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과 미국을 다녀와 대권도전을 저울질하는 것으로도 보이는 이해찬 전총리가 23일 ‘4단계 통일론’이란 것을 제시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의 통일론은 1단계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공고히 하고 2단계로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이룩한 후 3단계로 남북연합을 거쳐서 4단계의 남북합중국 또는 통일한국으로 가는 것이라 한다.
지난 달 9일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가 남북경제공동체건설을 제 2단계로 설정하는 3단계 통일론은 내놓았을 때 필자는 이 란(‘한나라당의 대북정책 고민’ 4월23일자)에서 ‘현실을 모르는 공론’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전총리가 제시한 한반도 경제공동체는 상품과 자본 이동의 자유화로 시작하여 노동 이동까지 발전시키며, 한국의 자본ㆍ기술과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하는 역외가공지역을 운영함으로써 대륙과 연결되는 물류망을 활용한다는 등 박근혜 구상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성이 없기는 매일반인 것 같다.
필자는 이미 오래 전에 남북한 사이에 우선 식량공동체를 형성한 다음 의료공동체를 만들어 남북한 사이에 적어도 굶어 죽거나 의사나 약이 없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한정된 분야에서 남북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은 쌍방당국이 합의하면 능히 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치체제뿐 아니라 경제체제마저 근본적으로 다른 남북한 간에 포괄적인 경제공동체를 건설한다는 것은 이상은 좋으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통일 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지금까지 나온 여러 통일방안은 대체로 그 과정이 3단계로 구성돼 있는데 이 전 총리는 한 단계 더 많은 4단계 통일론을 내놓았다. 통일론으로서 그것은 좀 더 후퇴한 것이다. 그리고 유럽의 경험에 비추어 남북한이 공동체에서 연합까지 가는데 최소한 40년이 걸릴 것이라 했는데 그것은 통일론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긴 세월이다.
물론 반세기 이상 굳어진 분단을 한칼에 무 베듯 통일할 묘안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분단이 이미 60년 이상 굳어졌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통일론은 가급적 단시일 내에 실현가능한 것이어야 그 의미가 있다. 적어도 우리 당대에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전제에 서야만 통일론은 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40년 후에는 남북이 모두 이미 100년의 역사를 지닌 나라가 되는데 무엇이 아쉬워 두 나라를 하나로 합치려 하겠는가? 그런 방만한 통일론은 사실은 통일할 생각이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긴 세월이 걸리는 통일론을 펴는 이유로 이 전 총리는 독일, 베트남, 예멘 등이 준비 없이 단기간에 통일되어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는 예를 들었다. 그러나 통일을 포함해 모든 정치변혁에는 혼란과 갈등이 따르게 마련이다. 물론 그것을 가급적 최소화해야겠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통일로 인한 혼란과 갈등이 아무리 큰들 분단 그 자체에서 오는 혼란과 갈등보다 더 클 수야 있겠는가?
6.25의 참극을 겪은 우리는 통일이 아무리 급해도 전쟁은 안 되며 평화통일만이 우리가 갈 길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평화통일이라고 꼭 수십 년이 걸려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10년 이내에도 못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마음이다. 지금 한국의 지도자들에게는 통일을 자기 당대에 반드시 이루어야겠다는 결심이 없다. 분단체제하에서 자기가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버릴 용의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한반도 분단현실에는 남북뿐 아니라 미국이 개재돼 있다. 통일은 남북 간에 해결할 문제인데 남한은 북한의 철천지원수인 미국과의 종속적 동맹관계에 매달려 있다. 그래서 동족 간 문제인 남북관계가 제대로 풀릴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남한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에 미국이 노골적으로 제동을 걸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의 2.13합의를 이행하기 전에는 이미 약속된 대북 쌀 지원도 미루라는 미국의 압력을 한국정부는 물리치지 못하고 있다. 2.13합의의 전제로 북한에게 약속한 금융제재의 완전한 해제를 미국이 이행 안 한 채 북한 측 약속만 지키라는 부당한 압력에 한국도 가세하라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종속적인 한미관계에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내 놓는 소위 신중한 통일론이란 것은 모두 잠꼬대 같은 통일론이 될 수밖에 없다.


통일방안에서 경제도 분명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통일론 중에서 진정 민족의 역량을 고려한 경제통일 방안이 있었나요? 흡수통일론적 관점에서 또는 연합론(사실상의 2국가)의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봤지요. 그러니 답답한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그나마 경제문제도 미국과의 정치군사적인 문제 때문에 막히고 있는데 통일론을 보면 경제이야기 뿐이네요.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