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심보 탓인지, 나는 평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에 맞장구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나에게 이 속담은 특히 영화 본 후에 거의 80%정도 들어맞는데, 1,000만을 넘긴 영화들에서 거의 이 속담이 적중하기 때문이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견해로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 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화려한 휴가>의 제작 소식을 듣고 나는 이 영화가 소문난 잔치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결과는 아마도 소문난 잔치일거라 예상했었다. 그것은 한국영화 시장에서 그만한 예산을 들여 영화를 만들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소문난 잔치로 영화를 만들지 않고선 손익계산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 소문난 잔치에 걸맞은 산해진미 가득한 영화도 물론 있었다. 한국 블록버스터에 대한 편견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그러나 이 영화는 잔치를 들먹일 영화는 아니었다. 80년 오월 광주를 스크린으로 확인하는 시간 동안은 소문난 잔치가 어떻니, 한국 블록버스터의 문제가 어떻니 하고 군시렁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실화의 힘이 너무나 크고, 이 영화가 담고 있는 80년 오월은 영화적인 문법들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역사이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80년 오월 광주에 우리 이웃이, 친구가, 형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사진첩 넘기듯 보여주면서 그들이 폭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가슴 저미게 자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 저밈이 진정되자, 못된 심보의 나는 역시나 아쉬움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요즘 <화려한 휴가>와 흥행순위 1위를 다투고 있는 심형래 감독의 <디워>에 관한 논란 때문이다.

<화려한 휴가>는 80년 오월 광주가 무슨 이유로 일어났고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때, 그 순간만을 재현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살기 좋은 어느 마을에 갑자기 정체 모를 세력이 나타나 마구 폭력을 휘둘렀고 그 폭력에 대항하다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라는 마치 재난 영화같은 수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 공수부대는 정체 모를 세력이긴 하다. 그냥 전모 장군의 군대였으니까.)

여기서 감독과 제작자의 고민이 눈에 보이는 듯도 했다. 감독과 제작자는 영화의 수위를 고민하다 많은 사람들을 보게 하기 위한 대중성 확보를 우선시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확보한 마치 재난 영화같은 대중성이 영화로 일어나야 할 많은 논쟁들의 깊이를 얕게 만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5.18을 모르던 젊은 세대들과 5.18을 잊고 있던 기성세대에게 80년 오월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만으로도 영화의 공로는 엄청나다. 그 많은 스크린에서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광주를 확인하게 한 것은 얼마나 대단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새삼 감사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개인적인 욕심일지 모르지만 영화가 좀 더 많은 일을 해주면 좋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영화가 실화를 재현했고 그것이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라면 영화가 보는 이들에게 역사의 무게를 깨닫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약간의 손해를 보는 위험을 안고 갈지라도, 약간의 대중성을 놓치고 가더라도 사회에 물음표 하나 던져주기를.

이 아쉬움은 요즘 인터넷에서 가장 큰 화제 거리가 되고 있는 영화 <디워>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 더 해졌다. 애국심을 자극한 마케팅이다, 평론가들이 일반 관객들의 생각을 좌지우지 한다면서 쏟아지고 있는 다양한 <디 워>에 관한 논쟁을 보면서 <화려한 휴가> 뒤에 풀어야 할 광주의 역사는 묻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휴가>에 대한 논쟁이 ’<디워>와 <화려한 휴가>중 어떤 영화가 여름 영화시장에서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을까’ 하는 단순한 숫자놀이 정도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는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의 피를 댓가로 정권을 차지한 영화 속 전 장군(전두환)은 버젓이 살아서 그의 호를 이름으로 삼은 '일해공원'이 만들어지고, 유력 대선후보는 5.18을 사태라고 아무 생각 없이 발언하고, 먼 타국 땅에서 인질로 잡혀있는 우리 국민의 석방에 우리 정부는 무력하게 미국만을 바라보아야 현실에서 지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굴 논쟁의 주인공은 <디워>가 아니라 <화려한 휴가> 여야 하지 않을까.

이제 공은 <화려한 휴가>를 보고 눈물을 흘린 관객에게 넘어온 것이다.
그것이 감독과 제작자가 바라는 바일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그들은 관객에게 공을 던지기로 작전을 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남겨진 일들을 해 나가는 것은 관객의 몫이리라.
어쩌면 그것이 <화려한 휴가>가 남긴 숙제일지도 모른다.

당장 <디워>가 아니라 <화려한 휴가> 의 뒷이야기들이 인터넷 상에서 검색순위 상위에 오르고 , 공중파에서 토론 주제가 되고, 광주의 역사를 되풀이 않는 후보가 유력 대선 주자가 되어야 하는 신드롬이 일어나길 바래본다.

영화 속 신애가 하는 마지막 멘트인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에 울먹였던 관객이라면 이 말을 부채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시작으로 <화려한 휴가>가 이름이 바뀐 ‘일해공원’에서 장기 상영되길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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