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25일 취임사에서 비핵.개방3000 구상을 거듭 밝히고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함으로써 북한의 반응 방향이 주목된다.

특히 이 대통령이 남북 7천만 주민을 잘 살게 하고 남북이 서로 존중하면서 통일의 문을 여는 방안을 논의하기 하기 위해서라면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나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며 "그 기회는 열려 있다"고 말한 대목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정상회담 제의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당선 이후 이 같이 직접 북한을 향해 말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동안 남한의 신임 대통령에 대해 처음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곧바로 호응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고 '민족우선' 입장을 밝혔음에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취임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 전 대통령이 핵사찰을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것에 "주제넘고 가소로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해서는 사흘 뒤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선임자와 다른 전환적인 정책표명을 보여주지 못한, 민족에게 실망을 가져다 준 것이었다"고 평가절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비난을 하지는 않았지만, 취임 약 두달 후인 2003년 4월 북한의 대남 관계자가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될 남측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다"면서도 "노무현 정권이 취한 정책들은 미국의 압력에 끌려다니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의 취임사나 연설 그 자체가 현실을 바꿀 수는 없으며 북측은 말보다 구체적인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해서도 지금 당장 입장을 나타내기 보다는 앞으로 새 정부가 취하는 대북정책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맞춰나가는 대응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 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 과정을 거쳐 만들 대북관계 기조와 4월중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과 일본순방을 통해 만들어질 대북 3각공조의 방향이 북한의 대응을 좌우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이 매년 1월말∼2월중 열어 한해 대남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정부.정당.단체연석회의를 아직 열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새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선(先) 핵포기'를 내세우고 있고, 북한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한.미.일 3각공조의 복원.강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향후 태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취임사를 보면, 핵문제 등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우리가 먼저 능동적으로 남북관계 진전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중인 것으로 읽힌다"며 "그런 점에서 여전히 남북관계의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는 상태로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노무현 정부 초 남북정상회담이 성사 직전에 무산됐었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밝히자, 당시 청와대측은 정상회담이나 북핵문제 등과 같은 특정 주제를 미리 정해놓고 추진한 것은 아니지만 남북간 특사교환이 추진됐었다는 사실은 인정한 전례때문에, 이번 새 정부에서도 초기에 남북간 특사교환 추진 여부가 늘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이래 네 대통령의 취임사 가운데 대북분야를 보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앞으로 추진해나갈 대북 화해협력 정책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은 언급했으나 대북정책의 원칙들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이들 4인간 유사점과 차이점을 보여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무력불용 ▲북한 흡수 반대 ▲화해협력 추진의 '대북3원칙'을,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제2차 핵위기가 불거진 가운데 북핵 불용 의지를 밝힌 뒤 ▲대화를 통한 현안 해결 ▲호혜주의 ▲당사자 해결 원칙 ▲투명성 제고 및 국민참여 확대 등 '평화번영 정책의 추진 원칙'을 밝혔다.

이에 비해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을 거명하면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다"며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이를 논의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따뜻한 봄날 한라산 기슭에서도 좋고, 여름날 백두산 천지 못가에서도 좋다"는 수사까지 곁들여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고 '실용'을 강조한 때문인지 대북정책을 추진해나갈 특별한 원칙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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