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우의 한국사회경제 변화 탐구> 연재를 시작하며 |
최근의 부동산 문제와 관련한 주목할만한 글은 조희연 교수가 진보정치 301호에 쓴 글이다.(아래 별첨)
조희연 교수는 위 글에서 “1가구 2주택 금지와 같은 기존의 부동산정책의 지평을 뛰어넘는 급진적 정책 제시와 관련 투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뒤 이를 근본적인 사회경제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발전시키자고 주장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부동산 문제가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며 이를 계급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고 부동산 문제를 매개로 진보적 사회경제적 대안을 결합시키는 문제 등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조희연 교수의 주장에 적극 동의하면서 몇 가지 첨언해 보고자 한다.
첫째, 한국사회에서 제기된 여러 사안 중 가장 민감한 문제는 민생 특히 부동산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가령 2007년 대선에서 북핵ㆍ남북관계는 예상을 뛰어 넘는 수준에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발전과 사람들의 의식 상태는 상당한 지체 때로는 역의 관계가 존재한다. 특히 보수기득권층의 정권 탈환에 대한 의지가 높고 대중의 생활고가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통일문제가 급부상하더라도 대중 의식은 예기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미FTA의 경우는 다소 주변적인(?) 변수이다. 농촌과 지방을 압도하는 위력적인 변수이지만 현재 농촌의 인구분포와 인구구성을 고려해 볼 때 정치지형 전체를 변화시킬 만큼 핵심적인 변수는 아닌 듯하다. 기타 광우병ㆍ의약품 등의 사안이 도시서민에게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침체ㆍ부동산ㆍ사교육ㆍ보육 등 민생현안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수침체ㆍ환율악화일 수 있지만 대중적 감성의 견지에서 보면 부동산 문제가 한국경제의 위기를 폭발시키는 기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부동산 문제가 민감한 현안으로 부각함에 따라 각당각파의 입장이 예민하게 갈라지고 있는 점이다.
가장 주목할만한 현상은 한나라당 내부의 논쟁이다. 11월12일 한나라당 조세개혁 특위가 제출한 부동산 세제 개악안인데, 구체적으로 종합부동산세제 대상을 6억에서 9억으로 상향 조정, 세대별 과세가 아닌 인별 과세, 1가구 다주택자 중과세 철회 주장을 11월24일 열린 한나라당 정책의총에서 수용하지 않았다.
같은 날 권오을 의원이 제출한 한미FTA를 2~3년 연기하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한나라당 의총에서 조세개혁 특위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은 것은 특기할만한 대목이다. 내년 대선을 치러야 할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한미FTA와 농민 문제는 아직은 지켜 볼 사안이지만 부동산과 도시서민의 문제는 자칫하면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예민한 문제로 본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러한 입장은 부동산 문제에 대한 도시서민의 여론을 고려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홍준표, 전재희 의원 등 한나라당내 일부 정치인의 개혁적 입장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령 홍준표의 의원의 ‘반값 아파트’ 주장은 한나라당의 핵심적인 지지기반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11.28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전국 성인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 따르면 열린우리당 지지층에서는 홍준표 의원의 안에 대해 ‘찬성’응답이 46.1% 로 ‘반대’응답 42.4%보다 높은 반면,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는 ‘반대’ 응답이 56.8%로 ‘찬성’응답 34.3%보다 무려 20% 이상 높았다(2007.12.2 문화일보에서).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흐르고 갈등이 격화될수록 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전 시기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실패에 대한 도시서민 대중의 분노를 ‘정책실패’라는 모호한 잣대로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는데 활용했다.
그러나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강남기득권층과 도시서민의 이해가 서로 다름이 명확해지면서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입장도 분화할 수밖에 없다. 11.24 한나라당 의총과 12.1 종합부동산 세제 시행에 따른 일부 지역의 조세조항은 이러한 간극의 단초를 잘 보여준다.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은 강남의 보수특권층과 영남 그리고 도시의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서민대중이다. 이 중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강남의 보수특권층과 도시 서민ㆍ중산층의 이해가 대립한다. 문제는 도시서민이 노무현 정부나 열린우리당에 비해 보다 기득권층의 이해에 민감한 한나라당에게서 절망적인 희망을 구하고 있는 점이다.
핵심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패라는 모호하고 애매한 논쟁을 넘어 ‘1가구 2주택 금지’와 같은 명료한 정책을 통해 여러 정당ㆍ정파의 정치적 색채를 명확히 하고 이에 기초하여 다양한 집단의 정치적 선택을 그에 맞게 재조직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이다.
민생 문제에 관한 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대다수가 신자유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민생의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정책적 주체가 노무현 정부인만큼 노무현 정부에게 공격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보다 오른 쪽에서 지탱시키는 정치세력이 바로 한나라당이다.
민생 문제와 관련된 정치적 계선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다수 - 열린우리당 소수와 민주노동당>으로 양분되어 있다. 따라서 민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정치지형을 바꾸는 대중적인 힘의 동원이 필요하다. 조희연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계급적, 사회적 분노’를 갖는 ‘성난 대중’이 필요한 것이다.
조희연 교수의 주장은 최근 사상계를 풍미하고 있는 논쟁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뉴라이트나 한나라당의 이데올로그 박세일 교수 등은 ‘교양있는 전문인이 중심이 된 법치’를 강조한다. 이들은 ‘교양있는 전문인 대 민중ㆍ국민’을 대립시키고 ‘법치ㆍ준법 대 거리ㆍ대중정치’를 가른다. 그리고 이를 (공동체) 자유주의 따위로 명명한다(‘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가 빠져있음에 주목해 보기 바란다).
반면 최장집 교수 등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를 주창하며 정치적ㆍ형식적 민주화를 뛰어 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주장하는데 이를 실현하는 주체가 다름아닌 ‘계급적ㆍ사회적 분노를 갖는 성난 대중’이다. 이 주장을 명확히 하자면 민주주의를 보다 심화하자는 것이다.
| 부동산 문제, 급진적 의제, 그리고 민주노동당 조희연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 |
| 나는 요즘 왜 민노당이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가하는 조바심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한나라당까지 ‘아파트 반값 공급’을 내걸었는데 말이다. 참여정부는 부동산 폭등을 제어하지 못하고 ‘부동산 정책 실패정권’으로 기록될 수 있는 참담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 대중들은 중도자유주의 집권정당의 참담한 몰락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수정당에게 기대를 걸려고 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예를 들면 ‘1가구 2주택 금지’와 같이 기존의 부동산정책의 지평을 뛰어넘는 급진적 정책 제시와 관련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이러한 정책이 대세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제로 부상하게 되면 보수세력은 ‘위헌소송’ 등 다양한 난리를 칠 것이다. 바로 여기서 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에게 현존하는 ‘토지공개념’을 뛰어넘어 ‘주택과 토지의 공공성’을 한 단계 높은 정책으로 ‘가공’하는 정책정당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지게 된다. 그러고서도 문제는 남는다. 현재의 헌법적 질서에서 위헌소송에 휘말릴 경우 이러한 정책은 패소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헌법개정투쟁에까지 투쟁지형을 확대하게 될 것이다. ‘토지와 주택은 공공적인 것이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식의 공공적 헌법개정의 비전을 구체화하면서 헌법개정을 요구하고 대중에게 선전할 수 있다. 이럴 때 대선과 총선 시기를 일치시킨다던가 하는 따위의 논의를 뛰어넘어 헌법개정의 새로운 사회경제적 투쟁지평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정책안출, 정책실현, 법적 쟁론의 과정을 뛰어넘는 대중투쟁의 과정이며 대중의 계급적, 사회적 의식의 고양 투쟁의 과정이다. 또한 그것을 보수세력에게 강제할 수 있는 계급적, 사회적 힘이 필요하고, 그러한 힘을 구성하는 대중들의 새로운 차원의 계급적, 사회적 분노가 필요하다. 나는 평소 “강남사람들은 계급의식이 투철하고 강북사람들은 계급의식이 없다”라고 말한다. 강북사람의 계급의식의 부재에는 물론 반공의식, 반북의식, 분단의식, 친미의식이 작용한다. 강남사람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많은 보수신문들은 종부세에 대해서 세금폭탄이라고 하고 선의의 중산층은 자신들이 세금폭탄의 피해자로 생각한다. 대중들은 그러한 보수언론의 선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나는 부유층들이 세금폭탄을 포함해 사회적 규제장치를 ‘불가피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변수는 민중의 분노이고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민노당을 포함한 진보세력이 어떻게 개입하고 투쟁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나의 생각에서, 진보정당은 대중의 계급적, 사회적 분노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급진적 정책창출과 급진적 정책 대중화의 기관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민중운동과 민노당의 역할이 다른 지점이 생긴다. 단순히 거리의 투사로 동행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조직으로서의 민노당은 대중들이 기존의 계급적, 정치적 지형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계급적, 사회적 분노를 표출할 수 있도록 명료한 급진적 언어와 정책을 창출해내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단순히 하나의 정책 의제 발굴을 넘어 보다 포괄적인 정책패키지와 정책프레임, 모델을 창출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 이것은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대중을 먹고 살게 하는 모델’의 창출이라고 하는 과제이다. 민주정부 10년--그것은 보수대중에게는 진보정권 10년으로 투영되고 있다--에도 불구하고 더 살기 어렵고 내 집 장만은 더욱 멀어져만 간다고 하는 ‘진보에 대한 절망’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나를 포함하여 진보적 지식인들의 무능력과 게으름도 존재한다. 민중의 계급적, 사회적 의식을 보다 급진화하고 그들의 분노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급진적이면서도 실현가능한 비전적 대안을 민중에게 제출해야 한다. 급진적이더라도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느낄 때, 대중은 분노를 가지고 진보운동 및 정당과 결합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단계 높은 사회진보를 위해 새로운 ‘실현가능한 급진적 정책’과 모델이 필요하고 그것을 자신의 요구로 수용하는 ‘계급적, 사회적 분노’를 갖는 ‘성난 대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분노를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더욱 실현가능한 급진적 정책과 모델, 의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의 참담한 몰락 속에서 대안적 비전이 보이지 않을 때 대중은 이명박 식의 새로운 ‘신개발주의 비전’에 몰려갈 수도 있다. ‘반동의 시대’이냐 ‘급진적 희망의 시대’냐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민노당을 쳐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출처 : <진보정치> 301호, 2006.1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