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제5차 6자회담 2단계회의가 첫날 각국 수석대표들의 기조발언과 19일 북미간 BDA회담과 6자회담 양자협의를 통해 대체적인 윤곽을 드러냈다.

먼저 초반 기선잡기에서는 북측의 협상전술이 돋보였다.
BDA 금융제재 문제와 9.19공동성명 이행을 다룰 6자회담은 별개라며 9.19공동성명 이행방안과 초기 조치 협상에 방점을 둬온 미국의 협상 전술은 일단 북측의 의표를 찌른 협상전술에 의해 퇴색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기조연설을 통해서 선 제재해제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지연전술'까지 펴며 북미간 BDA회담에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했다. 19일 북미간 양자협의와 BDA회담이 거의 동시에 개최됐지만 언론의 이목은 BDA회담이 열리고 있는 주중 미국대사관에 쏠렸다.

이 과정에서 미국측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6자회담 개막전 북미 양자협의를 추진했다가 물을 먹었는가 하면, BDA회담이 6자회담장인 댜오위타이에서 열릴 것이라고 예측했다가 빗나가기도 했다. 더구나 북측 대표단이 회담이 시작된 이튿날에야 도착한다는 사실도 사전에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 초반 윤곽은 BDA와 6자회담을 별개로 규정하려던 미국을 비롯한 중국과 한국의 입장을 북한이 노련하게 따돌린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BDA회담과 6자회담이 동시에 진행이 되면 상황은 바뀔 것으로 관측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즉 BDA회담이 아직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았음에도 결국 6자회담이 시작돼 6자회담은 6자회담대로 동력을 얻어나갈 것이고, 이 과정에서는 9.19공동성명 이행과 초기조치 합의를 강조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의 세가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전망은 피상적인 분석에 불과해 향후 회담의 흐름이 그렇게 흘러갈 것으로 보는 것은 다분히 '오산'이다.

초판 판세에서 가장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북한이 BDA회담을 철저히 실무회담으로 보고 있는데 비해 미국이 이를 정치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이 같은 사실을 놓치고 있다.

실제로 한국 언론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리근 6자회담 부단장을 BDA회담 단장으로 오인하고 있었다. 물론 리근 국장의 경력이 이같은 착각을 불러올 소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북측이 6자회담과 BDA회담을 연동시키려 한다는 잘못된 가설에서 상황을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측은 국제금융 실무책임자인 오광철 조선무역은행 총재를 BDA회담 단장으로 내세웠다. BDA회담을 철저히 경제실무적인 회담으로 조속히 마무리짓고 싶다는 의지를 명확히 드러낸 것이다.

국제금융 실무자끼리 위폐문제든 자금세탁 문제든 실무적인 검토를 통해 국제 금융계의 운영 룰에 따라 조속히 조치를 완료함으로써 6자회담의 장애물을 치우자는 것이다. 물론 BDA라는 장애물이 큰 틀에서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더라도 유엔안보리 제재 등 난관이 산적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같은 과정은 북미간에 '신뢰'를 바탕으로 6자회담에 임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측 입장은 다르다. BDA회담은 6자회담과 철저히 구분되는 것이라고 거듭 대외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기술실무적인 문제인 만큼 시간을 끌어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첫날 3시간여에 걸친 북미간 BDA회담 후 나온 미국측 수석대표 대니얼 글래이저 재무부 부차관보의 일성은 '장기적 과정'(long-term process)이 될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기술실무적으로 빠른 시일내에 처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회담은 중반에 접어들면서 중대한 전환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BDA회담을 철저히 실무적 회담으로 끌어가야 한다는 의미의 이중성을 한국과 중국측이 인식하게 된다면 지금까지 미.중.한 대 북한의 구도가 거꾸로 미국대 남.북.중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BDA회담이 북미간 신뢰회복을 위한 기술실무적 회담이 아니라 미국의 제재조치를 마냥 끌어가기 위한 방편에 불과해 6자회담의 발목마저 붙드는 장애물임이 드러나면 한국과 중국의 눈길이 고울리가 없을 것이다. 

이래저래 BDA문제로 시작된 이번 6자회담은 BDA문제로 끝날 공산이 높다.
BDA문제가 진정한 기술실무적 문제라면 수년간 이를 추적해온 미국측이 기술실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북측이 이중 정당한 것을 수용해 바로잡으면 된다.

본격적으로 회담이 중반에 접어들어 BDA라는 미국이 쳐놓은 덫에 걸려 6자회담이 허우적거리면 중국과 한국이 마냥 기존 입장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 결국 미국은 자신이 쳐놓은 'BDA와 6자회담 연계', 즉 '일면 대화 일면 제재'의 덫에 자신의 발목을 되잡히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앞으로 BDA회담 지연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태도를 지켜보는 것이 이번 회담의 터닝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감상하는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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