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든 변화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다. 아무래도 이런 저런 의무와 사회적 위치 등에서 좀더 자유로운 여성이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여성의 머리모양, 옷차림, 화장 등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지난해 12월 5일부터 8일까지 통일뉴스 방북 취재단의 일원으로 4년만에 찾았던 평양은 계절적 차이는 있지만, 여성들과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밝고 화사했다. 평양 멋쟁이 여성들과 아이들의 옷차림은 언뜻 보아선 서울의 어느 한 곳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내가 만난 북 여성들은 대부분 외면은 여성스럽지만 내면은 강하고 똑 부러지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평양에서도 굽높은 구두와 운동화는 여성스러움을 위한 필수품일 것이다.
겨울철 간식, 군고구마 단연 인기
평양 시내를 지나다 보면 군밤.군고구마 매대가 꽤 눈에 띤다. 매대 앞에는 늘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고구마가 인기가 많다는 얘기에, “장군님께서 맛있는 군고구마를 도시 사람들도 맛볼 수 있게 매대를 만들라”고 지시한 후, 평양 사람들의 겨울철 간식으로 인기를 올리고 있다고 북측 안내원은 말해 주었다.

평양 시민들과 함께 매대에 서서 노란 속살을 드러낸 군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수다를 떨며 먹을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하며 침만 ‘꼴깍’ 삼키고 지나쳤다.
조찰떡과 동태순대
평양 방문 기간 동안 이용했던 식당들은 보통강려관 1층에 있는 목란각과 대성산 유원지 근처에 있는 대성식당, 민족식당, 보통강려관 바로 옆에 위치한 안산관 등이다.
보통강려관 1층에 있는 식당은 려관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곳과 따로 예약을 받아 사용하는 곳이 있다.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을 들어서면 복도 초입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 접대원이 반가운 목소리로 우릴 맞는다. 그리고 우리 일행의 식사를 위해 준비된 식탁까지 안내를 받는다.
먼저 우리네 요거트와 비슷하나 신맛이 강한 ‘신우유’와 반숙 계란 프라이가 빠짐없이 곁들여 나온다. 이어서 밥과 국, 생선구이와 김치 등이 나온다.
첫날 북측 조선륙일오편집사 측에서 마련한 만찬과 셋째날 우리 측이 마련한 마지막 만찬장도 이곳에 별도로 마련된 식당이었다.
보통 북에서는 주 요리에 앞서 코스별로 요리가 나온다. 물론 사전 예약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따라서 식사 시간은 길어진다. 음식도 다양하고 양도 넉넉해 주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먹는 걸 포기하고 만다.

조찰떡은 파인애플 속살처럼 노란색깔을 하고 파인애플과 식빵처럼 결이 있어 처음에는 빵종류를 튀겨놓은 음식인줄 알았다. 맛은 달면서도 아주 찰져 식감도 좋았다. 모두들 그 맛에 빠져 부른 배를 잡고 더 챙겨 먹었다. 맛과 모양이 특이해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접대원 ‘동무’에게 물었으나 그 비법은 조리장만이 안다나...
점심에 이어 저녁은 보통강려관 옆에 있는 안산관에서 정말 푸짐하게 먹었다. 단고기가 유명한 집이지만, 단고기를 못 먹는 몇몇은 털게탕, 명태순대, 새우튀김 등을 다양하게 맛봤다.

셋쨋날 점심은 평양시내 참관 중 민족식당에서 먹게 되었다. 이곳은 남쪽 손님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따라서 음식맛도 남쪽에 많이 맞춰져 있었다. 이집은 양념 불고기류로 유명한 곳인데, 북측 안내원 선생은 단맛이 세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5대3 남측 승
둘째 날 저녁 안산관에서 식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절정에 달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보통강변을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면서 모두들 “평양 방문에 함박눈까지 내려 행운”이라고 입을 모았다.

결국 남측 선수가 5대 3으로 역전승을 했다. 고요한 보통강변이 한 무리의 소란으로 잠시 시끄러웠다.
숙소로 돌아온 일행은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 ‘김주영’ 사진기자가 남자인줄 알았다는 북측의 ‘오해’를 겪은 뒤 배정된 여성들만의 방으로 향했다. 물론 그 덕에 부부간 한방쓰기는 물건너간 한쌍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되돌려준 ‘자유주의’
이번 방북은 그 어느 때보다 여유가 있었다. 때문에 취재도 억척을 부리면서까지 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참관지에 도착하면 해설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고, 끝나면 기념촬영 내지 주변 촬영을 하다가 차량 출발에 맞춰 승차하면 됐다.
“모두들 탔지요? 그럼 출발합시다!”라는 말이 떨어지자 승합차가 움직였다. 그리고 100여미터를 이동했을까, 차량 뒤로 한 사람이 영사기를 들고 눈길을 필사적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놀래서 달려왔는지 두 볼이 발그레한 모습으로 차에 올라타는 기자를 보고 남측 일행 중 누군가가 “자유주의가 심하구만”하고 외쳤다. 모두들 한바탕 웃음꽃이 폈다.
이 말은 공동행사 취재차 첫 방북했을 때부터 시작해서 북측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늘 적은 인원으로 방북해 타 언론사와 경쟁해야 했던 통일뉴스 기자들은 1인 다역을 해내느라 항상 긴장된 모습으로 가장 먼저 차량에서 내리고 다그침을 들으면서 가장 마지막에 차량에 승차해야 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따라붙은 꼬리표가 ‘자유주의’였다.
그러나 몇 년의 교류를 통해 남북의 기자들도 서로 닮은꼴이 돼가는 것을 느끼며 이제 그 말을 되돌려 줄 수 있게 되었다.
톡톡 튀는 북 여성들
중국 선양(심양)을 거쳐 평양을 오고가야 하는지라 평양에서 선양으로 나온 날 서울로 가는 비행기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어 거금을 투자해서 선양 시내까지 택시를 타고 나갔다.
선양 시내에 있는 북에서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 마지막으로 평양 음식을 주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접대원 동무와 얘기를 나누었다. 이곳에 나온 지 2년 반 됐다는 그 접대원은 23살에 참 고왔다.
뒤늦게 나온 식사를 먹고 있던 기자 한명이 “그럼 이제 평양에 들어가시면 결혼해야 되겠네요?”라고 농을 던지자 “그쪽은 두부된장찌개나 어서 드시라요! 여기서 제일 늦게 먹으면서 다들 기다리게 하면서...”라고 즉각 세게 받아치는 접대원 동무의 말에 모두들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가슴 따뜻한 사람들
8일 아침, 평양을 떠나는 날이다. 어제부터 봄 날씨처럼 따뜻해진 평양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따뜻했다. 여유 있게 아침을 챙겨먹고 접대원 동무와 기념촬영도 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민예전람실에 들러 서운하지 않을 만큼의 작은 선물들을 사면서 구경했다. 접대원들이 따뜻한 인삼차를 내와서 맛있게 마셨다.

3박 4일간의 방북일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통일뉴스의 첫 단독 방북취재단의 일원으로 방문하게 돼 개인적으로는 큰 기쁨이었다. 또 북측의 많은 이해와 배려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뜻 깊은 방북이었던 것 같다. 눈내리던 겨울 평양의 여운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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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미 전문기자
tongil@tongil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