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령(재일동포)

재일조선인 삶과 조선학교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 28일，일본 도쿄 이타바시구에 자리잡은 도쿄조선제3초급학교를 찾아갔다. 이날 학교 운동장에서는 1년에 한번 진행되는 야회가 열렸다.

 

야회는 올해로 22차가 된다고 한다.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이 학교 재정사업에 조금이라고 보탬을 주자고 학부모들과 동포들，특히 어머니들이 중심이 되어 22년간 계속 진행해온 행사인것이다.

이날 도쿄의 기온은 33도까지 올랐다. 운동장에서 지짐을 지지고있는 어머니의 이마에서는 줄줄 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더우니까 맥주가 더 팔려요. ”
어머니들은 이런 농담을 하면서 더위도 잊고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간이무대에서는 아이들의 합창, 가무단의 노래와 춤들이 피로되고 추첨회도 있었는데 특별히 이목을 끌만한 기획이란 볼 수 없었다. 흔히 보는 광경이다．운동장에는 즐비하게 설치된 테이블에 학부모들과 동교 졸업생, 인근에 거주하는 동포들과 일본시민들이 모여앉아 어머니회가 마련한 간이음식물들과 술,맥주를 들면서 왁자왁자 이야기하고 있다.

동포들속에는 자기가 속해있는 조직과 현실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과 주문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우리 학교》란 이 한마디 말에 동포들의 천만가지 깊은 사연과 그리워하는 마음이 함축되고 있기에 언제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다.바로 이것이 동포 사회에서 우리 학교가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졸업생은 우리 학교는 일본에 사는 동포들에게 있어서 ‘고향이며 생활의 원점’이라고 말하고 어떤 학부모는 ‘동포사회의 미래’라고도 말한다. 그들의 말 그대로 지금 우리 학교란 공간이 우리 동포 자제들의 귀중한 배움터일 뿐만 아니라 동포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마당이라고 말할 수 있고，자신의 원점에 되돌아갈 수 있는 어머니 품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1945년 12월8일에 세워진 도쿄제３초급학교는 전국에서도 비교적 빠른 시기에 창립된 학교중의 하나이다．동포의 자택을 빌려 교원이 2명, 학생은 25명으로 출발하였다. 동포들이 아이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자는 일념으로 시작했으나 교과서도 없는 한갖 소박한 서당이나 다름없었다.

그후 1947년 도시마초등학원과 통합되어 도쿄제3조련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어 다음해 3월에 목조 2층교사에 자리를 옮기게 된다. 지금이야 동교는 주택들이 둘러싸고 있으나 초창기의 교사 둘레는 거의 보리밭이었고 그 보리밭 속에서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아,야,어,여” 소리가 들려 왔었다고 한다.

오늘 도쿄제3초급학교라고 하면《우리말을 잘 쓰는 학교》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학교는 우리말 문제 외에도 주목되고 있는 일이 있다．

최근년간 우리 학교에서는 전반적으로 해마다 학생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관계자들이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도 거의 모든 학교들에서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생수가 감소되는 것은 단지 우리 학교측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소자화》(저출산) 현상이 일본의 후생성에서도 문제시하고 있듯이 사회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할 문제로 되어 있다. 또한 이 나라가 계속 우경화되어가면서 동포들이 조선사람으로 당당하게 살기 어려워지고 학부모들이 2세로부터 3세에로 세대가 교체됨에 따라 그들의 요구와 가치관도 다양화되고 있다．뿐만 아니라 설사 민족학교에 자제들을 보내고 싶어도 우리 학교가 자기 거주지에 없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여러가지 요소와 이유들이 겹쳐져있는 탓으로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도쿄제３초급학교에 부임된 지 11년이 되는 강철민 부교장의 이야기에 의하면 부임당시 125명이였던 학생수가 다른 학교와 통합한 것도 아닌데도 학생수가 줄어지기는커녕 10명쯤 늘어났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동포들의 생활수준이 비등비등하다는 것도 있고，무엇보다도 학교사업에 대해서 열성적인 부모들이 많습니다. 특히 어머니회나 청상회에서 늘 학교에 관심을 돌리고 있어요. 그리고 학교창립 60돐을 맞으면서 애교회도 꾸려졌습니다.”

그러나 어느 학교에도 열성적인 학부모들은 있을 것이고 단체의 안받침이야 이 학교에만 있는 일이 아닐것이다. 학교 안을 돌아보아도 시설들은 결코 만족스럽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콘크리트 운동장의 주변은 집들이 밀집해있고 크기도 인근에 있는 일본 소학교들에 비해 ３분의 １도 안된다. 이유가 더 있을 것이 분명하다.
　
“사실 우리 학교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운동장이나 시설을 보고 놀라지요. 이름 떨치고 있는 학교 치고는 너무 소박하니깐…”

이렇게 이야기하는 부교장은 학생수가 줄어지지 않는데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고 생각된다며 그중 확실한 것은 “우리말 수준이 보장되어있는데에 있다”고 말하였다.

우리 학교에서는 초급부 ６년동안에 우리 말과 글의 기초를 닦는다．복잡한 문제는 별개로 치고 학부모들의 대부분이 자기 자식들이 우리 말로 회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학교에 보낸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 학교에 다니는 동안 우리말과 글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기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외국，특히 일본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환경이다. 말과 글을 배운다는것만이 아니고 자기가《누구》인가 하는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뿌리》를 긍정적으로 배우게 되면 그후 사춘기를 거쳐 어른이 된 후에 똑똑한 인생관을 확립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는것이다.

이 이치를 잘 알기에 부모들은 교육의 기초를 든든히 닦아주는 우리 초급학교에 아이들을 맡기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김영희씨(41)는 4명의 아들딸을 가진 동교 어머니회에 속하는 어머니다. 고급학교1학년인 맏딸, 중급부 2학년인 맏아들이 있고, 현재 제3초급학교에는 6학년 아들과 2학년 딸이 다닌다.

이날 음식을 준비하느라 땀을 흘리며 일하던 어머니들속에 김영희씨도 있었다．조선대학교 문학부 졸업생인 김영희씨는 우리 학교를 돕는 일에 남달리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애들이 사회에 나가서 어떤 환경에 처하든 조선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주기만 한다면 그 이상 바랄 건 없어요. 그건 절대 필요한 것이고, 또 우리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고 이어갈 수 있는거라고 믿어요.”

김영희씨는 제3초급학교 어머니회 성원이 된 지가 10년이 지났다고 한다.
그는 원래 혹가이도 출신이다. 혹가이도초중급학교라 하면 최근에 한국의 김명준감독이 만든 ‘우리 학교’란 영화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후배들이 민족교육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나름으로 힘이 되겠지만 아직도 우리가 학생시기에 겪은 고생은 다 가셔지지 않고 있다는것도 알고 복잡한 심정이 되었어요.”

혹가이도는 지금이야 경치 좋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장도 있는 관광지로 알려지고 있지만 조선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해방전에 강제연행으로 우리 겨레들이 수많이 끌려온 원한의 땅이다. 영희씨는 초급부 2학년때부터 혹가이도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기차를 타고 7시간이나 걸리니 우리 학교에 다니자면 기숙사에 들어가야만 했다.

“지금도 기억해요. 방학이면 열차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신문지를 바닥에 깔아 잠자고 주먹밥을 먹으며 시간이나 차안에서 지내던 일을... 그때는 그 7시간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로 느껴졌어요. 그러나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당시 부모들은 리어카를 끌고 골판지를 모으며 힘든 노동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켰다. 또 집에 찾아오는 분회장은 며칠동안 밤을 새워가며 일하다가 몸이 지쳐 잠깐 졸아버린 바람에 손가락 하나가 기계에 말려 들어 잘렸었다는 일화도 부모에게서 들었다. 김영희씨는 나이는 어렸지만 당시의 부모들과 동포들의 어려운 생활형편에 대해 다는 몰라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었었다고 한다.

“일본사회에서 민족교육을 지켜간다는것은 쉽지않아요. 그러나 우리 부모님들이 그렇게 고생하면서까지 저희들을 우리 학교에 보내준것은 이역에서도 똑똑한 조선사람으로 자라주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재산을 물려받은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무엇을 넘겨주고 무엇을 이어가는가 심중하게 생각해야하겠지요.”

그런 김영희씨에게는 지금 고민거리가 적지 않다고 한다. 4명의 자식들을 어떻게 키울까 하는. 부모이면 누구나가 가지는 고민이다.

“저는 대학교까지 민족교육을 받았지만 자식이 4명 있으면 여러가지 길이 있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앞으로 민족교육은 우리 시기와 달리 지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 발전시키면서 국제사회에 통할만큼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인재들을 배출해나가야지요. 유족한 동포사회는 뭉치기만 하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야회가 끝나면 방학동안에 예정하고 있었던 운동장의 울타리를 고치기로 되어있다고 한다.
낡아진 울타리는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겐 위험할뿐더러 또 축구공을 차다가 운동장 둘레의 살림집들쪽에 날아갈수 있어 마음껏 공을 찰 수도 없다는 심리적 압박을 주고 있었다. ‘무슨 수를 내야겠다’ 이런 생각을 가진 학부모들은 한둘이 아니였다.

또 이 운동장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뜻이 깊은 운동장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대표선수이며 현재 한국의 K리그 부산 아이파크에서 활약하는 안영학 선수의 모교인 이 학교 운동장은 그가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한 장소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 선수 자신도 친구들과 뛰놀고 공을 차기 시작한 이 학교 운동장이 ‘자신의 축구의 원점’이라고 가끔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축구원정으로 지방을 돌 때 근처에 우리 학교가 있으면 반드시 찾아가 학생들을 만나며 공을 선물하거나 학생들이 사인을 조르면 한명 한명씩 상냥하게 응하기도 한다. 특히 모교인 제3초급학교에 찾아올 때는 전교생 앞에서 이야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곤 한다.

안영학 선수를 존경하고 자랑으로 여기는 아이들이기에 축구부에 속하는 아이는 물론 여자 아이들까지도 운동장에서 뛰노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또 동교 졸업생인 안 선수의 당당한 모습에서 꿈은 언젠가 이룰 수 있다고 희망을 가꾸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학교 관계자들은 울타리 수리공사를 하는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학부모들과 졸업생들은 물론이고 지역에 사는 일본사람들에게도 호소하여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오오야마니시정내회(大山西町內會) 회장, 구의회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이타바시구 당국에서 조성금을 받아내였다.

“일본정부가 해방후 6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역사적견지에서 보나 응당 인정해야 할 민족교육을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속에서 난관은 많아도 학교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해주는 동포들이 있으니까 문제가 생겨도 하나하나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고 부교장은 이야기한다.

그 날은 마침 한국과 일본 사이에 아시아컵 3위 결정전이 진행되었다. 밤 9시가 넘어도 승패는 결정되지 않고 있었다.

야회가 끝나고 돌아갈 길에서 만난 이 학교 아이들에게 어느 쪽을 응원하느냐고 말을 건네보았더니 일본 팀 속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수도 있지만 팀으로서는 한국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또 남북이 시합하면 어떻냐고 물어봤다.

“양쪽을 응원할 게요”
“안영학 선수가 속하는 쪽이요”
“남북은 시합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지켜가야 할 ‘동포사회의 미래’상을 엿본 것만 같았고 가슴이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