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오후 2시 40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재일동포 탄압중단을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가운데, 서충언 총련 중앙국제국장).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우리에 대한 차별은 오늘도 지속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 민족의 상징인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니는 것 마저 어려운 상황입니다. 조선사람된 긍지로 살아가겠습니다.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십시오."

검정색 치마저고리로 단정하게 차려입은 앳된 얼굴의 여학생이 국회 기자회견장에 섰다. 최근 일본사회에서 극심해지고 있는 재일동포에 대한 탄압상을 알리고 호소하기 위해 고국 땅을 찾은 것이다.

27일 오후 2시 40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총련계 재일동포 6명과 시민사회단체 대표, 민주노동당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재일동포 탄압중단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재일동포 3세로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2학년인 한현주 양은 "폭행을 가하고, 협박전화가 매일같이 걸려온다. 초급학교 학생이 얻어맞는 사건이 분분해지고 있다. 어린 동생들을 보고 '조선인은 돌아가라', '조선인은 죽어라' 등의 폭언과 모욕을 당한 학생은 한 두명이 아니다"라며 억울한 상황을 전했다.

"일본의 대북제재 화살, 재일동포에게 돌려"

▲ 치마저고리를 입고 국회 기자회견장에 선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2학년인 한현주 양.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이번에 방한한 재일동포대표단 단장인 서충언 총련 중앙국제국장은 "총련 대표로 국회에서 기자회견하는 것도 역사상 처음"이라며 "6.15공동선언의 생활력이 얼마나 큰 지 이 땅에 와서 실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 국장은 "일본의 아베총리가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있지만 큰 효과를 못 내면서도 제재의 화살은 재일동포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작년 11월부터 수사 체포 형식으로 총련 각급 기관, 민족교육 학교까지 강제수색을 하는 놀음을 벌이고 있다"며 일본에서 당하고 있는 재일동포의 상황에 분노했다.

탄압을 조장하고 있는 일본정부 뿐만 아니라 별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은 한국정부에 대한 당부도 이어졌다. 지구촌동포연대(KIN) 배덕호 대표는 "한일조약 체결당시 조선인의 민족학교를 일본정부에게 마음대로 처리하라는 것이 회의록에 그대로 나와 있다"며 "일본의 우경화도 문제지만, 한국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은 "의원들도 정부 차원에서나 촉구할 일이 있으면 적극 나서야한다는 생각"이라며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인으로부터 탄압과 차별을 받는 문제에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60여 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통일연대 한상렬 상임대표의장이 낭독한 성명을 통해 "최근 총련계 동포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탄압은 도를 넘어선 인권유린이며 정치적 탄압"이라며 "일본 정부당국은 재일동포 탄압을 즉각 중단하고, 머리 숙여 사죄하라"고 요구하고 "한국정부와 정치권의 재일동포 보호정책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충언 총련 중앙국제국장이 발언하던 도중, 국회 관계자가 '의원이 참석하지 않은 기자회견은 진행할 수 없다'며 마이크를 끄는 일이 일어났다. 이날 이영순 의원은 의정 자체 일정으로 뒤늦게 참석했다.

이에 서 국장은 고의적으로 마이크를 끈 것에 대해 "섭섭하다"고 밝혔고, 민주노동당 김은진 최고위원은 "재일동포에 대해 역할을 하지 못한 국회에서 동포가 발언을 하고 있는 중간에 마이크를 끌 수 있는 처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고 따져 묻고, "동포들이 한국 땅에서조차 어떤 상황인지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찢어진 치마를 본 순간 가슴까지 칼로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가나가와조선학교 어머니련락회' 공련순 대표가 탄압사례를 전하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한편, 이날 오전 10시 서울 국가인권위에서 열린 '재일 민족학교 학생 인권유린 실태보고회'가 열렸다.

보고회에서 서 국장은 "아베정권 발족이후 11월말부터 올해 2월 중순까지의 짧은 기간에만도 일본경찰당국은 10번에 걸쳐 도꾜, 가나가와, 효고, 시가, 혹가이도에서 총련본부, 지부, 상공회, 민족학교 등 총련관련 기관 14개소와 재일조선인 관련 39개소에 대한 강제수색을 감행했으며 11명을 체포구금 했다"며 "할머니와 처녀, 병자까지 서슴없이 위압하고 폭행하며 무작정 끌고 가는 등 매우 폭력적이고 무자비하다"고 고발했다.

'가나가와조선학교 어머니련락회' 공련순 대표는 "우리 여학생의 치마저고리가 칼로 찢겨진 사건은 치가 떨리는 만행"이라며 "찢어진 치마를 본 순간 우리는 소리를 잃었고 저의 가슴까지 칼로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고 울먹이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억울한 이들의 처지를 듣던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을 비롯한 참가자들도 눈시울을 붉혔으며 행사장 내에 훌쩍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서 국장은 3.1절 88돌에 즈음해서 다음달 3일 총련 주최로 도쿄와 효고에서 열리는 집회를 일본당국이 금지했으나 재판을 통해 이를 취하시켰다고 전했다.

방한 재일동포들은 이날 기자회견 이후에 민주노동당 당대표 간담회 등을 진행하고 1일 창경궁, 인사동 참관에 이어 오후 2시 6.15남측위 백낙청 상임대표와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1일 오후 민주통일인사들과 환송만찬에 이어 2일 아침 서대문 형무소 참관 후 출국하는 일정이다.

이번에 방한한 재일동포는 서충언 총련 중앙국제국장, 조선오 총련 중앙통일운동국 부장, 오행덕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교원, 한현주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2학년생, 공련순 가나가와조선학교 어머니련락회 대표, 민헌석 총련영화제작소 부부장 등 6명이다.

▲기자회견에 이어 방한 재일동포들은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와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이날 오후 3시경 국회 본청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실에서 가진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와의 간담회에서도 재일동포에 대한 성원을 보내달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가나가와조선학교 어머니련락회' 공련순 대표는 "재일동포 3세로 우리가 남측에서 잊혀진 존재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아니었다는 것 알게 돼 참 기쁘다"며 초청해준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어 "우리는 조선사람이고 같은 민족"이라며 "우리가 일본에 있다고 한들, 같은 겨레인 우리를 잊지 말고 성원해 달라"고 문 대표에게 당부했다.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2학년 한현주 양도 "남녘 땅에 처음 왔는데, 이렇게 대표로 기자회견까지 한 것은 참으로 영광"이라면서 "나 자신도 돌아가서 민족교육을 실질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선두에 서서 우리 학교를 단결해 나갈 것"이라고 결의를 밝히기도 했다.

이에 문성현 대표는 "당연히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오늘을 계기로 진심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고 답했다.

통일연대 한상렬 상임대표의장도 "오늘 사례발표를 하는데 감동적이고 죄송했다"며 "시민사회단체도 긴밀히 연대해서 이 문제에 열심히 대응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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