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군사, 핵 문제를 포함한 이런 문제에 있어서 남과 북이 좀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나 분위기가 조성이 돼야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20일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임기중 마지막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북핵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아쉽다고 느끼는 점’을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차관보 시절 6자회담 수석대표로서 2005년 9.19공동성명을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한 송 장관은 9.19공동성명을 타결짓고 첫 소감으로 “늘 우리에게 만들어진,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를 앞으로 우리를 위한 역사를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길을 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외교부 장관임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처한 현실에 늘 눈을 돌리고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이 주역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흔치 않은 관료 출신의 고위직 인사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저는 외교장관으로서 우리 근대사에 있어서 질곡의 원인이 되고 있는 분단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을 어떻게 정상화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일을 했다”며 “한국외교가 다른 나라의 외교가 갖고 있지 않은 특별한 책무가 바로 이 분야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한반도 문제 해결과정에서 봐야 된다”며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수립은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은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수립, 제가 아까 강조한 한반도에서의 분단의 극복, 이 문제로 가야 되는 것이 분명한 진실이라고 얘기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이 문제에 대한 집착 또는 이 문제에 대한 에너지를 쏟아 넣는 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결국 한국이다. 그래서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한 주인 의식과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끌어갈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하에서 차관보로 6자회담의 주역을 담당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청와대 안보실장을 거쳐 외교통상부 장관에 올라 15개월간 장관직을 수행해온 그에겐 ‘교주’, ‘비유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청와대 안보실장이던 그가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임명되자 ‘통일외교안보 라인의 사실상 원톱’이라는 평가가 나돌았는가 하면 지난해 2차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서는 역으로 ‘외교부가 완전히 소외당했다’는 후문이 나돌기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퇴임의 소감을 비유적으로 이야기해달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즉석에서 “33년 동안 외교일선에서 집중적으로 일을 해왔다”며 “풍선으로 치면 바람이 너무 팽팽하게 들어있어서 바람을 좀 빼야 된다”고 말했는가 하면, 대통령과의 의견충돌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모두가 같이 생각하는 곳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월터 리프만 (Walter Lipmann)의 경구를 인용하기도 하는 등 마지막까지 ‘비유의 달인’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하에서 한일관계가 어려웠지 않느냐는 외신기자의 지적에 대해서는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손을 잡아야 한다”며 일본에 의해 독도문제나 역사 문제가 불거져서 한일관계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반박했다.

물론 그는 미래지향적인 한미동맹 설계나 한국의 국력에 맞는 국제사회에의 역할 강화 등 대외 관계에 대해서도 의욕적이고 개방적인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기자들이 제일 미울 때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고위직에 있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데카르트의 이야기를 원용한다면 ‘나는 비판받는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굳이 꼬집어 말하자면 알지 못하면서 비판하는 경우, 그 다음에는 잘 모르면서 비판하는 경우, 그리고 비판대상에 확인도 하지 않고 한쪽얘기만 듣고 비판하는 그런 경우에는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답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내외신 기자들과 오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내신과 외신 기자단은 33년간 몸담았던 공직을 떠나는 송 장관에게 기념패와 꽃다발, 기념품을 선물했고 그는 이제 공직을 떠나므로 기자들과 같은 ‘논평가’ 그룹에 속할 수 있게 됐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9.19공동성명 합의과정을 베이징 현장에서 취재하며 한국이 6자회담의 주역 중 하나로 설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로 송 당시 차관보의 균형잡힌 시각과 돌파력을 느끼기도 했고, 한미동맹이나 남북관계가 위태로워 보일 때는 외교부와 송 장관의 한계를 절감하기도 했던 시간들이 머리를 스쳤다.

송 장관은 오찬장에서 기자에게 이날 기자회견에서 분단극복을 언급한 사실을 환기시키며 평을 요청했지만 협상상대였던 북한에 대해 어떤 느낌과 평가를 내리느냐는 질문 욕심에 제대로 답변을 해주지 못했다.

늦게나마 9.19공동성명을 타결짓고 일성으로 '우리의 역사'를 언급했던 그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분단극복'을 언급한 데 대해 깊은 공감과 지지를 보낸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 '알지 못하면서 비판하는 경우'가 없었는지 되돌아보고 싶어진다고 말해주고 싶다.

참여정부의 마지막 장관이 떠나서 만은 아니겠지만 왠지 그의 빈자리가 커보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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