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스미스는 정부나 국가의 개입 없이 ‘보이지 않는 손’(시장)이 경제를 저절로 조절.발전시킬 것이라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제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경제적 자유주의를 제창한 아담 스미스의 책 제목은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이다. 즉 아담 스미스가 자유주의를 제창하면서 설정한 사고의 범위(또는 영역)는 자신의 조국, 영국이었다.

18세기의 고전 자유주의와 최근 신자유주의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양자는 자유주의 경제원리를 제창하는 주체와 범위, 그리고 역사적 맥락에서 전혀 다르다.

고전 자유주의는 영국의 ‘꼬마’ 부르조아가 영국이라는 일국적 질서하에서 봉건체제를 혁파하는 관점에서 제창한 진보적인 사상이라면, 후자는 초국적 금융자본이 전 세계를 무대로 1945~1973년 서방 자본주의를 황금기로 이끈 케인즈주의, 사민주의, 복지국가 등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반동적인 사상이다.

사상은 외형상의 유사점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동적(動的)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차이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경제 현상을 보는 ‘범위’(또는 영역)의 문제이다.

경제를 비롯한 모든 사회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범위와 영역이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전근대시기 사회관계의 기본이 산과 강으로 구획된 토착 사회였다면 시민혁명기의 그것은 민족, 국민국가 수준이었고 현재는 국가를 뛰어 넘는 지역단위이거나 세계 전체이다.

따라서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경제적 대안을 고려함에 있어서도 범위, 영역의 문제는 중요한 검토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역사가 발전하는 속도에 맞게 동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범위, 영역의 문제와 관련 여러 갈래의 의견이 제출되고 있다. 처음부터 자본주의 세계 전체를 문제 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민족 또는 국가단위의 경제를 문제 삼는 경우도 있다. 이를 가르는 기준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면서도 현실가능한 진보적 대안을 제출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필자는 민족, 국가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범지역적인 범위를 의미있게 고려하는 수준에서 경제 현상과 대안을 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관점에 따라 몇 가지 문제를 시론적인 차원에서 검토해 보겠다.

미국과 유럽의 분화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미소 냉전 체제는 붕괴되었다. 이에 따라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경제질서는 사라졌고 소련 봉쇄의 기치 아래 하나의 경제 질서(달러 중심의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서방 세계는 미국과 유럽으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이를 가르는 핵심적인 기준은 유로화의 출범과 자본주의 유형의 두 가지 상이한 모델(영미형과 유럽형)의 등장이다.

1991년 이후 세계경제를 전체적으로 요약하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대세인 가운데 달러 중심의 경제체제인가 아니면 이와 다른 지역 또는 국가단위의 새로운 경제모델이 가능한가의 문제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유로화, 유럽연합, 유럽형 자본주의의 출현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만약 시야를 전 세계, 즉 자본주의 체제로 본다면 미국과 유럽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반면 일국적 차원에서 세상을 본다면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에서 유럽이 분화되는 과정은 부차적인 고려사항이 될 것이다. 일국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미국이든 유럽이든 국외(國外)의 대상이고 국외로부터 자립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국 경제의 활로를 개척하는 차원에서 미국과 유럽의 분화는 중요했다. 유로화와 유럽형 모델의 등장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유지되는 조건에서 일국 차원의 경제가 미국형과 구분되는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북ㆍ이란ㆍ베네주엘라 등 미국의 강도 높은 압박 정책에 시달리는 중간 규모의 국가들이 유로화를 통화로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에도 이런 사례들이 적지 않은데 가령 중남미 국가들은 중남미 대륙 차원에서 탈미적인 경제협력 가령 중국과의 교류, 중남미-인도-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연결하는 남남협력 등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동아시아 경제 위기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세계 3대 선진부국인 미국, 유럽, 일본은 서로 상이한 반응을 보였다. 유럽이 유로화를 출범시키며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체제와 선을 그었다면 일본은 동아시아 경제 질서를 시도하는 대신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 APEC에 몸을 실었다(이 과정에서 EAEC, AMF 등이 좌절되었다). 이로써 미국ㆍ동아시아는 달러, 유럽은 유로화 체제로 구분되었다.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금융위기는 달러 중심의 경제 체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한국의 경우 한국의 협조 융자를 일본이 거부하면서, 미국식 경제질서의 본산인 사채업자 IMF에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시점에 동아시아에 독자 통화단위가 구성되어 있거나 동아시아 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면 동아시아 경제 위기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었을 것이고, 한국의 경제위기도 다른 양상으로 해결되었을 것이다.

동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 동아시아 사회에서 독자 통화단위(ACU)를 만들려는 노력이나 금융통화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노력 모두가 미국식 경제 질서에 대한 대응의 일환이다.

역으로 한.중.일과 아세안의 경제구조가 긴밀해지고 있는 점에 비하면 여전히 이를 제도화하는 노력이 미흡한 것은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려는 의지와 협력이 미약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 필자의 주장을 분명히 하면, 가령 한국경제가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국 차원의 자립도 중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동아시아 질서를 탈미적인 구조로 바꾸어 가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자가 기본일 수 있지만 후자와 밀접히 결합되지 않는 전자만의 노력으로는 응당한 성과를 얻을 수 없거나 고통이 클 것이다.

이를 중남미와 비교하면 더욱 명확하다. 가령 볼리비아의 미래는 에너지 산업을 국유화하는 것과 함께 중남미 경제통합 과정이 원만히 추진되어 볼리비아가 통합된 중남미 경제에서 적절한 지위를 갖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볼리비아의 경우 전자보다 후자가 보다 중요하다.

볼리비아 사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적 관계의 연관이 커져 있기 때문에 일국적 차원의 독립과 함께 지역차원의 호혜적인 협력구조의 건설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한미FTA의 국제 역학

한미FTA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 한미FTA는 미국이 한국경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종속시키려는 음모인가 아니면 미중 사이의 역관계의 반영인가?

미국의 FTA 전략은 대단히 정치적이다. 아시아의 경우 싱가폴, 말레이시아, 태국, 한국 등 미국의 FTA 대상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포위하는 선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미국은 FTA를 경제적인 이익을 증진하는 수단만이 아니라 정치군사적인 이해를 실현하는 방도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도 두 가지 맥락에서 미.중 사이의 파워 게임을 반영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2005년 중국이 농산물을 제외하고 한중FTA를 추진할 것을 제안하자 미국이 이른바 4대 선결 조건 중 의약품과 자동차 분야를 ‘즉각 해결’에서 ‘상당한 진전’ 정도로 양보하면서 강행된 것이다. 중국의 제안도 정치적이라면 미국도 정치적인데 양자 모두 FTA를 국제적 맥락에서 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내의 반응도 마찬가지이다. 2005년 상반기 노무현 정부의 친미우경화 정책, 대연정ㆍ전략적 유연성ㆍ한미FTA는 집권 상반기 동북아시아 균형론 따위의 지역주의 노선을 대체하고 등장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현종 등의 친미파가 전면에 부상하고 송영길 등 열린우리당의 386의원들의 친미우경화가 진행되었다. 반면 정태인이 한미FTA에 반대하는 맥락을 보면 미국형 자본주의에 대비되는 유럽형 자본주의, 한미FTA가 아닌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맥락이 잘 숨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배기찬 씨의 책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의 결론은 이렇다. “한국은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이 비슷해지는 2020~2030년경에 통일을 이루고 아시아의 스위스, 동북아의 균형자로 거듭난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이 단독으로 동북아의 세력균형자가 되기 힘들다. 그 때까지는 최대 패권국인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공고히 해 신뢰를 쌓고 실력을 기르는 일이 급선무다.”(밑줄 필자)

반대로 한미FTA의 가장 열렬한 비판자의 한 사람인 정태인 씨의 주장은 이렇다. “우리가 갈 길은 여전히 ‘마지막 한 표’를 쥐고 동북아의 새로운 경제사회 모델, 그리고 장차 세계의 모델이 될 공동체적 민주주의를 찾는 것이다...우리로서는 중국과 미국 사이의 중간 지대가 넓으면 넓을수록 숨쉴 공간이 커진다.” (시사저널 2006년 4.25자에서, 밑줄 필자, 공동체적 민주주의는 유럽형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이 논문은 찾아 읽어 보기 바란다)

전체적으로 한미FTA를 결정했던 요소는 한국경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종속시키려는 미국의 음모와 같은 한미 사이의 문제라기보다는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어디에 설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즉 한국 자본주의가 미국형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유럽형을 지향할 것인가, 또는 미국에 편승하여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족쇄가 될 것인가 아니면 동아시아에 새로운 경제협력질서를 등장시키는 매개자가 될 것인가의 문제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의 대안과 관련해서

한국경제의 대안을 논하는 자리에서 흔히 외자와 국내 대자본과의 관계, 대자본의 처리 방향 등이 중심 의제가 되곤 한다. 이는 민족자립경제 또는 일국적 차원에서 경제를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문제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반드시 고려해야 할 대목은 국제질서의 처리 방향이다.

1) 전통적인 미국 시장을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한중일+아세안과 같은 동아시아, 남북러를 잇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북부를 강조할 것인가?

2) 만약 후자라면 한.중.일+아세안의 경우, 한.중.일+아세안에서 한국의 기술ㆍ자본ㆍ노동력이 어떤 지위를 가질 것인가가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아마도 한국은 중국의 거대 시장을 겨냥한 일본보다 다소 떨어지는 중위의 기술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대자본의 경우 이미 일국적 수준을 넘어 서 있기 때문이다. 가령 삼성전자의 경우 이를 서민, 국민경제의 입장에서 재조직한다고 하더라도 삼성의 기술력과 생산규모는 이미 한국이라는 일국적 틀을 벗어나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를 서민, 국민경제의 입장에서 재조직한다면 당연히 그 기술력과 생산규모가 어떤 ‘범위’(또는 영역)에서 발휘될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달러 체제의 유지 문제, 환율 구조 등이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한.중.일+아세안을 경제‘영역’으로 사고한다면 당연히 달러 대신 다른 금융통화질서의 문제가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한국의 환율이 IMF 이후 평가절하되었던 것은 ‘미국-동아시아’ 사이에 형성된 거대한 불균형 구조와 맥을 같이 하는 현상이다. 즉 한국의 환율 구조는 ‘미국-중국’이라는 범세계적인 경제 문제와 연관된 사안이며 환율구조의 재편은 그런 수준의 재편과정과 연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율 구조는 한국경제의 진로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경제를 보는 관점이 지나치게 ‘자주-예속’이라는 일국적 시야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3) 남.북.러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동북부의 경우 남북경제협력은 물론 남북러를 연결하는 에너지ㆍ물류 등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고려되어야 하고 대규모 자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정책 가령 일본 자본의 유입, 다국적 은행의 설립 등이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들 문제는 한국내에 과잉 부동자금을 생산자금으로 돌리고 건설산업의 활로를 열 수 있는 유력한 통로이다. 만약 지금과 같이 넘쳐나는 부동자금이 이미 포화상태에 직면한 국내 건설에 집중한다면 자산 거품과 같은 부작용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등등

일국 단위를 넘어 국제질서와 결합해야

필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경제현상과 경제적 대안을 설명하고 구상함에 있어 일국 또는 민족단위를 뛰어 넘어 국제질서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의 문제와 적극 결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모든 논쟁은 그런 수준에서 벌어지고 있다. 위 배기찬 씨와 정태인 씨의 논쟁도 그런 맥락이고 보수언론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주창하는 기조도 이전과 같이 북의 남침과 같은 한반도에 제한되어 있다기보다는 중국의 부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등에 맞추어져 있다.

(<민경우의 한국경제 탐구5>가 하루 늦게 실리게 된 것에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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