지 못하면 안 되지 않겠나. 그래서 그런 88만원 세대 학생 이런 부문들을 과감하게 전략공천하는 것도 우리 당의 앞으로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려웠지만 저희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 지역구 10석, 비례대표 10석, 이른바 ‘텐-텐 전략’을 내걸었는데, 지역구에서 유망한 곳을 소개해달라.

■ 저희들이 ‘텐-텐전략’이지만 솔직히 목표다. 지역에서 역시 당선이나 지지율로 보면 창원을(권영길)과 요즘 막 떠오르고 있는 광주 광산갑(조삼수), 울산 북구(이영희), 지금 수도권 성남 중원(정형주) 이런 데가 상당히 그동안 활동도 열심히 해왔고 여러 가지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그 다음에 의원 활동을 하다가 지역으로 간 분들, 최순영(부천 원미을) 의원이라든지 현애자 (제주 서귀포) 의원, 강기갑(경남 사천) 의원, 이영순(울산 남갑) 의원이 의미있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다 잘 하고 있다. 상당히 선전하리라 본다.

보다 더 기대하는 것은 비례후보다. 이미 100군데 이상 후보를 내지 않았느냐. 그리고 견제세력으로, 이명박 정부 폭주에 견제하는 진짜 야당, 조금 길게 보면 믿을 만한 야당으로 정당지지를 최소한 10%이상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거기서도 최소한 6,7석 정도를 기대한다. 이 정도가 최대치가 되지 않을까.

너무 안타깝고 답답한 것은 이번에 우리가 이런 분열만 안 했더라면 지금 이명박 정부의 저런 행태, 국민들의 견제심리 이런 걸로 보면 20석은 갔을 수 있다. 분열만 안 했더라면. 너무 안타깝다. 자폭을 해버리고 만 것이.

▲ 민생살리기는 '차별'성이 있다는 이수호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현재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경제살리기인데, 민노당 경우도 ‘민생살리기 대장정 선포식’도 했다. 민주노동당이 생각하는 민생살리기가 기존 한나라당이나 통합민주당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 선거기간 동안에 선거공약 내지는 정책으로 하다보니까 엇비슷해지고, 더 안타까운 건 우리가 민생과 관련된 좋은 정책을 내놓으면 지금 민주당이나 심지어 한나라당까지도 금방 베껴버린다. 뺏어 가버리더라. 우리보다 그쪽의 선전력이나 메스컴 활용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마치 자기들이 먼저 낸 정책으로 보이는 게 많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 대학생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는 공약이다. 우리는 한 학기당 150만원을 이미 최순영 의원을 통해서 국회에 입법까지 하고 있는 형편인데 그걸 민주당에서 갖고 가버렸다.

현안인 대학생 등록금이라든지 사교육비 문제, 특히 요즘 초.중학생과 관련된 의무교육에서도 돈을 받는 학교운영금 문제라든지, 또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방안이나 이런 것들은 다른 당과는 확실한 차이가 난다. 거기다가 중소 영세 자영업자라든지 특히 우리가 비례후보로도 선출했지만 공공임대주택 문제, 또 지금 노동현장에서 임금을 못 받는 문제라든지 민생과 관련된 하위계층 어려운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안을 가지고 들고 나오고 있어서 아마 다른 당과는 차별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일부에서 지적하기를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데는 상당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앞으로도 기울일 것이라고 기대가 되는데, 전반적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제시나 비판세력으로서가 아니라 대안 세력으로 부각하는 데는 미흡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

■ 그 대안이란 게 상당히 전략적일 수 있고 또 굉장히 거대담론일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담론은 저희들의 정책역량이라든지 연구역량이 좀 부족한 점도 사실은 있다. 그러나 그런데 대한 나름대로의 연구나 이런 걸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급하게 치고 들어오는, 밀려오는 신자유주의를 최전선에서 막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특히 김대중 정부 이후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는 계속 밀려오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레일을 깔았다. 그 레일 위로 지금 이명박이 그냥 브레이크 없는 기차로 폭주하고 있다.

그래서 뭐 터지면 안 된다 막고, 그러다 보니까 너무 그냥 반대 내지는 투쟁 이런 것만 열심히 한 것 아니냐 거기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는데 그걸 인정하면서 앞으로 저희들은 정책정당으로 확실하게 가자라는 게 오늘 발표한 혁신의 과제 속에 들어있다.

대안으로 격년으로 당대회를 한해는 정책만 가지고 1박 2일이 됐건 진지한 당대회를 하고, 또 한해는 조직이라든가 운영이라든가 당의 문제를 다루는 안도 지금 구상 중에 있다. 그런 걸 통해서 앞으로는 정말 신자유주의 대안세력으로서의 정책정당으로 갈 준비를 지금 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당명 개정, "아직 8년 전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 총선 이후 당명 개정을 포함한 광범위한 혁신 과제를 꼽고 있는 이수호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민주노동당의 ‘코리아연방공화국’ 공약이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돼 상당히 부각됐다. 이번 총선에는 외교안보통일 분야에서 어떤 입장을 갖고 있나?

■ 총선은 대선과 달라서 여러 가지 지역문제라든지 살림살이 문제가 주로 될 수밖에 없다. 국가 전체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대선에서의 일종의 아픔이랄까 이런 것을 겪어서 그렇겠지만, 외교안보통일 부분과 관련해서는 총선에서는 뭐 이걸 한번 이슈로 삼아보자 이걸 중요하게 해보자 이런 것은 사실 신경을 못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당이 갖는 기본적인 정책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변함없이 해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마저도 지금 대운하 정책이라든지 영어교육 이런 것들을 총선공약에서 빼겠다 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전술적으로 그러는 것이다.

□ 최근 국가보안법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고 있고 집회문화를 바꾸겠다고 새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들고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은?

■ 거기에 대해서는 오늘 아침 선대본 회의 때도 정말 강력하게 대응해야 된다고 정리하기도 했다. 옛날 사건들은 다시 무죄로 뒤집어지고 있는 판에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되살아나 다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제가 전교조여서 관심이 더 많지만 전교조 통일부문의 활동, 통일부의 여러 가지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활동까지도 국가보안법으로 다 걸고 전북의 김형근 선생 같은 경우 지금 구속해놓고 있다. 이런 것이 다시 냉전시대 논리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해당 부문, 노동이면 노동, 전교조 교육이면 교육과 같이 공조하면서 당연히 강하게 반대할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에 앞장서야 된다.

특히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하는, 집시법도 완전히 무시하는 집회.결사에 대한 공안적 탄압을 공공연하게 하겠다라는 법무부나 노동부에 대해 상당히 우려를 많이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뻔한 일인데, 너무 우리가 밀려있는 형편이기 때문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될 지 고민이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 당이 일정정도 힘을 가져야 될 것 같다. 국회로 진출하고 당의 벽을 튼튼히 쌓고 단결해서 종합적으로 대응을 해야한다.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농민은 농민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이렇게 대응을 하다가는 우리가 굉장히 어려운 지경에 처할 가능성이 많다. 민주노동당이 그런 저항과 싸움에 중심 역할을 하면서 힘을 모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서 10대 혁신과제를 내놓았는데 눈에 띠는 것이 당명 개정까지도 신중하게 검토한다고 한 점이다. 민주노동당이 꽤 오랜 연륜을 쌓아 왔는데 선거 이후에 당명 개정 가능성이 꽤 높은 것으로 봐도 되나?

■ 당이 8년 됐다. 그건 뭐 아무도 아직은 모른다. 지금 당 내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더라. 그런데 우리당이 이미 대선 전에 중앙위원회에서 혁신재창당 논의를 하면서, 진보대연합 논의를 하면서 그때도 이미 대선, 총선이 끝나고 나서 강령을 포함해서 당명까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재창당 과정을 밟겠다라는 것을 결정한 바가 있다. 그런 정신에 따라서, 결정에 따라서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서구의 발전된 사회주의나 사민주의 국가들 정당의 강령들을 보면 최소한 3년 늦어도 5년 사이에 사회 변화에 따라서 업그레이드시켜 나간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가 한반도 평화구축, 남북관계 등등도 8년 전보다는 상당히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 옷은 우리가 아직 8년 전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과감하게 고쳐나가고 특히 집권을 목표로 하는 진보를 가치로 하는 대중정당이라고 하면 국민들의 요구나 눈높이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것들을 충분히 수렴해서 그것까지도 고려하겠다는 것이지 꼭 그렇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 10대 혁신 과제 중 또 하나는 이전에도 표방했지만 잘 안된 개방형 경선제를 제도화할 것을 검토한다고 했는데 그 방향으로 간다고 보면 되나?

■ 그렇다. 두 번에 걸친 개방형 경선제, 그 다음 했던 민중 경선제가 있었다. 지난 대선의 패배 원인 평가를 제대로 못했다고 보는데, 특히 배타적 지지를 하고 있는 조직들이 있는 상황에서 당원이나 다름없는 그런 조합원들이나 우리 진보정치, 특히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후원하면서 관심있는 우리 국민들이 특히 공직선거 후보선출 하는데 참여하는 것은 옳다고 본다. 또한 그런 것이 내부의 과도한 정파주의를 좀 완화시키는 데도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물론 당은 진성 당원 중심으로 가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당이 그런 체제를 완전히 갖추기까지는 이런 공개 경선제 같은 것들을 제한적 내지는 한시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10대 혁신 과제의 일관된 맥락이나 가장 중요한 개념이 있다면 무엇인지?

■ 당의 정체성을 노동자, 농민, 서민, 민중 중심으로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고, 운영과 관련해서는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그럼으로 해서 종파주의나 패권주의 같은 것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제도 등등을 확실하게 해보자라는 것이 큰 방향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 '빈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이수호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교직도 내놓고 실제로 당에 들어와서 혁신을 이끌어가야 할 입장인데, 직접 부딪치면서 드는 생각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느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민주노동당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상당히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탈당사태에서도 봤지만 대부분이 이제 민주노동당 끝났다, 희망이 없다고 봤는데 아직도 대다수의 당원들이 든든하게 밑을 받치고 있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았다.

언로는 많이 막혀있지만 정말 말없는 다수가 돼 있는 그런 당원들과 국민들의 여망을 어떻게 수렴해서 다시 우리당을 건강하게, 다시 싱싱한 피가 돌게 하면서 살아서 움직이는, 변화할 줄 아는 당으로 변신시켜 나갈 거냐는 것이다.

제 자신이 그런 좀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다른 생각이나 욕심 없이 몸을 던져서 하면, 그런 것들이 그동안 삶 속에서 크게 배반받아 본 적은 없다. 그렇게 하면 그 몫만큼은 뭔가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하여간 그냥 빈마음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보자 이런 생각 밖에는 별 생각 없다.

□ 혹시 선거가 끝나고 진보신당과 다시 하나가 된다든지, 아니면 좀 더 폭이 넓은 정당으로 간다든지 할 계획은 없나?

■ 그게 우리 희망이다. 총선 결과가 많이 규정할 것 같다. 어차피 표현은 어떻게 하든지 간에 총선이 끝나면 진보의 재구성, 재편성이 이루어질 텐데 그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이 우리나라 진보정치 운동의 중심역할을 하면서 폭도 넓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진보의 새로운 가치를 수용하고 이렇게 해서 일시적으로 좀 나갔던 동지들도 들어올 수 있으면 다시 들어오고 아니면, 꼭 하나가 아니라 하더라도 따로 있으면서 당분간 건강하게 연대할 수 있고 여러 가지 형태를 같이 할 수 있다. 그렇게 같이 해야 하지 않겠나.

결국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구축하고 한나라당에 맞서서 정말 민생을 살려나가는데, 그 전선에 같이 서있는 것이다. 잠깐 집은 다른 집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같이 하고 같이 가야된다고 생각한다. 빠를수록 좋은데 지금은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다.

<사표를 쓰며 - 아내에게>


벌써 33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네요.
내 교사로서의 삶의 시간들이 그렇게 흘렀네요.
그 해, 1974년 시월 마지막 날,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제동중학교 교문을 들어서던
그 깊은 가을날 오후, 흙먼지를 날리며 바람이 몹시도 불었지요.
그날, 이백여 명 전교생 앞에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만나러 멀리서 왔어요. 한 번 멋지게 잘 해봅시다.’
이렇게 인사하며 시작한 교사생활이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그리고 아흐레 만에 결혼식을 올렸으니
우리가 함께 산 날수도 그만큼이나 되었네요.
그때 내 나이 스물일곱, 당신은 스물다섯
참 씩씩하고 고와보였지요.

나는 오늘 사표를 쓰려 합니다.
아름답고 안타깝고 아쉬웠던 교단 33년의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그렇게 뜨겁게 시작한 교직
평생을 평교사로 지내며 아이들 박수와 노래 속에서
정년 퇴임식을 맞으려 했던, 소박하지만 가장 컸던 그 꿈을
이제 접으려 합니다.
3년을 못 참고 스스로 떠나려 합니다.
학교 교정과 교실, 아이들의 재잘거림, 웃음소리가 눈에 밟힙니다.
안타까워하는 동료교사들의 얼굴도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그러나 가장 아픈 것은 당신입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나의 교사생활을 사랑했으니까요.

돌아보면
울진 제동에서의 3년은 교단 첫사랑이었지요.
수업하다 학교에서 도망친 아이를 잡으러
산으로 들로 헤매든 일이며
결석한 아이를 데리러 몇 십리 산길을 자전거로 달리다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피가 배어 나와도
아이들만 보면 웃음이 나오고 힘이 솟았지요.
당신은 신혼에 시부모까지 모시고
낯선 시골생활에 몸, 마음이 몹시도 힘들었지요?
학교와 아이들밖에 모르는 남편이 얼마나 야속했겠어요.

3년 만에 옮긴 서울 신일도 참 좋은 학교였지요.
넓은 교정과 울창한 뒷산도 아름다웠지만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이란 교훈과 함께
맥맥이 흐르고 있는 고상한 교풍이 더 멋졌지요.
그러나 보충수업, 자율학습, 과외 등 비교육적 행태도 문제였지만
관료화된 국가 중심의 교육 통제와 억압은
정말 참기 어려웠습니다.
군사 독재의 산물이었지요.
광주민중항쟁에 이은 전사회적 민주화투쟁은 역사의 필연이었습니다.
교육계의 민주화운동도 싹이 트기 시작하고
1986년에는 전국적으로 교육민주화선언이 있었고
앞장섰던 나는 해직의 위기에 몰리고
우리 반 아이들이 주동이 된 시위가
나를 구했지요.
그 해 벌써 나는 무모하게도 해직을 각오하고
그에 대비해서 택시 운전이라도 할 요량으로
운전면허 학원에 다닐 때도
당신은 불평 한 마디 않고 믿고 따라줬지요.
아직도 어린 세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말입니다.

80년대 초에 시작된 교육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면서
87년 민주항쟁을 지나
89년에는 드디어 법외노조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나는 감옥으로 끌려갔지요.
덤으로 해직까지 당하는 건 당근이었고요.
당신은 어린 셋을 데리고 혼자가 되었고
전교조에서 주는 생계지원비 30여만 원이 수입의 전부였지요.
세 아이 키우며 옥바라지까지 하면서도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당당했어요.
남편에 대한 믿음과 교육민주화운동의 자부심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나 속으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자신에 대해서야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 먹고 싶은 것도 마음 놓고 사주지 못하는
그 마음이 오죽했겠어요.
그래도 티 안 내고 잘 참아 주었지요.

정권만 바뀌면 세상도 좋아지고 복직도 하리라 했던 기대는 무너지고
해직이 10년이나 이어지고
그 사이에 돈 되는 일은 팽개치고
전교조 서울지부장, 부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위원장을 지내고
이제는 돌아와 아이들 앞에 서는가했더니
또 민주노총 사무총장, 위원장까지 하고 나니
어느 듯 나이는 육십이 되어버렸네요.
아비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란 아이 셋은
그래도 큰 탈 없이 자라
큰애는 학생운동에 이어 참세상 만드는 사회운동에 참여하여
제 몫을 다하고 있고
둘째는 임용고시 합격하고 역사교사가 되어
나와는 전교조 부자조합원으로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가끔 만나니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요.
막내는 중국까지 가서
제가 돈 벌어 먹고살며 공부까지 하고 있으니
이런 기특한 일이 어디에 또 있겠어요.
참 나는 복도 많다 기뻐하며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일이 하나도 그저 되는 일은 없으니
그 모두가 당신 애쓴 결과지요.
해직 10년 동안 애 키우느라 당신 한 일 생각하면
나는 쥐구멍밖에 찾을 게 없지요.
남의 식당 주방 일이며
또 직접 가게를 경영하며 당한 어려움과 고생
그걸 어찌 다 헤아리겠어요.

당신은 내가
합법화된 전교조의 위원장을 지내고 학교로 복귀했을 때
가장 기뻐했지요.
평범한 한 교사로 살면서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고 그들과 함께하는 삶이
내게 가장 잘 어울리고 아름다운 삶이라 여겼지요.
그런 당신이 내가 민주노총의 부름을 받고 사무총장으로 간다 했을 때
교사도 노동자니 노동자가 잘 사는 세상 만들어보겠다는데
어찌 말릴 수 있나며
웃음으로 보내주었지요.
속으로 몰래몰래 울면서요.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신나통이 나르는 대의원대회장을 지켜보며
얼마나 또 안타까워했나요.
그놈의 정파가 무언지
상대방이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하고
딴죽을 걸고, 방해하고
그래도 힘이 모자라면 단상을 점거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우리가 함께 만든 절차를 무시하고
모든 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며
동지의 가슴에 칼을 꽂는
그놈의 정파 간의 대립
그러고도 노동운동이니 진보니 하면서
제 잘난 척 만하며 살고 있으니
그러면서 노동해방이니, 민중해방이니
주둥아리만 놀리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지요.
그걸 어떻게 하면 좀 완화시켜볼까
어떻게 하면 좀 크게 단결시켜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참으며, 별짓을 다했지만
결국 내게 돌아온 것은 자진사퇴였지요.
못난 위원장과 운명을 같이하며 총사퇴를 한 동지들과
기자회견도 제대로 못하고 민주노총 건물을 나서며
나는 혼자 생각했지요.
이제 내 시대는 가는구나.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이제 모든 일을 후배들에게 맡기고
겸손하게 물러서서 뒷바라지나 해야지 했지요.
그렇게 하며 돌아온 상처투성이인 나를
당신은 따뜻하게 안아주었지요.
안타까워하거나 노하지 말아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잖아요.
스스로를 속이거나, 남을 속이지 않았잖아요.
이젠 모든 것 잊어버리고 그냥 좀 쉬어요.
그렇게 위로하며 힘을 주었지요.
다음날부터 백날 동안 백편의 시를 쓰며
나는 나를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고
당신은 넉넉한 마음으로 나를 지켜봐주었지요.

다시 학교로 돌아가 나는 아이들 앞에 섰어요.
나는 교사였으니까요.
전교조 위원장일 때도, 민주노총 위원장일 때도
해직을 당해 길거리에 있을 때도
국민연합 집행위원장으로 수십만 명을 호령할 때도
나는 언제나 교사였어요.
그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교사의 역할을 나는
그 자리에서 실천할 뿐이었지요.
아이들은 언제나 가장 깨끗하고 솔직한 나의 선생이었어요.
수업을 하며, 상담을 하며
그들에게 배우는 기쁨이 얼마나 큰 지
나는 늘 즐거웠지요. 그러면서
그렇게 같이 있는 사이에
그들도 나에게서 뭔가를 배울까.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기쁨이 될까.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지요.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고
노무현의 몰락 속에 한나라는 꽃을 피우고
보수의 독주는 하늘을 찌르고
이명박은 신이나 깨춤을 추는데
우리는 뭐하냐고, 그냥 앉아서 죽느냐고
후배들은 나를 찾아와 윽박질렀지요.
위기의 또 다른 이름은 기회라고 나를 꼬득이며
이때야말로 우리 정치가 비로소
보수 대 진보로 크게 갈라질 것이라고
아니 그렇게 갈라 세워야한다고
게거품을 물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진보의 범위를 넓히고 크게 단결하고
그 가치도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하기 위해
‘새진보연대’를 만들었어요.
정범구랑 임종인이랑 같이 고민하며 재미있었지요.
대선이 시작되고
거짓말쟁이 사기꾼 이명박이 활개 치는 데
한 번 떠난 민심은 백약이 무효라
발을 동동 굴러도 소용없고, 온갖 생쇼를 해도 꿈적도 않더니
결국 우리는 참패를 하고 말았지요.
참패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는 물러가고
비대위를 꾸려 당을 수습하려는데
느닷없는 종북 논쟁이 벌어지며
정파 간의 대립이 극에 다다르는가 싶더니
드디어 분당 사태에 이르게 되었어요.
당은 타이타닉호가 되었고 서서히 잠겨가고 있었지요.
대선 기간 당 밖에서
진보대연합 추진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가슴이 저리며 아파오기 시작했어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 지 깨닫게 되었어요.
내 핏줄 속으로 흐르고 있는 피가
어떤가를 알 것 같았지요.
나는 타이타닉호로 달려갔어요.
무조건 뛰어올라야한다 생각했지요.

민주노동당은 우리 노동자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직접 나서서 만든 당입니다.
특히 우리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스스로 당의 주인이라 믿고 있지요.
나는 민주노총의 간부로 교육을 할 때마다
그렇게 가르쳤지요.
강조하고강조하고 또 강조했지요.
민주노동당만이 우리의 꿈과 희망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고 말입니다.
주인은 제집에 불이 났을 때
구경만하고 있진 않지요.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불을 끄지요.
불을 끄기는커녕 몰래 기름을 끼얹고
제 보기에 쓸 만한 물건을 챙겨 도망치는 놈은
주인이 아니지요.
도둑이지요.
지금이야말로 주인과 도둑이 뚜렷해지는 때인 것 같아요.

나는 불타며 침몰하고 있는 민주노동당호로
무조건 달려갔어요.
내가 그 배의 주인이었던가 봐요.
내 핏줄 속으로 진짜노동자의 피가 흐르고 있나 봐요.
너무 기뻤어요.
배에는 아직 많은 주인들이 타고 있어요.
힘들고 지쳤지만 힘을 모아 불을 끄고 있어요.
배를 살리기 위해 가진 것 모두 내던져서 균형을 잡고 있어요.
나도 다 던져야 하나 봐요.
요 며칠 당으로 출근하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서는 나를 보는
당신의 눈길이 너무 아파요.
부디 몸이며 마음만은 상하지 말라고
오로지 건강만 걱정하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요.
그런데 당 활동을 하기 위해선 더 던져야 되나 봐요.
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가장 귀한 것을 버려야 한데요.
그래서 오늘
내 삶의 모든 것이었던 교직을 버리려 합니다.
경제력 10위로 선진국의 문턱에 있다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교사의 정치적 자유가 없어서
당 활동을 하려면 교직을 버려야 한데요.
많이 주저되고 많이 아프네요.
그냥 외면하고 피하고 싶은 생각이 끊임없이 피어올라요.
이런 나를 당신은 언제나 손잡아 주었지요.
걱정하지 말아요.
연금 못 타면 어때요.
우린 아이들이 다 잘 살잖아요.
우리 둘이야 뭘 한들 못 살겠어요.
우리 가진 거 모두 다 거저 받은 거예요.
그냥 거저 주어버려요.
우리야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나요.
전교조며 민주노총이며 위원장까지 했으면
그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어요.
그 모든 게 모두 이름 없는 조합원들이 준 거니
이제 모든 것 그들에게 되돌려줘요.

고마워요.
기쁜 마음으로 사표를 쓸게요.
너무 아쉽지만 학교를 떠날게요.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민주노동당호로 달려갈게요.
배가 다시 바로 설 때까지
배 위에 마지막 한 사람이 있을 때까지
배를 지킬게요.
아!
보세요.
벌써 새벽이 밝아오고 있어요.

2008. 2. 29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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