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취임사에서 실용, 비핵.개방. 3000 등의 '키워드'를 재차 언급, 경제논리에 입각하되 북한의 적극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을 펼 것임을 시사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언급,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면서 "'비핵.개방.3000 구상'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나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기회는 열려 있다"고 말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이 대통령이 '실용'에 기반한 남북관계를 강조한 것은 남북관계도 민족문제라는 특수성 보다는 경제논리에 입각해 풀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대체로 그 방향성에 관한 한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퍼주기'논란에 시달렸다는 점에 주목, '방법론'을 달리하겠다는 언급이었다는 평가인 것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조성렬 신안보연구실장은 "남북관계를 실용의 잣대로 풀겠다고 한 것은 지난 정부의 대북 협력방식과는 달리 남북관계를 철저히 경제논리로 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또 '비핵.개방.3000' 구상을 통해 남북협력의 새 지평을 열겠다는 대목은 비핵화를 남북관계 발전의 전제로 삼는다는 기존 입장을 확고히 하는 동시에 비핵화에 따르는 유인책도 제시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핵포기와 개방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취임사에서 '비핵.개방.3000 구상'을 강조한 것은 북한에 당근을 확실히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반면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한이 비핵화 등에서 의미있는 태도의 변화를 보이면 우리가 적극 남북간 협력진전에 나서겠지만 그런 것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먼저 남북관계에서 무엇을 하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 자격으로 처음 남북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언급한 점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도 있었다.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이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대통령 자격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공식 제안한 것으로 봐야 하는데, 회담 개최의 전제 조건을 달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이 "남북통일은 7천만 국민의 염원", "남북의 정치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7천만 국민을 잘 살게 할 수 있는가...(중략) 하는 생각들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등 두 차례 '7천만 국민'이라는 표현을 쓴데 주목하는 시선도 있었다.

조성렬 실장은 "'7천만 민족'이라는 표현은 남과 북, 두 체제를 인정하는 개념인데 '7천만 국민'이라고 한 것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본) 헌법정신에 입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남한 주도로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비해 김용현 교수는 "헌법 정신에 충실한 발언으로 볼 여지가 더 많아 보이지만 어찌보면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만 규정할 수 없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방점을 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날 취임사에서 '총론'에 해당하는 대북정책의 원칙은 천명하면서도 핵 프로그램 신고를 둘러싼 현재의 북핵 교착상태에서 어떤 정책을 펴리라는 '각론'은 모호성의 영역으로 남겨둬 아쉽다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김용현 교수는 "대통령이 핵포기를 협력의 전제로 언급하면서도 현재와 같은 북핵 교착상태가 장기화될 경우의 대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면서 "북한이 북핵을 북.미 간 문제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진전이 더디거나 어려울 경우 어떻게 남북관계를 풀어갈지는 여전히 새 정부의 과제로 남은 듯 하다"고 말했다.

김근식 교수는 "북핵문제 등에서 북의 태도변화 없을 경우 우리가 먼저 적극적으로 남북관계 진전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중으로 읽힌다"면서 "그런 점에서 여전히 남북관계의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는 상태로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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