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순 (한국진보연구소 상임연구위원)

‘10.4 남북공동선언’은 격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민족자주와 한반도 평화, 조국통일의 새로운 전환적 국면을 열어주는 위대한 정치적 무기이며,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기초한 민족공조와 대단결의 위대한 승리선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남측의 정부당국과 언론들의 편의적이고 주관주의적 해설과 선전으로 인해 ‘10.4 남북공동선언’의 진실과 그 위대성이 왜곡되고 있으며, 자주통일운동 대오 내의 일부 세력들도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받아 혼란스런 상태에 빠져 있는 듯하다.

따라서 향후 한반도 정세발전에서 이번 공동선언이 차지하는 의미와 역할을 중심으로 ‘10.4 남북정상선언’의 정치적 의의를 세 차례에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 필자 주

① 한반도 핵 대결전과 ‘10.4 남북공동선언’
② 연방제 방식의 통일실현과 ‘10.4 남북공동선언’
③ 민족경제공동체 구성과 ‘10.4 남북공동선언’

많은 사람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6.15 공동선언 제 2항을 발전시킨 획기적인 통일방안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했었다. 그런데 ‘10.4 남북공동선언’에서는 통일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사람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통일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획기적인 합의가 없었다고 평가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의미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내 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10.4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무지의 산물이다. ‘10.4 남북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을 위한 고뇌의 산물이며, 6.15 공동선언 제 2항 이행 설계도면이다. 이 점이 ‘10.4 남북공동선언’의 합리적 핵심이다. 그런데 이 점이 옳게 평가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연방제 방식의 통일실현에 있어서 ‘10.4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밝혀볼까 한다.

1. 연방제 방식의 통일 실현에서 현 단계 중심과제

2007 남북정상회담 소식이 발표되자, 자주통일운동 진영의 많은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6.15 공동선언 제 2항을 진전시킨 획기적인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6.15 공동선언 제 2항의 의미와 정신에 대해, 그리고 연방제 방식의 통일실현의 경로와 과정에 대해 일정 정도 왜곡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 제 2항은 그 자체가 통일의 방향과 방도를 밝혀준 완성된 통일방안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미완성의 그 어떤 것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6.15공동선언 제 2항은 미완의 그 어떤 것이 아니라, 가장 빨리 연방제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통일의 방략을 제시한 조항이다. 그 합리적 핵심은 체제공존형 통일정부(연방제) 구성을 목표로 남북의 두 정부의 외교 국방권을 그대로 인정한 기초위에서 민족의 자주와 단합의 실현 정도에 맞게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단계적으로 통일을 실현하자는 방안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6.15 공동선언 제 2항을 발전시킨 새로운 통일방안 이 아니라,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는 실천적 방도와 대책에 대한 합의가 필요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남북정상회담 직전에도 ‘6.15 공동선언을 다시 읽는다’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무슨 새로운 커다란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초점이 있다기보다, 남북정상이 다시 만나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과 그 이행의지를 다시 확인하고, 6.15 공동선언 이행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장해와 애로점들을 평가하고 그것들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실천적 회담이 되어야 한다.

현재 6.15 공동선언 이행에서 걸린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교류협력의 단계를 뛰어넘어 정치군사적 화해협력의 단계로 발전하는데 걸림돌로 되고 있는 소위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둘째는 6.15 공동선언 제 2항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찾는 문제이다.

특히 6.15 공동선언 제 2항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찾는 문제는 매우 절박한 과제이다. 칠천만 민족에게 자주통일의 구체적 전망과 실천적 경로를 제시해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 있다. 제 2항에서 제시한 방향대로 통일정부를 구성해 나가기 위한 민족통일기구를 내와야 남북관계는 공고한 토대위에 올라서고, 통일의 대문이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통일방안 합의는 6.15 공동선언 2항을 이행해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실현하는 데 있어 현 단계 중심 과제가 명백히 아니다. 현 단계 중심 과제는, 첫째 남북관계를 교류협력의 단계로부터 정치군사적 화해협력의 단계로 확고히 올려 세우는 것이며, 둘째 연방제 통일정부 구성의 정치 조직적 토대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남북관계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정치군사적 근본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열고, 연방제 통일정부 구성의 구체적 방도를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조직적 방도를 도출하는 과제가 주어졌었다.

2. ‘10.4 남북공동선언’은 6.15 공동선언 이행 설계도

‘10.4 남북공동선언’은 하나에서 끝까지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고 있으며, 6.15 공동선언 이행 설계도이다. 구체적으로 6.15 공동선언 제 2항을 이행해 연방제 방식의 통일조국 건설의 대(大)방략을 밝혀준 ‘연방제 방식의 통일설계도’이다.

‘10.4 남북공동선언’에서는 6.15 공동선언을 이행해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첫째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야 하며, 둘째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야 하며, 셋째 군사와 외교를 포함해 다방면적인 협력을 발전시켜야 하며, 넷째 남북협력의 제도화를 통한 민족통일기구 구성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밝혀 놓고 있다.

정치군사적 화해협력의 시대를 연 ‘10.4 남북공동선언’

분단은 적대와 대결이며, 통일은 화해와 단합이다. 화해와 단합 없이 통일의 진전은 불가능하다. 특히 연방제 통일이란 한마디로 체제 공존형 통일이다. 남북의 양 체제와 제도를 그대로 두고 통일을 실현하자는 것이 연방제이다. 따라서 양 체제와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연방제 통일로 나가기 위한 대전제이다.

양 체제와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침략하거나 붕괴를 도모하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인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상대방의 체제와 가치를 인정 존중하고, 더불어 살기 위한 협력을 하겠다는 적극적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이번 선언에서 밝힌 ‘상호존중과 신뢰관계’란 바로 이런 것이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아직까지 남북관계가 상호존중과 신뢰의 관계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정치군사적 적대관계가 극복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군사적 적대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화해협력의 단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선결적이며 중핵적인 과제이다.

‘10.4 남북공동선언’은 바로 이러한 연방제 방식의 통일실현의 절박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정치군사적 근본문제 해결을 가장 중심적인 과제로 내세우고 그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데에 가장 큰 특징이 있다.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의 관계로 확고히 전환할 것을 선언했으며, 남북의 법과 제도들을 통일 지향적으로 바꾸어 나가기로 합의했으며, 군사적 적대관계 청산을 선언했고, 상대방을 군사적으로 적대시 하지 않고 불가침 합의를 확고히 준수할 것을 약속했고, 서해상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삼기로 합의했으며,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를 위한 군사적 협력을 합의했다.

이처럼 정치군사적 근본문제라 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철폐’, ‘참관지 제한철폐’, ‘NLL 문제해결’ 등에 대한 구체적 대책과 방안을 합의한 것은 남북관계 발전과 연방제 방식의 통일실현 과정에서 획기적인 사변이며, 향후 남북관계가 이전과 질적으로 달리 정치군사적 화해협력의 단계로 확고히 접어들 수 있는 정치적 기초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연방제 통일 실현의 구체적 전략을 제시한 ‘10.4 남북공동선언’

연방제 방식의 통일이란 남북의 서로 다른 체제와 제도를 인정한 기초위에서 양 체제와 제도를 그대로 두고, 하나의 민족, 하나의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체제 공존형 통일방식이다. 그런데 남측 내 대다수 사람들은 통일문제를 체제를 통합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체제 공존형 통일방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이 약화됐지만, 반(反)통일세력들이 연방제 방식의 통일은 적화통일을 위한 수단이라고 선전하는 바람에 여전히 그러한 의심을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연방제 방식의 통일에 대한 광범한 대중들의 오해와 불신이 사라지지 않은 조건에서 남북당국자들의 협의를 통한 연방제 통일방안 합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마냥 미룰 수도 없다. 현재의 한반도 정세의 흐름을 볼 때 가까운 시일 내에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민족의 운명이 다시 주변 강대국들의 흥정의 대상물로 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다행히 우리 민족은 6.15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자주적으로 통일을 실현하기로 남북이 합의했고, 통일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러한 통일을 향한 거대한 흐름을 연방제 방식의 통일의 완성으로 수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도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절박하고 중대한 통일과제이다.

체제와 제도는 달라도 민족적 이익에 기초해서 하나의 민족으로서 단결할 수 있으며, 민족적 이익에 기초해서 하나의 통일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 연방제 방식의 통일이다. 구체적으로 연방제란 민족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외교권과 국방권을 하나로 통합해 대내외적으로 단일국가로서 활동하면서도, 양 체제와 제도를 그대로 두고 남북의 각 지역정부가 자치를 실현하는 체제이다.

‘10.4 남북공동선언’은 연방제 방식의 통일실현의 구체적 방향과 방도를 제시한 ‘연방제 통일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10.4 남북공동선언’이 제시한 연방제 통일설계도의 핵심은 무엇인가? ‘당위적 선언’이 아닌 ‘구체적 실천’이다. 연방제 통일로 가는 구체적 실천을 통해 광범한 대중들에게 연방제 통일의 정당성과 실현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서 연방제 방식의 통일에 대한 전 민족적 지지기반을 비약적으로 확산시키자는 것이다.

이번 ‘10.4 남북공동선언’은 연방제 방식의 통일실현의 구체적 설계도라고 단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10.4 남북공동선언’ 제 3항에서는 남북이 군사적 적대관계를 청산할 것을 선언하고 상호 불가침을 확고히 준수할 것을 확약했고, 한반도 평화와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선언에서 군사 분야의 특징은 군축이 아닌 군사적 화해협력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군사적 화해와 상호 협력의 상징적 조처는 서해상 공동어로수역 설정이다. 공동어로수역은 남측의 수역도 아니고, 북측의 수역도 아닌 남북 공동의 수역(평화수역)이며, 남북 공동의 영토이다. 이 수역은 중국의 어선의 불법 조업에 따라 남북의 어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는 지역이다. 남북 공동어로수역이 설정되면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을 막기 위한 남북 군대의 공동경비 활동이 필수불가결하게 요구된다. 남북의 군대는 공동의 영토인 서해 공동어로수역을 지키기 위해 합동순찰, 공동경비, 공동작전 등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군사 분야에서의 협력은 비록 작은 출발이지만 위대한 출발이다. 이 과정에서 민족공동의 이익에 대한 전 민족적 자각과 합의가 높아지고, 남북의 군대가 단순히 서로 싸우지 않는 단계를 뛰어넘어 민족공동의 이익을 위한 군사적 협력과 단합 단계로 발전해 나가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줄 것이다.

하나의 민족 군대로서의 군대의 통합과 국방주권의 통합은 이처럼 선언이 아닌 구체적 실천 과정에서 형성된 민족애와 민족공동 이익에 대한 자각, 민족적 단결의식이 남북군대와 칠천만 민족내부에서 확산될 때 비로소 힘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공동선언은 이러한 위대한 실천을 출발해 보자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10.4 남북공동선언’ 제 8항에서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연방제 통일국가의 하나의 중심기둥은 민족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국제무대에서 하나의 통일 민족국가로서 활동한다는 것 즉 외교 주권의 통합이다. 하지만 외교 주권의 통합과정은 결코 간단하고 쉽지 않다. 선언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북이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상호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협력의 형태와 방식을 끊임없이 높여나가야 한다.

즉 초보적인 협의 단계 → 초보적인 공동행동의 단계 → 상설적 협력 체제 구축의 단계 → 국제기구와 유엔에 단일의석 가입의 단계 → 외교주권의 완전 통합의 단계를 거쳐 연방제 통일로 나갈 것이다.

‘10.4 남북공동선언’ 제8항은 외교주권의 통합이라는 장기적이고 원대한 구상 아래 국제무대에서 협력하기 위한 초보적 단계를 출발해 보자는 합의이다. 이 합의도 군사 분야에서의 협력처럼 매우 초보적이고 작은 출발처럼 보이지만, 연방제 방식의 통일실현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합의이며 출발이다. 출발은 작지만 한반도 정세발전의 급격한 변화 흐름 속에서 협력의 폭과 범위, 형태와 방식이 매우 빠르게 발전해 가면서 연방제 방식의 통일 실현의 그날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셋째, ‘10.4 남북공동선언’ 제 5항에서는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 번영을 위해 경제 협력 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 따라 적극 활성화하기로 한 점도 연방제 방식의 통일의 초석을 닦은 합의이다. 특히 그동안 남측이 공공연하게 추진해온 북한경제의 개혁개방노선 공식 포기를 선언하고 남북이 양 체제와 제도를 인정하고, 그것에 기초해서 민족경제의 균형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은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다.

경제적으로 상대방 체제변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한 상대방의 오해와 불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기 때문에 연방제 방식의 통일실현이란 불가능하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경협의 근본원칙과 방향을 합의한 것은 연방제 방식 통일실현에 있어서 획기적 의의를 갖는다.

넷째, ‘10.4 남북공동선언’ 제 2항에서 남북관계 확대발전을 위한 문제들을 민족의 염원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양측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도 연방제 방식의 통일실현에서 매우 중요한 합의로 된다. 연방제 방식의 통일실현은 당국자들만의 몫이 아니다. 전 민족적 의사를 수렴하고, 연방제 통일정부 구성을 위한 정치적 역량을 총결집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조항에 나온 대로 남북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이 확대 발전되면, 이것이 연방제 통일을 지향하는 전 민족적 의사를 수렴하고 연방제 통일정부 구성을 위한 정치적 역량을 결집해 나가는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이 ‘10.4 남북공동선언’은 연방제 방식 통일실현의 구체적 전략전술이 다 담겨 있는 통일설계도이다.

민족통일 기구 구성의 원칙과 방도를 제시한 ‘10.4 남북공동선언’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하루빨리 실현하려면 구체적으로 6.15 공동선언 제 2항을 이행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6.15 공동선언 제 2항에서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밝혀 놓았다.

이후 6.15 공동선언 제 2항을 구체화한 형태는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논의가 활성화되었는데, 북측은 2000년 10월 6일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돌을 기념하는 모임에서 안경호 현 6.15 공동위원회 북측 위원장이 발표한 보고에서 낮은 단계 연방제에 대해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제도, 두 개의 정부 원칙에 기초해 북남 두 개의 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고 그 위에 민족통일 기구를 세운 뒤 북남관계를 조정해 나가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규정에 맞는 남북 간의 기구는 없었는가?

비록 실제 잘 가동되지는 않았지만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그 구체적인 상(像)이 제시된 적이 있다. 그 당시 남북은 7.4 공동성명을 이행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상설적 기구로서 남북조절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그해 11월에 합의된 남북조절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보면, 남북조절위원회는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①나라의 자주적 평화통일 실현 문제 ②정당 사회단체 및 개별적 인사들 사이의 광범한 정치적 교류를 실현하는 문제 ③경제 문화적 및 사회적 교류를 실현하는 문제 ④긴장상태의 완화 및 군사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대치상태 해소문제 ⑤대외활동에서 공동보조문제를 협의 결정하며 그 이행을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그 구성에서는 ㉠공동위원장과 부위원장 간사를 두고 ㉡남북조절위 안에 간사회의를 두고 ㉢정치 군사 외교 경제 문화 분과위를 두고 ㉣공동사무국을 판문점에 두며, 운영에서는 조절위 회의는 2~3개월에 1차 간사회의는 1개월에 1차를 열어 운영하도록 되어 있었다.

낮은 단계 연방제 단계에서 설치될 민족통일기구는 목적과 사명, 그 기능과 역할, 운영의 측면에서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제시된 남북조절위원회가 하나의 구체적 상으로 참고될 수 있다. 즉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구이며, 남북관계의 제반 문제에 관해 남북이 협의결정하고 그 이행을 책임지는 상설적 집행기구로서 산하에 각 분야별로 상설 분과체계를 설치하는 것이 기본적인 형태로 될 것이다.

그런데 남측 통일운동 진영 내에서는 민족통일기구에 대한 혼란과 오해가 많았고, 그것 때문에 이번 ‘10.4 남북공동선언’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폄하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남측 내 통일운동 진영에서는 민족통일기구를 제(諸)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또는 통일운동기구와 뒤섞어 놓은 그 어떤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또는 민족통일운동기구는 남북관계를 조절 통제하고 통일문제를 책임지고 합의결정하고 그 집행을 책임지는 집행력을 갖춘 권력기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권력기구인 민족통일기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나 6.15 공동위원회와 같은 민족통일운동기구는 임의조직으로서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권력기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나 6.15 공동위원회와 같은 민족통일운동기구 등은 민족통일기구가 아니라, 전 민족적 통일의사와 의지를 결집하고 전 민족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정치적 활동을 조직 전개함으로서 남북 양측 정부로 하여금 정당하고 올바른 통일방안을 수용하도록 아래로부터 압력을 가하기 위한 대중운동단체이며 조직인 것이다.

이러한 혼란과 오해를 씻어내고 ‘10.4 남북공동선언’은 비록 명시적으로 상설적인 민족통일기구 설치를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민족통일기구 구성의 원칙과 방도를 밝혀주고, 그 구체적 실현대책을 마련해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0.4 남북공동선언’에서는 민족통일기구 설치를 먼저 선언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남북관계의 발전 속도와 남북협력의 구체적 필요에 따라 우선 필요한 기구부터 먼저 설치하고, 이후 계속 확대 설치하는 방식을 구성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번 선언에서는 우선은 총리급의 남북대화 창구를 격상시킴으로서 교류협력의 단계로부터 정치군사적 화해협력의 단계로 남북관계를 끌어올리기 위해 요구되는 제반 사업들을 구체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실질적 조건을 확보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다음으로 경제협력 추진위를 경제협력 공동위로 격상시키고, 부총리급을 대표로 하기로 합의함으로서 경제협력분야에서는 상설적 통일기구를 내왔다.

다음으로 국방장관 회담을 개최하고 군사 분야에서 긴장완화와 협력을 모색하기로 하고, 특히 서해상 충돌방지를 위한 평화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수역을 설치하기로 합의함으로서 향후 군사분야에서 공동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했다.

이와 같은 합의로 볼 때 향후 남북관계는 나라의 통일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룰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총리급 회담으로 발전하면서 교류협력만을 주로 협의해왔던 지금까지와는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연방제 통일단계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요구되는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친 대화와 협력이 구조화될 것이며, 남북협력의 수준과 단계에 따라 각 분야별로 공동위원회 형태의 상설적 통일기구가 설치되고 총리가 그것을 관장하는 형태로 남북대화체계가 발전해 갈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과정은 한마디로 민족통일기구가 단계적으로 설치되는 과정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3. ‘10.4 남북공동선언’ 이행은 곧 연방제 통일실현의 지름길

이상과 같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통일문제에 대한 진전된 논의와 합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10.4 남북공동선언’의 합리적 핵심은 연방제 방식의 통일 실현의 구체적 설계도를 제시한 측면이라고 봐야 한다.

연방제 방식의 통일은 그 어떤 제도나 방안에 대한 합의 이전에 연방제 방식의 통일에 대한 전 민족적인 전폭적 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전폭적인 지지를 획득하는 지름길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다. 즉 남북관계 발전 그 자체가 연방제 통일정부 구성을 불가피하게 요구하는 단계로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에 있다.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에 조응하는 민족통일기구를 내오고,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에 있다.

현 시기 6.15 공동선언을 이행해 나라의 자주적 통일을 실현하는 지름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그것은 ‘10.4 남북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해 나가는 데에 있다. ‘10.4 남북공동선언’ 이행은 남북당국의 몫으로 돌릴 수 없다. 내외 반통일세력들은 ‘10.4 남북공동선언’이 이행되어 연방제 방식의 통일이 실현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는 길마다 ‘10.4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을 가로막아 나설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10.4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해 자주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자주통일세력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