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중(에다가와조선학교지원모금 공동집행위원장)


 

조선학교를 나는 한국사회의 구세주처럼 생각하고 있나 보다.
크게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나, 반대로 조선학교를 그렇게 생각해 본 사람도 없을 듯하다. 내 눈에는 온통 그렇게 보인다.

오늘은 정면으로 쓰자.

조선학교는 재일조선인들에게 생명처럼 소중한 존재이고, 향후 재일동포사회의 통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지만 한국사회에도 많은 것을 수혈해 줄 수 있는 귀중한 존재이다. 아직 이것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알기 시작했으니, 그것도 일부에서.

조선학교는 재일조선인사회가 존속 유지되는 근간이다. 조선학교가 없었다면 재일조선인사회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있어도 일부의 미미한 그룹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공동체) 존속만이 아닐 것이다.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를 제쳐두면, 조선학교는 그들 삶의 존재이유로까지 확대된다. 조선학교는 재일조선인들의 희망과 가치의 기둥이다. 종교까지는 아니더라도, 종교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민단과 총련의 통합은 우리의 기대처럼 쉽지 않다. 이쪽의 통일 이후에도 두 조직이 통합되기는 힘들 거라는 전망마저 있다. 이에 대한 세밀한 논의는 피하고, 조선학교가 재일동포사회의 통합의 핵심적 기둥이 되리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학교는 소중한 가치들의 보고이다.
조선학교가 그리된 것은 어쩌면 순리이다. 화강암이 만들어 지듯이.
화강암을 만든 것이 자연이라 한다면, 조선학교를 만든 것을 통틀어 말하면 ‘역사’이다.

 

언어는 늘 구분하니 문제이나, 전회 말미에 조선학교의 가치를 ‘민족’, ‘통일’, ‘공동체’로 정리했다. 강한 민족정신이 있고, 통일에 대한 열망이 있으며, 따뜻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 가치는 그들에게도 소중하지만 한국사회에도 절실히 필요한 가치들이다.

먼저 이 가치들을, 그리고 왜 생기게 되었나를 가능한 간단히 정리해 보자.

‘민족’, ‘통일’, ‘공동체’ 정신은 삶이 창출한 가치

일본과의 민족.역사 문제, 남북의 분단문제, 여기서 파생되는 제반 모순과 고통이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이 땅의 우리가 아닌 일본 땅 안의 재일조선인의 삶에서이다. 만들어 놓은 것은 이쪽인데 실제 고통은 그들이 받고 있다. 그 무거운 ‘역사’의 무게를 하루하루 일상에서 짊어지고 있다. 당연히 이로부터의 해방을 원한다. 전제이자 현실이다.

일단, 일본(식민지)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반쪽 해방’이라 불러야 할까? 예전의 식민지사고와 정책의 근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차별과 탄압’, ‘동화와 배제’라고 말해지는데, 근본에 조선인 멸시사상과 단일민족사상, 신민사상(천황의 신하, 만계일손의 자손)이 깔려 있다. 또 그것이 부활되는 상황이다. ‘반쪽 해방’에서 다시 ‘사분의 일 해방’으로 전환되고 있다.

즉, 일본은 조선인을 부정하고 있다. 혐오하고 없애려하고 동화(‘민족거세’)시키려하고 무시한다.(이를 위해 부정적 이미지를 양산하고 이를 대중에 교육시켰다) 간단하게 말하면 조선 ‘민족’을 부정하는 것인데 이 ‘민족’의 부정은 바로 ‘인간존재’ 자체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동화-민족거세-인간거세’로 연결된 것이다.

따라서 조선학교는 겉으로 민족을 뚜렷이 내세우며 민족을 지켜나가는데 이것이 한 인간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떳떳한 조선인’을 화두로, 실용성이 거의 없는 우리말과 글과 문화를 애써 배우는 것도, 주위 시선과 위험을 감수하며 치마저고리로 민족을 내세우는 것도 민족을 지키는 것이 바로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이를 ‘자아정체성’이라 하면 약하다) ‘민족’과 ‘인권’은 일본 땅의 재일조선인에게는 분리 불가능한 일체의 개념이다. 일본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따라서 조선학교의 제1가치인 ‘민족’은 민족주의라는 이념을 떠나 재일조선인이 처한 현실과 이의 대응과정이 빚어낸 생존의 산물이다. 순응과 도피의 선택지도 있겠지만.

‘통일’은 같은 논지로 전회에서 언급했다. 분단의 고통이 현실에서, 삶에서, 가족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통일은 재일조선인들에게는 해방을 의미한다. 그러니 정녕 간절히 원한다. 재일조선인의 분신인 조선학교에서 통일을 노래하고, 통일을 교육하는 것은 당연하다.

6.15선언의 감격과 이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이 땅의 우리들보다 일본 땅의 재일조선인들이 더 크다. 6.15선언 당시, 일본 땅에서 벌어진 축하 파티는 잊혀지지 않을 장관으로 남아 있다. 그들은 만나면 통일을 말한다. 이는 속에서 해방을 노래하는 것이다.

 

일본이 ‘민족’을, 분단이 ‘통일’을 가져다주었다면, 북조선이 ‘공동체’를 가져다주었다고 도식화해 볼 수도 있다.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이는 북쪽과 마찬가지로 조선학교에서도 지향가치이자 생활의 원리인 듯하다. 개인 성적이 아닌 조 성적을 매기며 개인 표창보다 학교 표창이 선호된다. 조선학교에서 공동체교육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의 공동체정신은 결코 주어진 것만이 아니다. 이것 역시 ‘역사’의 고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길로 재일조선인들이 모든 삶의 현장에서 가꾸고 다듬어 놓은 것이다. 개인이나 이기가 아닌 ‘함께’ 살수 있는 길로.

그들의 일상에 지천으로 널린 예들은 모두 빼고, ‘우리학교’의 한 장면만을 예를 든다.

삿포로조선고급학교 축구부는 일본학교와의 토너먼트시합에서 져 탈락하고 만다. 아이들은 운다. 그 울음은 승부욕에서 비롯된 울음이 아니다. 일본과의 민족감정만도 아니다. 그들 뒤에는 동포 전체가 있다. 늘 고생하시는 선생님들과 같은 형제자매인 전교생과 그리고 그 전교생의 부모들, 학교를 떠 바치고 있는 동포들.

선수들은 그들의 마음에 안고 90분을 뛴 것이다. 평범한 축구시합 하나에도 어쩔 수 없이 재일조선인의 삶과 역사의 무게가 녹아 있지만, 아이들은 내가 아닌 전체를 위해 뛴 것이고,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아이들이 눈물에 담긴 그 마음 무게가 아름다워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이고 하나가 모두이다. 이것은 그들의 생활 속에 내면화되어 있다. ‘더불어 사는 삶’의 ‘공동체’가치가 ‘통일’의 간절한 염원과 생명과도 같은 ‘민족’과 함께 밑바닥에서 합주되어 이렇게 감동적으로 울리는 경우는 결코 흔하지 않을 것이다.

글이 길어지나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사상은 한국불교의 핵심사상인 ‘一卽一切, 一切一卽: 하나가 전체, 전체가 하나’의 화엄사상과 같다는 점과 조선학교 교육이 ‘참교육’을 지나 세계교육사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느낌만은 적어두고 싶다. 교육학자가 연구하면 ‘대박’을 터트릴지 모른다.

 

우리는 조선학교의 가치를 안을 수 있다.

‘민족’, ‘통일’, ‘공동체’ 가치라는 딱딱한 관념어로 조선학교를 정리했으나, 조선학교는 오늘도 살아서 움직인다. 아이들은 오늘도 우리글과 말을 배워가며 ‘민족’의 소중함을 가슴에 안고 또 ‘통일’을 노래하면서, 서로 돕고 아끼는 것의 소중함을 늘 주위에서 접하는 따뜻한 ‘공동체’에서 하루하루를 생활하고 있다.

부모님에게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며, 지금 자신들이 다니는 이 학교를 왜 모두가 ‘우리학교’라고 부르는지도 자연 알게 된다. 또 이런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헌신이 있는지도 알고 있으며, 조국(북쪽)의 고마움에 대해서도 배운다.

‘떳떳한 조선인’으로 바르게 자라, 통일의 일꾼으로 조국에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 하고, 절대 일본사람들에게는 지지 않겠다는 마음도 지니게 된다. 10만 명이 이렇게 배출되었다.(단점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숨을 고르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조선학교의 이런 가치가 그대로 한국사회의 것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학교에 그런 가치를 만들어낸 조건들을 한국사회가 그대로 지닌 것이 아니니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에 ‘그러나’를 붙일 수 있다. 가능하다. 한계는 존재하나 상당 부분 가능할 듯하다. ‘조선학교’를 한국사회가 안을 수 있는 조건들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의 내재적 흐름과 조선학교의 가치가 그것이고, 이것이 만나는 중이다.

우리들은 조선학교에 부담감이나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느끼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인데 이는 별개의 문제로 나중에 언급한다) 예를 열거하지 않겠는데, 조선학교를 접한 한국사회의 반응은 한마디로 뜨겁다. 조선학교에 호의적으로 반응한다.

‘일본의 차별과 탄압 속에서도 60년간 우리말과 글을 지켜왔다.’
이 하나만으로도 한국사회는 조선학교에 뜨겁게 호응한다. 일본은 우리에게 식민지 치욕의 역사경험을 안겨준 ‘심리적 적국’이고, 역사반성 없이 예전으로 회귀하려는 ‘잠재적 적국’이다. 한국사회의 조선학교에 대한 반응에는 일본에 대한 민족정서가 동질감으로 강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예전과는 다르게 바뀐 한국사회도 중요한 배경을 이룬다. 한국사의 전개는 이미 민족통일을 지향하는 큰 흐름에 접어들어 있으며, 무지의 결과인 반공논리는 이제 민족통합논리 속에 묻히고 만다.(“다 이유가 있으니깐 학교에 김정일 김일성 사진이 걸려 있었겠지” -에다가와 조선학교 SBS스페셜 감상문 중에서. 이하 동) 우리의 시대흐름이 민족성을 매개로 조선학교를 연결시키는 중이다. 절대 일부, 일시가 아닐 것이다.

여기에 한국사회의 60년간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이 기름을 붓는다. ‘여지 것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조선학교를 한국사회가 안을 수 있는 조건, 한국사회가 호의적 반응을 보이는 또 다른 조건은 ‘조선학교’ 자체에 있다. 앞에서 언급한 조선학교의 가치가 그것이다.

 

우리들이 민족정서, 민족논리로 조선학교를 접해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가슴을 적시는 것들이 널려 있다. 장님이 아닌 한, 앞이 안 보일 정도의 두터운 색안경을 쓰고 있지 않는 한 모두가 느낀다. 중복되는 설명이니, 이를 뜨겁게 노래하는 수없이 널린 감상문들 가운데 하나를 옮겨본다.

“보는 내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를 사랑하는 순진한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
학생을 진심으로 아끼는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워서...
진정한 학교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조선학교에 대한 우리의 뜨거운 반응은 결국 재일조선인이 모든 것을 바쳐 고스란히 지켜낸 ‘인권’, ‘민족’, ‘통일’, ‘공동체’ 가치가 ‘사랑’으로 한데 어우러진 교향악에 대한 찬사이자 선망이자 ‘하나’가 되고픈 욕구의 표현일 것이다.

조선학교를 보며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

만약 우리에게, 우리사회에 ‘민족’, ‘통일’, ‘공동체’의 가치가 필요하다고, 또 앞으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생길 수 있을까? 재복구가 가능한가?의 문제 역시 심각하게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학교교육에서? 가정에서? 사회가? 운동으로? 아니면 개인의 경험에서 아니면 우연히?
결코 전부라고 봐서는 안 되지만 ‘이기와 탐욕에 찌든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길은 무엇일까.

조선학교는 우리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는 통일교육의 최고 소재만이 아니다. 막연한 표현이나 한국사회의 진정한 해방과 한국사회의 가슴 넓은 확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구세주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가끔 생각한다. 60년간 조선학교에 대한 무지가 오히려 덕이 될지 모른다고.
물론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이 글을 쓰면서 생긴 걱정이다. 지금의 현상들이 ‘조선학교 마니아’ 형성에 그칠지, 아니면 한국사회가 큰 길로 나가는 계기가 될지.

다시 덧붙이며 맺는다.

“조선도 오끼나와처럼 조금만 더 지배했더라면 오끼나와처럼 동화되어 있을 것이 뻔하다.”

일반 일본인의 생각을 인용한 것인지, 본인의 생각을 말한 것인지 기억이 흐릿하나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이다. 그 ‘조금만 더’의 시간이 못내 아쉽다는 문맥이었고, 우리들의 민족심이란 게 대수롭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글이다.

그러나 60년이 지나도록 일본 땅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있는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이 있다. 망령된 일본인들의 의식을 심히 불편하게 만드는 산 증인들이자 살아있는 증거이다.

이 말도 덧붙일까? 깊은 아픔으로. 그렇지 않은 증인과 증거들이 더 많음을.
조선학교는 한국사가, 아니 민족사의 차원에서 반드시 지켜야 될 존재임이 드러난다.

<필자 후기>

긴 글을 읽어주신데 감사드립니다. 먼 이야기일지 모르나, 조선학교가 700만 재외동포를 한데 어울러 진정한 민족공동체를 이루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존재인지, 일본사회를 위해서도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등등은 모두 미뤘습니다.

“황선생이 얼마나 재일동포와 그를 둘러싼 일본사회 상황을 잘 파악하고 계시는지 잘 알았습니다. (일본 내) 많은 사람에게 이글을 소개하자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일본에서 받은 메일이 이 글을 고치고 고치는데 힘이 되었습니다.

1부 연재(4회)를 마치고, 다음은 재일조선인운동사의 권위자이신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의 오규상 선생님의 글 ‘조선학교가 걸어온 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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