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민족과 운명`이 북한 영화사에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김정일 총비서가 직접 제작에 간여한 마지막 영화라는 점이다.

김 총비서는 60년대 후반경부터 영화제작에 직접 나섰다. 시나리오 점검, 출연배우와 연출가 캐스팅, 필름편집 등까지 일일이 챙겼다.

지난 73년에 나온 `영화에술론`은 김정일 총비서의 영화에 대한 관심과 역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민족과 운명`시리즈는 바로 김 총비서의 `은퇴작`인 셈이고, 그래서 북한영화사에서 커다란 획을 긋고 있는 것이다.

`민족과 운명` 시리즈가 북한영화사에서 가지는 두번째 의미는 북한영화사상 최대의 물량이 투입됐다는 점이다.

기획단계에서부터 `민족과 운명 창작 국가준비위원회`라는 일종의 테스크 포스가 구성돼 국가적인 사업으로 제작된 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가 국가 주도의 문화상품으로 제작되는 북한체제의 특성이 아니면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민족과 운명`시리즈에 대한 김정일 총비서와 북한영화관계자들의 관심과 의욕을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

김정일 총비서의 지시에 따라 조직된 이 위원회는 `영화부문 간부, 정무원(현 내각) 산하의 부(성), 위원회 책임간부로 구성된 세계 영화역사에서  찾아볼수  없는 강력한 창작집단, 창작보장집단`으로 소개됐다. 홍영희 오미란 이춘구 김세륜 엄길선 둥 북한의 내노라 하는 배우 감독 시나리오 작가들이 대거 이 영화에 출연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 총비서도 각 기관 공장 기업소 등에 영화제작에 필요한 물자와 자재들을 제때에 공급하도록 직접 날짜까지 지정해 주었으며 촬영설비 등 기자재 교체 및 제작진에 대한 식품공급에 사용토록 거액의 `혁명자금`(격려금)을 위원회에 보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과 운명`이 북한영화사에서 가지는 세번째 의미는 소재와 주제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점이다.

영화 곳곳에 남한의 카페 모습이나 대중가요 등이 들어간 것 뿐 아니라 미국식 자본주의 상징인 `빨간색 스포츠 카` 등이 등장한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특히 영화계 뿐 아니라 전체 문예계의 최대 금기사항이었던 `반체제 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은 북한 문화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질적인 문제점이던 소재와 주제의 다양화를 `반체제 인사`를 다루면서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반체제 인사는 `한설야`(韓雪野)로,  60년대 초반 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을 지내다 김일성 주석과 정치노선의 차이로 권력 핵심에서 밀려난 카프출신의 작가이다.

북한에서 `반체제 인사`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이 시리즈가 처음인데 이것은 체제에 대한 자신감과 김정일 총비서 통치철학의 하나라는 `인덕정치`의 한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이 시리즈의 주인공을 보면 1~4부는 전 천도교령 최덕신(崔德新), 5부와 14~16부는 작곡가 윤이상 (尹伊桑), 6~9부는 국제태권도 연맹회장 최홍희(崔泓熙), 10부는 전 남한 중앙정보부의 프락치라는 홍영희로 돼 있다.

11~13부는 북송된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이, 17~18부는 북한  여류명사이자 해방정국의 거물이었던 허헌(許憲)씨의 딸 허정숙이, 19부는 일제에 끌려간 종군 위안부들이, 20~24부는 북송 일본인 처들이, 25~33부는 북한의 노동자들이, 34~42부까지는 이찬 한설야 등 카프작가들이, 43부부터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빨치산  동료이자 북한 정권의 원로들인 최현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제작 당시의 남북관계나 대내외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결정되기도 했다.

이인모 노인이 93년 비전향 장기수 북송문제가 남북관계의 현안으로 떠올랐을 때 주인공으로 선정된 것이 이의 대표적인 예이다.(연합뉴스 최척호기자 200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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