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통일뉴스 상임고문/재미자유기고가)

한나라당이 최근 대북정책 문제로 고민에 쌓여있는 듯하다. 원내 제1야당이 민족 최대의 과제를 풀기 위해 애쓰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한나라당의 속셈이 반드시 순수한 것만은 아니란 점에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3월초 ‘대북정책 패러다임 재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설치하고, 북한실체 인정, 남북 간 상호 대표부설치, 전시작통권 환수 인정, 인도적 대북지원과 경협 확대, 평화체제 구축 및 남북정상회담 찬성 등 한나라당으로서는 가히 획기적인 정책전환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한 달도 못된 4월 2일 그 태스크포스와 정책구상을 전면 거두어들이고 ‘평화통일정책 특별위원회’란 모호한 조직으로 대체해 버렸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난 4월 9일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라는 박근혜 전 대표는 ‘3단계 평화통일론’이란 것을 내놓았다. 1단계로 북핵을 제거하고 군사대립구조를 해소함으로써 평화를 정착시키고 2단계로 남북경제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경제 통일을 이루면 3단계의 체제와 영토를 합치는 정치적 통일은 ‘저절로 다가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현실을 모르는 공론이다.

같은 자리에서 그녀는 또한 북한은 선군정치를 버리고 선민정치를 하라고 요구했으며 북의 약속위반에는 불이익을 줘야하며 미국과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법치주의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전한 친미반북론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4.19혁명 47주년이 되는 4월 19일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대북정책기조 수정방침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버렸다.

이 자리에서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거나 헌법의 영토조항을 수정하는 문제와 보안법의 전면개정 문제 등을 논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며 남북정상회담에 반대할 필요가 없으며 당내에 대북접촉창구를 설치하고 국회에 남북친선협회를 창설하자는 제안도 있었다한다. 또한 한나라당이 남북관계에 있어서 ‘발목잡는 정당'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가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한다.

그러나 북한은 변한 것이 없는데 대북정책을 바꾸면 안 된다, 헌법의 영토조항 수정은 통일에 역행하는 것으로 불가하다, 대북정책 수정은 대선에서 역이용 당할 수 있다, 심지어는 ‘친북좌파세력의 잔칫상에 숟가락 들고 들어갈 수 없다’는 등 ‘수구꼴통’들의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한다.

한나라당은 왜 대북정책 현실화를 두고 이토록 고민해야 하는가?

그 첫째 이유는 그 정당이 박정희 등 일단의 정치군인들이 만들고 이끌어 온 독재정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군인들은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이 두려워 이를 훼방하기 위해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4.19혁명으로 민중이 수립한 정통민주정부를 뿌리도 내리기 전에 짓밟아 버리고 장장 30여 년간 맹목적 반북정책을 강행했던 것이다.

둘째로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재검토는 민족의 항구적 안전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금년 말 대선을 염두에 둔, 즉 집권을 위한 정치적 야욕을 채우기 위한 일시적 방편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을 우롱하자는 것으로 그 동기가 매우 불순하다.

셋째로 한나라당이 이제 와서 황급하게 대북정책을 재조정하려는 것은 6자회담의 2.13 합의 이후 미국정부가 취한 대북포용정책 전환을 보고, 그들 중 모 의원의 말처럼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친북좌파 세력’에 의한 반미-반국가행위라고 매도하면서 최소한의 협력도 철저히 거부해온 한나라당이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의 대북자세가 바뀌니 이에 따라야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숭미사대의 결정판이다.

한나라당에게는 무엇보다 먼저 그간 일관되게 유지해온 비이성적 반북-반통일 자세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 사람들도 우리들’이라는 진리를 깨우쳐야 할 것이다. 북한사람들은 미국의 힘에 눌려 고통을 받고 있는데 우리만 미국에 빌붙어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고쳐야 한다. 또한 벌써 11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우리 땅에는 계속 외구군대가 주둔하고 있는데 이것은 민족적으로 매우 수치스런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올바른 대북자세를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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