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평택 팽성읍 대추리에서 평택미군기지반대 마지막 주민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평택극장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이 낯익다. 대추분교가 무너지던 날 새벽을 함께 맞았거나, 주민촛불문화제에서 가끔 마주쳤던 얼굴들이다.

이들 모두 대추리에서 열리는 마지막 주민촛불문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추리행 16번 버스. 대추리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원정삼거리에서 경찰에 수도 없이 막혔던 이 버스는 얼마 후면 사라질 지도 모른다.

버스에 오른 이들이 습기 찬 창문을 닦아 바깥 풍경을 유심히 눈에 담는다. 지난 여름 평화순례 때 줄지어 걷기도 하고, 원천봉쇄된 대추리를 향해 깃발을 들고 뛰기도 했던 길이다.

대부분의 논들은 진갈색 속살을 드러내고 볍씨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짙은 안개를 뚫고 들어선 황새울은 여기저기 미군기지 확장공사를 위한 도로개설 작업으로 논의 면모를 거의 잃어가고 있었다.

"막상 끝난다니 서글픈 마음 그지없다"

▲ 대추리 기념관 앞에서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문정현 신부.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24일,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의 촛불문화제가 935일째로 마감된다. 정부와 합의한 이주 시한도 일주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40여 가구 중 지금까지 이사를 한 가구는 단 한 가구뿐이라고 한다.

한 주민에게 이사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는지 물었다. "준비할 게 뭐가 있나, 하기 싫으니까 밍기적 밍기적 하는 것이지". 정든 마을을 떠나야 하는 착잡함이 묻어났다.

마지막 대추리, 마지막 촛불을 가슴 속에 새기기 위해 모인 이들의 마음도 매 한가지처럼 보였다. 행사 시작보다 일찍 도착한 학생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마을 곳곳을 카메라에 꼼꼼히 담기도 하고, 나뭇가지나 돌멩이를 줍기도 한다.

대추리에 사시는 송재국 할아버지는 이날 촛불문화제가 마무리되는 것에 대해 "어차피 끝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제 막상 끝난다니 서글픈 마음 그지없다"며 "뭐 잊어버린 사람처럼 저녁에 잠도 못자고 그런다"고 심정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대추리에 살면서 맺은 모든 인연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면서 "이사해도 행사나 집회가 있으면 한 자리라도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

다들 답답함을 마음 한쪽에 담고 있으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이들을 보며 반가워했다. 대추리가 맺어준 특별한 인연이다. 서로 부둥켜안기도 하고 한쪽에서는 이야기꽃도 폈다. 덕분에 마지막 촛불행사를 앞둔 대추리도 오랜만에 활기찼다.

▲오후 4시 열린 '거기 마을 하나 있었다' 출판기념식 및 헌정식에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는 방승률 대추리 노인회장.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오후 4시 반부터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출판기념식이 열렸다. ‘들사람들’과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문예단체가 대추리.도두리 마을 곳곳에 새겨놓은 글귀를 모아 ‘거기 마을 하나 있었다’라는 책을 펴낸 것이다.

갓 출판된 이 책을 주민들에게 헌정하는 행사였지만, 주민들이 얼마 있지 않아 정든 고향을 떠나야한다는 현실에 주민들과 참가자들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대추리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방승률 할아버지가 감사의 말과 함께 심정을 밝혔다.

“남은 주민들이 힘이 모자라, 시민단체에서 우리를 돕고 싸워온 것도 잘 몰라주고 이 고향을 떠나려는 이 순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여러분들이 물심양면으로 참여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이 고장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주민을 대표해 사과드린다”.

방 할아버지는 “일제에서 36년 탄압받고 살아왔고, 미군이 60년이면 100년을 외국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살았다”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다. 젊은 세대들이 방방곡곡 일어나야 외국의 지배를 안 받고 살 수 있다”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작가들의 시낭송이 이어지고, 노래공연이 진행되면서 몇몇 주민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 옆에 있던 참가자들이 주름진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도두리가 고향인 가수 정태춘 씨는 “주민들이 새 마을로 이사를 가면 몇몇 작품들은 포크레인에 의해 무너지게 될 것”이라며 “여기서 무너지는 집들과 함께 예술인의 작품도 묻혀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쉽게 떠나지 못한 촛불 행사장

▲ 이날 촛불문화제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대추리 할머니들에게 디딤돌상을 수여했다.
[사진-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해가 어둑어둑해지자, 참가자들은 주민들이 마련한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정부와 한판 큰 싸움이 있을 때마다, 자신들을 위해 싸워준 이들과 음식을 함께 나누는 풍경은 그동안 대추리가 가진 공동체의 큰 힘이었다. 그 맛도 주민들과 힘든 하루를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대추리 주민촛불문화제 마지막 날, 오후 7시 행사장인 농협창고는 400여 참가자들의 촛불로 가득 찼다. 촛불행사는 여느 때와 같이 활기차게 시작했다. 지난 수년간의 싸움을 함께 한 이들이 무대위에 올라 주민들에게 노래 공연을 선사했고, 곳곳에서 웃음소리도 흘러 나왔다. 각계에서 주민들에게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광화문에서 13일째 한미FTA반대 단식농성 중인 통일연대 한상렬 상임대표의장은 “주민들은 생애 가운데 최고의 삶을 사셨다”며 “주민들이 만든 불씨가 이 땅 참다운 삶의 모든 투쟁의 불씨가 되어 어디서나 타오를 것”이라며 주민들에게 힘을 실었다. 민중연대 정광훈 상임대표,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도 이 싸움이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대추리 신종원 이장도 각계의 격려에 “10년 후에 이 땅에서 여러분과 함께 대추리.도두리를 건립할 수 있을 때에 여러분도 잊지 말고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아무리 처절한 상황에서도 눈물보다 웃음을 짓게 한 것이 그동안 대추리.도두리의 촛불문화제의 힘이었다. 그 힘으로 주민들은 지금까지 정부에 맞서 버텨왔고 마지막 날까지 유효했다. ‘들소리 방송’이 만든 영상에서 한 주민의 “하루라도 촛불집회에 안 나가면, 대추리를 나가는 것 같다”는 말에서 촛불집회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촛불행사가 끝나 갈 무렵 문정현 신부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정부를 향해 “두고 봐라. 그때 너희들의 부끄러움이 속속들이 들어날 것이다. 그때는 우리 주민들이 승리자”라며 “정부의 야만이냐, 평화의 촛불이냐. 이제 싸움의 시작”이라며 소리를 높였다.

이어 문 신부가 주민들을 모두 단상 위로 불러 모았다. 참가자들 일부는 주민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미군기지에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우며 불렀던 노래 ‘팽성은 우리땅’을 합창했다.

▲ 마지막 촛불행사를 마치고 눈물을 흘리는 주민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주민들과 참가자들은 다 닳아가는 초를 높이 들고 함성을 지를 준비를 했다. 이날 행사의 사회를 본 주민대책위 김택균 사무국장이 2004년 9월 1일 평택경찰서 앞에서 시작한 촛불행사의 기억을 더듬으며 “우리는 꼭 이 땅을 찾을 것이고 내가 아니더라도 우리 자식들이 여기 와서 살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면서 촛불행사를 마무리 지으려한다”며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초를 들고 있던 참가자들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마무리’라는 말이 가슴에 와 박힌 것이다. “여러분의 힘찬 함성으로 935일째 촛불문화제를 마치겠습니다”. “와-”. 그러나 외마디 함성으로 그동안 견뎌온 세월을 날려버릴 수 없었다.

함성이 끝났지만 누구하나 촛불을 내리지 못하고, 한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평화가 무엇이냐’, ‘함께가자 우리 이길을’ 노래가 끝나도록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 참가자들은 마지막 함성을 지르고 난 다음에도 촛불을 차마 내려놓지 못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눈물을 머금고 초를 들고 있던 문 신부는 이내 촛불을 끄고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문 신부를 김지태 전 이장의 어머니께서 일으켜 세웠다. 행사장을 나서는 참가자들의 얼굴이 젖어 있었다.

정부의 강압에 못 이겨 주민들이 결국 정든 마을을 떠나는 상황에서 밝은 얼굴로 꾹 누른다고 해서 그 분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대추리를 통해 그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확인했다.

이날 주민들과 참가자들은 항아리에 소원을 적은 종이나 대추리에서 얻은 소중한 물품을 넣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주민이 대추리를 떠날 때 이 항아리를 땅에 묻는 매향제를 지낼 계획이다. 문 신부가 "우리의 생각과 의지가 영원히 없어질 수 없으며, 땅 속에 잠을 자도 언젠가 드러난다"고 믿는 것처럼.

부디 이날 함께 웃고, 울면서 이주 결정 후 무거웠던 주민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