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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민족단합대회 개최까지'한나라당 불참해도 대회 치르자' 종단 결정이 분수령
평양=공동취재단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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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6.17  08: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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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일 오후 9시경 백낙청 상임대표가 남측 대표단에게 민족단합대회 개최 합의 사실을 발표하자, 대표단이 박수로 화답했다. [사진-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5일 오전에 치르기로 했던 ‘6·15민족통일대축전’(대축전)의 본행사인 ‘민족단합대회’(단합대회)가 진통 끝에 행사 마지막날인 17일 오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다. 

남·북·해외 대표단은 이날 단합대회에서 “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에 기초하여 민족적단합을 적극 실현해 나간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민족대단합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 남측 대표단은 단합대회와 폐막식을 마치고 아시아나전세기를 통해 오후 1시쯤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앞서 백낙청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와 안경호 북측위원장은 16일 오후 7시13분께부터 30분간 회동을 갖고 남·북·해외 공동위원장 4명과 연설자 3명, 공동선언문 낭독자 3명, 사회자 1명 등 모두 11명만 주석단(귀빈석)에 앉히기로 합의했다. 

남북은 이날 밤 늦게라도 단합대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북측이 참가자 동원 등 실무적인 어려움을 전해와 17일 오전 9시30분께 인민문화궁전에서 대회를 열기로 최종 결정했다.

다만, 남측은 행사가 파행 끝에 열리게 된 점에 대해 남북 위원장이 공식 연설문에서 서로 유감 표명을 하자고 제안했다. 6·15남측위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북측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은 이번에 문제가 된 ‘특정 정당 배제’ 대신, 종단·사회단체·정당대표 등이 모두 귀빈석에 오르지 않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애초 주석단에는 남측 15명, 북측 15명, 해외 10명 등 종단·사회단체·정당 대표 40명이 앉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박계동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3명은 북의 한나라당 정책이 변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회에 참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결국 행사에 불참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백낙청 상임대표는 16일 밤 9시께 공동취재단을 만난 자리에서, “북측은 한나라당만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얘기하고 있고, 결국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참여하기 어렵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남측위원회에서는 한나라당이 참여해주기를 요청했다”며 “그 분들이 참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은 입장대로 이해하겠다”고 밝혔다.

백 대표는 또 “(북측과 합의 뒤) 한나라당 의원들이 원하던 방식이 아니었고, 원래 우리가 원하던 방식도 아니지만 북측도 양보를 해서 한나라당만 빼겠다는 안은 후퇴했으니까 ‘행사에 참석하자, 지관 스님(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포함해 모두 단상 아래에 참석하자’고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했다”며 “한나라당 의원들은 ‘개인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고 당인으로 판단할 때 그건 어렵겠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 대표는 “남측위원회가 특정 정당 배제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받아들인 것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고맙게 생각하고 대회가 원만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번에 북과 이런 합의를 하는데 대해 불만을 가진 분들이 우리 내부에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과정에서 (특정 세력 배제는 안된다는) 원칙을 강조하시던 종단측(불교·천주교·기독교·원불교)·어른들이 어떻게든 대회를 성사시키라고 저한테 권유를 많이 했고, 이것이 제가 결심을 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백 대표는 “처음부터 북측의 제안을 덥썩 받았으면 대회를 빨리 여는 결과가 됐을지 모르지만 우리 내부에 엄청난 갈등이 생겼을 것이고, 이번 대회가 무산됐어도 엄청난 갈등이 생겼을 것”이라며 “지금은 대회를 하는 것이 다른 두 어느 경우보다 더 나은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백낙청 대표와 안경호 위원장은 16일 오전 9시30분부터 13여분간 대표 회동을 갖고 “오후에 단합대회를 여는 쪽으로 최대한 노력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참관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의 주석단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15일 밤까지 ‘특정 정당 배제는 안된다’는 원칙을 고수하던 종단 대표들은 16일 오전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대승적 견지에서 대회가 열린다면 참여해 달라”며 2시간 동안 설득했으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이에 따라 종단 대표들은 한나라당 의원이 불참하더라도 대회에 참석하기로 뜻을 모으고 대회 개최 여부를 백 대표에게 위임했다. 이와 관련해 종단 관계자는 “전날 종단 입장은 우리 성원이 행사에서 배제된다면 6·15선언 정신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종단도 행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이 끝까지 자기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그것을 남쪽에 가서 이용한다면 종단이 원하는 것과 다르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때 주석단에 남·북·해외 대표 4명과 행사진행자 등 11명만 주석단에 앉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북측 고위급 인사와 면담을 갖는 새로운 방식의 대안이 나와 돌파구를 찾는 듯 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다 변형이기 때문에 응하는 게 무의미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측은 오후 2시 안팎에 “박계동 의원을 주석단에 올리면, 한나라당 의원들이 행사에 참가할 수 있냐”며 실무 차원에서 남측에 의사 타진을 했다. 남측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자 북측은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보겠다”고 밝혀왔으나, 5시간 뒤인 7시쯤 최종적으로 11명을 주석단에 앉히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6·15남측위 고위 관계자는 “북측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대회에) 참여시키기 위해 내부적으로 상당한 고심을 하고 내부 논의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남북 위원장 접촉을 마치고 온 백 대표가 ‘누구도 미흡하게 생각하겠지만 (대회 개최를) 결정했다’고 지관스님 등을 찾아가 설명했다”고 전했다. 백 대표는 곧바로 이런 결정을 남측 대표단 전체에 알렸다.

다음은 이번 민족단합대회가 북측의 ‘한나라당의 공동주석단 참여 불가’라는 돌발 상황으로 파행을 빚었다가 마지막날인 17일 대회를 여는 것으로 되기까지의 배경 설명이다.

6·15행사 파행부터 최종강행 배경


6·15공동선언 7돌을 맞아 평양에서 개최된 민족통일대축전 남북해외 공동행사가 북측의 ‘한나라당의 공동주석단 참여 불가’라는 뜻하지 않은 돌발 상황으로 파행을 빚었다.

이에 남측 대표단은 북측의 요구와 태도가 6·15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을 주석단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 이틀간에 걸친 지리한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파행 이튿날인 16일에는 남북 대표단의 입장이 전날과 뒤바뀌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한나라당이 빠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행사는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점차 고조되면서 결국 남·북 대표단 수뇌부가 최종 결단을 내렸다.

▲문제 발단=북측이 이번 6·15민족통일대축전 공동행사를 매우 성대하게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14일 첫날 개막식과 환영연회에 이어 둘쨋날인 15일 오전 본 행사인 ‘민족단합대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행사 진행은 원활해 보였다.

그러나 오전 10시40분 북측 안경호 위원장을 포함한 공동주석단이 무대 뒤에 줄을 서서 입장하려는 순간, 북측 주최측이 행사 진행을 돌연 중단시키면서 행사는 파행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북측이 행사를 중단 시킨 명목상 이유는 한나라당 의원이 공동주석단에 올라가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북측은 한나라당이 6·15공동선언을 지지한 적이 없고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대회 참여는 몰라도 주석단에 올리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집한 것이다.

하지만 백낙청 상임대표를 비롯한 남측위원회의 입장은 모든 계층과 사상과 이념을 떠나 모든 세력이 함께 하자는 것이 6·15정신이고, 6·15남측위원회 규약상에도 엄연히 정당과 종교, 시민사회단체 등이 포함돼 있는 만큼 한나라당이나 정당을 배제하고 갈 수는 없다는 원칙을 강하게 고수하며 맞섰다.

특히 남측은 전날 개막식과 환영연회에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이 공동주석단에 포함됐고, 지난 2005년 6·15행사 때도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공동주석단에 앉았던 사례를 들며 북측을 압박했으나 북측은 이에 대한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하면서도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북측이 ‘한나라당 때문에 6·15행사를 망쳤다’는 점을 부각시켜 올해 대선 정국에서 한나라당을 곤란에 빠뜨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남측준비위 관계자는 “북측이 개막식 때 박계동 의원이 주석단에 포함된 것에 대해 당시 정신이 없어서 몰랐다고 하는데, 그건 말이 안된다. 결국 북측은 이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우리가 무슨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며, (북측이) 가만히 있는 우리를 왜 붙잡고 늘어지느냐”며 “한나라당을 배제하고 행사를 치르겠다고 결정한다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행사 불참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며 버텼다.

북측은 오후 늦게 남·북·해외 공동대표 4명과 연설자·사회자 등 11명만 올라가고 나머지 공동대표들은 일반석에 앉는 ‘절충안’을 내놓기는 했으나, 한나라당 의원을 주석단에 올리는 문제에 대해선 양보하지 않았다.

이에 남측위원회와 한나라당 의원들도 6·15정신과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완강히 거부해 결국 이날 6·15본행사는 무산에 이르렀다.

▲절충 과정

6·15행사가 돌발적인 파행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여론이 악화되고 대회 참가자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이튿날인 16일 남·북측 대표단의 입장은 전날과 180도 뒤바뀌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즉 전날 상황은 북측이 한나라당을 포함시킬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 남측은 한나라당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대치 상황이 벌어졌었다.

그러나 이날 남측위원회의 입장은 한나라당이 계속 불참을 고집한다면 제외하고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바뀐 반면, 북측이 오히려 어떤 형태로든 한나라당을 포함시켜 행사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적극적 입장으로 변한 것.

이에 따라 북측은 이날 ‘북측 고위급 인사와 한나라당 의원간 면담+11인 주석단’ 등 한나라당이 참여할 수 있는 몇가지 방안을 직접 제시하는가 하면, “공동주석단으로 하면 한나라당이 참여하겠느냐”고 의사타진을 해오는 등 한나라당 참여에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 행사 개최 여부에 대한 결정이 오후 7시를 넘기게 됐다.

이런 북측의 전향적 태도 때문에 남측준비위 관계자들 사이에는 한때 공동주석단이 모두 올라가는 원안대로 행사가 개최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나돌기도 했다.

6·15남측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오늘 상황은 남측위원회가 버텨서 늦어진 게 아니라, 북한이 한나라당을 참가시키기 위한 여러 안을 놓고 6~7시간 동안 심각한 내부논의를 하느라 결정이 지연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측은 이날 하루 종일 한나라당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과 그에 따른 파장을 놓고 내부 의견조율과 고심을 거듭했지만, 결국 이날 오후 7시30분께 한나라당은 물론 다른 공동대표들도 모두 함께 제외한 ‘11명의 주석단’ 방안을 최종 입장으로 정리해 통보했고, 남측이 이에 대한 자체 논의를 거쳐 수용키로 방침을 확정했다.

북측과 달리 남측위원회의 경우 이날 일찌감치 한나라당이 참가하지 않아도 대회를 개최한다는 내부적인 방침이 정해져 있었다. 이는 다른 공동대표들의 대회 성사에 대한 요구가 빗발친데다, 특히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한 4대 종단 대표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찾아가 2시간여 설득했으나 실패하자 “한나라당이 빠져도 행사를 치르자”는 쪽으로 입장이 바뀌는 등 여론이 변하면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

종단의 경우 전날까지만 해도 특정세력을 배제하는 것은 대단합의 원칙에 맞지 않고 북측의 태도가 온당치 못하기 때문에 우리측 원칙을 북측에 잘 얘기해서 설득해야 된다는 입장을 견지했으나, 16일에는 북측도 자초한 상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만큼 겪었고 무엇보다 대회 성사가 중요한 만큼 한나라당이 빠져도 행사는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백낙청 상임대표는 대회 강행 최종방침을 밝히면서 “종단측 어른들이 전날 남측준비위가 대단합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준 것을 평가해주면서도, 이제는 대회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해준 것이 결단을 내리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대회 강행 결단 배경과 각측 입장

우선 남·북 대표단 양측이 모두 이번 6·15공동행사를 치르지 못하고 무산됐을 경우 뒤따를 파장에 대한 부담이 대회 강행 결단을 내리는 데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남측 행사 참가자들 사이에는 “특정 정당이나 세력을 배제하는 이런 식으로 행사가 진행되고, 행사가 아예 열리지 못하면 내년부터 6·15대축전 행사가 지속될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또 대회가 무산될 경우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부각되고, 그럴 경우 종교계-민화협-통일연대 등으로 크게 구성돼 있는 6·15남측위원회의 존속마저 흔들릴 위기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측 입장에선 ‘6·15 지지 세력 결집과 수구 세력 배격’이라는 정치적 논리를 관철시키려 했다가 역풍을 맞을 조짐이 보이는데다, 6·15행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표적 업적 중 하나로 대회성사가 중요하다는 부담감도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러나 북측은 잘못된 셈법인 줄 알면서도 치열한 내부논의 끝에 체면을 구기기 보다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데 따른 비판을 감수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셈이고, 남측도 북측에 원칙 준수의 중요성을 충분히 전달한 만큼 이제 대회 성사도 중요하다는 각계의 입장을 수렴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측의 결단에는 무엇보다 종단의 입장 선회 및 지지가 크게 작용했다.

남측위원회 관계자는 “북측이 오늘 하루 한나라당을 참여시키기 위해 상당한 고심과 내부논의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측이 아마 내일 행사가 늦어진 데 대해 적절히 유감의 뜻을 표현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백낙청 상임대표는 남측준비위의 대회 강행 방침 최종 결정 직후 한나라당 의원들을 찾아 행사 참여 설득 겸 양해를 구했으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같은 남측위원회 결정에 대해 3가지 입장을 거론하며 행사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남측위원회가 원칙을 지키기 위해 힘쓰고 노력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며, △우리의 불참은 남측위원회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북측의 한나라당 정책에 대한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만큼 대회에 참석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첫날 우리와 뜻을 함께 해 원칙을 지키는 결정을 해준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하며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행사에 참여하는 게 좋겠다는 등 입장을 밝혔다.

백낙청 상임대표는 “남측위원회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원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북측도 양보한 측면이 있으니 함께 참여하자고 했다”며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개인 차원이 아니고 당 차원의 판단이어서 참여가 어렵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이날 밤 기자간담회를 자청, “어제 우리도 참여 않겠다고 한 것은 북측의 조치가 잘못이라는 데 대한 의사표시와 함께 상임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생각에서였다”며 “그러나 6·15취지에 맞게 열리고 지도부 의사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참여키로 했다”고 행사 참여 입장을 밝혔다.

(평양=공동취재단)

다음은 6.15대축전에서 민족단합대회가 우여곡절 끝에 열리게 된 과정까지 주요 인사들의 입장과 평가에 대한 발언들이다.

6.15대축전 평가 멘트 모음

6.15공동선언 발표 7주년을 맞아 14일부터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이 우여곡절 끝에 17일 오전 본대회 격인 민족단합대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당초 예정된 15일에서 이틀을 넘긴 시점이다.

16일 오후 9시 백낙청 6.15남측위 상임대표는 남측 대표단 앞에서 북측과의 협상 결과를 밝히며 “어쨌든 이번 6.15는 무산시키지 않고 성사시킨다는 것”이라며 민족단합대회 개최 합의를 발표했다.

알려진대로 북측이 한나라당 의원의 주석단(귀빈석) 배치를 문제삼아 남북간 합의점을 찾기 어려웠고 남측 대표단 내부의 의견 조율도 쉽지않아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은 뒤였다.

▲총평

백낙청 상임대표는 16일 밤 기자단에게 “처음부터 북측의 제안을 덥썩 받았다고 하면 대회를 빨리 여는 결과가 됐을지 모르지만 우리 내부에 엄청난 갈등이 생겼을 것이고, 이번 대회가 무산됐어도 엄청난 갈등이 생겼을 것이다”며 “지금 대회를 하는 것이 다른 두 어느 경우보다 더 나은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총평했다.

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은 “북한도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최선의 상황으로 갔으니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한 소식통은 “정치인들 때문에 대회가 많은 상처를 입었고 6.15, 8.15 공동행사가 해결해 나가야할 많은 숙제를 남겨준 대회다”고 평했다.

6.15남측위 정현곤 사무처장은 “대회 명칭처럼 민족대단결의 실현을 진통 속에서 극복하고 대회 성사로 완성한 것이 이번 6.15 7주년 행사의 요체”라며 “통일운동 주체의 폭과 깊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된 첫 대회로서 앞으로 내용적인 도약의 계기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정 처장은 “대외적 정세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긍정적으로 명백하게 가시화된 시점에 치러졌는데도 이렇게 진통을 겪는 과거 낡은 관행을 벗지 못한 한계가 있다”며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당국 관계와 민간관계가 동시발전해야 한다는 원칙이 다시금 심판대에 올랐으나 이를 극복하지 못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입장과 태도

6.15남측위 대표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회가 성사된 데 환영의 뜻을 표했으나 6.15행사가 ‘정치판’으로 변질된 데 대해서는 유감을 표시했다.

6.15남측위 공동집행위원장 정인성 원불교 교무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철저히 당리당략으로 일관했다”며 “참가자들의 열망을 무시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6.15남측위 고문인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북측이 한나라당 의원의 행사 참석을 막은 게 아닌만큼 한나라당을 배제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정치적 효과를 노려 행사 참석을 거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 입장과 태도

주석단 배치에 대한 사전 합의를 깬 북측에 대해서도 비판의 화살이 돌려졌다.

백낙청 상임대표의 대회 개최합의 발표 직후 김정수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공동대표는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한 데 대해 북측의 해명을 들어야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전날 “북측이 무리한 요구를 했다”며 “북측이 구미에 맞는 사람들과만 일을 하겠다면 과거 시대처럼 남측의 민간 통일운동이 축소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6.15남측위 핵심 관계자는 “결국 최종적으로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북측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내부적으로 상당한 고심을 하고 내부논의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측의 노력을 평가했다.

한 소식통은 북측의 입장에 대해 “북측은 높은 차원의 정치적 조율 거친 것 같다”며 “6.15 반대세력을 배제하겠다는 북측 상층부의 의지가 분명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논란의 당사자가 된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은 “북측은 한나라당에 대해 선택적 배제를 하고 있으며 흑색비방을 계속하고 있다”며 “이는 남남갈등을 증폭시키려는 북측의 전략이기 때문에 호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과제와 전망

6․15 남측위 관계자는 “남측 내에서 이번 대회 과정과 관련해서 평가들이 다르고 입장들도 다르다”며 “전체적으로 조율되고 남측위에서 공식적인 평가가 나오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고 말했다.

정현곤 6.15남측위 사무처장은 “6.15남측위 조직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남쪽에 내려가면 여러 불만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과의 협의가 어려움에 처하자 남측 내부의 이견과 갈등도 나타났다.

15일 백낙청 상임대표의 남측 대표단을 상대로 한 경위 설명의 자리에서부터 두 차례의 공동대표자회의를 비롯해 16일 밤까지 이어진 다양한 남측 내부의 논의의 자리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김민하 6.15 남측위 고문은 “6.15남측위는 공동대표제인데 백낙청 상임대표가 공동대표나 고문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집행부와만 상의해 결정했다”고 조직 내부 민주적 절차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 6.15 민족통일대축전은 2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이 대북 쌀차관 제공을 유보함으로써 사실상 결렬돼 2005년 6.15 공동행사 이후 민간행사에 함께 해온 당국 대표단이 참석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당국간 관계가 민간행사의 부담으로 작용했고, 이것이 다시 당국간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평양=공동취재단)

다음은 민족단합대회가 파행에서 개최 결정이 나기까지 15-16일 사이의 상황 설명이다.

15일~16일 파행에서 대회 개최 결정까지


<15일 상황>

6.15공동선언 발표 7주년을 맞아 15일 오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남과 북, 해외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던 ‘민족단합대회’가 우여곡절 끝에 17일 오전에 열리게 됐다.

15일 6.15남측위원회와 6.15북측위원회는 아침까지 대회장에서 쓰일 문건에 대한 협의를 마무리짓지 못해 예정 시간인 오전 10시를 넘겨 10시40분경 인민문화궁전에 모인 2천여 평양시민들의 박수 갈채 속에 자리를 잡았다.

장내가 정돈되고 남.북.해외 주석단(귀빈단)이 대회장으로 입장하려는 순간 북측이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을 주석단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다각적인 실무협의를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자 정오경 6.15남측위원회 백낙청 상임대표와 6.15북측위원회 안경호 위원장은 단독 회동을 갖고 상황돌파를 시도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백낙청 상임대표는 12시 25분경 남측 대표단에게 대회가 ‘일단 무산’되었음을 알리고 의견수렴을 위해 공동대표자회의를 소집해 대회가 열려야 한다는 쪽으로 공감대를 모았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 의원이 주석단에 오르지 못하면 행사 자체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에 대한 공동대표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공동대표자 회의에서는 백낙청 상임대표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북측과 협의를 더 진행하기로 했다.

이어 점심을 건너뛴 채 오후 2시 22분경부터 다시 남북간 실무접촉과 오후 3시 55분경 또 한 차례의 남북 위원장(상임대표) 회동이 이어졌지만 방안을 찾지 못했다.

남측 대표단은 오후 7시 25분 또 한 차례의 공동대표자회의를 열고 갑론을박을 벌였으며, 종단 대표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종단 대표들도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측은 남북해외 공동위원장 4명이 참석하는 회의 개최를 제의했으며, 안경호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일단 저녁식사를 하고 협의를 계속하자”고 제안해 모든 나머지 공동위원장들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오후 7시 50분경, 9시간여에 걸친 길고 긴 하루가 막을 내렸다.

옥류관에서 냉면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남북 대표단은 숙소에 돌아왔으나 예상과는 달리 밤새 협의를 진행하지 못했다. 남북 모두 이날 벌어진 기나긴 과정을 총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당장 상황 전환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16일 상황>

회담 3일째인 16일 오전 9시 30분경 남북 위원장(상임대표) 회동이 10여분간 진행돼 이날 중으로 민족단합대회를 개최하자는 의지를 확인하고 오전에 참관을 진행키로 했으나 역시 한나라당 의원의 주석단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종단 대표들은 아침부터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대승적 견지에서 대회에 참여해주길 2시간여에 걸쳐 간곡히 설득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종단 대표들은 한나라당 의원이 불참하더라도 대회에 참석하기로 뜻을 모으고 이후 대회 개최 여부를 백낙청 상임대표에게 위임했다.

오후 들어서 남북해외 대표 4명과 행사 진행자 등 11명만 주석단에 앉히고, 대신 한나라당 의원들의 명분을 세워주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과 북측 고위급 인사와 면담을 갖는 방식의 새로운 대안이 제시돼 돌파구를 찾는 듯 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같은 방안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후 2시가 넘어서부터는 북측이 한나라당 의원을 주석단에 올리는 원래의 방안을 다시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기대감이 살아났으며, 오전에 만경대고향집과 김원균 명칭 평양음악대학을 참관한 대표단은 점심 식사후 다시 숙소인 양각도 호텔에 돌아와 오후 4시 10분경부터 남북간 실무협의를 진행하는 등 긴밀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그러나 예상 외로 합의점을 찾았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은 가운데 다시 지루한 대기 시간이 5시간이나 이어지다 오후 7시 13분부터 30분간 백낙청 상임대표와 안경호 위원장이 단독 회동해 결국 남북해외 공동위원장 4명과 연설자 3명, 선언문 낭독자 3명, 사회자 1명 등 11명 만이 주석단에 앉는 방식으로 이날 중 대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또한 남측은 남북 위원장(상임대표)이 행사가 파행 끝에 열리게 된 점에 대해 연설 중에 사과하자고 제안했다.

백낙청 상임대표는 이같은 합의사실을 먼저 종단을 대표하는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에게 설명한 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알리고 대회 참가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기자들에게 전체 경과를 설명했다. 이어 백 대표는 남측 대표단 전체를 상대로 합의 과정과 내용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9시경 백 대표의 기자 브리핑 도중 북측은 대회에 참가할 북측 대표단과 평양시민들을 모으는 문제 등 실무적 준비가 어렵다고 알려와 대회는 다시 하루를 넘긴 뒤 17일 오전 10시경에서 열릴 수 있게 되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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