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소통과 혁신(준) 연구소 주최로 17대 대통령선거에 대한 평가와 이후 정세전망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다. 아래 글은 위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에다 토론자들의 의견을 부분적으로 수렴하여 정리한 것이다. 주로 이후 방향을 중심으로 언급해 보겠다. / 필자 주

1. 대선 이후 정치지형

이명박 후보의 경우 50%에 가까운 득표로 이후 정치적 부담을 덜게 되었다. BBK 동영상에도 불구하고 50%에 가까운 득표를 한 것은 득표율이 낮았을 때 집권 기반이 흔들릴 것에 대한 보수층의 우려가 역결집의 형태로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총선까지를 겨냥한 전략적 투표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향후 BBK 특검과 삼성 특검 등의 위력이 정권 기반을 흔들 수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지 않음을 의미한다.

범여권은 BBK를 여전히 쟁점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기대 수준은 크게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당면해서 총선이 눈앞에 닥쳐 있기 때문에 정치적 봉합의 가능성이 크지만 내년 4월 9일 총선 이후에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회창 후보 등 보수극우 세력의 세력화 가능성은 부분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나라당 내에서 박근혜의 지분이 상당히 남아 있는 조건에서 보수극우 세력은 대선에서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이 시대적 대세이고 보수진영의 비주류라 할 수 있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 점에서 보수극우진영은 ‘외부 세력화’와 ‘이명박 정권의 내부에서의 세력 유지’ 사이에서 정돈될 것이다. 단 이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을 수 있다.

문국현 후보의 경우 선거 초반의 참신한 이미지가 크게 잠식되었다. 경제이외의 영역에서 보수적인 행보, 후보 개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확산, 후보단일화 과정에서의 완고한 태도 등이 특히 영향력 있는 개혁ㆍ진보진영으로부터 크게 신임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면 문국현 후보의 정치 입문은 부분적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내홍과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일부 진영의 분당론은 진보정당 운동 자체를 공멸시킬 위험이 커 보이지만 당 운영과 선거를 주도했던 민주노동당 주류의 폭넓은 책임과 쇄신은 중요하다.

이인제와 민주당은 소멸ㆍ와해의 길로 접어들었다.

내년 4.9 총선의 경우 일단 이명박 정권에 대한 대선 투표 양상이 지속될 경우 한나라당의 승리가 예상된다. 범여권이 지리멸렬할 경우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되고 범여권이 쇄신과 단결에 성공하고 이명박 당선자의 ‘실수’나 한나라당내 극우론의 돌출 등 범여권 지지세력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가 발생하면 의미 있는 견제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진보세력의 경우에는 총선에서의 승리도 기대하기 어렵다.

2. 통일정세

통일정세는 북미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북미관계는 2008년 11월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볼 경우, 2008년 상반기에 극적으로 발전하거나 아니면 정체 또는 악화되면서 미국의 차기 정부로 대치가 넘어가는 양상일 것이다.

전자면 이명박 정권도 순응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우파의 반발이 예상되나 대세를 흔들 정도는 아닐 것이다. 12.20 이명박 당선자는 회견문에서 “‘공존을 통한 평화’의 길로 가는 것이 바로 미래의 평화통일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밝혀 예상보다는 진보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후자면 난관이 예상된다. 보수우파의 반발이 예상되고 이명박 후보도 이에 일정하게 적응하는 편을 택할 것이다. 경제 재건이 우선 순위인 조건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 보수우파에 빌미를 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보인다. 북과 미국의 경우 북은 미국이 변하면 진전하고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차기 정부로 넘긴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어떻게든 북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여 미국의 대선 이전에 상황을 종료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선택은 대체로 미국에 있다. 따라서 북의 입장에서는 북미관계가 발전하든 그렇지 않든 남북관계 발전이 유리한 상황이다.

또한 남측 정치지형의 변화가 상당 기간 이전에는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려 할 것이다. 이는 대선 시기 주로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내 극우파에 ‘공격’을 집중한 점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북은 북미관계에 진전이 없고 남측의 입장이 보수적일 경우 의외로 강경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경우 2009년 상반기 미국 차기 정부 이전까지 남북관계가 급냉할 가능성이 크다. 북의 경우 남측이 북의 ‘구도’에 맞게 호응하지 않으면 상당 기간 남북관계를 냉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통일정세는 북미관계가 결정적인 변수라고 할 수 있다. 북미관계에서 진전이 없더라도 남북경협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남북관계 발전의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이 경우 한나라당내 강경파와 미국이 견제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통일정세에서 미친 중요한 핵심은 위 가능성이 범여권에 비해 크게 엷어져 있는 점이다. 한편 북의 입장에서는 남북경협과 느슨한 남북관계의 발전 가능성마저 차단될 경우를 일종의 ‘임계점’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

3. 경제, 사회정세

1) 2008년 경제정세 개괄

2008년 경제의 중요한 특징은 국제경제의 변수가 커지고 국제경제가 전환적 시점에 와 있는 점이다.

국제경제 변수에서 핵심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된 미국 경제의 급냉 등 대외 악재가 발생할 경우이다. 미국 경제의 급냉 가능성에 대해서는 필자의 역량을 뛰어 넘는다. 단 일반적으로 대외 악재의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경기 악화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올 8월의 경우에도 연착륙 가능성을 시사하는 보도들이 많았지만 9월, 10월에 이어 12월에도 미 연준이 금리를 추가 인하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9월 이전 5.25%에서 현재는 4.25%). 제도권의 분석은 경제가 주는 심리적 영향에 비춰 예측을 낙관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국제경제가 전환적 시점에 와 있는 점은 2001~2005년 ‘미국-중국’의 불균형에 따른 ‘저금리ㆍ과잉유동성 - 저물가 - 고수출.....’ 국면이 마감되고 ‘금리인상ㆍ과잉유동성 축소 - 물가인상.....’ 국면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경기가 급냉하지 않더라도 전환 과정의 약한 고리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금리인상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금리인상, 한계 중소기업의 위기(최근 국민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다 이를 줄이고 있는데 중소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된 조건에서 금리를 올리게 되면 중소기업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지방 건설업체의 도산, 학자금 대출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 증가, 물가인상에 따른 서민경제의 악화 등이 예상된다.

미국 경제 등 대외 악재가 발생하지 않으면 ‘수출 호조 - 내수와 설비투자의 완만한 개선- 5% 내외의 성장 - 양극화의 지속’이라는 상황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2)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의 기조

무리한 경기진작, 급격한 감세, 사회복지비 삭감 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계대출 부실 등 자산거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 부양 등 무리한 경기진작을 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구조적인 변화,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로 사회복지비 삭감이 구조적으로 어렵고, 후술하겠지만 우익 포퓰리즘 기조상 사회복지비, 선심성 예산은 오히려 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외국인ㆍ대자본 투자를 확대하고 예산 절감을 도모하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힐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금산분리, 한미FTA 등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교육정책의 경우 대학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전환이 예상되고 친기업 인맥ㆍ정서의 확산, 외자와 대자본의 투자를 강조하는 정책 기조에 따라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파업, 반(半)합법집회시위 등에 강경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근본에서 바꾸는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이미 시장원리를 중심으로 사회복지를 부분적으로 결합하는 수준에서 정책기조를 취해 왔고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한국경제의 현황에 비춰 불가피한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장 큰 차이는 정책기조라기보다는 ‘인맥’과 ‘사회분위기’가 바뀌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명박 당선자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예상에 비해 경제정책 기조는 시장원리ㆍ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보다 강화하는 ‘소폭’의 변화가 예상된다면 세력 교체와 이데올로기 변화에 필수적인 사회적인 부분에서 ‘큰폭’의 변화가 예상된다.

세력교체는 대기업정규직 노조와 전교조 등이 주요 대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민주화’. ‘연대’보다는 ‘성공’과 ‘법’. ‘질서’ 등이 강조될 것이다. 아마도 교육 분야와 집회시위 공간의 자유를 두고 심각한 헤게모니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3. CEO형 우익 포퓰리즘(이 부분은 이후 논의 진전을 위한 시론적인 성격임)

일반적으로 이명박 정권이 친(親)부자 정책으로 일관할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일면적인 견해일 가능성이 크다.

경제가 중시되는 현 정세에서 CEO형 우익 정권의 등장은 대단히 일반적인 현상이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이탈리아의 베를르수코니, 태국의 탁신, 페루의 후지모리 등이 대체로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이명박 차기 당선자와 같은 CEO형 우익 포퓰리즘 정권의 경우 민주노총 등 조직화된 민중운동의 제도적 개혁은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강경하게 탄압하지만 비조직화된 서민대중의 비근본적인 경제적 고통은 대담하게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CEO형 실용주의 정부를 추구하는 한 한나라당과 같은 이념형 정당, 진보정당으로부터 운신의 폭을 넓히며 자신의 정권 기반을 창출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기도 하다.

가령 신용불량자 구제, 대학학자금 대출, 농가부채, 신혼부부 주택 마련 등에서 청계천이나 서울교통문제와 같은 적극적이고 과단성있는 행보를 할 가능성이 크다. 신혼부부들에게 12만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공약이나 신용불량자 해결 등이 그런 사례인데 황영기 한나라당 경제살리기특위 부위원장의 주장에 따르면 “소액 신용불량자 가운데 나이, 사유, 재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추진하게 될 것”이라며 “대손이 발생하더라도 7천억원 정도의 국가 재원을 투입하면 7조원에 달하는 채무에 대한 신용사면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2.20자에서)

사실 여부는 더 따져 보아야 하겠지만 대체로 사실에 가깝다고 본다. 기억해야할 점은, 첫째 노무현 정부가 이런 정도의 정책(7천억원의 손실로 7조원의 채무를 처리하는)도 취하지 않는 미온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점, 둘째 노무현 정부 하에서 비집권 기득권층이 이런 류의 정책 구사마저 인위적으로 해태해 온 점이다.

이명박 정권의 미래는 많은 부분 경제상황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상황이 유지되고(악화되지만 않더라도) 비조직 서민대중을 ‘포섭’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정치적 실수를 하지 않고 범여권과 진보진영이 의미있는 대안 마련에 실패하면 한국사회에서 보수적인 정치지형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편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이명박 차기 당선자의 실수나 부정비리와 정권교체기가 맞물리면 대중적인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주의해야할 점은 이명박 후보로부터 수혜를 입은 비조직화된 대중은 친이명박 전선에 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태국 등이 그러했는데 주로 온건한 시민단체들이 반(反)탁신을 주도했다면 서민대중은 친탁신으로 분화되었다.

한국사회의 미래와 관련해 다행스러운 점은 통일정세가 대체로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내 보수우파는 경향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한편 이명박 차기 당선자의 성향에 비춰 보면 남북경협 등에 대해 상당한 친화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 대선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한반도 내외의 정세를 검토하면 남북경제협력과 이를 매개로 한 북방 개척은 한국경제 탈출구의 유력한 하나의 길이다.

4. 정책 기조에 대한 약간의 제언

부정비리, 부패 문제를 공격하되 그것의 한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서민대중의 삶에 대한 이해도와 밀착도를 비상히 높여야 한다. 이번 대선의 핵심은 대도시 20~40대의 개혁층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거나 기권하고, 대도시와 농어촌의 서민대중이 이명박 후보에 투표한 점이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진보개혁층이 이들의 구체적인 삶과 유리되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향후 이명박 정권의 성격상 이들을 전취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물가인상ㆍ금리인상ㆍ학자금 등과 연관된 사안을 중심으로 대중적 지지기반을 꾸준히 넓혀야 한다.

통일정세와 관련해서는 남북경협과 10.4 선언에서 합의된 6.15 기념일 제정, 2008 북경 올림픽 경의선 통과 등 대중적인 이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경협에 관한 한 보수우익의 이념적 반북과 이명박류의 실용적인 보수의 간극이 점차 넓어질 것이다.

따라서 향후 통일운동은 남북경협에 주목하고 통일운동의 기조도 전략적인 구호보다는 미시적이고 계량화된 주장(가령 10.4 선언 이후 제도권 연구에 따르면 북의 지하자원의 가치가 2000~3000조에 이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향후 이명박 정권의 두르러진 특징은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조직화된 집단의 대중과 밀착되지 않은 주장에 대해서는 대단히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은 옳든 그르든 10년 개혁정권이 마감되고 보수세력이 집권한 커다란 변화기에 속한다. 따라서 한번의 의례적인 선거 패배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기분으로 세상을 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깊은 성찰과 쇄신, 정세변화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긴 안목으로 기본을 튼튼히 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기본에서 중요한 것은 운동의 장기적 지향을 분명히 하고 대중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