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월( 도호쿠 조선초중고급학교 전직 교원)
|
우리학교를 생각할 때, 내 눈 앞에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산속의 오솔길, 정다운 통학길이다. 시가 중심지에서 떨어진 교외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우리학교로 뻗어진 소나무 우거진 그 길.
함께 다니던 친구들과 나누던 이야기, 혼자 펼친 공상의 기억은 거의다 사라졌어도 아침의 맑고 시원난 바람의 상쾌한 느낌,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새여드는 햇볕의 눈부심은 지금도 뚜렷이 되살아난다.
70년대 초 어느 하루,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를 맞이한 내가 옷고름 휘날리며 학교를 향하고 있다. 한번, 그 뒤를 쫒아 그의 하루를 들여다보자.
그런데 3시간째 수업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학급에서 으뜸가는 까불이 00이 여느때 없이 시끄럽게 떠든다. 평상이면 “시끄러워!”하고 주의하는 소리가 친구들 사이에 오르기도 하는데 오늘따라 교실에는 무관심한 공기가 흐르고, 오히려 선생님의 주의가 거기로 쏠리는 틈을 타서 여기 저기서 잡담을 벌이고 있다.
“조용히들 하세요!” 여선생님의 비명 비슷한 소리... 더 한층 커지기만 하는 소음... ‘아, 폭발한다’고 예감한 순간, 수업종료 종이 울린다. 분함으로 얼굴이 뻘거지고, 눈물이 글썽해진 00선생님... 우리 절도 안 받으시고 교실을 나가버린다.
‘큰일 났다... 우리 담임 선생님 단단히 화가 나셨다’, ‘이제 곧 무서운 교무주임 선생님 달려 오실 것이다’. 긴장된 우리의 ‘기대’와 달리 나머지 일정이 평온히 지나간다.
방과후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일과는 ‘하루 총괄’이다. 교단에 학급장이 서서 모임이 시작되는데, 그 얼굴이 굳다. 무슨 결심품은 사람의 표정...
“동무들, 우리는 오늘 큰문제를 이르켰습니다. 수업태도에 대하여 토론해봅시다”. 침묵이 흐른다. ‘누가 먼저 한마디 해주었으면...’, '시간이 빨리발리 지나가 무사히 이 답답한 한때를 넘길 수 있었으면...'.
그러나 학급장의 노기어린 음성은 우리가 간단하게 이 고비를 넘어갈수 없음을 알려줄뿐이다. “의견이 없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중요인물’ 00에게로 집중된다. ‘네가 한마디 해야 끝나겠는데’. 그런데 그때, “옛”하고 손을 든것은 착하고 얌전한 00숙분조장이다. “오늘 우리 분조 00동무가 너무 떠들어 수업이 중단되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주의도 못했습니다” 문제생을 공격하여 시원하게 한마디 할 대신, 자기반성하는 그 말에 교실안의 분위기가 변하고 그 다음으로는 의견이 연달아 쏟아진다.
“00가 많이 떠들었지만, 나도 잡담하고 수업을 바로 받지 않았습니다”, “00는 장난이 너무 심합니다. 반성해야 합니다”, “00는 자기만 재미있으면 남의 공부를 방해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결론이 나는것같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고치겠습니다”. 00가 까불이 답지않게 진지한 태도로 고개 숙이는 모습...
“우리 모두 뉘우치고 앞으로는 서로 지적도 하면서 수업태도를 고칩시다”.
학급장이 맺음을한 다음에야 선생님이 교단에 서신다. 얼굴에는 미소를 띄우시고 교실안에 안도감이 흐르고 새로운 활기가 되돌아온다.
이런 장면은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학생자신이 푸는 것이 기본이고 선생님 들은 곁에서 도와주고, 확인해주는 존재요, 위협하고 벌만 주는 적대자가 아니었다. (물론, 엄중한 지경까지 이르려는 경우, 무서운 처단이 내리기도 하였지만)
당시 거의 다가 20대 청년였던 선생님들이 인내와 사랑으로 우리를 키워주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교실에 늦게까지 남아 작업이나 시험 준비 할 때면 “배고프지?”하면서 봉지에 담뿍 과자요 음료를 ‘바라지’해 주시던 선생님... 건방진 태도로 막 반항을 하는 저를 “네 말이 옳다”고 웃음으로 인정해주신 선생님...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배움터를 떠난 뒤에도 바쁜 일상에 말려들어 곰곰이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문제가 생겼을때, 어려움에 부딛쳤을 때, 자신이 ‘주’가 되어 생각하고 솔직하고 성실하게 해결하는 태도를 유지할때, 꼭 어려움을 이겨낼수 있고 또, 주위 사람들도 도와준다는 신념. ‘인간력’이라 불러야 될까.
이것이 우리학교 교육의 ‘이념’이였을까? 오히려 우연의 산물이 아니였던가?
우리학교를 세우고 지킨 동포들의 마음, 그리고 청춘을 후대의 교육에 바친 교원들의 순수한 정열이 자연히 이런 결과를 낳았는것아닌가. 오빠와 같이 언니와 같이 늘 곁에 계시던 선생님들의 그 정열이...
그 통학길을 걸어볼 때 언제나 기분이 새로워지고 힘이 솟아나는것은 그 길이 내 ‘인간력’을 키워준 사랑하는 우리학교로 이어진 길였기때문이라고 30년이상이 지난 오늘, 처음으로 깨달은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